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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사이펀 문학토크
목포의 시인을 만나다
목포는 남도의 대표도시이자 항구이다. 항구의 특징은 많은 것들을 아낌없이 담아낸다는 것, 그리하여 남도만의 독특한 색채를 지닌 문화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최하림, 김현 등 현대문학의 거장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202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박람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번에 초대된 박관서 시인은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목포와 서울을 오가며 문인들의 위상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류경 시인은 인천에서 목포로 근거지를 옮겨와 익숙한 현지인들이 잊고있는 목포의 자연과 문화를 발견하여 알리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또한 이 두 시인은 서로 다른 자신만의 톡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목포문학을 풍성히 아우르는 박관서, 류경 두 시인의 최근 시들이 지니고 있는 문학적 층위를 면밀히 짚어보는 것이 목포와 문화적 다양성을 갈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길라잡이가 되리라 생각된다.
초청시인 - 박관서 / 류 경
■일시: 2023년 1월 7일(토) 오후 3시
■장소: 목포시, 카페‘밀물’
곽윤경 : 안녕하세요? 오늘은 문예지 《사이펀》에서 전국을 순회하며 펼치는 문학토크 <목포의 시인을 만나다> 편으로, 최근 시집 『광주의 푸가』(삶창)를 펴낸 박관서 시인과 시집 『내가 침묵이었을 때』(문학의전당)를 간행한 류경 시인을 모시고 진행하겠습니다.
박관서 시인은 지난 1996년에 계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목포작가회의 및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거쳐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류경 시인은 2004년 《시와 세계》로 등단하여 강원도와 인천 등지에서 교직생활과 문학활동을 병행하면서 또한 전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영문 시집 두 권을 발간하여 아마존 등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교직에서 물러나 제2의 고향인 목포에서 시를 쓰며 동소 우이도를 전국에 알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두 시인을 모시고 두 분의 최근작인 『광주의 푸가』와 『내가 침묵이었을 때』를 중심으로 작품 세계와 함께 우리 목포에서의 삶, 그리고 그 삶이 문학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등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그럼 먼저, 두 분께서 각각 자신에 대한 소개와 함께 요즘의 근황 등을 함께 말씀해 주세요? 박관서 시인님 먼저 부탁합니다.
박관서 : 앞에서 소개하셨다시피, 저는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일로 분주합니다. 이제 약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기는 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본업(?)인 시인으로서의 자세와 태도를 올곧게 지녀야 하고 또한, 이를 근간으로 어떻게든 새롭고 튼실한 작품을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문단 일에만 몰두하여 건들먹거리다가는 문단의 건달이 되기 십상이죠. 하지만 사실 이는 제 심상지리상의 근황이고요. 실제 공간상으로는 목포와 서울이라는, 어찌 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을 하나로 묶어서 살아가는 실체가 되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여 이를 타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오가는 서울 길이 아니라, 지난 70년대의 남도 정서를 정확히 담아낸 김지하 시인의 <서울 길>처럼, 오늘날의 나로서 당대의 감성과 서정이 담겨있는 서울 길을 작품으로 형성하여 산출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류 경 : 저는 평생을 걸쳐서 근무했던 교직에서 수년 전에 은퇴를 하였고요. 여기 목포로 이주하여 유달산 등성이에 <달빛언덕>이라는 게스트하우스와 신안 우이도 근처 작은 섬에 거주지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토록 바라던 전업 작가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하루라는 노트에 아무것도 적히지 않고 하얗게 비어 있다는 게 얼마나 달콤한지를 느끼는 요즘입니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노트에서는 과거로도 갈 수 있고, 미래로도 갈 수 있고, 장미의 마음속으로도 갈 수 있고, 때로는 전생으로까지 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곽윤경 : 두 시인 모두 목포가 고향은 아니시지요? 박 시인님은 전라북도 정읍이 고향이고, 류경 시인님은 강원도 춘천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 목포와는 어떤 인연으로 제2의 고향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류경 시인님부터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류 경 : 저는, 여기 목포와의 인연이 저의 고향인 강원도 춘천과의 어떤 연관 속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제가 은퇴한 이후에 어디에서 살까를 고민하는 속에서 선택한 곳입니다. 보통 누구나 그렇듯이 고향인 춘천으로 할까? 아니면 세계 여행 중에 깊은 기억으로 남은 캐네디언 록키로 할까? 여러 군데 생각을 했는데 역시 우연히 여행을 와서 만났던 목포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우주도 우연이고, 우리 자신도 우연이고, 세상 모든 것은 우연이 만든 장미이지요. 우연히 누구를 만나 사랑도 하고, 우연히 어디로 가기도 하고, 모든 것은 우연이 만든 장미이지요. 그래, 서울의 북한산을 떠나며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소나무의 바다를 떠나려 하다니... 이 고장에는 소나무의 바다를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목포는 문명이 지워지고 바다가 시작되는 여백 같은 도시입니다. 정원과 중정과 후원이 있는 삶 자체가 예술인 도시입니다. 그리고 목포는 모든 섬들의 어머니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나는 이곳의 탐험가입니다. 또 모르지요, 탐험을 마치면 어딘가로 가게 될지도!
