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년이 지났다. 4살 딸아이를 데리고 전라도 신안에 있는 섬, 안좌도에서 미술교사로 1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다. 안좌중학교는 규모가 큰 전통 있는 학교였지만, 섬 인구가 줄어들어 전교생이 당시에 52명이었으며, 미술교사인 나는 근처의 팔금중학교까지 미술수업을 담당했다. 나는 중학교 때 꿈이 섬마을 학교의 미술교사였다. 그래서 그 1년간의 섬마을 미술교사의 시기는 중학교 때의 꿈을 이룬 시기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다. 섬마을의 특성상 특수학교가 없어서 지적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함께 수업을 했다. 헐렁하고 큰 교복을 입은 중학교 1학년은 초등학생과 별 차이가 없는 어린 얼굴로 인사를 했다. 아직까지 콧물을 흘리는 초등학교 3학년정도로 보이는 서 너 명의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옷만 사복으로 갈아입으면 성인처럼 보일 만큼 키가 큰 학생들이 한 반에 뒤섞여 있었다. “여러분, 미술시간은 주로 표현하는 시간이에요. 재료도 서로 나눠 쓰고 생각도 함께 나누도록 해요. 표현 시간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해도 됩니다.” 미술실에는 기본적인 도구들이 잘 갖춰져 있어 학생들이 특별히 준비물을 챙겨 올 필요가 없었다. ‘학생 수가 적은 학교의 장점이 이런 거구나.’하며 도구들을 나눠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준 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순식간에 떠들고 싸우며 교실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내가 수업 중에 대화해도 된다고 한 건 실수였구나.’ 교실 뒤 구석에선 한 학생이 울고 있었고 씩씩 불며 주먹을 쥐고 있는 학생, 그 상황을 설명하느라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학생…
“싸운 사람 두 명 앞으로 나와!” 두 학생은 서로를 흘기며 나왔고 눈물이 범벅이 된 한 친구는 맞았다고 억울해 하고, 때린 친구는 때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터지는 웃음을 누르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 앞으로 10분간 보듬고 있어!” 두 친구는 억지로 서로를 안았고 곁에서 구경하는 친구들은 시계를 보며 키득키득 거렸다. “꼬~옥 껴안아라, 앞으로 서로 싸우면 보듬고 싶어서 그런 걸로 알고 서로 포옹하게 할 거야.” 몇 분이 지났을까? 껴안고 있던 한 친구가 울먹이며 힘들어 했다. “더 꽉 안아라.” 나는 점점 떨어져가는 두 학생을 다시 붙여 놨다. “선생니임, 입 냄새 나서 도저히 못 참겠어요.” 폭소가 터져 나왔다. 세수 안하기로 유명한 녀석을 보듬고 있는 게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하하. 낄낄낄… 그래도 2분 남았다.” 구경하던 학생들 중 누군가가 시계를 보며 시간을 재고 있었고 드디어 그 2분마저 지나갔다. “너희들 서로 사과해라. 그리고 넌 앞으로 세수하고 이 닦고 와라.” “앞으로 또 때리고 싸울 거야?” “아니요~” “다시 따뜻하게 안아라. 서로의 등을 쓸어주며 사과해라.” 서로의 등을 쓸어주며 “미안해.”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니임, 남자와 여자가 싸워도 그 벌주나요?” “글쎄, 그건 싸워봐야 알겠는데?” 습관적으로 주먹질을 하는 학생, 하고자하는 말보다 욕이 더 먼저 나오는 학생, 말꼬투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학생, 남의 물건을 함부로 쓰는 학생,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학생들은 거의 매일 말다툼이 일어나고 몇 명은 울어야 하루가 지나갔다. ‘아, 매를 들지 않고 어떻게 지도할까?’ 고민 중에 생각해낸 벌이 효과를 발휘했다. 꼬~옥 보듬고 있던 중에 서로의 심장소리를 느꼈을까? 아니면 싸움정이 들었을까? 며칠 후, 화장실 앞 복도에서 세수 안하고 다니는 학생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너 머리에 왠 물이냐? 화장실에서 무슨 일 있었니?” 화장실에서 뒤따라 나오며 전에 싸웠던 친구가 말했다. “선생님, 이 새끼 머리에서 넘 냄새나서 제가 비누로 감겨줬어요.” “야! 좀 씻고 다녀야. 더런 새끼.” 둘은 청소구역이 그 화장실이다. 화장실 청소하고 친구의 머리를 감겨 주었다는 그 친구… 주먹질과 욕이 몸에 배어 있어서 무척 거칠어 보이지만, 가슴 속에 따뜻한 인간애가 있음을 느끼게 했다.
섬마을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던 1년의 시간은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다.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거나 방해가 되는 친구들 몇 명을 모아, 방과 후에 미술실에서 한글과 구구단을 가르치면서, 미술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잠재된 가능성을 드러내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지체가 있었던 그 학생들 중, 한 명은 구구단을 19단까지 외웠으며, 그저 옆에서 “우와!”하고 감탄만 했을 뿐인데 어떤 분야에 뛰어난 면을 드러냈다. 그 친구들은 속도가 많이 느려서 기다림이 필요했고, 관심이 필요했다. 한 번도 칭찬받지 못한 학생이 칭찬을 받자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고, 그 거칠었던 주먹이 친구의 머리를 감겨주는 따뜻한 손길로 바뀐 것이다. 교육은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감탄해 주고, 동기를 부여해주며 기다리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준 시간이었다.
http://m.kjdaily.com/article.php?aid=1499338275412698028
첫댓글 좋은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