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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 바꿔주세요- 교장 실패 문 이름) 지난 2011년 12월 14일 서울 강동구 A초등학교 교사 47명 중 37명은 "교장이 수시로 막말을 해 모욕감을 느낀다. "며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에 교장을 교체해 달라는 진정서를 냈는데 12월 19일 서울시 교육청은 감사를 하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헸는데 결과야 어떻게 나오던 교사들이집단으로 교장을 바꿔 달라고 해도 되는 건가? 이 지산) 참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요즈음 가끔 일어나는 골이 마치80년대 후반 전교조 출범 이전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80년대는 교장이 완전히 교사들의 적이었던 경우가 많았어요. 교장들은 마치 권력의 시녀처럼 여기고 교사들을 통제하기위하여 존재하는 집단으로 인식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당신의 학교 풍경을 보면 이해도 가요. 그때 일부 교장들은 자기가 마치 사단장으로 착각한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즈음은 양상이 상당히 달라요. 그건 그렇다고 치고 요즈음도 일부 교장들은 마치 자기들이 황제나 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기도 한가 봐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초등학교에서 좀 심한 것 같고. 왜냐하면 그런 말썽이 대체로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니 말이에요. 교장 교체해 달라는 민원이 대부분 교장의 비리나 성 추행 등의 사건과 연류 되어 학부모나 교사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이번 사건은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교장이 그런 일과는 거리가 멀고 아니 그런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어쩌면 너무 투명하고 칼 같이 학교를 경영해서 나온 문제 같기도 해요. 문 이름) 그럼 그 사건의 내용은 어떤 건지요? 이 지산) 일단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서울 시내 모 초등학교 교장은 그 학교에 부임한지가 일 년 정도 되는 듯해요. 각 진영의 주장을 보도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아요. 우선 교사들의 주장은 이래요. (1) 교장이 수업 중인 교사에게 전화를 해서 호통을 치고 폭언을 해서 교사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2) 교원평가 결과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자기실적 평가서를 다시 작성하게 하여 결과를 자기 듯에 맞게 유도하였다. (3) 일부 교사들은 교장의 강압적인 언행으로 운적이 있다. (4) 다수의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잔반을 남긴 학생들에게 억지로 밥을 먹게 하는 등 학생들에게 비인격적으로 대했다. 이에 대해 교장의 말과 교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이래요. (1) 교사들의 권위를 떨어드리는 언행을 한 적이 없다. (2) 다수의 학생들이모인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잔반을 남겼다는 이유로 밥을 억지로 먹인 적이 없다. (3)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낼 만큼 정신 나간 내가 아니다. (4) 법과원칙에 충실한 학교 경영을 하였으며 투명한 회계처리로 유명하다. (5) 학부모에게 일체의 금전저기 부담을 안기지 않고 깨끗한 학교 경영을 하였으며 소외 계층을 위한 교육에 정열을 쏟았다. (6) 작년 학교장 경영평가에서 S등급을 받은 우수교장이라 경영능력을 인정 받았다. 또한 서울시내 500위권에 머물던 해당학교 학력을 300위권까지 끌어 올렸으며 기초학력 부진아 지도에서 우수 실적을 거두어 교육감 표창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이 사건을 보는 학부모들의 변(辯)은 (1) 교사들에 대해 선생님들이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겠지만 학생들이 받는 충격에 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지 의문이다. (2) 교사들이 자기반성 없이 무조건 교장 탓으로 문제를 돌리는 현 세태가 안타깝다. 문 이름) 그렇다면 교사들이 집단으로 교장을 교체하여 달라고 민원을 내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요? 이 지산) 그럴 수 있지요. 무리지요. 하여튼 이 사건은 다른 사건과 양상이 좀 다른데 교사들의 사명 인식과 교장의 리더십양차원에서 문제가 공히 있는 것으로 생각되네요. 우선 이 학교의 내면을 약간 들여다보면 문제가 있는 학교였던 것으로 보여. 안일하고 교육 정책에 안티하는 교사들이 많고 학력은 저조하고 곳곳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학교로 평가되거든요. 교장은 부임하여 이런 고질병을 고치려 했던 거지요. 그런데 초기에는 교장의 단독 드라이버가 통하였는데 교사들이 힘드니까 튄 거지요.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하지요. 소통이 없이 일방통행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일방통행의 소통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지시지요. 소통은 상방향인데 교장이 그걸 몰랐거나 빨리 바꾸려고 하니 성급하여 소통을 잊은 모양입니다. 그 교장은 소통에 실패하였던 것이지요.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해당 교장은 대단히 업적 지향주의자로 평가되는데. 업적을 너무 앞세우다 보니 인간을 잊은 모양입니다. 사실 업적도 장기적으로 보면 인간의 힘에 의하여 창출되는데 그게 아쉽지요. 교장은 업무 중심의 머리는 있고 냉철한데 인간적 감성의 가슴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분명 그것이 부족했지요. 냉철함만으로는 일시적으로는 큰 업적을 올리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힘을 못 쓰지요. 그래서 소리가 나고 결국은 일탈그룹이 생겨 안타가 이루어지지요. 