곽윤경 : 예, 자유로운 여행의 한 거주지로 선택한 목포에서의 삶과 문학에 대한 류경 시인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음은 박관서 시인님은 우리 목포에서 어떻게 터를 잡게 되었는지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관서 : 제 고향이 전북 정읍인데요. 집이 무척 가난했습니다. 대학은커녕 고등학교에도 제대로 진학할 형편이 안되어서 철도고등학교에 진학하여 호남선 장성역 등에서 근무하다가, 군대 전역 후인 1985년에 목포역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응당, 원래 계획은 1~2년 정도 근무하다가 서울이나 고향인 전북 쪽으로 가서 대학교를 택해 국문과나 문예창작과에서 제가 소망하던 문학공부를 계속할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특히 원광대학교 국문학과가 문학청년들에게 풍성한 보금자리였거든요. 그런데 목포의 젊은 문학동인 그룹인 <삶의 시울문학회>를 만나면서 문학에 대한 지향점과 태도 자체가 급격히 선회하였습니다. 당시 시울문학회에서는 아예 문단의 등단 절차를 거부하자는 에꼴을 실제로 내걸고 있을 정도로 일면 급진적이면서 순수했지요. 또한, 목포와 해남 출신인 김지하, 김남주 등의 민중문학으로 기초학습을 하면서, 문학의 외연보다는 나한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의미와 가치에 함몰(?)되었지요. 즉, ‘내가 발 딛고 선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는 명제 아래 내가 사는 곳과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내 가족과 동료와 이웃들을 통하여 발현되는 문학이 진실한 문학의 전형이 되어야 하며, 그것들 자체가 문학의 목적이자 수단이어야 한다는 문학적 지향과 태도에 매료되었지요.
그리하여 목포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문학과 예술운동에 나서면서 당시 사단법인화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곧 한국민예총 전남지회와 목포지부 결성에 앞장서게 됩니다. 또한, 얼마 후에 목포문학에 본격문학의 새바람을 심자는 뜻을 모아 목포의 젊은 문인들이 모여서 <목포시인학교>를 결성하고 이는 곧 민족문학작가회의 목포지부를 결성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2001년 12월에 결성된 목포작가회의 초대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목포지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제 문학의 근거지이자 본향을 목포로 삼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듯이 목포는 육지의 끝이면서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고, 바다의 끝이면서 육지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고인 우물이 아니라 바다와 육지가 서로 맞물리고 융합하는 기수역(汽水域)인 목포처럼 제 문학도 자유로우면서 깊은 생성과 생명의 파동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곽윤경 : 이번에는 두 시인이 문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문학에 입문한다는 것이 어떤 선을 그어놓고 정하는 것도 아니고, 문학 입문이라는 대문을 통과하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언어에 얹어 운율을 느끼게 하는 시를 짓게 되었는지, 두 분이 문학세계로 들어서게 된 내력을 들어보겠습니다.
박관서 : 예, 앞에서 이미 제가 목포를 중심으로 하여 문학에 입문하던 시기를 설명한 듯싶은데요. 좀 더 그 시원을 찾아보면 역시 가난한 청소년기를 보내던 정읍의 정읍천변 멀리 보이던 철로 위를 오고 가던 기차였던 것 같아요. 아침이든 저녁이든 가리지 않고 어디론가로 떠나가는 기차를 타고서 멀리 떠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런 꿈이 문학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내가 실존하는 세상 너머의 세상을 꿈꾸는 그런 자기 해방에 대한 글쓰기가 문학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류 경 : 저의 문학의 시작은 첫 번째 기억입니다. 5살 정도 된 아이가 벽에 기대서 하늘도 보고 햇살도 보고 바람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번 생애는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그리고 저는 아직도 그곳에 앉아 있습니다. 아마 다음 생애도 그곳에 앉아 있을 것 같아요.
