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략이라는 주제로 강의한 적이 있다. council, 이 모략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단어다. 사탄마귀가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주무기가 묘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략이라는 단어가 진짜 중요한 까닭은 하나님이 이 모략을 쓰시기 때문이다. 악한 자의 모략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도 모략을 쓰신다. 이사야 11장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임하는 영이 모략의 영이다. 또 이사야 9장 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략을 펼치신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펼치시는 모략의 절정은 바로 십자가다. 십자가는 마귀가 뻔히 알면서도 막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최고의 모략이었다. 이 십자가의 모략이 그대로 예언된 말씀이 오늘 말씀이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유대교를 고집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골칫거리가 되는 말씀이다. 자기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약성경 그것도 이사야서에 예언된 이 말씀은 어떻게 봐도 십자가 예언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심지어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노찌림’이라고 부르는데 해석하면 ‘나사렛 것들’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고 역사 최대의 모략이었다. 십자가 모략이 얼마나 엄청난지 예언하는 선지자 이사야도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는 이 말씀을 시작하면서 여호와의 구원의 역사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냐고 자기 말을 하고 있는 거다.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종이나 메시아 또 구원자에 대한 개념을 뒤집는 반전이 처음부터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가 무엇인지 2~3절에 잘 나타나 있다. 메시야는 이새의 왕국을 다시 회복하실 왕이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이렇게 약하고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지~ 고난을 당하고 무너지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받는 천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더 충격적이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모략이 나타나는 말씀이 4~6절 말씀이다. 우리가 죄인이어서 우리가 고난을 당하고 징벌을 받는 게 맞는 말인데 그런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시고, 평강을 누리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대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고 찔림을 당하고 버림받고 죽었다고 했는데 이게 다 우리 때문이라는 거다. 우리는 지금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다 알고 있어서 괜찮지만 처음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할 말을 잊을 정도로 충격이었다. 메시야가 고난 받고 멸시받는 모습이라는 충격이지만 그게 다 네가 행복하라고 네가 회복되라고 그렇다는 말이 더 충격이었을 거다. 이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고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다. 이 대속의 사랑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의 모략에 의해서,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에 의해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신앙인으로 와 있을 수가 있는 거다. 2015년 시작하면서 다른 어떤 것보다 십자가 은혜로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면서 주어진 시간을 아름답게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이 대속의 십자가 은혜는 어떤 영적 의미와 진리를 담고 있는가? 우리가 붙들어야할 십자가의 은혜는 어떤 것인가?
1.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신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잘 잊어버리곤 한다.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죄악을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 십자가의 은혜는 하나님의 막을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는 사랑이 담긴 은혜다. 사탄마귀가 우리를 모략으로 넘어뜨리려 할 때 하나님의 그 사랑을 기억해야 한다. 상황이 점점 힘들어지고 또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을 때 들려오는 사탄의 음성에 속지 말고, 의심에 힘을 실어주지 말고, 신앙을 가지고 고백하고 선포하자. 하나님은 날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의 그 사랑은 막을 수 없다고 난 그 사랑을 여전히 믿는다고 고백하자.
2.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도 날 위해 일 하신다.
십자의 은혜에 담겨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영적 사실은 지금도 하나님은 날 위해 일하신다는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이다. 하나님은 우릴 우해 아무 것도 안 하고 계시는 게 아니다. 아무 것도 못하고 계시는 건 더더욱 아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 눈에는 안 보이지만 지금도 일하고 계시며 역사하고 계신다. 그게 모략이기 때문에 안 보일 수 있지만 세상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세상이 놀라고 사탄마귀가 절망할 정도로 엄청나게 역사하고 계신다. 이게 십자가의 진리다. 우리가 이걸 붙들고 의지할 대속의 사랑에 선명하게 써있는 메시지다. 때때로 우리는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방법은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이건 하나님도 못하시는 게 분명하다고 단정을 짓곤 한다.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세상이 어두움으로 가득할 때 그걸 뒤집어버리는 모략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전혀 없다. 필요하시다면 기가 막힌 방법으로 역사하실 줄 믿어야 한다.
