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진영
고산족 박물관 외
고산지대 소수민족 박물관에 갔다
소수민족을 소개하는 시청각실에서 혼자 30분 동안 앉아 있었다
생김새가 비슷하고 생활양식이 유사하면 민족으로 묶는 걸까?
모든 것이 쪼개지고 파편처럼 흩어진 세계에서 그들을 묶으려면 더 큰 동그라미가 필요한 일
작고 예쁘게 묶기는 어렵다
지뢰밭 같은 무언가를 피해 선을 그리다 보면 못생긴 묶음이 된다
우리는 하나예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림이 우린 찌그러졌어요 라는 얼굴로 경계를 짓고 있다
색깔이 다른 것끼리는 서로 말하지 않는다
언어를 해독하는 일은 백지에 선을 긋는 일
색이 달라지지 않게 선을 긋고 피가 나도 내 몸 같지 않은 일
소수민족은 지켜져야 하고 한 사람은 색깔을 잃어간다
한 소수민족이 다른 소수민족을 입양한 사례를 본다
멀리서 본 큰 동그라미에 작은 균열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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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맛
녹음기에서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비음 섞인 꺼림칙한 목소리가 파고들어
나는 목소리를 덮으려 자꾸
녹음 버튼을 다시 눌러야 했다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건
한참 뒤에 알았지만
뭐 어때
난 항상 yes라고 해
그게 편하니까
불편한 게 편한 그런 아이러니랄까
두툼한 갑옷을 입은 병사처럼
아장거리며 걷고
매뉴얼이 없으면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베이식 에센셜 비기너
그런 강의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토대 없는 뼈대 위에서
서커스를 하는 게 인생이라고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대가는 대가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포장지를 뜯기도 전에 비릿하게 낯선 냄새가 풍긴다
아무리 먹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맛이 있다
알고 넣어도 새삼스레 놀라는 맛
내가 나를 흉내 내는 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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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영(본명: 이진영)|2024년 《시와사상》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