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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 위치한 케멀백 랜치. 오전부터 LA 다저스 스태프들은 몹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저스 캠프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저스 관계자는 “류현진의 입단으로 많은 한국야구 관계자와 언론 기자들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지난해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한 다르빗슈 유의 경우 하루 300명 이상의 일본 취재진이 몰렸다”고 밝혔다.
천문학적인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 금액을 받고 미국 입성에 성공한 류현진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시쳇말로 ‘다르빗슈급’ 관심이 기대된다. 반면 같은 애리조나에 있으면서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훈련을 진행 중인 선수가 있었다. 바로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임창용(37)이다.
애리조나 메사의 한적한 교외에 자리잡은 컵스 스프링캠프를 찾았을 때다. 그곳은 거대한 청소기가 쓸고 지나간 것처럼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어렵게 만난 캠프 관계자는 “메이저리그 캠프가 시작하려면 열흘 정도 있어야 한다. 현재는 일부 마이너리그 선수들과 재활 중인 선수들만 있다”며 “훈련이 거의 끝나 선수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간 상태”라고 말했다.
차를 돌려 구장을 빠져 나오려는 즈음. 구장 관리인이 작업용 스쿠터를 몰고 가다 기자를 보고는 “혹시 ‘림(Lim)’을 보러 왔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림은 현재 구장 한켠에 있는 재활센터에서 훈련 중”이라며 "그는 가장 먼저 구장에 도착해 가장 늦게 구장을 떠나는 선수"라고 귀띔했다.
잠시 후 재활센터에 가자 임창용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어쩐 일로 오셨냐”고 묻고는 “현재 이곳에서 팀 트레이너의 지도로 재활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창용은 지난해 12월 18일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다. 한국과 일본야구계는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유는 두가지였다. 그가 37살의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과 일본에서 받던 연봉의 10분의 1을 받고 미국행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 미 애리조나 메사에 있는 시카고 컵스 스프링캠프(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습니다. 사실 한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다면 더 나은 대우를 받았을 텐데요. 이거 축하를 해야 할지, ‘아쉽다’고 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글쎄요. 지금은 스플릿 계약(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연봉이 다른 계약)이니까요. 아직까진 마이너리그 선수예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그때 가서 축하해주십시오(웃음).
많은 이가 창용 씨의 미국야구 진출을 보고 ‘역시 도전자 임창용’이란 소릴 하더군요. 2007년 삼성에서 임의탈퇴까지 불사하며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외국인 최저연봉을 받고 입단했고, 이번엔 3억6천만 엔(계약 당시 54억 원)짜리 최고액 연봉자에서 계약금 10만 달러 (약 1억700만원)의 마이너리거로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어느 야구팬께선 “임창용의 도전은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래서 그의 도전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무한 도전’”이라고 하시던데요.
음, 사실 제게 ‘도전’이란 단어는 큰 의미가 없어요. 주변에서 자꾸 ‘임창용이 도전을 했네’ 그러시는데…. 솔직히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부담돼요. 이제는 야구선수로 나이도 꽉 찼고, 제가 해보고 싶은 걸 하면서, 정말 인생을 즐기고 싶을 뿐이에요. 좋잖아요, 힘 남았을 때 여러 가지 시도해보는 거(웃음).
미국엔 언제 왔습니까.
원래 일찍 (미국에) 와서 재활훈련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취업비자가 늦게 나왔어요. 1월 27일에 들어왔어요.
바로 이곳 애리조나 메사로 온 겁니까.
그렇죠. 여기 와서 하루 이틀 정도는 시차 때문에 쉬면서 집도 알아보고 필요한 물품도 좀 사고 그랬어요. 여깄으면 굉장히 심심해요. 재활 훈련 끝나면 할 게 없어요. 멍하니 있다가 자고, 다음날 훈련하는 식이에요(웃음).
컵스 트레이너에게 물어보니까 “임창용은 다른 훈련은 받지 않고, 오직 재활훈련만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재활훈련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여기 트레이너들이 주는 재활 스케줄대로 진행하고 있어요.
오전 11시 30분이면 모든 훈련이 끝나더군요. 한국, 일본과 비교하면 무척 빨리 끝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아, 그런데 이게 짧은 게 아니더라고요. 끝나는 시간은 빠른데 시작하는 시간도 빨라요.
몇 시에 훈련이 시작하는데요?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해요. 한국, 일본은 오전 10시에 시작하고. 미국이 2시 30분 일찍 시작하는 셈이죠. 한국, 일본은 2시간 정도 훈련하다 점심 먹고 다시 시작하니까 훈련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거고요. 미국은 오전 11시 30분에 딱 끝나 점심을 먹지 않으니까 빨리 끝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훈련 시간은 미국이나 한국, 일본이나 얼추 비슷한 것 같고.
많은 야구팬은 창용 씨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 시원시원하게 투구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활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언제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까.
7월 정도엔 (재활이 끝나지 않을까요. 멀리 보고 있어요. 빨리 몸 만든다고 좋은 건 아니니까.
테오 엡스타인 컵스 사장이 직접 지시한 임창용 영입 '무모한 도전'을 이겨내고 '무한 도전'을 이끌어내는 임창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지난해 6월이었지 싶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만났을 때 창용 씨가 뜬금없이 “올 시즌 끝나면 미국에 갈 겁니다. 내년엔 저랑 미국에서 인터뷰하셔야 할 겁니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땐 속으로 ‘이게 무슨 소리야’ 했어요. ‘창용 씨가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란 기사를 썼을 때 독자분들의 반응도 대동소이했고요. 그런데, 세상에. 우린 지금 미국에서 인터뷰하고 있습니다(웃음).
제가 그랬었죠(웃음). 사실 지난해 한창 시즌 중일 때부터 에이전트(박유현 아이언스 대표) 형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악조건이든 무조건 미국에 갈 테니 준비해달라”고요. 전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도, 일본에 남을 생각도 한 적이 없어요. 정말이에요. 오직 미국만 생각했어요.
‘오직 미국만 생각했다’라,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미국) 가서 붙어보고 싶었어요.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오래 했고, 일본에서도 5년 정도 뛰었으면 오래 뛴 편이고. 한국, 일본에선 해볼 건 다 해본 것같아요. (물 한 모금을 마시고서) 야구 인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다가오니까 미국에서 끝내고 싶다, 뭐 그런 생각이 강했어요.
에이전트인 박유현 대표한테 들어보니까 메이저리그 여러 팀에서 영입 제안을 해던 모양이더군요.
4, 5개 팀에서 온 거 같아요.
그 가운데 컵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가장 적극적인 팀이었어요. 다른 팀들에 비해 불펜이 좀 약해 보이기도 하고. 재활만 잘 끝내면 메이저리그에서 등판할 기회가 빨리 찾아올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 컵스 고위 관계자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올 시즌은 팀을 재정비하는 기간이다. 모든 선수를 다 활용해볼 계획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 컵스는 올 시즌보단 내년을 더 중시하는 팀이구나. 그럼 나한테도 기회가 찾아오겠구나’ 싶었어요.
그렇다면 컵스는 왜 창용 씨를 선택했다고 봅니까.
글쎄요(웃음). 제 투구폼과 경력을 좋게 본 같아요. 여기 분들이 제 투구폼 보고 “어떻게 저런 투구폼으로 던질 수 있느냐”고 놀라워하시더라고요.
왜요?
언더핸드로 던졌다가 사이드암으로 바꿔 던졌다가 다시 드리쿼터로 투구했다가 어떨 땐 오버핸드로 던지는 걸 보고 반했다고 하더라고요. 좋게 봐주시니까 고맙죠(웃음).
컵스 관계자한테 들으니 ‘테오 엡스타인 컵스 사장이 임창용 영입을 강력하게 지시했다’고 하더군요. 일부 스카우트가 “2012시즌에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2013년이면 37살”이라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지만, 테오 사장은 “다 알고 있다”는 말로 영입을 강행했다고 합니다. 컵스가 창용 씨에게 거는 기대치가 어느 정도라고 봅니까.
음, 글쎄요. 올 시즌보단 내년을 보고 절 영입한 것 같아요. 그래서 ‘1+1 계약’을 제시한 것일 테고. 올 시즌 후반기에 등판하면 제가 얼마나 잘 던질 수 있을진 모르겠어요. 그때 가능성만 보인다면 아마도 내년 시즌엔 풀타임으로 뛸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고개를 갸웃하며) 컵스가 제게 어떤 기대를 거는지 구체적으론 알 수 없지만, 듣자니까 2년 전부터 절 지켜봐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2010시즌이 끝나고 FA(자유계약선수)가 됐을 때 컵스에서도 관심이 컸대요.
어디 컵스뿐이겠습니까. 그때 여러 메이저리그 팀에서 구애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왜 그때 미국 무대를 밟지 않은 겁니까.
그때 미국으로 오라는 구단이 많았어요. 그런데 참-(입맛을 다시며) 정이 뭐라고, 그땐 야쿠르트와의 정 때문에 참았어요. 그런데 팔 아프고, 나이 드니까 알겠대요. 정이 중요한 게 아니란 걸(웃음).
![]() 야쿠르트 시절 임창용은 '제비군단의 수호신'으로 불렸다 |
일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묻지요. 지난 시즌을 끝으로 야쿠르트와 결별했지만, 다른 일본 팀과 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센트럴리그 모 팀에선 창용 씨를 영입하려고 실탄을 두둑이 장전한 것으로 알아요.
그랬죠. 일본은 야구하긴 정말 좋은 곳이에요. 환경, 대우 다 좋아요. 그런데 제 마음과 눈은 오직 미국만 바라보고 있었어요(웃음).
