|
출처: 차황초등학교 35회 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신현숙
작은 오빠와 연심 엄니의 사라진 개
작은 오빠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었다.
오빠의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아부지를 찾아와 오빠에게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니 화가를 시켜 보자고 했지만 아부지는 우리 가문에 환쟁이는 없다며
농사일만 시켰다.
오빠는 동네 사람들을 앉혀놓고 초상화를 그려 주곤 했다.
밭두렁에다가도 지게 바지랑대로 그림을 그렸고, 온 동네 담벼락에도
그림을 그렸다.
군산 극장 간판에다 최은희, 엄 앵란을 그렸는데 실물과 너무나 똑 같아서
오빠나이 스무살 때 부터는 농사일 없는 겨울마다 극장 간판을 그리러
다녔다고 한다.
그해 겨울에도 오빠는 전주 어디론가로 간판을 그리러 갔다가 트럭에서
떨어져한쪽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오빠 나이 스무 두 살때였는데 겨울이라
먹을게 없어 시래기 죽만 먹으니 도통 뼈가 붙지를 않았다.
의사는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이라고 했지만돈이 없으니 그럴수 없었다.
이 궁리 저 궁리 한 끝에 아부지와 큰 오빠는 그믐날을 기다려 윗 동네 연심이
네 집 개를 잡아다가 오빠에게 먹였다. 덕분에 둘째 오빠는 뼈가 붙어 일어
날 수 있었다.
뼈는 다시 붙었지만 오빠는 평생을 절름발이 페인트 공으로 살다가
마흔 아홉에 후두암으로 돌아 가셨다.
오빠 집 거실에는 “그래, 너였지”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었는데,
탱자나무 울타리가 처져있고 양철 대문 위에는 샛노란 꽃이 피어있는
그림 속의 그 집에서 오빠는 돌아가셨다.
군산에 사는 언니로부터 연심이네 개 잡아먹은 얘기를 들은 나는
그 길로 군산에 갔다.
언니는 아직도 시장통에 연심 엄니만 나타나면 숨는다고 한다.
초등 학교때 나와 같은 반이었던 연심이는 우리보다도 더 못사는 집 아이였고
머리에 이가 너무 많아서 같이 놀아준 적이 없었다.
언니 집에 갔더니 언니의 연락을 받고 온 연심 엄니가 대기하고 계셨다.
김 수미를 만나자는 언니의 말에 그저 좋아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달려 오신 거였다.
오래 전에 혹시 개 한 마리 잃어버린 적이 없느냐고 내가 물었더니
연심 엄니는 곧 바로 수 십년 전의 이야기를 기억해 내셨다.
잡아 먹으려고 날 까지 잡아놨던 개가 있었는데, 누가 돼지고기에
쥐약을 뭍혀 꾀어 냈는지 살점하나 떨어진 거 없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뼈다귀라도 찾으려고 온 식구가 윗동네 아래 동네 쓰레기 장을 뒤졌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때 옆에 앉았던 우리 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못 찾는게 당연했쥬, 우리 아부지가 공동 묘지에다 뼈다귀를 묻었는디유.”
벗 님들 !
어디서 들어 본 이야기 같지유
나 혼자 웃었습니다.
세상은 정말 좁은가 봐유
김 수미씨가 소개한 둘째 오빠는권 양현 외삼촌의 큰 사위였고 따라서
한해 선배인 창평 이 순우씨와 친 동서간입니다.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
김 수미씨의 파란 만장한 인생사가 담겨 있어 잼 나게 읽었습니다.
군산 촌녀가 서울 유학 생활중 선생님 심부름으로 양호실을 갔더니
문이 잠겨 돌아와서 선생님께 “으째가요, 쇄때가 채워졌는디유.”
휴대폰이 없던 시절 장화씨가 연수를 왔다가 전화를 걸었는데 우리
아들이 받으니 전화 번호를 알려주면서 경대 뼈다지에 잘 넣어 두었다가
엄마 주라하여 몇 번이나 물어서 받아 적어 내가오니 전화 번호가 중요한게
아니라 엄마 경대 뼈다지가 뭐야?
비슷하지 않나유 .....
2010년 8월 28일
신 현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