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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나치만 키운다! 스크랩 김을동은 김좌진의 손녀라고 보기 어렵다
연화 추천 0 조회 1,984 16.05.26 16:2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김을동은 김좌진의 손녀라고 보기 어렵다. [9]

피리 부는 사람 (psuk****)

주소복사 조회 605 11.11.03 13:45

이유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김좌진 장군은 만주에서 독립군 대장으로 일본제국군과 맞써 싸운 인물이다.

그런데 김을동은 만주국 관동군 장교 다까끼 마사오의 딸 밑(친박연대)에서 정치생활을 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할아버지가 독립투사이면서 자신이 그와 배치되는 행동을 한 인물과 뜻을 세워 행동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상식이 없다면 가능하다. 그리고 상식이 있다면 과거 선조들은 아무리 핏줄이라도 세운 뜻이 다르면 남남으로 갈라섰다.

 

둘째 위연홍이라는, 김좌진 장군의 친딸인 김강석(2003년 작고)씨의 딸인, 외손녀가 유전자 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런데 김을동은 거부했다.

 

셋째 김을동이 든 자신이 김좌진의 손녀라고 내세운 사진은 1930년대 사진이다.

그런데 김을동은 실제 1945년 9월 5일에 태어났다.

 

1945년에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1930년대 사진에 얼굴을 등장시킬 수가 있는가? 족보 조작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

 여러 자료들....................

 

김을동(탤런트 송일국 엄마)이 김좌진 장군의 손녀인가? 사기극의 극치인가?

 

 

| …― 준회원 자유게시판
짱이^^ 조회 217 |추천 0 | 2011.11.03. 12:40

 

 

신화는 두세대만 지나면 날조가 가능하다.


<앞부분은 생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설은 4,50년만 지나면 날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인기를 끌었던 `야인시대` 드라마에서 김두한이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로 나옵니다.

이거.. 이거를 사실로 믿으십니까?
쌩거짓말이죠. 1940년대 당시 일제 치하이던 시절, 그 흉흉하던 시절에 수표교 다리밑의 거지이던 한 건달이 자기가 김좌진장군의 아들이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당근 당시 사람들은 상대도 안해줬죠. 왈가왈부할 가치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6.25동란을 거치면서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그런것에 관심을 가질 여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못느꼈을 겁니다. 그리고 두 세대가 지난 오늘, 버젓이 김두한이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전국으로 방영이 됩니다.

이제는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마 그럴테지 하고 생각할 뿐. 지금 사람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이미 오래된(적어도 2세대) 전설이니까요.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사람들은 그 사실 자체보다는 독립군 장군의 아들이 거지로 살다가 주먹계의 대부가 되는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즐기게` 되었다는 겁니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거죠. 영웅이야기에는 그 영웅의 사실여부는 중요치 않으니까요. 그 영웅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자신감과 카타르시스를 주느냐가 더 중요하죠.

이렇듯.. 신화란 것은 금방 조작이 가능한 겁니다. 김일성도 당대에 신화를 만들어냈죠. 아마 70이상 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 진실로 믿을 겁니다. 나뭇잎 타고 대동강 건넌 얘기를. 아빠,엄마 할 때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자랐을 테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주위에 그 이야기를 부정하는 어떤 말도,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는 환경에 살고 있으니까요.

<뒷부분도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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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1889.11~1930.1)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6일간 지속됨)

1930년 1월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함.

 


 

일본 천황의 생일을 맞아 조선일보가 내놓은 사설을 보자면...
" 천황폐하의 생일을 맞아 모든 신하와 백성이 경축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것이다...천황폐하께서 옥체가 건강하시니 실로 황공하고 경할뿐이다...앞으로 충성과 의를 다하여 일념으로 천황폐하와 일본제국에 보답하겠다 " 라고 되있다...

 

매일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고 당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일본에 충성하던 극악한 매국 역적 신문으로 일본 총독부의 철저한 검열에 의해 기사를 송고하던 시절이었으며 

 청산리 대첩이 1920년 10월 일어난 이후 김좌진 장군에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있던 시절로 국내의 독립군 연결조직과 군자금 모금책등을 검거하기 위해 일제가 혈안이 된 시점이었다.


 

 

 


 

 

 

 

다음은 김좌진 장군이 암살당한 직후 (1930년 1월 암살당함) 북로군정서의 잔존세력이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함경북도등지에 주제소등을 습격하던 당시의 시절에 실린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기사이다.