야쿠르트 시절 팀 동료들은 창용 씨를 외국인 선수로 대하지 않았어요. 여느 내국인 선수보다 더 살갑게 대했던 게 기억나는데요. 젊은 선수들에겐 롤모델이자 큰형님으로 통했습니다. 그 선수들과 헤어질 때 마음이 좀 아프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휴우-. 그랬죠. 일본 사람들은 감정이 굉장히 풍부해요. 야쿠르트 팀 선수들은 특히 더했고. 제가 팀에서 나온다니까 울고들 그랬는데. (씁쓸한 미소를 내보이면서) 평생 안 볼 것도 아니고, 한국과 일본이 가까우니까 자주 보자고 그러면서 잘 달래주고 나왔습니다.
‘만약’입니다. 만약에 지난 시즌 신임 오가와 준지 감독이 부임하지 않고, 다카다 시게루 전 감독이 계속 야쿠르트를 지휘했다면 그래도 야쿠르트와 창용 씨가 헤어졌을까요? 개인적으론 부상을 당할 일도, 야쿠르트를 떠날 일도 없었을 듯싶은데요.
남았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다카다 감독님에서 오가와 감독으로 바뀌면서 여러모로 좋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언론플레이도 심하게 하셨고. (억울한 듯 한숨을 내쉬며) 전 가만히 있는데 자꾸 저와 관련된 기사가 나가니까 좀 짜증도 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그랬었죠.
1월 중순 일본에 갔을 때 야쿠르트 담당기자를 만났어요. “임창용이 컵스에 입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임창용이 떠난 야쿠르트는 손해가 클 것”이라고 하더군요.
뭐, 손해 같은 게 있겠어요. 나이 많은 노장선수 잘라낸 건데(웃음).
10년 만의 미국 진출 “1년 1억 엔이라도 받고 갔어야 했다.”
![]() 삼성 시절의 임창용(사진=삼성) |
지난 시즌 야쿠르트에서 퇴단했을 때에요. 임의탈퇴 신분으로 일본 무대를 밟았기 때문에 다시 한국 무대에서 뛰려면 삼성으로 돌아오는 길밖엔 없었습니다. 그때 뜬금없이 삼성에서 “임창용을 당장 영입할 생각은 없다”는 코멘트를 했는데요. 실제로 삼성에서 영입 의사를 타진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아무 이야기가 없었어요. 솔직히 약간 섭섭한 면도 있었죠. 야쿠르트에서 나왔는데, 원소속팀에선 연락도 없고, 갑자기 ‘필요 없다’는 소리가 나오고. 생각해보세요. 선수가 먼저 ‘받아달라’ 할 순 없잖아요(웃음). 사실 돌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전화 한 통화해줄 수 있는 문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기자분들이 자꾸 삼성 구단을 찔러보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아요.
아, 컵스와의 세부계약조건을 물어보지 않았군요. 외부에 알려지기엔 계약금 10만 달러와 앞으로 두 시즌 동안 마이너리그 연봉을 받되 메이저리그 승격 시 최대 2년간 5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입니다.
세부적인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일단 현재 마이너리그에 있기 때문에 마이너 연봉이 적용되고요. 메이저리그로 승격하는 순간 바로 사이닝 보너스가 나오고, 연봉이 올라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한 가지 재미난 계약조건이 있습니다. 재활이 끝나 빅리그로 올라갈 때 마이너리그에서 실전 투구를 하지 않고, 곧바로 메이저리그에서 데뷔 투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저도 구단으로부터 그렇게 들었어요. 게임에 나갈 몸 상태가 되면 빨리 메이저리그에 적응시키기 위해 마이너리그 등판을 거르고 빅리그 무대에서 데뷔 등판을 하게 해주겠다고.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한 번쯤 시험등판을 하고, 빅리그 무대를 밟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것도 괜찮죠. 마이너리그에선 던져도 시뮬레이션 피칭 정도로 끝날 것 같아요. 그때 좋으면 바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을 겁니다.
![]() 야쿠르트 시절 임창용의 역동적인 투구동작 |
일본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후배 류현진과 만나 좋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압니다. 참고로 류현진은 LA 다저스로부터 2,573만7,737달러33센트(약 280억원)라는 거액의 포스팅 금액을 받고 미국 진출에 성공했는데요. 사실 류현진 이전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국 진출을 타진했던 이가 바로 창용 씨였습니다. 2002년 삼성 시절 포스팅에 참가한 바 있는데요. 결과는 포스팅 금액 65만 달러였습니다. 그때 창용 씨는 미국에 가지 않았는데요.
(말이 끝나자 무섭게)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죠(웃음). 전 가고 싶었어요. 65만 달러는 제가 받는 게 아니라 구단이 받는 돈이었거든요. 당시 삼성에서 ‘No(노우)’해서 못 갔죠. 그때 삼성에서 ‘OK(오케이)’했으면 당연히 갔죠.
2004시즌이 끝나고 FA가 됐을 때도 국외 진출을 시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역시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어요.
그땐 에이전트가 너무 많았어요. 미국에 두 명, 일본에 세 명(웃음). 에이전트가 짬뽕이 되다보니까 제가 공중에 ‘붕’ 떠버리고 말았어요. 사연 한 번 들어보실래요(웃음).
좋습니다.
(자세를 고쳐 앉고서) 그때 일본 프로야구 라쿠렌 골든이글스랑 계약 이야기가 다 끝났어요. 가기만 하면 돼요. 그런데 전 가기가 싫었어요. 동네도 시골이고, 신생구단이고. 마침 그때 다른 에이전트가 끼어들어서 “요미우리에 갈 수 있다”고 했어요. “추진해보세요” 했죠. 어떻게 협상을 잘했는지 “요미우리가 총액 10억 엔에 플러스 알파를 주기로 했다”는 거예요. “좋습니다. 빨리 계약서 갖고 오세요”했죠. 아, 그런데 계약서를 안 가져오는 거예요.
이런.
그땐 미국보다 일본에 가고 싶었거든요. 그래 일본행을 추진한 건데 요미우리 계약서는 안 오고, 다른 팀 외국인 선수 계약은 다 끝나고, 나중엔 기다리던 라쿠텐도 손을 들었죠. 완전히 공중에 ‘붕’ 뜬 거예요. 어쩌겠어요. 삼성으로 돌아갔죠. 그때 맨 마지막에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콜이 오긴 왔어요.
그래요?
일본 팀들이 다 잘 안되고 너무 답답했어요. 그때 일본 돗토리에서 훈련하다가 박유현 대표님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그땐 박 대표님이 제 에이전트가 아니었거든요. “제가 갈 수 있는 일본팀을 알아봐주세요” 했죠. 얼마 있다가 박 대표님이 돗토리로 지바롯데 단장님을 모시고 왔어요. 그분이 “임창용 선수가 좋은 투수인 건 잘 아는데, 외국인 선수 영입이 다 끝났다”고 하더라고요.
실망이 컸겠습니다.
더 들어보세요. 그러다 지바롯데 단장님이 “일단 몸값으로 1억 엔을 줄 테니까 우리와 1년 계약하자”고 제안하셨어요.
1년에 1억 엔이라, 음.
속으로 ‘그래도 내가 명색이 FA인데 1년에 1억 엔 받고 일본에 가야 하나’ 싶더라고요.
제안에 뭐라고 화답했습니까.
“못 가겠다”고 했죠. 그런데 생각하면 그게 판단 착오였어요.
판단 착오?
(담담한 목소리로) 1억 엔이라도 받고 갔어야 했어요. (기자를 바라보며) 2007시즌 끝나고 야쿠르트에 입단했을 때 제가 얼마 받았는지 아세요? 2천만 엔이었어요. 그거 받고도 갔는데 1억 엔이면 큰돈이었죠. 실력 좋고, 인정만 받으면 2, 3년 뒤 몇 배는 더 받을 수 있는 건데…그땐 FA라는 욕심 때문에 그걸 몰랐어요. 지금 돌아보면 아쉬워요.
“빠르면 7월,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 것”
![]() 임창용(사진 왼쪽부터)과 박유현 대표. 배신과 협잡이 횡행하는 스포츠계에 두 이는 선수와 에이전트로서 오랫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두 이가 의리를 지키고, 정직을 원칙으로 삼으며, 초심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사진=박유현) |
미국야구는 한국, 일본야구와는 전혀 다릅니다. 물론 야구는 어디서든 똑같았습니다만, 야구 스타일과 환경, 리그 분위기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특히나 새로운 선수들과 만나고 그 선수들을 분석하는 게 중요한데요. 어떻습니까. 메이저리그 적응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조금씩 준비해야죠. 솔직히 아직 메이저리그를 잘 몰라요. 타자들도 모르고.
현장이 중요하죠. 원래 말은 현장보다 현장 근처에 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더 잘하는 법입니다. 우선 TV를 통해 메이저리그 경기를 많이 봐둬야 할 듯싶습니다.
전 TV에서 야구하고 있으면 그렇게 졸릴 수가 없어요.
그래요(웃음)?
제가 직접 나가서 타자와 상대하는 게 재밌지, 남들이 하는 거 보면 그냥 졸려요(웃음). 그래도 틈틈이 봐둬야 할 건 같아요. 상대 선수들 한명 한명씩 알아가는 재미, 그게 야구의 진짜 재미 아니겠어요(웃음).
미국으로 떠나기 전 취재진에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시속 150km 이상은 던져야 만족스러울 것 같다”고. 어떤 의미였습니까.
그 정도 속구 구속은 기록해야 미국 타자들과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지금도 재활이 끝나면 그 정도 속구 구속은 나왔으면 좋겠어요.
메이저리그 타자들과 상대하려면 구종 선택도 이전과는 달라야할 듯싶은데요.
일단은 지금 던지는 구종도 괜찮다고 봐요. 천천히 타자들과 상대하면서 변화를 주고 싶어요. 만약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이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타이밍에 정확하게 맞아 나간다면 (강한 어조로)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걸 받아들일 겁니다.
