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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헬레니즘기의 상이한 철학의 유파들이 모두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론적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철학함에서 특히 강조된 것은 ‘행복한 삶의 방식’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행복을 획득한 마음의 상태에 대한 기술이 강조되었다. 이런 점에서 헬레니즘기의 대표적 학파로 스토아를 지목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스토아학파가 서구사회에서 남긴 지속적인 영향력은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해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이란 뜻의 ‘stoical’ 혹은 이에 상응하는 유럽어의 쓰임에서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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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불행의 원인은 불행하다는 생각 그 자체일 뿐이며 불행이란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가 되고 있는 철학의 한 주제를 만난다. 즉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불행이란 마음먹기 나름이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유의지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자유의지의 존재를 노예 출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이자 그의 스승이었던 에픽테투스의 가르침을 인용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에픽테투스 역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그가 ‘어떤 행위에’ 동의를 표할 때 필요한 기술 혹은 규칙을 발견해야 한다. 그는 주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때에 한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며, 사물의 가치를 존중해야 하며, 감각적 욕망을 멀리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권능 안에 있지 않는 어떤 일도 회피하거나 반감을 보여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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