곽윤경 : 문학 자체보다는 실은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학적인 상황으로 스며들어 간 문학에의 입문 과정을 잘 들었습니다. 그렇듯이 이제는 최근 간행된 두 시인의 시집에 실린 시를 중심으로 시 세계에 대하여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먼저, 류경 시인님의 시집은 『내가 침묵이었을 때』인데요, 시집 제목의 의미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류 경 : 시집 제목이 『내가 침묵이었을 때』 이듯이, 그냥 그렇게, 시는 언어와 침묵 중에서 침묵 쪽으로 기울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저의 평소 문학에 대한 소신을 자연스럽게 담았습니다.
박관서 : 광주는 응당 5.18광주민중항쟁을 의미하고요. 여기에 짝지은 푸가(fuga)는 도주(逃走)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악곡 형식의 하나입니다. 먼저 하나의 성부(聲部)가 으뜸조로 주제를 연주해 나가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되풀이하는 방법으로 3성부, 4성부로 발전시키는 대위법에 따르는 악곡으로 바흐에서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광주의 5.18 역시 국가에서 인정하고 사회적으로 제도화되고 있습니다만, 이것이 완성은 아니고 이어지는 망각과 무관심으로 다시 일어서는 수구주의와 파시즘 같은 독재 권력에 항상 주의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듯이 지속적인 의식의 혁신과 계속적인 우리들 삶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성찰이 곧 5.18이 주는 진정한 의미라는 시각에서, 5.18을 새로 봄과 동시에 필자가 살아가고 있는 목포와 무안 등 지역과 삶의 일상 세목들을 반추한 시들을 모아서 『광주의 푸가』라는 제목으로 달았습니다.
곽윤경 : 역시 주로 지역에서 문학의 세계를 올곧게 펼치는 시인들답게 자신의 문학적 지향을 그대로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 시집에는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담았나요? 물론 한 가지 이야기만을 담았을 리는 없겠지만, 이 시집에 담긴 두 시인의 시 세계를 들어보겠습니다.
박관서 : 예, 저는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민예총 등의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광주의 5.18을 접하였습니다. 직접 접하지는 않았지만, 이에 직접 참여한 분들과 각종 책과 자료들을 통한 간접 체험을 통해 일정 부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거나 또는 정체 및 퇴화하는 5.18의 진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광주전남작가회의의 집행부 일을 하면서는 제가 전공한 문화예술교육의 입장에서 오월인문학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이에 대한 일정한 시각과 태도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일어난 대구 10월항쟁 및 여순, 제주4.3 민중항쟁 그리고 부마항쟁과 5.18 그리고 그 이전의 시원인 동학혁명과 독립투쟁 및 6.25를 전후로 전국 각 지역에서 일어난 양민학살 등 일련의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부족합니다만, 동학혁명을 통한 온전한 세계관의 구축과 프랑스혁명을 통해서 얻은 자유, 평등, 박애 같은 시민적 가치의 구현이 실제적인 중요하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5.18을 다시 봄과 동시에 제가 몸담고 살아가는 지역과 삶의 일상을 문학적으로 반추하고 성찰하는 이야기들을 주로 담았습니다. 물론, 제 이전 시집인 『철도원 일기』, 『기차 아래 사랑법』과 같이 ‘문학을 내세워 나를 녹여내는 은유의 방식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문학을 드러내는 진술’의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순전히 내가 접한 광주, 목포, 무안 등의 실제 지역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드러나기에, 좀 쑥스럽고 미안하기도 하지요.
류 경 : 제 시집에 담긴 이야기는 일상에서의 탈출기이며 지구별 여행기입니다. 왜인지 사람이 없는 오지가 저를 매혹하였고, 이 시집은 순전히 제가 거쳐 온 여행지가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입니다.
