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선거 후유증
심 영 희
지난 삼월 삼 일은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가 있었다. 그것도 역사상 첫
조합장 선거라는 점에서 뉴스마다 빼놓지 않고 오르내렸다. 농협은 물론이고, 축협, 원예, 산림, 어업협동조합을 총 망라하여 실시한 선거였다. 처음 전국동시 조합장선거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며 제일 먼저 아버지를 떠 올렸다.
육십 년 대부터 팔십 년 대까지 25년을 조합장을 하셨다. 물론 직접 조합을 설립하여 이십 년 넘게 수장으로 재직하며 이루어 놓은 성과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빈촌이 부촌으로 바뀌기까지 아버지의 업적은 자타가 인정하는 결과였다.
성실하시고 활동적인 아버지 덕분에 조합장 딸로 살아온 학창시절은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그 보답으로 나 또한 열심히 생활하며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아버지께서 일구어 놓으신 부로 외지로 유학을 하여 내 인생을 멋지게 꿈꿨다. 모든
면에 성실하셨던 아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 따랐던 그때가 아지랑이 피어 오르듯 눈앞에 아른거린다. 농민들을
위해 동분서주 일하시던 그 열정과 성실은 내 삶의 주춧돌이 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국동시 선거에서 아버지께서 설립하신 조합을 지키던 초등학교 선배는 낙선을 하고 말았다. 함께 문학단체 회원으로 있는 고향 후배는 당선의 영광을 차지하며 희비가 엇갈렸다.
우리들은 늘 선거에 지쳐있다. 대선에,
총선에, 지방선거까지 투표해서 선출할 사람들이 정말 많다.
게다가 올 연초부터 우편으로 투표하는 한국문인협회이사장 선거도 있었고, 뒤이어
직접 현장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그 자리에서 투표를 하여 개표까지 진행하는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선거까지 연초 내내 분주했다. 무슨 선거든 선거를 하고 나면 후유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당선된
사람은 기분이 좋겠지만 낙선한 사람은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이렇게 문학회 수장을 뽑느라 신경을 많이 썼는데 연일 보도되는 조합장 선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도 아니고, 자기를 더 알아달라고 안간힘을
쓰는 예술인도 아니다. 오직 자신과 자기 가족 자기의 이웃 농촌을 위하여 또는 어촌을 위하여 발로 뛰어
현장을 누비며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꼭 이들이 정치인처럼 선거운동을 하고 뇌물을 주었다고 선거법에 걸리고, 서로
힘을 모아 일해야 하는 농민들을 패거리로 갈라 놓으면 어려운 농촌의 사정이 더욱 어렵지 않을까 염려된다.
십 년이 넘은 일이다. 내가 속해있는 문학회 회장을 뽑는 날이다. 행사에 잘 빠지지 않는 성격이라 서울에 사는 딸의 산바라지를 하고 있던 중에도 선거일인 토요일 춘천으로 왔다. 행사장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당선자에게 축하드린다고 했더니 바로 앞사람과 악수를 하고는 나는 못 본척하며
다음 사람과 악수를 하며 차례차례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눈 오는 날씨에 한 표라도 보탬이 되라고 서울에서
춘천까지 내려와 투표를 했는데 도대체 그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녁에 원주에 사는 아들네도 서울 딸네 집에 모여 저녁을 먹기로 했으니 행사가 끝나자마자 다시 눈길에 서울로 향했다. 서울까지 운전을 하고 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며칠 뒤 찍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에게 푸념을 했다. 곧 본인 귀에 전해졌고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선거 후 한 달쯤 지나서 문인이 운영하는 찻집에서 딱 마주쳤다.
어색한 시간이 흘러갔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하는 그의
변명도 요지경이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나 간다고, 변명인즉 내가 잘 보이지 않아서 악수를 못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선생님 눈에는 대한민국사람 다 보이는데 심영희만 안보이냐’고 반박했다. 그제서야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그 당선인이 크게 오해를 하고 있어서 생긴 일이다. 오해를 하게끔
부추긴 사람은 물론 다른 회원이다.
후보자 세 명 중 두 명은 춘천사람이고 한 명은 강릉사람이었는데 공교롭게 강릉에서 온 수필가가 여고 선배였는데, 나를 부르더니 이것 저것 동문들에 대한 애기를 꽤 오래 주고 받았다. 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회원이 당선자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다. 나는 강릉편이라 강릉 후보를 찍었다고
말이다.
후에 들리는 얘기로는 약삭빠른 문인이 후보자 표 분석을 했는데 나는 틀림없이 당선자를 찍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는 삭막했다.
후보자 세 명 모두 회장을 할만했기에 후보등록을 했을 것이고, 모두
같은 회원이다. 그것도 나와 같은 장르 수필가도 아니고 모두 시인이다.
누가 회장이 되어도 나에게는 특별히 손해 볼 것도 이익이 될 것도 없다.
다만 같은 회원으로 맨 먼저 전화를 걸어 한 표 부탁한 사람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투표결과 그 사람이 당선되었다.
나는 찻집에서 면전에 대놓고 ‘선생님은 회장 자격이 없다고 했다’ 회장으로 당선되었으면 회원이 자기를 지지하지 않았어도 함께 끓어 안고 가야 하는 것이 회장인데 자기에게 한
표 보태기 위해 눈길에 서울에서 춘천까지 와서 투표를 한 회원에게 그런 행동을 보인 회장은 인품이 부족해서인지 끝내 건강을 이유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몇 년 후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망설임 없이 조문을 갔다. 실망스러운
문인이기는 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는 하고 싶었다.
어떤 선거이건 이렇게 후유증은 남기 마련이다. 단일후보도 찬반투표는
하는데 백 프로 찬성표만 나오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올해 그의 시비건립을 위해 모금운동을 하고 있는데 너그럽지 못한 마음인 나는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