미국 무대 적응을 위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뭘까 궁금해요.
체력이죠. 체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올 시즌은 빅리그에 올라가도 늦게나 올라갈지 모르지만, 내년에 풀타임으로 뛰면 무척 피곤할 거 같아요. 쉬는 날 없이 돌아다녀야 하고. 지금도 체력유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2007시즌이 끝나고 일본에 진출할 땐 이미 한국에서 팔꿈치 수술을 받고서 재활을 끝낸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일본에서 팔꿈치를 다치고서 정작 마무리 재활은 미국에서 하고 있는데요. 2007년과 2013년의 차이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재활하는 게 부담이 크죠. 어느 정도 몸이 올라올지도 모르고. 저도 걱정 반, 기대 반이에요.
![]() 임창용의 개인 트레이너(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재활훈련할 때 보니까 개인 트레이너가 있던 것 같은데요.
(멀리 서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아, 후리타 씨요. 일본에서 유명한 트레이너분이세요. 잡지에 기고도 하시고, 대학교 강의도 나가시고. 그런 분이 흔쾌히 따라와 주셔서 고마울 따름이에요. 저분도 저처럼 ‘미국을 한번 느껴보자’는 마음으로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지난해 애리조나에서 이와쿠마 히사시, 다르빗슈 유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요. 두 선수 모두 자비로 일본에서 개인 트레이너를 데려왔더군요. 꽤 돈이 많이 든다는 소릴 들었는데요.
후리타 씨는 일본에 있을 때 연봉으로 5천만 엔 정도를 받으셨대요. 여기선 그 정도까진 못드리고요. 그래도 한달에 100만 엔 정도는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제게 투자를 하는 건데. 그 돈 아까워하면 안 되죠.
앞서 미국 재활훈련 시간이 한국, 일본보다 결코 짧지 않다고 했는데요. 재활훈련 하는 것만 봐도 한국, 미국, 일본야구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맞아요. 다 달라요. 한국에서 재활했을 땐 뭣도 모르고 했어요. 그땐 재활 프로그램 같은 것도 없었어요. 막무가내로 했어요(웃음). 제가 던지고 싶으면 던지고, 아프면 못 던지고. 구단에선 빨리빨리 진행하길 바랐죠. 반면 일본은 굉장히 체계적이에요. 그리고 굉장히 신중해요. 재활프로그램을 하루하루 조금씩 진행해요. 미국은 일본보단 진도는 짧은데 한번 할 때 훈련량이 좀 많아요. 하루 하고, 하루 쉬는 스타일이죠. 어떻게 보면 그 나라 국민 성향과 재활훈련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재활 종료 시점을 7월께로 예상했는데요. 그럼 7월 이후부턴 창용 씨의 투구를 볼 수 있는 건가요?
현재로선 빠르면 7월, 늦으면 8월 초 정도를 예상하고 있어요.
구단이 설정한 재활 종료 시점은 언제에요?
구단은 좀 빠르더라고요. 5월부터 게임에 나가라는데. 전 안 될 것 같은데(웃음).
5월이라, 얼마 남지 않았군요.
구단 재활 스케줄에 따르면 4월 말부터 배팅볼을 던지고, 5월부턴 시뮬레이션 피칭을 해야 해요. 물론 몸이 좋지 않으면 조금씩 딜레이(지연)가 되겠지만.
구단에서 구체적인 보직은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았겠군요.
그렇죠. 일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패전으로 나가도 좋습니다. 경기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니까요. 결국엔 제 하기 나름일 것 같아요. 일본에서도 그랬고.
돌아보면 야쿠르트에서 처음 보직도 미약했습니다.
2008년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다른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무조건 1군에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악착같이 던졌죠. 그러다 1군에 등록하고서 승리조로 8회에 투입되기 시작했어요.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웃음). 그런데 개막전 끝나고 마무리였던 이가라시 료타 선수가 허벅지 부상으로 빠지는 거예요. 그때 감독님이 “내일부터 네가 마무리해라” 하셨어요. 이가라시 선수한테는 미안한데, 그땐 말로 표현을 못할 정도로 기뻤어요(웃음). 그때부터 마무리를 맡기 시작했는데요. 미국에서도 열심히 제 할 일만 하다 보면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임창용은 최고의 슈퍼스타다. 그가 현실에만 안주했다면 스타로 그쳤을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미국 무대에서 꼭 거두고 싶은 목표를 숫자로 표현한다면 역시.
역시 ‘4’죠. 올 시즌은 힘들 것 같고. 내년 시즌에 4세이브만 했으면 좋겠어요(웃음).
4세이브만 기록하면 한·미·일 통산 300세이브(한국 168개, 일본 128개)를 거두게 됩니다.
300세이브는 일본에서 기록하고 싶었는데, 지난해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미국에서라도 기록하고 싶어요.
300세이브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자신에게 “수고했다” 한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기록 아닐까요.
미국에서 300세이브 말고 꼭 이루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1차 목표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거예요. 2차 목표는 풀타임으로 1년간 빅리그를 경험하는 것이고. 마지막 목표는 마무리로서 세이브를 많이 거두는 거?(웃음)
어떻습니까. 현역생활의 마지막은 한국에서 정리할 생각이에요?
팬들이 원하신다면요. 미국에서 2, 3년 뛰고 나면 제 나이 마흔이 넘어요(웃음). 자신감이 있고, 구위가 괜찮다면 한국에서 한 시즌 정도는 뛰면서 팬들께 마지막으로 제 투구를 선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마흔 살 마무리 임창용’ 근사한대요.
한국 프로야구에 신생팀이 2개나 생겼잖아요. 저를 정말 원하고, 제가 도움이 되는 팀이 있다면 굳이 마무리가 아니어도, 필승조에서 뛰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던져보고 싶어요.
우문(愚問) 하나 하겠습니다. 지금도 야구가 재밌고, 야구할 때면 신 납니까.
제가 하는 건 재밌어요. 그런데 여.전.히 보는 건 재미없어요(웃음).
과거 후배와 동료들이 3월 2일부터 열리는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합니다. 그 선수들에게 덕담 한마디 해주시지요.
(담담한 표정으로) 2009년 2회 대회는 저 때문에 진 것 같고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솔직히 당시엔 후배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컸어요. 다 열심히 했는데 제 실투 하나 때문에 져서 후배들을 못 쳐다보겠더라고요. 아무튼 그땐 미안했고, 이번 3회 대회 때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이번엔 한국이 꼭 우승했으면 좋겠어요(웃음).
사람들은 2009년 한·일 결승전의 결과만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린 창용 씨의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채의식은 버리셔도 됩니다. 각설하고.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제 한국 나이로 38살입니다. 38살이 무언가 새로운 걸 도전하거나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데 제약이 됐습니까.
운동선수에겐 확실히 제약이 되는 나이예요. 하지만, 뭐든 시도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운동선수로는 많은 38살이지만, 아직까지 몸이 건강하고 던질 만한 힘이 있으니까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고.
(선글라스를 벗고 구장을 바라보며) 제가 살아보니까 인생에서 속도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언제가 됐든 이루고 싶은 건 이룰 수 있더라고요. 그러려면 인생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아요. 방향만 올바르고, 그 길로만 꾸준히 나간다면 느려도 언젠간 원하는 장소까지 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보세요. 저 지금 미국에 있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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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박동희의 MLB 클리핑] 임창용, 7월에 돌아온다.
![]() 임창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3년 전이다. 일본의 명감독 노무라 가쓰야를 만났다. 현역시절 명포수였던 노무라는 “우리가 젊었을 땐 미국에 진출하는 선수가 없었다”며 “지금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감독으로서 미국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나이 75.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닌가’하는 기자의 표정을 읽기라도 했는지 노무라는 “도전은 나이가 아니라 용기로 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젊은 선수들에게 당부라도 하듯 이렇게 말했다.
“젊었을 때 흘리지 않은 땀은 나이를 먹었을 때 눈물로 돌아옵니다. 한살이라도 힘이 있을 때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 해요. 도전하면 성공과 실패를 맛볼 수 있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 임창용. 시카고 컵스 투수다. 지난해까진 일본에서 뛰었다. 일본에서 뛸 때 그의 연봉은 3억6천만 엔. 당시 한화로 54억 원이었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 연봉 순위 6위였다. 투수 중에선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후지카와 규지(당시 한신)에 이어 3위.
초고연봉자였지만, 그의 취미는 단순했다. 드라이브였다. 음주에 취미가 없는 그는 일본에서 차 3대를 몰았다. 경기가 끝나면 그 가운데 한대를 몰고 도쿄 인근을 돌았다. 강속구 투수답게 고속 드라이브를 즐겼다. 엄청난 속도로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과속 딱지를 많이 뗐겠습니다”하는 기자의 말에 임창용은 “글쎄요. 거의 뗀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하고 대답했다. 임창용의 에이전트 아이안스 박유현 대표는 “딱지를 뗄 일이 없었을 거예요”하고 말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대답은 평범했다.
“(임)창용이는 엑셀러레이터를 밟아야할 때와 브레이크를 밟아야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거든요.”
그랬다. 임창용은 차량이 많을 땐 서행을 했고, 차량이 없을 땐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평범한 운전수칙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평범한 운전수칙을 지켰기에 임창용은 과속 딱지도 떼지 않고, 사고 한번 나지 않은 것이었다.
지난해 야쿠르트 스왈로스를 퇴단하고, 미국 무대 진출을 선언했을 때 놀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임창용이라면 도전할 때와 안주해야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도 그럴 게 임창용은 지난해 시즌 도중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그의 나이 37. 투수로선 황혼이었다. 젊지 않은 나이기에 일본 무대에 남거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여러 일본 팀에선 임창용에게 “우리 팀 와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연봉 3억6천만 엔까진 아니어도 임창용의 이름값이라면 적지 않은 돈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임창용은 엑셀러레이터를 밟았다. 미국 진출을 선택한 것이다.