곽윤경 : 시집에 담긴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는데, 그를 풀어내기 위한 개념과 의미와 같은 이야기의 근거를 들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시집에 들어 있는 작품 중에 뭔가 사연이 있는, 또는 숨어 있는, 얽혀 있는 이야기가 있는 시가 있을까요? 시와 함께 얽혀 있는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류 경 :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시는 「아야 소피아」입니다. 터키의 이스탄불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여러 번에 걸쳐서 점령했던 도시입니다. 그들은 점령할 때마다 회벽을 바르고 그 위에 자신들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회벽 아래 여러 겹의 성화가 있는 것이지요. 파괴하지 않고 회벽을 바른 것을 관용이라고 읽어야 할까요? 그 정원에는 1세기의 돌, 5세기의 돌이 같이 굴러다니고, 예수와 알라가 교대로 고백성사를 듣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러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 아야 소피아에서
삶의 피로를 내려놓고 생의 의미를 묻는다.
시간이 그리고 지우는 성 앞에서
자신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아야 소피아의 지워진 성화가
전생을 지우고 이생을 사는 우리를 닮아있다.
여러 세기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성전에서
예수와 알라가 교대로 고해 성사를 듣는다.
/ 졸시 「아야 소피아」 전문.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알함브라 궁전에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스페인은 무어인의 성은 보존하고 잉카의 성은 잔인하게 파괴했습니다. 원자폭탄을 아시아에서 실험한 것처럼. 하지만 자연은 잉카의 수도 쿠스코에서 거대한 지진을 일으켜 잉카의 성벽 위에 지은 스페인의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마치 이것은 틀린 일이라고 말하는 듯이. 왜 정복자들은 아이사에 남아메리카에 그토록 잔인했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박관서 : 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아픈 기억이 담겨있는 시 「가거도행」이 선뜻 떠오릅니다. 지난 2006년경에 겁 없이 각종 문화예술운동에 열중하면서 목포와 신안 인근의 섬과 바다가 좋아서 이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단체를 만들어서 활발한 활동을 했었지요. 그러다가 민족예술운동 진영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에 휘말려서 기나긴 법정 송사까지 오가던 어려운 무렵이었죠. 그저 현실에서, 내가 살던 육지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고자 싶어서 다다른 가거도에서, 이에 이른 감회를 시로 쓰고 동행했던 조병연 화가가 즉석에서 그림을 덧붙인 한 폭의 시화(詩畫)작품을 우리가 머물던 둥구횟집 벽면에 걸어두었어요. 그리고 잊어버렸는데, 수년 후에 경상남도, 부산 등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인 고승하 선생이 가거도로 여행 갔다 우연히 이 시를 보고, 영감을 받아서 곡을 붙여 시노래로 만들었다며 저작권에 대한 양해를 구해왔어요. 이후 전남민예총 재창립식과 세월호 추모제 등으로 여수와 목포 등에서 고승하 선생을 만나, 이에 대한 전말을 자세히 듣고서 찾은 시이기도 해서 더욱 기억에 남지요.
밀려난 꿈은 가장자리가 가장 깊다
사는 일에 목을 걸고 맴을 돌다
국토의 맨 끝 가거도에 이르러
이웃나라 닭 울음에 귀 기울이고 있는
녹섬 앞 둥구횟집 평상에 앉아
검정 보리술로 목을 헹구면
박혀 있던 낚시미늘마저 따뜻해진다
밤 깊은 동개해변 찰랑거리는
둥근 달빛에 젖어 흠뻑
사는 일 흔적도 없이 지워져
남의 나라 남의 일이 된 즈음에야
새로워진 나를 만난다 스스로 깊어진
가장자리를 만난다 생무릎 꺾여
밀려나 보지 않은 이들은 평생을 살아도
가거도에는 이르지 못하리
/졸시 「가거도行」 전문.
곽윤경 : 역시 시인들의 시를 중심으로 얽히는 이야기들은 개인적인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람과 세계와 진실을 거쳐서 그 진폭이 참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처럼 속 이야기들이 담긴 시들이 시집에는 가득한데요. 그중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가 있을까요? 박관서 시인님부터 부탁합니다.