 

김계월(1904년생)

 

 

 

 

 

해석 

(1) 김옥균 1851.1.23∼1894.3.28,   1884년 갑신정변 실패로 일본 망명.1894년 3월 홍종우에 의해서 암살되다.
(2) 김좌진 1889.12.16∼1930.1.24,  1920년 10월 청산리 대첩,             1930년 1월 박상실에 의해서 암살되다.

(3) 김두한 1918.5     ∼1972.11.21

 

김두한의 주장----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음.

7세때 청산리 대첩 발발 외조모 모친은 투옥 되어 고아됨, 10세때 부친 김좌진 별세함.

 

하지만

김옥균은 일본에1884년부터 망명중이었고 1894년 일본에서 암살당함, 김좌진은 1889년 충남홍성에서 태어남. 따라서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다는 주장은 날조된 거짓말.

김두한은 1918년생. 청산리대첩때 김두한 나이는 3세여야 함. 따라서 7세때라는건 날조된 거짓말.

김좌진 장군이 별세한때는 청산리 대첩 발발 10년후인 13세때여야함. 따라서 청산리 대첩 발발 3년 후인 10세에 김좌진이 별세했다는 주장은 날조된 거짓말.

 

이외에도 조선총독부가 만들어낸 기생모친이 맘에 결렸던지

김두한은 상궁의 딸이라는 해괴한 여인을 등장시킴. 그 여인이 김두한의 생모라고 주장.

그럼 상궁은 딸을 1880년 말~1890년 초에 낳았어야 함. (김두한과 나이차를 따져보면 상궁의 딸 김계월은 1904년이전 출생이어야 함)

 

하지만

그래...그냥 백번 양보해서 그래 그 무슨 상궁이라고 쳐도

조선 시대에 궁에 일단 들어가면 상궁이든 뭐든 궁녀는 죽어서야 궁 밖을 나옴. 상궁이 저 시기에 딸을 낳았다는건 있을수 없는 일.

그래 더 백번 양보해서 1910년 국권 강탈후 나라가 망해 궁궐의 궁녀를 밖으로 내보내면서 상궁이 밖의 사람이 되서 딸을 낳았다고 쳐도 그럼 상궁의 딸은 1918년에 기껏해야 몇 살 인데... 그때 김두한이 출생했다니.

이 무슨 해괴한 말인가! 날조의 연속...  아무리 망해가는 조선 왕조의 상궁이라고 해도
상궁이 딸 가졌다는 이런 해괴한 소리도 내 김두한이한테서 처음 듣는다. 또 양녀라고 할 텐가? 김두한의 글 일일이 따지자면 횡설수설과 황당무계 궤변의 연속이지만 이 정도로 해두겠다.**

 

  


김좌진은 18세에 자기집의 모든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을 해방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일찌감치 만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에 투신을 하였으니 오랜세월 고향과는 멀리 떨어져 연락이 두절이 되었었죠.  김좌진은 공산주의자의 총에 맞아 죽을 때까지 자기에게 김두한이라는 아들이 있는지 조차 몰랐습니다.  사실 김두한은 김좌진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충남출신인 김좌진과는 달리 김두한은 서울출신의 고아였습니다.  자기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김두한은 어려서부터 거지들과 어울려다니면서 거지생활로 유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김좌진 장군 후손이라는 후광으로 한국에서 유명세 위세를 떨치고 정치판까지 진출해 경제적으로도 잘사는 김을동은 김좌진 장군의 진짜 후손이 확실한 분이(대부분 독립운동가들 후손들이 그러하듯) 한국 국적도 못얻고 밑바닥 생활을 하는데 모른체 한다고함.

 

 

 김두한이가 안동김씨 족보에 오른것은 바로 그가 안동김씨문중에 가서 애걸반 협박반으로 뗑깡을 부려서 호적에 억지로 이름을 올린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때문에 안동김씨 종친회에서는 골머리를 앓았었는데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이 안동김씨문중에 있으니 확인을 할 수도 있답니다. 유명한 깡패 주먹계출신에 이승만을 등에업고 정치판에서도 위세가 대단했으니...다만 이후로 김두한이 안동김씨를 내세우면서 국회의원도 하고 영웅처럼 묘사가 되면서 사회에 부각이 되니 안동김씨문중에서는 유야무야 침묵을 지키는 것이라더군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맨 처음 김좌진과 전혀 연관없는 기생,김두한을 장군의 가족으로 연출해냈고 이후 김두한이 자작해서 상궁의 딸이라는 여인을 등장시켜 모친이라고 주장함. 김계월의 실제 존재 유무도 아무런 근거,증언,자료도 없음. 김좌진이 김옥균의 양자로 들어갔다는 주장도 김두한만이 주장하는 것임. 김두한이 김좌진 아들이라는 주장의 원천은 조선총독부의 날조 기사물에 김두한의 횡설수설하는 입이 전부임. 김좌진 장군이 김두한의 친아버지란 증거는 단 한개도 없습니다. 