# 미국 진출을 알아볼 때도 그는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혼동한 듯 보였다. 애초 임창용을 적극 원한 팀은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임창용과 박 대표는 텍사스의 홈구장 레인저스볼파크에서 놀란 라이언 구단 사장을 만나기도 했다. 라이언 사장은 두 이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꼭 우리 팀에 와달라”고 요청했다. 말뿐이 아니었다. 텍사스가 제시한 금액도 다소 놀라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두 이는 라이언 사장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그 정도 금액이면 텍사스 유니폼을 입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기자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금액으로만 친다면야 텍사스 조건이 시카고 컵스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침묵하다가 “에이전트는 돈도 돈이지만, 그 팀의 사정과 성향 그리고 선수의 건강 등을 두루 체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뜬금없는 소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창용이가 재활 중인데, 텍사스에 가면 구단이 재활속도를 빨리해 시즌 투입을 앞당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창용이 성격상 잘 던지려고 할테고, 결국 부상이 재발하지 않을까란 염려가 들었어요. 확실한 빅리그 잔류 보장에서도 컵스가 다소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창용이한테 ‘당장의 돈은 텍사스가 많지만, 네가 재활을 충분히 진행할 수 있고, 심적부담도 적은 컵스가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창용이가 고민 끝에 ‘OK'하더군요.”
텍사스로의 고속질주가 예상됐지만, 두 이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리고 결국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다.
4월 3일 임창용이 불펜투구를 하는 장면
# 현재 임창용은 서행 중이다. 컵스 재활센터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다. 단계별 투구 프로그램(Interval Throwing Program, ITP)에 따라 최근엔 불펜투구도 시작했다. 컵스 측은 “6월 말 혹은 7월 초면 실전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임창용 역시 그즈음이면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창용의 성격상 빅리그 마운드에 서면 타자와의 정면승부를 택할 게 분명하다. 그 순간이야말로 힘차게 엑셀러레이터를 밟아야할 때니까.
임창용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다면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류현진(다저스), 추신수(신시내티)에 이어 3명으로 늘어난다. 그 가운데 우리가 임창용에게 집중하는 건 그의 도전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임창용이야말로 ‘도전하면 성공과 실패를 맛볼 수 있지만,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경험하지 못한다’는 걸 현실에서 보여주는 이이기 때문이다.
그의 건투를 빈다.
박동희 칼럼 기사목록 기사제공 : 박동희 칼럼
기사입력 2013-04-12
[박동희의 입장] 임창용 “7월 말 빅리그 승격 예상”
시카고 컵스 임창용(사진=손혁)
그는 3번 팀을 살렸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진 해태(KIA의 전신) 마무리로 이제는 전설이 된 해태 왕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1999년부터 2007년까진 삼성에서 마무리와 선발을 오가며 라이온즈에 3개의 우승 반지를 안겼다. 여기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진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수호신’으로 4년 동안 128세이브를 기록하며 추락하는 제비군단을 되살렸다.
그는 이제 4번째 팀을 살리려 한다. 그의 이름은 임창용(37). 그리고 그가 몸담은 4번째 팀은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다.
지난해 12월 18일 메이저리그 컵스에 입단한 임창용은 두 가지 점에서 화제가 됐다. 하나는 그가 36살의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받은 연봉의 10분의 1에 컵스행을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임창용은 도전자는 맞았으나, ‘무모한 도전자’에 가까웠다.
하지만, 임창용은 “인생에서 속도는 큰 상관이 없다. 정작 중요한 건 인생의 방향을 잘 잡는 것”이라며 “방향만 올바르고, 그 길로만 꾸준히 나간다면 느려도 언젠간 원하는 장소까지 갈 수 있다”는 말로 미국야구 도전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 2월부터 미국 애리조나 컵스 재활센터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던 임창용은 현재 빅리그 승격을 위해 실전 마운드에 서고 있다. 6월 25일(이하 한국시간) 애리조나주 탬피의 디아블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 루키팀과의 대결이 시작이었다. 이 경기에서 컵스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임창용은 1이닝을 던져 3피안타 1탈삼진 2실점했다.
성적만 보면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오른쪽 팔꿈치 수술 이후 11개월 만의 실전투구였음을 고려한다면 기록보단 그가 마운드에서 섰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부여할 일이었다. <스포츠춘추>가 미국 무대 첫 실전 투구를 마친 임창용과 전화 인터뷰했다.
지난해 7월 팔꿈치 수술 이후, 줄곧 재활에 매달렸다. 올해 2월부터는 미국 애리조나 메사의 컵스 재활센터에서 꾸준히 몸을 만들었고. 재활이 잘 끝났는지 어제(25일)는 미국에서 첫 실전투구를 펼쳤다.
지금까지 순조롭게 재활을 잘 해왔다. 그런데 어제 던지고 나서 팔꿈치가 조금 좋지 않다. 재활 기간 중 느낀 통증과 비슷한 통증이 느껴진다.
대개 재활을 끝낸 투수들을 보면 첫 실전투구 이후, 부상 부위에 가벼운 통증을 느끼더라. 그러다 대부분 호전되게 마련인데. 현재 팔꿈치 상태는 어떤가.
정말 팔꿈치에 이상이 있어 아픈 건지, 팔이 더 강해지려고 아픈 건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렸을 땐 감(感)이 있었는데, 나이 들어선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웃음).
27일 등판이 예정된 것으로 안다.
경기가 잡혀 있긴 한데, 등판 여부는 내일이 돼야 알 것 같다. 팔꿈치가 좋아지면 나가는 것이고, 아니면 조금 뒤로 밀릴 것 같다.
개인적으론 팔이 더 강해지려고 잠시 아픈 게 아닌가 싶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웃음).
오랜만의 등판이라,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다.
(짧게 숨을 토하고서) 아, 무슨 1이닝 던지는데 한 시간 던지는 줄 알았다(웃음). 진짜 1이닝 던지는데 선발투수가 5이닝 투구하는 것처럼 던져도 던져도 이닝이 끝나지가 않더라(웃음).
스스로 어제 투구를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제구는 괜찮았던 것 같다. 다만, 가운데 몰리는 공이 조금 있었고, 노볼 투스트라이크에서 바로 승부하다 맞은 게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었다. 번트 수비도 조금 미숙했고.
어제 경기에서 속구 구속이 최고 93마일(시속 150km)까지 나왔다고 들었다. 미국 현지에선 95마일(시속 153km)이 나왔다고 하던데.
어제 경기 최고 구속은 93마일이었다. 이전 불펜투구할 때 나온 구속이 95마일이었다. 하지만, 사실 지금은 공 스피드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일단 몸을 잘 만드는 게 급선무다. 다행히 팔만 빼곤 몸 상태가 100%다.
지금 같은 속구 구속과 몸 상태에 팔꿈치 상태만 좋아진다면 언제든 빅리그로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단순히 몸만 좋아져선 안 된다. 연투가 가능한 몸이 돼야 한다. 마이너리그 코치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쪽에서도 “연투가 가능해야 빅리그로 오를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당연한 소리다. 난 불펜투수이기에 이틀 던지고, 하루 쉬는 것까진 팀에서도 서포트해줄 수 있지만, 하루 던지고 하루 쉬는 건 확실히 문제가 된다. 만약 내가 하루 던지고, 이틀을 쉰다고 생각해봐라. 나야 빅리그에 올라 좋겠지만, 팀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
듣고 보니 빅리그 승격의 최대 과제는 ‘연투’이지 싶다. 어떤가, 직접 미국 타자들과 상대해보니.
아직 한 경기에 등판했을 뿐이다(웃음). 자꾸 등판해 상대하다 보면 느끼는 게 더 많아지리라 본다. TV로 봤을 땐, 정말 미국 타자들은 1번부터 9번까지 피해갈 타자가 없더라(웃음). 다 한방이 있으니까. 7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하위타순이라도 가볍게 봐선 안 될 것 같다.
류현진도 그렇고, 일본인 투수들도 그렇고. 역시 빅리그에서 성공하려면 뛰어난 제구가 바탕이 되야 하지 않나 싶다.
맞는 소리다. 미국 타자들은 워낙 힘이 좋으니까 ‘힘대 힘’만으로 대결하기 힘들다. 역시 제구가 좋아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미국 타자 공략을 위해 새로운 구종을 장착한 건 없나.
아직 구체적으론 없다. 과거에 잘 던지지 않던 체인지업 정도를 다시 연마하는 정도다. 혹시 내가 가진 공만으로 역부족일 수도 있으니까, 그 대비책으로 체인지업 하나쯤은 준비해둬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실전에서 굳이 필요하지 없으면 던지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이미 트리플A 소속, 빅리그 승격은 7월 말이나 8월 초 예상"
![]() 웨이트트레이닝 중인 임창용(사진=손혁) |
후지카와 큐지가 팔꿈치 수술로 시즌아웃하며 컵스 불펜진에 비상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선지 당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중요한 건 내 몸과 팔이 연투를 감당할 수 있는 100% 상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실질적으로 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 상태만 봐선 연투가 가능해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니다. 6월 25일 첫 등판을 했으니 무조건 한 달 안에 트리플A로 올라가야 한다.
그게 무슨 뜻인가.
여기 룰이 그렇더라. 루키리그 경기에 등판해 공을 던졌으면 아프든, 아프지 않든 30일 안에 트리플A 무대에 서야 한다.
루키리그 선수가 30일 안에 트리플A 무대에 꼭 서야한다라.
루키리그 선수? 아니다. 난 현재 트리플A 소속이다. 그래서 일단 재활이 끝나 경기에 출전하면 그날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해 한 달 안에 트리플A로 가야하는 것이다.
음.