박관서 : 「정읍사(井邑詞)」라는 시입니다. 제 고향인 정읍에서 탄생한 백제의 고대가요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약 9년 동안 치매와 병환으로 심하게 앓다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시이기 때문입니다.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온몸이 쪼그라들어서 한 움큼 정도의 몸매였는데, 어느 날엔가 자신의 양팔을 맞잡으려고 하는데, 이게 힘이 없어서 서로 맞잡지 못하는 겁니다. 애써 애써서, 자신의 팔을 자신의 팔로도 잡지 못하는 그 거리가 너무 슬프고 아팠습니다. 무슨 무엇 무엇을 대단한 일이라고 벌이면서 살아가는 우리 삶의 진실을 보는 듯해서,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다가 돌이 되어버린 정읍사의 여인을 빌어서 표현해본, 저에게는 아픔과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진득하니 배어있는 시입니다.
노래는 노래가 아니었네 아흐 다롱디리
입을 닫은 그녀가 갓난애가 되었네
수숫대 같은 발목에 몸을 얹은 앉은뱅이로
내려앉은 하늘을 부여잡았네 아흐
흔들리는 발로 발을 일별하네 다롱디리
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칸나꽃이 피었네
살을 섞었던 사내도 살을 나누었던
자식들도 돌이 되어 문밖에 섰네
달구어진 온기와 선득선득한 냉기가
뒤섞인 손으로 손을 잡을 수 없네
이리 먼 거리가 이리 가까웠었나
아흐 다롱디리 먼 길 떠나는 그대를
물고기의 눈으로 바라볼 뿐이네 아흐
그것이 그것이 아니었네 아흐 다롱디리
/졸시 「정읍사(井邑詞)」 전문.
류 경 : 저에게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는 「언어의 여행」입니다. 가족들이 사랑하는 시이고, 제 남편이 나중에 제 묘비에 새겨주겠노라고 약속한 시이기도 합니다.
나는 처음에 아담의 입에서 태어나 우리가 태어난 것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흙에 다음에는 영원을 꿈꾸며 석판에 새겨졌죠.
나는 선과 악을 기록하기도 하고 창세 신화도 기록하고
때론 백과사전에 명예란 이름으로 앉아 있기도 하고
세상의 책 속에서 고요와 함께 잠을 자기도 한답니다.
침묵과 소음의 중간지대가 나의 영토.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들에 운명이란 이름으로 나를 붙이기도 하고
우리 곁에 와 있는 신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나를 붙이기도 하고
고통을 신의 얼굴이라 부르기도 하죠.
나의 아주 오랫동안의 동행은 파피루스였고
AD. 2000년 1월 3일인 오늘은 빛의 속도로 쓰여지고 있죠.
사람들은 이것을 희망이라고도 부르고 절망이라고도 부르지만
내게는 그냥 낭만적인 여행일 뿐이죠.
/ 졸시 「언어의 여행」 전문.
곽윤경 : 역시 정이 들어서 아끼고 지극히 사랑하는 애착이 담긴 시는 시인 개인의 몸과 심장 곁에 있는 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순전히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가 있을까요? 일반 독자여도 되고, 특정 독자여도 괜찮습니다.
류 경 : 독자에게 추천하는 시는, 저의 교직 생활이 한 편으로 응축된 시 「교실」입니다
오늘도 나는 아이들에게 빨리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천천히 걸으면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씨름 잘하는 아이에게 왜 달리기는 하지 못하느냐고 화를 낸다.
오늘도 나는 푸른 쉐쿼야 나무 한 그루에게
큰 숲에 가야만 큰 나무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잡목림에서는 들꽃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오늘도 난 아이들에게 거대한 행복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작은 아이들의 작은 행복은 모른 체 한다.
오늘도 난 높이 오르면 멀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지만 높이 오르려면 많은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 졸시 「교실」 전문.
학교를 떠나면서야 평소에 학생들에게 왜 더 많은 칭찬을 못 해주었을까? 왜 더 많이 이야기를 못 해주었을까? 그런 반성이 들었습니다. 그 칭찬들은, 이야기들은, 그 아이에게로 가서 아름다운 한 부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박관서 : 시집의 맨 앞에 있는 「달맞이꽃」을 추천합니다. 용서는 실은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그와 내가 서로 얽혀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하여 실행하는 성과적 방식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어렵고 아프고 쉽지 않기는 하지만 유한한 생명을 살다가는 우리 인간에게 또 다른 매듭을 짓기 위한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쪽 빰도 내밀어라’라는 예수의 해결책은 인류 문명의 영원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또는 과거의 못나서 서운한 나에게 오늘과 미래의 내가 보낼 것은 용서밖에 그 무엇도 없습니다.
