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않았는데 아들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춘천엘 오겠다고 한다.
손주의 잦은 잔병치레에 마음이 쓰여 춘천까지 아이를 데리고 오라는 말을 못했다.
그런데 아들가족이 찾아오겠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느라 남편이 어떤 말을 내게 하는데 들리지 않았다.
손주가 무엇을 좋아 하는지 무엇을 해주면 잘 먹는지 고민하게 되었고 아들과 며느리가 서운하지 않게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하게 되었다. 먹는것도 소홀하면 안되겠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 안될것이고 어떻게 하면 배려했다고 느낄것인가등
나는 갈비를 넉넉하게 재우고, 손주가 먹기에 부드러운 등심으로 불고기를 준비했다.
나물 종류를 준비하고 과일을 사놓았다.
냄새나는 이불은 없는가 살펴보고 세탁해야 하는 이불은 서둘러 세탁했다 집안은 여기 저기 지저분한 곳은 없는지 쓸고 닦고 대충했다. 낮에는 딸의 아이를 남편과 보느라 종일 그곳에서 보내고 오후에 집에 와서 장보고 서둘러 했다.
아들은 금일 일을 마치고 나주에서 Ktx를 타고 춘천에 밤 10시 30분에 도착했다.
잔병치레 하는 손주가 염려 되었는데 큰 무리없이 기차를 타고 왔다고 했다.
다음날 딸가족, 아들가족, 나는 춘천시에서 새로 지은 '장난감 도서관'에 갔다.
3시간가량 도서관에서 즐겁게 놀고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보았다. 책을 보는 시간이나 졸음으로 보내는 시간이나 같았다.
전날 피곤한 탓인지 깊은 잠을 못자고 설쳐더니만 앉아서 책을 보니 졸음만 왔다.
춘천에 오면 '닭갈비'를 먹어야 한다며 저녁은 닭갈비 먹으러 갔다.
춘천에 살면서 닭갈비 사먹는 일은 많지 않다. 왠지 비싼 가격에 비해 음식이 허접하다고 해야하나 넉넉한 푸짐한 느낌이 없어서
왠지 바가지 쓴 느낌이랄까 그래서 닭갈비먹는것을 무심결에 싫은 느낌을 주어서 그런지 아들은 서운한기분이 들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 되는 것이지 뭘 그렇게 따지느냐 하는 느낌 내 의도는 같은돈 주고 푸짐하게 먹을수 있는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자는 것이였는데 서로의 생각을 말하기엔 분위가가 멈춰야 할때가 있다.
그나 저나 맛있게 먹었다. 모처럼 먹으니 독특한 맛이 있었다.
난 무엇보다 철판에서 익었는지 익지 않았는지 먹어도 되는지 알수가 없어서 망서려지는 이유중 하나이다.
어째든 모두 맛있게 먹고 '투썸 '카페에 가서 이차로 커피와 디너도 먹었다.
닭갈비는 딸부부가 냈고 카페 지출은 내가 했다.
친손주와 외손주는 친구가 되어 매우 잘놀았다. 또래 끼리의 동질성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외손주도 친손주도어린이 집에 다니지 않아 갈곳이 없어 날마다 어른들하고 놀았는데 두녀석들이 서로가 너무 좋아했다.
외손주는 친손주와 밤에 함께 자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늦게까지 방과 거실을 들라거렸다.
아마도 자고 일어나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많이 놀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였겠지 늘 혼자서 어른들하고만 놀다가 또래가 오니까 많이 좋았던 모양이다. 어른들이 아무리 잘 해준다해도 아이들의 관계만큼 좋을수가 없겠지
서로가 장난감을 가지고 뺐고, 뺐기고 쫓아가고, 쫓기고 하면서 놀았다. 할아버지,할머니의 무릎에 먼저 앉으려하고 서로가 시기하는 모습들이 그토록 웃음을 만들어냈다. 어느누가 개그을 한다해서 진정한 뒤센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난 늘 가족안에서 갈등하고 수고했었다.
시댁에서 명절이면 난 늘 주방에서 많은 음식을 하느라 바빴고 시댁 가족들이 모여도 내 존재 가치는 무수리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소외감을 느끼곤 했었다. 물론 친정에서도 이와 같은 기분을 느끼곤 했다. 시댁에서건 친정에서건 가족들이 모일때면 난 늘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곤했다. 내게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는가 하는 사고를 가졌더라면 아마도 외로움은 덜했을 것같다. 외로움도 이방인같은 느낌도 내가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가 되겠지
그렇다면 난 지금 무엇이 나를 변하게 만든것인가. 내가 원했던 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의 성격심리를 알게되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나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인가 어쩌면 모든것을 예민하게 생각 하지말고 지각된 왜곡을 하지 않으므로서 내 영혼이 맑게 된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변하면 나도 행복하고 주변인들도 행복할 것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불편하면 긍정적인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고 주변인들도 불편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껏 그렇게 살았다. 내 마음의 텅빈 창고가 어느정도 채워진걸까?
내 기분 보다 주변인들을 배려하려는 마음도 생기는것을 보니 말이다. 오늘은 신부님에게 인사를 했더니 내손을 잡으며 악수를 해주셨다. 내가 다가가니 상대방도 다가온다. 이렇게 방식을 아니까 나도 행복하다
가족으로부터 진정한 행복감과 존재가치를 크게 느껴 보기는 오랜만이다.
내 아들부부,딸부부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돈이 없어도 서로를 배려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행복한것이 아닐까
이모든것에 하느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