한달을 꽉 채우고 트리플A 무대를 밟을지, 보름만에 밟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구단에선 “언제든 올라갈 준비만 되면 이야기를 해라. 우리는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너만 준비가 끝나면 트리플A 문은 언제든 열려있다”고 한다.
컵스와의 계약조건에 ‘마이너리그 등판없이 바로 빅리그에 오른다’는 조항이 있는 것으로 안다. 달리 말해 트리플A 무대로 오른다는 건 곧 빅리그 승격을 의미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계약조건과 관련없이 트리플A에서 던지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거기서 한 두번 테스트하고 그 다음에 (빅리그로)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7월 말이나, 8월 초 빅리그 무대를 밟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그즈음 빅리그 마운드에 선다면 이상훈, 구대성, 박찬호에 이어 한·미·일 프로야구서 모두 뛴 4번째 한국인 선수가 된다. 손혁 MBC SPORTS+ 해설위원은 “한국과 일본에 있을 때보다 임창용의 훈련량이 훨씬 많고, 자기관리에도 원체 철저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머리는 왜 그렇게 짧게 잘랐나.
더워서…여긴 정말 덥다(웃음).
[매거진S] 임창용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2013-06-26
[매거진S] 임창용의 진심 “30년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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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스가 임창용과의 힘 겨루기에서 완패한 내막
“나는 1901년 이후 컵스 구단 사상 2번째 최고령 루키”
“메이저리그 데뷔전, 정말 상상 많이 했다. 현실은”
“난 유서 깊은 구장에서 뛰는 복 많은 선수”
“추신수는 최고의 메이저리거, 난 아직 빅리그 루키”
“컵스와의 2년 계약이 끝나도 컵스에서 계속 뛰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며 새로운 승부욕이 생겼다.”
“내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건, 운명이다.”
시카고 유니언 역에 내린 건 9월 7일(이하 미국시간) 오전 11시였다. 같은 날 새벽 1시께 신시내티 역에서 암트랙(Amtrak, 전미 여객철도공사)을 타고 출발했으니 꼬박 10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취재 중 암트랙을 이용한 덴 이유가 있었다. 시카고 컵스 불펜투수 임창용(38)의 MLB 데뷔전이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4일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MLB로 승격한 임창용은 애초 4일이나 6일 등판이 유력했다. 그러나 팀이 이틀 연속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통에 데뷔전을 갖지 못했다.
‘임창용의 데뷔전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느슨한 점수 차에서 임창용을 등판시키려던 컵스 코칭스태프는 6일 경기가 끝나자 계획을 바꿔 “7일 경기에선 점수 상황과 관계없이 임창용을 마운드에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가야 했다. 1년 전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에서 뛰던 임창용이 “미국 야구에 도전하겠다”고 속내를 밝혔을 때 기자는 “당신의 도전을 꼭 현장에서 보겠다”고 약속했다. 허민 고양 원더스 구단주의 뉴욕 데뷔전처럼 임창용의 데뷔전도 외신 기사가 아니라 기자의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그것이 기적과 상대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이들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자 작은 약속의 실천이라 믿었다.
그러나 가는 길은 멀었다. 국제면허증을 갱신하지 않은 터라, 차를 렌트할 수 없었다. 신시내티발 시카고행 항공기는 이미 오전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이는 시외버스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시작하는 오후 3시까지 구장에 도착할 유일한 방법은 암트랙뿐이었다. 대가는 컸다. 항공기로 1시간, 차로 4시간이면 갈 길을 기차로 10시간을 돌아가야 했다.
10시간 동안 암트랙의 창밖을 보며 기자는 ‘임창용의 야구 인생과 느리고 느린 이 암트랙의 운명이 묘하게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사실이었다. 임창용은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각광 받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오랜 목표이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덴 19년이 걸렸다. 먼 길을 돌아 결국엔 목적지에 다다르는 암트랙처럼 임창용도 많은 시행착오와 도전 끝에 자신의 최종 꿈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에 도착했을 때 임창용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오셨어요?”하고는 짧은 인사를 건넸다. 강물에 떨어진 소금처럼 10시간의 피로가 순식간에 녹는 순간이었다. 7일간의 '임창용 취재'는 그렇게 시작했다.
1901년 이후 컵스 구단 사상 2번째 최고령 루키, 임창용 컵스의 홈구장 리글리 필드(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리글리 필드(Wrigley Field). 시카고의 명물이자 메이저리그의 상징이다. 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 펜웨이 파크에 이어 가장 오래된 구장이다. 1914년 개장했으니 역사만 100년이다.
아직도 수동식 전광판을 고집하고, 외야 펜스는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다. 다저 스타디움처럼 광활한 주차장이나 양키 스타디움 같은 최첨단 시설, 신시내티 홈구장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처럼 외야에서 불을 뿜는 재미난 장치들은 기대하기 어렵다. 원체 오래된 구장이라, 선수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태부족하다. 컵스 관계자들조차 “우리 팀의 클럽하우스는 더블A 수준”이라고 고백할 정도다.
7일. 이 오래된 구장에서 임창용은 데뷔전을 치렀다. 재미난 건 임창용의 데뷔 역시 리글리 필드만큼이나 고전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이날 임창용은 만 37세 3개월 4일에 빅리그에 데뷔해 '1901년 이후 컵스 구단 사상 2번째 최고령 루키'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임창용의 메이저리그 데뷔 장면(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9월 7일 홈구장 리글리 필드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전에 7회 말 1사 팀의 3번째 투수로 등판했습니다. 이 경기가 바로 창용 씨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었는데요. 다소 긴장했는지 잠시 제구가 흔들렸습니다만,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데뷔전을 성공리에 끝마쳤습니다.
그날 제가 등판하리라곤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어요. 사전에 ‘너 나갈 거다’ 그런 언질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팀 상황에 따라 갑작스럽게 등판하지만, 그날 역시 경기 내내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던졌는지도 모르게 ‘후딱’ 이닝이 끝났어요(웃음).
1995년 해태 타이거즈(KIA의 전신)에 입단한 이후 프로 경력 19년 만에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는 순간이었습니다. 감회가 남달랐을 듯싶은데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죠.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는 상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가령 ‘이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가면 이렇게 준비하고, 이런 식으로 던지자’ 같은 상상을 자주 했죠. ‘공수 교대할 때 어떤 모션을 취하면서 마운드로 걸어가야지’하는 구체적 상상도 했었고요.
데뷔전이 상상했던 대로 진행됐나요?
보셨다시피 현실은 상상하고 완전 반대였어요(웃음). 원래는 7회면 7회, 8회면 8회 ‘등판할 것이다’라는 언질을 받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나가는 게 시나리오였는데, 갑자기 이닝 중간에 등판하면서 모든 계산이 무너졌죠. 한국·일본·마이너리그 통틀어 정말 이번 데뷔전처럼 이닝 중간에 갑자기 등판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뭐, 어쩌겠습니까. 그냥 마운드를 향해 뛰어갈 수밖에(웃음).
그렇다면 MLB 데뷔전 첫 타자와의 승부는 어땠습니까. 상상했던 시나리오대로 전개됐습니까.
상상했던 대로 결과가 나왔다면 첫 타자는 무조건 삼진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볼넷이었죠(웃음).
첫 타자 션 할튼과의 승부에서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MLB 데뷔 첫 볼넷을 내줬습니다. 현장서 보며 ‘아, 저 공은 스트라이크를 선언해도 좋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든 게 사실입니다.
코스가 한가운데이긴 했는데 제가 봐도 좀 낮았어요. (잠시 생각하다가)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은 어디든 다 똑같아요. 스트라이크 존 설정이야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구심의 손이 올라가는 코스가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점에선 어느 나라나 다를 게 없어요. 투수가 할 일은 구심의 판정을 존중하고, 그 코스로 공을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적응해야죠.
두 번째 타자였던 아오키 노리치카와의 대결에선 좌전 안타를 맞았습니다.
속구였는데, 공이 밋밋했어요. 2구째 체인지업이 낮게 잘 갔는데 그걸 치지 않더군요. 아오키는 일본에서 뛸 때 같은 팀(야쿠르트 스왈로스)에 있어서 잘 알아요. 정말 선구안이 좋은 타자에요.
‘임창용-아오키’의 맞대결에 일본 기자들이 큰 관심을 나타내더군요.
그랬을 거예요. 저나 아오키나 일본에서 뛰었고, 같은 팀 동료였으니 관심을 둘만 했죠. 가뜩이나 아오키가 제게 안타를 뽑았으니 더 재밌어하지 않았겠어요(웃음). 데뷔전 전날 호텔에서 아오키를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서로 ‘열심히 하자’고 덕담을 주고받았죠. 국적을 떠나 아오키도 잘했으면 좋겠어요.
1아웃 1, 3루에서 진 세구라와의 승부에서 병살타를 유도하며 데뷔전을 마쳤습니다. 이닝이 종료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다가 잠시 멈춰 내야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더군요.
당시 우리가 1점 차로 뒤지고 있었어요. 등판하면서 ‘더 점수 차가 벌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던졌는데 공교롭게 1, 3루 위기에 몰렸죠. 그럴 때 야수들이 더블 플레이를 해주니까 정말 고맙더라고요. 유격수, 2루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2008년 3월 28일 일본 프로야구 데뷔전 때는 MLB 데뷔전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데뷔전이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센트럴리그 개막전이었어요. 팀이 6대 2인가 이기는 8회에 등판했죠. 등판하자마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좌익수 플라이 아웃, (이)승엽이를 삼진, 알렉스 라미레즈를 3루 직선타로 아웃시켰던 기억이 나요. 그러고 나서 우리 팀 마무리 이가라시 료타가 부상당하는 바람에 다음날부터 제가 마무리를 맡았죠.
당시 기억이 납니다. 창용 씨가 요미우리와의 2차전에서 시속 156km 강속구를 뿌리자 일본 프로야구계가 깜짝 놀랐지요. 이번 MLB 데뷔전에선 속구 최고 구속이 얼마였습니까.
구단 쪽에 물어보니까 “93마일(시속 150km)가 나왔다”고 하던데요.
마이너리그에서 최고 구속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95마일(시속 153km)까지 나왔죠.
속구 구속은 5년 전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군요.
그래도 5년 전 데뷔전과 이번 데뷔전은 등판 환경에서 180도 달라요.
무슨 뜻입니까.
5년 전엔 제게 주어진 이닝이 8회였고, 보직이 필승조 셋업맨이라 8회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어요. 물론 8회에 등판하리라 예상해 충분히 몸을 풀고 준비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컵스 불펜진에 투수가 하도 많아서 누가 언제 등판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아무래도 등판을 차분히 준비하기 어려웠죠. 신시내티 원정경기에서 불펜에 앉아 있는 임창용(사진 맨 오른쪽)(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임창용의 "어디서나 똑같지만 다른 야구"
9월 10일. 임창용은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첫 원정 마운드에 섰다. 팀이 9대 1로 크게 이기던 8회 말 등판해 1이닝을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처리했다. 속구는 데뷔전보다 빠른 94마일(시속 151km)이 나왔다. 여기다 체인지업도 떨어지는 각이 좋아졌다.
그러나 임창용은 경기가 끝나고서 “변화구 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변화구가 고전하니 타자들이 속구만 노린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마이너리그에서 꽤 효과를 봤던 릴리스 포인트를 조절해 타자들을 공략하는 '변칙 투구'도 자주 나오지 않았다. 일부에선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언더핸드 투수에 약한 만큼 아예 팔을 더 내려 던지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
임창용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임창용은 “(김)병현이가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완전히 팔을 내려 언더핸드로 던져 타자들을 제압했다는 걸 잘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이 따랐다. 팔이 내려가면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을 뺐을 순 있어도 속구 구속이 떨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과거 임창용은 아픈 기억이 있다.
2002년 임창용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고 머나먼 푸에르토리코까지 날아가 인터리그에 참가했다. 결과는 좋았다. 임창용은 “당시 10이닝 완봉을 기록했다”며 “타자들이 배트애 내 공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임창용은 팔 각도를 크게 내려 언더핸드 투수처럼 던졌다. 그게 효과를 봤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게 다시 독이 됐다.
임창용은 “언더핸드처럼 던져 투구 내용은 좋았지만, 속구 구속은 평소보다 떨어졌다”며 “속구 구속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는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비공개 입찰액으로 예상보다 훨씬 적은 65만 달러밖에 쓰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같은 아픔이 반복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임창용처럼 40인 로스터에 든 ‘검증되지 않은’ 선수는 코칭스태프에 '스피드'를 보여줘야 한다. 가뜩이나 컵스는 임창용을 ‘일본 프로야구 시절 시속 160km를 기록하던 강속구 투수’로 알고 있다.
2경기를 치르고 임창용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바로 “변화구는 계속 던지면서 감을 찾는다. 그리고 사이드암을 기준으로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투구폼은 나만의 스타일인 만큼 내 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살 길을 찾자”는 것이었다.
![]() 9월 5일 빅리그로 승격한 임창용이 동료 투수의 불펜 피칭을 지켜보고 있다(사진=포커스케이닷컴) |
마이너리그에서 21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 1.61을 기록했습니다. 트리플A 성적만 보자면 11경기에 등판해 11.1이닝을 던져 평균자책 0.79의 뛰어난 성적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이 꼭 하는 소리가 있더군요.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실제로 두 리그, 큰 차이가 있습니까.
크죠.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많이 상대한 건 아니지만, 힘이나 정확성에서 확실히 마이너리그 타자들보다 한 수 위에요. 유인구에 잘 속지 않는 거 보면 선구안도 뛰어난 것 같고. 무엇보다 메이저리그 자체가 제가 지금까지 뛰었던 한국, 일본 리그와는 큰 차이가 있어요.
한·일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큰 차이는 뭡니까.
일단 투수인 저만 놓고 보면, 한국과 일본에선 투수들이 야수들 배팅 훈련할 때 ‘그런가 보다’해요. 투수조 훈련을 따로 받든가 아니면 클럽하우스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죠.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야수들이 배팅 훈련할 때 투수들이 그라운드에 나가 수비를 해줘야 해요. 그리고 한국, 일본에선 불펜투수들이 자기 등판 차례가 올 때 불펜으로 나가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메이저리그는 1회 시작과 동시에 불펜투수들이 죄다 불펜으로 나가 경기를 지켜봐야 해요.
창용 씨처럼 마무리만 맡아온 선수들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전 야쿠르트에서 뛸 때 5회 이전까진 트레이너한테 마사지를 받으면서 경기 후반을 차분하게 준비했어요. 5회가 끝날 때까진 스파이크도 안 신었다니까요(웃음). 그런데 여긴 1회부터 스파이크 신발 끈을 ‘꽉’ 묶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불펜에 앉아 있어야 해요. (손으로 발을 매만지며) 경기 끝나고 나면 발이 아파요, 발이.
마운드도 한국, 일본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한국, 일본 마운드는 땅이 부드러운 편이에요. 그런데 여긴 흙이 굉장히 딱딱해요. 스파이크로 땅을 고르려고 해도 웬만해선 파지지가 않아요.
‘딱딱한 마운드’가 투구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듯싶군요.
전 원래 딱딱한 마운드는 좋아하지 않아요. 앞발이 착지할 때 살짝 미끄러지면서 던지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여긴 마운드 흙이 하도 딱딱하니까 앞발이 미끄러지기는커녕 아예 땅에 박혀 버려요. 아무래도 투구 시 힘을 쓰는데 조금 걸림돌이 되죠. 그래도 마이너리그에서부터 단련해선지 지금은 많이 적응했습니다.
메이저리거들의 경기 준비도 한국, 일본 선수들과는 다른 점이 많더군요.
맞아요. 한국, 일본은 경기 전 선수들이 단체로 모여 스트레칭과 워밍업을 하잖아요. 그리고서 캐치볼 끝내고 보조운동을 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죠. 메이저리그는 그게 아니에요. ‘몇 시까지 구장에 모여라’해서 가보면 선수들이 모이자마자 바로 캐치볼을 시작해요.
그래요?
이미 구장에 모이기 전, 선수들이 알아서 몸을 풀고 온 거예요. 그러니까 바로 캐치볼부터 할 수 있는 거죠. 한국, 일본에서 뛸 땐 시간 맞춰 구장에 나오는 스타일이었는데, 미국에선 그렇게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MLB 공인구는 어떻습니까. MLB 공인구에 낯선 많은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가 미끄러운 공인구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곤 했는데요.
미끄럽죠. 제구하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갑자기 공이 빠져 버리니까. 가뜩이나 아시잖아요. (헛웃음을 지으며) 제2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이치로 상대로 포크볼 던지다가 공이 빠져 실투가 되고, 그 공이 결승 타점으로 연결된 거. 그래도 빨리 적응하는 길밖엔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적응해야 할 부분이고, 결국엔 제가 풀어야 할 숙제니까요. (인상을 찌푸리며) 경기 전 심판들이 공인구에 일일이 진흙을 묻히거든요. 개인적으론 그거 좀 안 발랐으면 좋겠어요. 그걸 발라 놓으니까 공이 더 미끄러운 거 같아요(웃음).
메이저리그 선수들 보니까 미끄러운 공인구에 대처하는 자기들만의 노하우가 있더군요. 가령 선크림을 손가락이나 팔꿈치에 바르고 등판해 새 공을 받을 때마다 슬쩍 묻히든지 하는 요령들이 있던데요.
저도 마이너리그에서 봤어요. 그런데 선크림을 쓰면 속구는 괜찮을지 몰라도 변화구 던질 때 확실히 쥐약이라고 하더군요. 아예 변화구 제구가 안 될 수도 있다고 하고. 저 같은 경우 포크볼을 결정구로 던질 때가 있는데 손에 공이 ‘쫙’ 달라붙어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거든요. 정석대로 가야죠. 그게 제 스타일이고.
한국은 경기 전 미팅에서 코치나 전력분석원이 상대 타자들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들려줍니다. 일본 프로야구 역시 경기 전 전력분석원(스코어러)들이 세심하게 상대 타선 공략법을 알려주는데요. MLB 구단들도 그런 ‘현미경 야구’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메이저리그는 한국, 일본처럼 전력분석 미팅시간이 따로 없어요. 코칭스태프도 그날 선발투수에게만 잠깐 이야기하고 끝이에요. 불펜투수들도 똑같아요. 등판 전 불펜에서 몸 풀 때만 불펜코치가 바로 옆에 서서 “네가 상대할 저 타자는 몸쪽에 약하고, 높은 공을 정말 잘 친다.” “쟤는 초구 무슨 공엔 무조건 휘두른다” 식으로 계속 이야기해 주는 게 다에요.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그런 소릴 들어도 잘 감이 안 오죠. 저 같은 경우 다 처음 상대하는 타자들이니까요. 그런데 타자들 역시 절 처음 보기 때문에 누가 유리하거나 불리할 건 없을 것 같아요.
임창용의 승부수 “메이저리그 승격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 빅리그로 콜업되고서 리글리 필드에서 임창용(사진 좌로부터)과 에이전트 박유현 대표가 찍은 기념사진. 오랫동안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임창용과 박 대표의 관계는 당장의 이익을 쫓아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는 야구계에선 매우 드문 케이스다(사진=포커스케이닷컴) |
9월 2일. 임창용 측은 컵스 구단과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다음날 발표될 40인 확장 로스터에 임창용의 이름이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마찰을 빚은 것이었다.
임창용 측의 주장은 이랬다. "원래 첫 등판은 마이너리그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였다. 하지만, 구단 측의 요청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첫 등판했고, 이후 21경기나 등판했다. 그런데 지금 와 40인 확장 로스터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9월 중순에 승격시켜주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동안 난 어디서 운동하란 말인가."
컵스는 임창용을 달래며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우리가 메이저리그 승격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현재 몸 상태를 봐선 9월 초순보단 중순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 만약 빅리그로 콜업돼 무리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넌 우리 팀에 꼭 필요한 투수고, 아끼고 싶은 자원이다."
이날 빅리그 승격과 관련한 양측의 협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임창용 측은 어째서 빅리그행을 그토록 바랐던 것일까.
일단 빅리그에 등판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만큼 몸 상태가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임창용은 올 시즌 5월까지 재활에 매달렸다. 그리고 6월부터 루키리그에 등판해 싱글A, 더블A, 트리플A를 차례로 거치며 전성기 못지않은 뛰어난 구위를 과시했다.
몸 상태가 정상이고, 마이너리그에서 빼어난 성적을 냈으니 내년 시즌을 대비해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고 싶다는 임창용의 요구는 전혀 어색할 게 없었다.
하지만, 컵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만약 지금이 시즌 중반이고, 컵스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선두다툼을 펼쳤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9월 초 컵스는 지구 하위권을 맴돌았고, 잔여 경기도 30경기 이하였다. 만약 이 시기에 임창용을 빅리그에 올린다면 컵스는 세 가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먼저. 돈이었다. 임창용이 빅리그로 승격하면 샤이닝 보너스로 몇십만 달러를 지급해야 했다. 여기다 9월 월봉을 메이저리그 연봉으로 계산해 줘야 하고, 각종 옵션액도 달성만 한다면 두말없이 내줘야 할 판이었다. 홈, 원정 호텔비부터 시작해 사소한 운영비까지 메이저리거 임창용에게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두 번째는 유망주 유출이었다. 임창용이 40인 로스터에 포함되면 대신 누군가는 로스터에서 제외돼 팀을 떠나야 했다. 이른바 지명 할당으로, 컵스는 유망주를 떠나보낼 때 보내더라도 40인 로스터에 두고 일정 기간의 테스트를 거쳐 가능성을 최종 확인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임창용이 9월 초 빅리그로 콜업되면 충분한 테스트 기간을 생략한 채 유망주 한 명을 지명 할당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는 임창용의 몸이었다. 애초 팔꿈치 수술 후 재활 중인 임창용을 영입할 때만 해도 컵스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하지만, 임창용이 훌륭하게 재활을 마치고서 마이너리그에서 승승장구하자 '반신반의'는 '확신'이 됐다. 내년 시즌 약진을 노리는 컵스로선 시즌 말미에 굳이 부상을 우려하면서까지 임창용을 쓸 이유가 없었다.
양측의 협상은 3일에도 결렬됐다. 결국 임창용은 40인 확장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했고, 국내 언론은 이 소식을 빠르게 전했다. 하지만, 4일 저녁까지 양측의 마라톤 협상은 계속됐다. 그때 임창용이 초강수를 뒀다.
"메이저리그에서 못 던질 바엔 미국에 있을 이유가 없다. 컵스를 떠나겠다."
에이전트 박유현 아이언스 대표는 임창용의 의사를 구단 측에 전달했다. "우리 측의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읍소하던 컵스 측도 임창용이 강경하게 나오자 "그럼 내일 아침 우리가 제공한 호텔에서 나가달라"며 역시 초강수로 대응했다.
4일 새벽 4시까지 진행된 협상마저 결렬되자 임창용은 "오늘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국 그 승부수가 해결점이 됐다. 임창용의 강경한 태도에 놀란 컵스는 아침 7시에 마지막 협상을 제안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임창용의 강경한 태도를 재확인하고서 "몇 시간 후, 임(Lim)을 리글리 필드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임창용의 빅리그 승격을 시사했다. 실제로 컵스는 오전 10시에 임창용 승격 소식을 발표했다.
결국 임창용은 예상보다 하루 늦게 메이저리그로 승격했고, 내심 임창용이 떠날까 전전긍긍하던 컵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재미난 건 양측의 신경전을 보고 헛물을 삼킨 이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로 임창용 영입을 계획했던 한신 타이거스였다.
![]() 임창용은 기회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승부수를 던져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의 승부수가 늘 성공할 수 있던 가장 큰 배경은 바로 탄탄한 실력이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
애초 9월 3일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 확장 때 빅리그로 승격하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창용 씨의 이름이 없어 많은 팬이 놀랐습니다. 일부에선 “올 시즌 빅리그에서 임창용의 얼굴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인 4일 빅리그로 전격 승격됐습니다. 테오 엡스타인 컵스 사장과의 면담이 빅리그 승격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압니다.
제가 하루 늦게 40인 로스터에 등록된 건 엡스타인 사장과 이견을 조율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어요.
어떤 이견 조율이었습니까.
컵스 구단은 제가 충분히 몸을 만든 상태에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어요. 하지만, 전 당시 80% 정도 몸이 완성된 상태였어요. 마이너리그에서 뛰나, 메이저리그에서 뛰나 크게 달라질 게 없었죠. 가능하다면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걸 아는지 엡스타인 사장이 제게 두 가지를 제안했어요.
그게 뭐였습니까.
첫 번째는 “내년 스프링캠프부터 우리 팀 훈련에 참가해 풀타임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었어요. 두 번째는 “지금 메이저리그로 올라와 조금씩 적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거였어요.
후자의 제안을 선택했군요.
그렇죠. 엡스타인 사장한테 “올 시즌 꼭 메이저리그에서 던져 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했어요. 그러니까 엡스타인 사장이 바로 “OK(알았다)”하더군요. 그걸로 모든 이견이 깔끔하게 정리됐어요.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꼭 던져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까.
음, 올 시즌 꼭 한번 뭔가를 빅리그에서 느껴보고 싶었어요. 시즌이 끝나려면 한 3주 정도 남았는데, 그 3주 동안이라도 메이저리그가 어떤 곳이고, 타자들의 성향이 어떤지 파악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야 내년 시즌 준비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바람대로 됐죠.
메이저리그 승격이 결정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당연히 좋았죠. 메이저리그 콜업 소식 들었을 땐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어요. 올 시즌 목표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는 거였으니까요.
현역 3번째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됐습니다. 자신이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사실, 실감이 났습니까.
솔직히 그때나 지금이나 실감 나진 않아요. 지금처럼 40인 로스터가 아니라 처음부터 25인 로스터에 들어야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걸 실감할 것 같아요.
리글리 필드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대표적인 ‘타자 친화적’ 구장입니다. 구장 규격과 바람의 영향으로 홈런도 자주 나오고, 파울 지대도 좁아 투수들에겐 무척 불리한 구장으로 통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구장이 더 작더라고요. 대충 봐도 야쿠르트 홈구장인 메이지 진구구장보다 작은 것 같아요. (빙그레 웃으며) 그래도 이게 다 제 복(福)인 것 같아요.
복이요?
저 보세요. 100년 가까이 되는 구장만 홈구장으로 쓰고 있잖아요. 리글리 필드는 100년 됐죠. 메이지 진구구장은 90년(1926년 완공)이 다 돼가죠. 광주, 대구구장도 한국 구장 중에서 역사가 가장 깊잖아요. 좋은 시설의 홈구장을 썼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웃음).
컵스 선수 중에서 창용 씨의 경력을 아는 선수가 있을 것도 같은데요.
거의 저에 대해 몰라요. 밀워키에서 뛰는 아오키 정도나 알까. 그냥 ‘베테랑’이란 것만 아는 것 같아요.
클럽하우스를 돌아보고 느낀 겁니다. 컵스 마운드, 참 젊더군요.
젊은 게 아니라 아예 어리죠(웃음).
창용 씨가 최선참급 아니에요?
나이로 치면 그렇죠. 제 밑으로 마무리 캐빈 그렉이 있죠. 아마 그 친구가 저보다 2살 어릴 거예요.
빅리그에 올라왔을 때 어떤 선수가 가장 반겨주던가요?
아무래도 함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던 선수들이죠. 제가 빅리그로 올라오니까 그 선수들이 모두 살가운 표정으로 반겨주더군요. 그런데 한편으론 긴장하는 것 같기도 해요.
긴장이요?
저도 그렇지만, 다들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모르니까 불안한 심정이죠. 지금 40인 로스터에 들어갔다고, 내년 25인 로스터에 포함되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어떤 의미에선 다들 라이벌인 셈이죠. 그래선지 절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긴장하는 것 같더라고요.
“추신수는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 난 아직 루키” 7일 경기 전 우측 담장 미니 전광판에 과거 컵스 마무리 리 스미스의 성적이 표시된 장면(사진=포커스케이닷컴)
임창용이 데뷔전을 치르던 날. 리글리 필드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왕년의 특급 마무리’ 리 스미스였다.
스미스는 1980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997년 은퇴할 때까지 18년 동안 1천22경기에 등판해 71승 92패 478세이브 평균자책 3.03을 기록한 대투수로,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세이브 부문 3위에 올라있는 전설이기도 했다. 특히나 스미스는 37살에 37세이브를 기록하며 그해 올스타에 뽑힌 바 있었다.
그런 스미스가 리글리 필드를 찾은 건 컵스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스미스는 1980년 컵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고, 1987년까지 리글리 필드의 수호신으로 맹활약하며 4년 연속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
미디어 식당에서 만난 스미스는 “컵스로부터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야구장으로 날 데려가 주오)’을 불러달라는 제안을 받고, 흔쾌히 리글리 필드를 찾았다”며 “7회가 끝나면 내 멋진 목소리가 시카고 전역에 울릴 것”이라며 농담을 던졌다.
원래 리글리 필드에서 ‘Take Me Out to the Ball Game’을 열창한 건 컵스 전담 캐스터였던 고(故) 해리 캐리였다. 하지만, 그가 1998년 타계하자 컵스는 후임 캐스터에게 노래를 맡기지 않고, 게스트들에게 선창을 부탁했다. 스미스는 바로 이 노래를 부르려고 구장을 찾은 것이었다.
7회가 오길 기다리던 스미스에게 “현역시절의 당신처럼 나이를 먹고도 최고의 마무리가 되려면 무엇에 중점을 둬야 하는가”하고 물었다. 다분히 임창용을 의식한 질문이었다.
스미스는 “투수는 나이를 먹으면 속구 구속이 줄지만, 반대로 경험은 나이가 들수록 늘어간다”며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나이가 들어서도 내 공에 자신감을 갖고,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힘차게 공을 던질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미스는 기자를 향해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는 “한국 기자”라는 답변을 듣자 “올 시즌 컵스가 한국과 일본에서 좋은 불펜투수를 데려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국 출신의 불펜 투수에게 ‘야구는 어디서든 똑같다’는 말을 들려달라”며 “이전의 공을 여기서도 자신 있게 던질 수만 있다면 그는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신시내티 원정 경기에서 추신수(사진 우로부터)와 만난 임창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데뷔전 이후 성적이 나쁘지 않습니다. 과거 해태나 야쿠르트 시절에도 처음부터 마무리로 뛴 건 아니었어요. 컵스 전담 기자들이 “내년 스프링캠프만 잘 보낸다면 팀 사정상 임창용이 마무리를 꿰찰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야 (마무리를) 시켜주면 좋죠. 하지만, 실력이 안되면 구단이 시켜주고 싶어도 못 시켜주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라도 구단에 깊은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어요. 무엇보다 내년 스프링캠프가 정말 중요하지 싶어요. 스프링캠프 결과에 따라 마무리로 뛸지, 필승조에서 뛸지 그도 아니면 평범한 불펜투수가 될지 결정될 테니까요.
마무리를 맡아야 대망의 한·미·일 통산 300세이브가 달성될 텐데요. 현재 296세이브로 이제 4세이브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글쎄요. 빨리 컵스 마무리가 돼서 (300세이브를) 기록하면 저도 좋겠는데(웃음). 어디 제힘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목소리에 힘을 주고서) 얼마나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모르지만, 300세이브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제 올 시즌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즌 동안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타자가 누가 됐든 간에 빨리 삼진 하나 잡고 싶어요(웃음). 그거 말곤 솔직히 올 시즌엔 이루고 싶은 게 없어요. 목표로 했던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섰으니까 일단 목표는 이룬 셈이고요. 지금으로선 이기고 있던 지고 있던 상황을 가리지 않고, 등판할 때마다 잘 던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서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상상했다’고 했는데요. 많은 국내 야구팬은 창용 씨와 추신수(신시내티)와의 맞대결을 오래전부터 상상한 듯합니다. 제게 두 선수와 관련된 질문을 상당히 많이 보내주세요. 이런 류의 질문 잘 하지 않습니다만. 혹시 상상 속에서라도 추신수와 맞대결한 적 있습니까(웃음).
(양손을 흔들며) 한국 타자와는 없어요(웃음). 한국 타자와의 맞대결은 상상하기도 싫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추신수는 정말 좋은 타자에요. 일본에서 아오키를 높게 평가하잖아요. 아오키가 좋은 타자인 건 확실한데, 추신수는 아오키만큼 빠른 발과 정교함을 갖춘데다 파워까지 있어요. 메이저리그 최고 타자라고 해도 무방하죠. 그에 비해 전 아직 여기서 실적이 없죠(웃음).
미국 타자 가운덴 상대하고 싶은 선수가 있을 듯싶은데요.
특별히 상대하고 싶은 타자는 없어요. 젊은 선수들보다 제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메이저리그에서 최대한 많은 타자와 겨뤄보고 싶어요.
2008년 일본 무대에 도전할 때 많은 야구인이 “사서 고생한다”며 “한국에서도 안 통하는데 일본에서 통하겠느냐”는 식의 냉소적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일본 진출 후, 역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한국인 선수 가운데 가장 빛나는 성적과 높은 몸값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올 시즌 미국 진출을 강행했을 때도 주변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보니 여기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큰 것 같군요. 혹시 '기로에 섰을 때마다 어디로 도전하면 좋겠다' 하는 ‘촉’ 같은 게 남보다 뛰어나지 않을까 싶은데요.
에이, 그런 거 없어요(웃음). 그냥 부딪혀보는 거죠. 부딪혀 보면 제 한계가 느껴질 거 아니에요. ‘여기선 못하겠다’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아니면 ‘이거 할 만한데’하는 자신감이 붙을 수도 있고. 제 '프로 관(觀)'은 항상 그래요. ‘내가 뭔가를 이루고 싶다면 구단에 뭔가를 바라기 전에 실력부터 보여주자.’ 일단 구단이 제 실력을 확인하고, 제가 꼭 필요한 선수라고 판단하면 제가 잡아달라고 조르지 않아도 큰돈을 투자해서라도 잡게 돼 있습니다. 제가 눈앞의 몸값에 연연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런 도전이 성공하면 성취감도 커지겠군요.
그렇죠. 지금 당장 높은 계약금을 받을 때보다 내 실력을 보여주고서 구단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줄 때 받는 성취감이 더 크죠. 사실 그것만큼 확실한 동기부여도 없고요. 호텔에서 밝은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하는 임창용(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임창용의 진심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기까지…30년 걸렸습니다.”
임창용은 경기 전,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 조용히 앉아 태블릿 PC로 자신의 기사를 읽는 게 취미다. 특히나 댓글까지 세심하게 읽는다. 악플(악성댓글)도 예외는 없다. 임창용은 “인터넷 댓글이 재밌다”며 “‘나이 먹고 뭐하는 짓이냐’고 욕하는 분들도 있지만,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게 참 멋있다’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임창용은 “악플을 보면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어쨌거나 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있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냐”며 “악플이든 선플이든 양쪽 모두 고마울 뿐”이라고 답했다.
‘베테랑’ 임창용은 그렇게 자신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역생활의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다.
내년 시즌이 끝나면 컵스와의 2년 계약이 끝납니다. 만약 내년 시즌 성적이 뛰어나다면 혹시 다른 팀으로 이적할 의향도 있는지 궁금하군요.
지금 컵스에서 뛰고 있으니까 한 팀에서 계속 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담담한 목소리로) 이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진심으로.
9월 18일 밀워키전에서 MLB 데뷔 첫 탈삼진을 기록한 임창용
창용 씨의 그런 도전 정신을 많은 젊은 선수가 배웠으면 합니다. 저 역시 진심입니다.
전에도 박 기자님한테 그런 말씀 드렸지만, 전 ‘도전’이 아니에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을 때도 그랬어요. 한국에서 오랫동안 뛰면서 매일 보는 타자, 다 친한 선수들과 상대하는 게 어느 날부터인가 지루했어요. 승부욕도 많이 떨어졌죠. 그러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니까 생판 모르는 타자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맞붙는 게 참 재밌었어요. '미국에 진출하자'고 마음먹었을 때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죠. 일본에서 5년간 뛰면서 이룰 건 다 이뤘다고 봤어요. 그때 제게 필요했던 건 새로운 승부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메이저리그에 온 것이고. 실제로 요즘엔 새로운 승부욕이 생겨서 하루하루 타자들과 상대하는 게 무척 재밌어요(웃음).
여담입니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뛸 생각입니까.
음, 제 몸이 버티는 한 계속 뛰지 않을까요(웃음).
몸이 버티는 한이라면?
역시 부상당하지 않는 거죠. 아픈 데가 없으면 속구 구속이 떨어져도 버틸 수 있거든요. 늙으면 늙은 대로 기교가 생기지 않겠어요?(웃음). 몸만 아프지 않다면 계속 마운드에 서고 싶어요.
임창용의 마지막 무대는 역시 한국 프로야구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러고 싶죠. 그런데 그때 되면 나이도 많고, 그런 절 어느 팀이 받아주기나 하겠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면 삼성 임의탈퇴 신분이라, 삼성으로 가야 하는데. (잠시 침묵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제가 한국 무대로 돌아가면 삼성에서 좋아할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메이저리그가 창용 씨에겐 어떤 의미입니까.
(만감이 교차한 듯) 정말 오랫동안 기다린 무대에요. 처음 야구 시작했던 초등학교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동경했으니, 여기까지 오는데 30년이 걸린 셈이네요. 한국 프로야구에 데뷔해 7년 동안 열심히 뛰다가 삼성 시절 포스팅시스템에 도전했었죠. 그때 구단에서 기대했던 포스팅 금액이 나오지 않아 미국 진출이 좌절됐는데요요. 그러다 FA(자유계약선수)가 됐지만, 구위가 떨어지고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한국에서 계속 뛸 상황이 안됐어요. 그래 일본에 진출할 수밖에 없었죠.
(짧은 한숨을 토해내고서) 돌아보면 모든 일엔 다 때와 운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삼성을 나와 일본에 간 것도 그래야 하는 때였고, 그런 운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미국에서 뛰는 것도 인력으론 어쩔 수 없는…제 운명인 것 같아요. (혼잣말로) 휴우-. 여기까지 오는데 30년이 걸렸네요. 30년이….(웃음)
+ 임창용은 9월 18일 밀러파크에서 열린 밀워키와의 원정 경기에 팀의 4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특히나 임창용은 이날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MLB 데뷔 첫 탈삼진을 잡아냈다.
시즌 전 기사 - 임창용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1년 전 기사 - 임창용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또 한 명의 도전자 - 허민 “쇼라고? 47살까지 메이저리그 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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