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영,수 강조한 수능 개편안은
시대 역행하는 입시제도
왜 국,영,수를 잘해야만 입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최근 교과부가 발표한 수능 개편안에 따르면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영역의 선택권이 대폭 줄어들고 국,영,수 과목의 비중이 그만큼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개성도 적성도 없이 무조건 국,영,수만 들입다 파야하는 입시제도, 이제 바뀔 때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발표를 보니 더 강조되고 있어 황당했습니다.
'독일교육 이야기'를 쓰면서 참 많이 했던 말인 것 같은데 또 나왔습니다. 왜 한국은 국,영,수를 잘해야만 입시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수학이면 수학 영어면 영어 하나쯤 못하는 과목을 포기해도 목표했던 대학 학과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는 왜 없을까요?
저는 대학을 중어중문학과로 가는 바람에 입시를 준비하며 내내 공부한 영어와 수학은 단 한 번도 써먹어 보지 못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 입학 전형을 위한 성적표 하나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 수년 동안 시간을 허비한 것이지요. 지금 생각하니 내 인생을 위해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공부를 강요당한 것이 억울하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 많은 밤들을 꼬박 새웠던 것인지....
학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아비투어
독일 입시에서 가장 부러운 것이 바로 하고 싶은 공부만 해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대부분 모든 공부를 싫어하겠지만 선택의 폭이 좁지 않기 때문에 그 학생들에게도 우리보다는 가능성이 많지요.
아이들이 다음 주면 개학을 합니다. 큰아이는 바야흐로 공부 좀 해야 하는 12학년이 되었지요. 우리 아이는 아비투어 네 과목을 영어와 수학, 역사, 생물로 결정했습니다. 내신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입시 본고사 격인 이 네 과목이 사실상 아비투어 점수를 결정하게 됩니다. 어학에서 한 과목, 자연과학에서 한 과목, 사회탐구에서 한 과목, 자유선택 한 과목 등 모두 네 과목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영어와 수학을 좋아해서 시험 과목을 영,수로 정했지만 학생에 따라 선택은 모두 다릅니다. 우리 아이는 어학을 영어로 선택했지만 노드라인베스트팔렌주는 영어와 독일어 이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언어가 불어, 라틴어, 스페인어를 비롯해 심지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학교에서 이 모든 수업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학생이 정말 원한다면 강의가 있는 학교로 옮겨서라도 시도할 수 있지요.
자연과학 과목도 수학에 자신 없는 사람은 생물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탐구 영역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아이는 사회탐구에서 역사를, 자유선택과목에서 생물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자유선택과목은 체육과 미술, 음악까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모든 과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독일 학생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부터 적성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영어는 1점만 받으면서 수학은 항상 낙제를 면치 못하는 학생도 있고, 우리 아이 친구는 화학을 좋아한다고 화학만 1점이고 나머지는 항상 3,4점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이 이렇게 좋아하는 공부에 집중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열려있는 아비투어 때문입니다. 독일 입시 제도를 보면 모든 학문이 동등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의식도 학문을 편향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