3.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신다
비록 패배처럼 보이지만 위대하고 완벽한 승리가 십자가다. 그 승리의 선포가 십자가 은혜 속에 들어있다. 지금 상황이나 현상이 아닌 것 같고 언뜻 볼 때 진 것 같아 보이지만 이건 결론이 아니라는 거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십자가 은혜를 붙드는 한 반드시 결국은 이길 걸 믿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갈보리 십자가는 그냥 승리가 아니라 궁극적 승리다. 과정은 모르겠지만 지나간 것은 잘 모르겠지만 갈보리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은 반드시 궁극적으로 이길 줄로 믿는다. 사람들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가는 이유는 십자가의 궁극적 승리를 놓치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기도하다가 중간에 응답받지 못하고 기도를 포기하는 이유도 십자가의 승리를 놓치기 때문이다. 모든 영적인 실패는 다 그렇다. 이걸 붙들고 나가면 반드시 이길 줄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십자가를 붙들고 나가 승리하길 축원한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모략에 의한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더 결단할 것이 있는데 그건 우리도 하나님의 모략의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을 쓰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가 없고 사람의 방법을 쓰면 하나님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모략의 방법을 사용할 때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연관이 되는 것 같아 2008년에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도 하고 주연도 한 ‘그랜 토리노’라는 영화다. 주인공 월트는 포드자동차회사에서 은퇴한 성질이 까칠하고 욕을 잘하는 혼자 사는 영감이다. 그는 포드자동차에서 직접 만든 1972년산 머슬카인 그랜 토리노를 뒤뜰에 세워놓고 보관하고 있었다. 그곳은 이민 가정들이 많은 위험 지역이었다. 이웃에 사는 몽족 이민자 가족의 아들인 타오는 몽족 갱단들의 위협과 협박으로 그랜 토리노를 훔치게 되었다. 하지만 월트에게 걸리고 말았는데 그때부터 둘은 친하게 되었다. 갱단은 타오가 차를 훔쳐오지 않자 타오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타오의 누나를 성폭행 까지 했다. 타오가 복수를 하겠다고 하자 월트는 자신이 먼저 준비해 놓겠다고 하며 타오를 지하실로 데리고 가서 가둬 버렸다. 앞날이 창창한데 이런 일로 인생을 망칠 순 없다고 하면서. 그리고 혼자 갱단들의 아지트로 가서 총을 꺼내려는 순간 갱단은 그가 총을 꺼내는 줄 알고 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월트는 죽었다. 어떤 평론을 보았더니 죽어있는 월트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 같았다는 평이 있었다. 사실 월트가 들고 있었던 건 총이 아니라 라이터였고 결국 총을 지니지 않은 사람을 쏜 죄로 갱단들은 모두 무기징역을 살게 되었고 그 일로 타오의 가족을 지킬 수가 있었다. 사실 월트는 지병으로 오래 살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을 생각했다. 비록 주인공이 크리스천이라고 나오지는 않지만 그가 택한 방법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 즉 하나님의 모략을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폭력적 방법은 죄를 멈출 수 없다. 협박하고 난리를 쳐도 죄를 멈추게 할 순 없다. 죄를 멈출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님의 모략인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인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법이다. 억울하고 힘들지만 이 방법 밖에는 없다. 2015년에는 작은 일부터 큰 일 까지 하나님의 모략인 십자가의 방법을 택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그렇다. 내 것을 고집하지 말고 힘으로 누르려고 하지 말자. 그게 물질이든 그게 시간이든 그게 자기 자존심이든 그냥 주라. 그러면 우리 하나님의 모략에 의해서 결국은 놀랍게 승리하는 역사가 있을 줄 믿는다. 이게 우리의 방법이다. 이게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015년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십자가의 은혜 위에 우리의 삶을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