당신과 싸우지 않겠다
언덕을 넘어 함께 거닐던 저녁 바람이
아무리 앙칼지게 불어와도
푸른 잎새 노란 어금니를 앙다물고
당신이 증오하는 당신은 되지 않겠다
당신의 그림자로 당신을 덮지 않겠다
길이 갈리면 고요히 손을 흔들며
길에 깔린 기억을 일으켜 세워
지친 당신을 감싸보련다 멀리 있어
가득 차오른 달빛을 보며 둥실
허리를 꺾어 휘파람을 불어 보련다
/ 졸시 「달맞이꽃」 전문.
곽윤경 : 시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지향하는 문학과 세계와 삶에 대한 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마무리를 앞두고서 우리는 지금 ‘목포의 시인을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문학토크를 하고 있습니다. 목포에서 사는 시인으로서, 또는 목포에서의 삶을 영위하는 주민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박관서 : 저는 고향이 전북 정읍이고,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목포에서 생업을 하면서 거주하다가 지금은 무안 월선리에 우거지를 마련해두고, 목포와 광주와 서울을 출입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이나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아시아!’라고 합니다. 모두들 웃고 넘어가기는 하지만, 객지에서의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절실히 느끼는 지점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판단하고 위계를 결정짓는 기본 근거로 삼는 지연, 학연, 혈연 등과 같은 구시대적 잔재들은 이제는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목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목포의 힘은, 육지와 바다의 만남 그리고 국제항으로 개발되어 각국의 조개지가 있던 국제도시로서 계획 개발되었던 소통과 융합의 장소입니다. 지금 목포는 오랜 쇠망에서 벗어나 흥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흥성은 불꽃처럼 피었다가 지기 마련입니다. 잠시 피고 지는 불꽃이 아니라, 한없는 개방과 수용을 통하여 한반도의 목포가 아니라 아시아의 목포 아니 세계 시민이 살아가는 세계 속의 목포와 같은 질적인 차원의 도시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목포를 담는 시를 쓰고 이를 통해서 발언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목포작가회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각종 문학행사와 특히 김현문학축전과 목포문학박람회 등에 적극적인 주인의 자세로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류 경 : 저는 100년 전 그대로 남아 있는 목포 원도심을 중국 운남성의 리장처럼 가꾸는데, 저의 힘을 보태겠습니다. 목포에서 우러나는 여백과 수많은 섬들의 이야기 그리고 여기에 아직 남아 있는 야생지대의 이야기들을 시로 옮기겠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니고 있는 한국작가회의 목포지부의 신임 지부장을 맡았습니다. 일단 목포작가회의를 활성화시킴과 아울러 제 자신 시의 영역을 넓히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곽윤경 : 문학에의 입문 과정으로부터 시작하여 목포와 관련한 로컬문학과 자신의 시집 등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흥미롭고 깊이 있게 들었습니다. 긴 시간이 금세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되겠네요. 두 시인은 결국 어떤 시인으로 남고 싶은지요?
박관서 : 나한테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는 시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한 번 왔다가는, 우주에 하나뿐인 기막힌 존재인 내 삶을 온전히 바라보면서, 살아가면서, 이를 언어와 리듬으로 나타내어, 내가 네가 되는, 그러한 파동으로 무장한 소리꾼이 되고 싶습니다.
류 경 : 자유롭고 평화롭고 행복한 그리고 그것을 일기로 적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의 시는 수평선을 향해 걸어가면서 자유롭게 부르는 휘파람입니다. 제 졸시인 「눈 내리는 밤」에는 자꾸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내 모습이 보이는데, 아마 이처럼 살다가는 내 생의 마지막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목포를 방문하여 제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와 함께 격려해준 문예지 《사이펀》과 강은교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강은교 선생님은 제가 배우고 싶은 시 세계를 가지고 계십니다. 더욱 열심히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계절에 또 목포를 방문해 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방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곽윤경 : 지금까지 시 전문지 《사이펀》의 전국 순회 문학토크인 <목포의 시인을 만나다> 편에 함께해주신 문학을 사랑하는 여러분 고맙습니다. 특별히 먼 걸음을 하신 강은교 선생님, 초대 시인으로 대담해 주신 박관서, 류경 시인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런 행사를 베풀어 주신 배재경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