 

 

몇년전

김을동은 김좌진 장군의 진짜 후손들과의 DNA검사를 거부하였습니다.

 

 

출처: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bbsId=K153&articleId=62519&pageIndex=1&searchKey=

&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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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한이 정말 김좌진 아들일까?(펌) [0]

명박잘가 (thr***)

주소복사 조회 152 08.07.19 14:03

 

 

 

 

 

너무 재미있는 글이 보이길래 퍼 와 봤습니다.
김두한이 정말 김좌진 아들일까???
 
 
김두한이 백야 김좌진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우익 깡패의 아구에서 나온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순진한 것이지요(김두한은 해방이후 좌익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잠자고 있던 천 삼백명을 기습 하룻밤 사이에 죽인 인물입니다. 김두한 자신의 회고록에는 자랑스런운 업적으로 나오지요)

김두한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출신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좌진 장군이 서울 근교 야산에서 동지들과 회합을 갖었다가 일본 경찰에게 ?기는 신세가 됩니다. 사직동 어느 양반 동네로 내빼다가 담을 훌쩍 넘었는데 그 집은 궁정 상궁의 집이었고 그 상궁에게는 딸 하나가 있었는데 김좌진 장군은 그 딸 방으로 피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위기의 상황에서도 정분이 오갔고 김좌진 장군이 나중에 만주로 떠나면서 "아들을 낳으면 두한이라 하고 딸을 낳으면 두옥이라 해라" 그랬다는 것이죠. 그래서 김두한은 안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상궁이 누구고 상궁의 딸이 누구인지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김두한은 여기에 대해 이런 구라를 칩니다. "내가 일곱 살 때 (청산리 대첩으로) 일본 경찰이 외조부님과 모친을 투옥했다. 그래서 나는 천애 고아가 되었다. 열살 되던 해 독립군 대장인 부친의 별세를 듣고 울었다. 그래서 혁명아가 되게겠다고 서울로 600백리 길을 걸어왔다"

청산리 대첩은 1920년 9월의 일이고, 김좌진이 고려 공산청년회에 의해 암살 당한 것은 1930년 1월의 일입니다.
두 사건의 시간적 간격이 10년의 차이가 있는데 김두한의 아구에는 3년의 차이 밖에 안납니다.
게다가 1920년은 김두한이 2살되던해이고, 김두한이 열살되던 해는 1927년입니다. 그는 3년 뒤에 일어날 김좌진 장군의 죽음을 타임머신을 통해 미리 들은 것입니다.


여기다 김두한의 개구라는 한 술 더 뜹니다. "우리 아빠는 백야 김좌진 장군, 우리 할배는 고균 김옥균이다"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조선후기의 정치가 김옥균이 지 할배라는 것입니다.

 

김옥균이 지 할배면, 김옥균의 아들은 김좌진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웃기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김옥균은 친손이 없었습니다. 이게 뒤에 알려지자 김두한이는 잎에 침하나 안바르고 이런 애길 합니다. "우리 아부지는 김옥균 할배의 양자로 들어갔거덩~"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들은 '우리 엄마 아빠는 엄청난 갑부인데 어릴 때 공원에 날 데리고 놀러갔다가 나를 잊어먹은 거야. 언젠가는 날 찾아 오겠지' 이런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깡패 시키들은 감옥에 들어가면 온갖 희안한 소릴 다 듣습니다. 그 대부분이 힘의 상징인 인물과 관련된 얘기들이죠. 최근까지 감옥 생활 했다는 어깨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오사카의 대부는 한국인으로서 불패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조금씩 과장되면서 전해진 것으로 압니다.

김두한도 마찬가지지요. 일제의 검속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감옥에서 김좌진 장군의 얘기를 들은 김두한은 그 얘길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권력을 잡을 때, 씨종자도 모르는 자신의 혈통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입니다.

 


최근에 김두한의 아들이 <야인시대>에서 자기 아버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바로 잡아 달라고 방송국에 요청한 일이 있은 줄 압니다.
웃기는 소리죠. 저거 아버지가 우리 현대사에 왜곡한 김좌진 장군 아들 날조 얘기나 좌익 세력을 무조건 주적으로 왜곡한 것에 비하면 방송국에서 뭘 왜곡했는지 모르겠지만 새발의 피도 안되는 것입니다.

 

.... 이글이 사실일까? 은근히 이런 글이 많네요 진짜 궁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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