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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68
1247독, 돌아갈 귀(歸) - 다섯 번째
지난 편지에서 내드렸던 ‘<<무량수경>> 퀴즈 – 2’도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셨습니다.
퀴즈가 있어서 편지가 더 재미있어졌다고 말씀해 주신 분도 계셨습니다.
‘퀴즈 – 2’는 다소 어려웠습니다.
일단, ‘각’은 ‘깨달을 각(覺)’입니다.
하지만, ‘욕각진각해각욕’에서는 ‘깨달음’의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깨달음은 좋은 뜻인데, 어찌 욕심이나 분노나 남을 해치려는 마음과 어울릴 수 있겠습니까.
‘각’에는 감각이나 지각의 뜻도 있습니다만, 불교에서는 표면적이라 할까, 아니면 일회적이라 할 까, 그렇게 깊지 않게 슬쩍 인식하는 것을 ‘각’이라고 합니다. 범어로는 ‘vitarka’라고 합니다.
그 반면에 ‘상’은 ‘생각 상(想)’입니다.
범본에서는 ‘saṁjñā’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금강경>>에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상’과 같은 의미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서로 相’이라 되어 있는데, 그 뜻은 ‘생각할 想’과 같은 뜻입니다.
이때의 ‘생각할 상(想)’은 깊은 생각입니다. 관념이나 철학이나 주의주장이나 이념을 뜻합니다.
그러니 욕각은 그저 지나가는 생각으로 욕심을 내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욕상은 욕심을 내는 것이 하나의 인생철학이나 가치관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 어느 쪽이든 가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렇게 차이가 있으므로, 이 ‘각’과 ‘상’의 두 구절을 하나로 합쳐서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퀴즈 – 3’ 문제 드립니다. 법장비구의 제14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령 제가 부처가 된다 하더라도, (저의) 나라에 있는 성문(聲聞)을 헤아려서 ㅡ가령, 삼천대천세계의 ( X )이 연각이 (되어서) 백 천겁에 이르도록 모두 다 함께 헤아려서ㅡ 그 수를 알 수 있다면, 위없이 높고 올바른 깨달음은 얻지 않겠습니다.
저 (X)에 들어갈 말은 ‘중생’일까요? 아니면 ‘성문’일까요?
종래에는 두 가지 모두 다 쓰인 바 있습니다.
둘 중에 하나는 잘못을 범한 셈이 되겠지요.
한번 찾아보시고, 생각해 보시길 빕니다.
이제 「정신게」 공부 시작합니다. ‘오늘의 「정신게」’를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고딕으로 크게 키워놓은 ‘돌아갈 귀’에 주목해서 읽는 것으로는 마지막이 됩니다.
귀명무량수여래(歸命無量壽如來) ⟶
나무불가사의광(南無不可思議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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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보살인위시(法藏菩薩因位時) ⟶
재세자재왕불소(在世自在王佛所)
도견제불정토인(都見諸佛浄土因) ⟶
국토인천지선악(國土人天之善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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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무상수승원(建立無上殊勝願) ⟶
초발희유대홍서(超發希有大弘誓)
오겁사유지섭수(五劫思惟之攝受) ⟶
중서명성문시방(重誓名聲聞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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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무량무변광(普放無量無邊光) ⟶
무애무대광염왕(無碍無對光炎王)
청정환희지혜광(淸淨歡喜智慧光) ