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이 종전될 무렵 북부 이태리의 한 수도원. 이곳에 심한 부상으로 얼굴도 국적도 확인할 수 없어 '잉글리쉬 페이션트(영국인 환자)'라 불리는 한 남자가 있다. 그를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프랑스계 캐나다인 간호원 한나(줄리엣 비노쉬 분). 남자의 이름은 헝가리인 탐험가 알마시(랄프 파인즈 분)다. 알마시에겐 사하라 사막에 묻어둔 영국인 귀부인 캐서린과의 가슴아픈 사랑의 기억이 있다.
어느날, 이곳에 두손에 붕대를 감은 신비한 인물 카라바지오(월렘 데포 분)가 찾아온다. 몰핀을 구하러 온 그는 원래 캐나다인 도둑으로 2차 대전 중에 연합군측 스파이로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수년전에 사하라에 있었던 카라바지오는 알마시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인물이다. 한편, 사랑한 사람은 모두 목숨을 잃어 자신을 저주받은 영혼으로 생각하는 한나는 알마시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피아노를 치면서 운명적인 남편을 만날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믿는 한나는 인도인 폭탄 전문가 킵(나빈 앤드류 분)과 천진난만한 사랑을 나누고, 죽음을 눈앞에 둔 알마시는 아름답지만 슬픈 러브스토리를 카라바지오와 한나에게 들려준다.
끝도 없이 펼쳐진 광활한 사하라 사막, 국제 지리학회 팀의 일원으로 북부 사막지대의 지형을 조사해 지도로 작성하는 직업을 하는 알마시는 경비행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한 영국인 귀족 부부를 만나게 된다. 제프리 클리프튼(콜린 퍼스 분)과 캐서린 클리프튼(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분). 알마시는 처음 본 순간 캐서린에게 운명적인 사랑을 느낀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캐서린은 알마시의 매력에 매혹당하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 남편과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러나, 동굴 탐사길에 모래폭풍으로 고립되면서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는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드는데.....
해나는 아버지 친구 카라바지오를 사랑했고, 아버지는 전쟁에 참가했다. 카라바지오와 아버지를 찾아 전쟁터에 자원했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며 그녀는 점점 미쳐간다. 나중에 아버지의 죽음과 전쟁터에서 생긴 아이를 잃고 난 다음에는 거의 실성상태이다. 그녀는 전장의 병원이 지긋지긋했고, 죽어가는 이들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살 가망이 없는 영국인 환자를 살리기 위해 폭탄이 남아있을 지도 모를 빌라에 남는다. 그런 식으로 전쟁의 변두리에 남고 싶었던 지도 모른다.
카라바지오는 해나를 찾아서, 영국인 환자를 찾아서 빌라에 온다. 그는 도둑이면서 전쟁 중 스파이로 활동했다. 사막에서 유명했던 스파이 알마시의 존재를 찾아 이탈리아까지 온 것이다. 전쟁 중에 적군에게 잡혀 손을 절단당했다.
킵스는 인도인 공병으로 본국의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에 차출되어 왔다. 펀자브 인은 기계에 능한데 그는 영국인 폭탄 제거 전문가에 의해 발탁되어 폭탄 제거 교육을 받았다.
알마시, 이 책의 제목 영국인 환자이다. 그는 자유인이고, 사막의 물 지도를 그리는 일을 했고 사막을 사랑했다. 그의 일은 나중에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참전국의 주요 목표가 된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 캐더린을 위해 그것을 독일군에게 판다. 오로지 그녀를 구하기 위해서. 사막에서 캐더린을 만났다. 그녀는 친구의 아내였으며 시와 비를 사랑한다. 그가 사막이라면 캐더린은 물, 오아시스이다. 사막에도 물의 지도가 있다. 그것을 찾는 작업을 하는 알마시에게 캐더린은 오아시스였다.
네 명은 모두 전쟁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그곳에서 킵은 해나의 품안에서 잠들며 안식을 얻었다. 카라바지오는 알마시 또한 전쟁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그를 잡으려 하지 않는다. 카라바지오와 알마시의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은 미스테리 소설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전쟁과 불륜, 폭탄은 닮았다. 모두 만들어진 순간부터 산산이 부서지고 말 뇌관을 가지고 있다. 폐허 속 네 사람의 동거는 킵이 원폭을 아시아에 투하함으로써
전쟁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분노가 북받치면서 마무리를 향한다. 백인에 의해 시작된 전쟁에 아시아인 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참여했고, 백인에 의한 전쟁은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끝이 났다. 킵은 ‘백인들의 나라에는 결코 그런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이다’고 확신한다.
소설은 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킵과 해나의 소식을 전하며 끝난다. 해나는 새어머니 클라라에게 아버지의 전사를 알리는 편지에서 ‘어떻게 우리처럼 속아넘어가지 않으셨어요?’라고 묻는다. 새어머니 클라라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 인디언삶의 방식을 택해 산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영화에선 그저 알마시와 캐더린의 사랑만 보였는데, 소설 속에는 해나와 킵의 사랑과 전쟁의 비극이 보인다. 해나와 킵의 사랑은 알마시와 캐더린의 사랑과 다르게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무하는 것이다. 그 안에 비극의 뇌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킵은 해나를 떠나왔다. 그것은 알마시와 캐더린의 사랑이 전쟁의 음모에 의해 처연하게 끝나는 것과 다르다. 둘의 사랑은 전쟁의 주범 백인과 피해자 아시아인이란 인종 차이가 아니라 전쟁 희생자로서의 다른 성격 때문에 헤어질 수 밖에 업었다.
멀리서 보면 사막은 아름답다. 그러나 사막에선 한시로 딴 눈을 팔 수 없다. 그만큼 변화무쌍하다. 전쟁 역시 스스로 변화하는 괴물 같다. 비극적 결말이 암시된 사랑 역시 언제나 난간 위를 걷는 곡예같다.
알마시는 사막은 '뺏거나 소유할 수 없다'고 한다. 전쟁도 사랑도 폭탄도 모두 인간이 만들었다. 뺏거나 소유하기 위해 애쓰는 순간 폭탄의 뇌관을 잘못 건드리는 것처럼 폭발해 버릴 것이다. 읽으면서 읽고 나서도 내내 생각했지만, 이 소설을 비극적인 연애소설로만 읽어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반전 소설이란 이름붙이기도 주저된다. 사막을 소유할 수 없는 것처럼 규정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마음 한켠이 먹먹하게 아파오는 것은 알마시와 캐더린의 비극이 가장 크게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첫댓글 개봉된 것이 1997년이던가요? 그때 꽤 인상적으로 보고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어제 이 영화를 다시 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162분 굉장히 긴 영화인데도 전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소설이 원작이지요. 문학카페이니 만큼 혹, 원작이 궁금한 분들을 위해 말미에 북 리뷰를 덧붙였습니다.
예전에 비디오로 본 영화인데.. 북 리뷰까지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손순이님도 보셨군요! 가까운 언젠가 님의 영화평이 오르길 학수고대합니다^^
저는 줄리엣 비노쉬가 나오는 영화는 다 좋더라구요.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잘 스며드는 줄거리의 영화들...그리고 영화보면 다른 영화에서도 함께 출연하는 경우도 제법 많은 것 같더라구요. 줄리엣 비노쉬와 랄프 파인즈, '폭풍의 언덕'에서 두 주인공으로 등장하죠? 저는 이 영화 첫 장면부터 마음에 들었어요. 미술의 역사를 보면 최초의 미술은 동굴벽화잖아요. 인류가 수렵생활을 할 때부터 가역불가능한 자연에 맞써 삶을 유지하고 이어가면서 주술의 의미를 담아 내기 시작했던 미술, 이 영화에선 그림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기 시작한 그림으로 그려지더라구요. 드디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로 시작하던 영화...
인류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전체 줄거리를 보여주는 첫 장면. 비록 가역불가능한 비극적 운명을 가진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랄프 파인즈의 사랑의 비극이,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잃어버리던 줄리엣 비노쉬의 사랑에서 희극으로 극복되며 연결되는 구성. 아름다움의 흐름이 멈추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있는거라는 거 알 수 있겠더라구요. 영국인 환자 랄프 파인즈가 줄리엣 비노쉬의 인류애적인 치료를 받으며 편안하게 눈 감는 부분도 환상적이구요. 저도 여러번 봤어요, 이 영화. 어학과정할 때...ㅎㅎㅎ
우와~ 예쁜 별님의 영화를 평하는 안목이 무척 고차원적^^인데요. 종종 그러한 시선으로 본 다른 작품에 대한 영화평도 올려주신다면, 저로서는 무척 즐거울 것 같습니다. 반갑습니다, 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