그래서 교장의 학교 경영에서도 인간적 감성이필요하고 때로는 연애하듯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여겨지지요. 그 교장은 가슴이 없는 머리만 가진 것이 결국 업적 일변도의 경영이 실패를 가져다 준 것이지요. 또한 교장은 업적주의에 매우 엄격하고 강직했던 것 같아요. 그거 사람 죽입니다. 그리고 홀로 선 소나무가 될 가능성이 크지요. 독야청청은 실제로 경영에서 실격입니다. 그런데 가끔 지나친 완벽주의자나 자기 도취주의자는 그런 독야청청을 좋아합니다. 좋아할 뿐만 아니라 즐기지요. 전에 모 학교에 전교조 선생님들이 교장에게 거의매일 대드는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교장은 대교장이라고 알려진 분입니다. 나도 그분을 잘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퇴임한지가 오래되었어요. 아는 것도 무척 많아서 감히 대적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분은 자기가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병이 되었어요. 내가 장학사 시절에 학교에 볼일이 있어 그분의 학교를 방문 했지요. 그분은 한참 후배가 오니 반갑기도 하지만 어느 선생님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어요. 나더러 옆에서 잠시만 기다라라고 해놓고는 선생님과 법전을 펴 놓고 따지며 훈계를 하더라고요. 그 교사를 내 보내고 나서 나를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자식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따져.” 하고는 나에게 인사를 하고 용무를 나누고 하였지요. 나는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한데요. 그 후 나는 그분 학교의 이야기만 나오거나 교장 실패의 이야기가 나오면 그분 생각이나요. 그분은 너무 완벽하고 많이 알고 너무 똑똑해서 학교가 시끄럽고 교사들의 협력을 구하지 못한 것 같아요. 똑똑한 것을 좀 숨겼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도 똑똑함을 숨기려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 초등학교 교장은 ‘독야청청 형 똑똑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지요. 하여튼 나는 그 사건을 교장 실패라고 규정짓고 싶습니다. 교사들은 더욱 문제가 있다고 보아요. 그렇다고 그들 스스로 집단행동으로 인권위원회와 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내는 것은 일종의 집단행동이 되지요.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맞지 않아요. 다른 방법도 있었을 것이고, 특히 학부모가 잠잠한 것은 교사들의 입장이 그토록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증거도 되고요. 교사들은 분명 자신들의 교육적 소신과 사명을 깨닫고 새롭게 나아가려 노력하는 면을 우선적으로 보였어야 하는데 자기들 입장을 고수하면서 대결하려고 했던 것도 문제고요. 지금 교사들이학부모로부터 환영 받지 못하고 개혁의 대상이 되는 것도 그런 자세와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요. 교사들도 분명 개어나야 할 사람이 무척 많아요. 그래야 공교육이 더욱 환영을 받지요. 그리고 교육부나 교육행정 기관에서도 교장을 마치교육실적이나 내는 기계처럼 보면 곤란하지요. 또한 학교를 학력(그것이 점수지요)이나 올리는 집단으로 보는 착각은 버려야 하는데 여러모로 교장 평가나 시스템 상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여기서 논할 문제는 지금 아니라고 봐요. 문 이름) 그 교장의 입장을 보면 학교를 혁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보는데요. 학교를 혁신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 지산) 그렇지요. 그 분은 아마 혁신의지와 업적에 대한 신념이 큰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혁신은 혁신 의지가 강하다고 해서 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혁신일수록 신중하고 점진적으로 하여야 합니다. 한번 잘못 바꾸면 되돌리기 어려우며 되돌릴 경우 낭비만 초래하고 갈등만 양산시키고 결국은 도로 묵이 되지요. 혁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항상 나는 조선시대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떠올라요. 조광조가 누구입니까? 젊은 나이에 한 국가를 좌지우지한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정말 이상적인 도의정치 향해 가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뒷날 중종은 조광조를 실각시키고 결국 사약을 받고 죽지요. 왜 그랬을까요? 혁신가의 유연성 부족입니다. 혁신가는 신념도 강해야 하고 추진력도 있어야 하지만 유연성도 강해야 합니다. 그런데 혁신가가 범하기 쉬운 오류가 항상 유연성의 결핍이지요. 결국 조광조는 실각되고 역사에 없던 사화만 남기지요. 조광조의 혁신 실패에 대하여 율곡 이이선생님은 논조광조에서 개혁은 점진적으로 여러 사람들의 중지를 모으면서 하지 않으면 피를 부를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독야청청으로 반대파의 의견은 아랑곳없이 일방소통으로 추진한 유연성의 부족과 조급함 때문이지요. 그러면 잘 가는 것 같지만 어딘가가 곪아 가기 쉽지요. 그래서 혁신은 항상 신중하여야 합니다. 그 초등학교 교장이 학교 경영에 상당한 업적을 남기고도 교사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마치 외로운 구조조정 본부장처럼 행세한 것 같은 혁신은 문제가 있어요. 그분은 혁신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좀 더 가지고 소통하면서 독야청청을 버리고 인간적 감성을 가슴에 안고 가끔은 유연성을 가지고 연애를 하듯 학교 경영을 하였다면 아마 자신의 의도대로 성공했을 것입니다. 이점이 참 안타깝지요. 나는 교육을 함에 있어서 선생님들과도 가끔 타고르가 한 말을 되 뇌입니다. “우리는 지리를 가르치느라고 아이들에게 지구를 잃어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정부에서도 교육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망치는 경우가 많이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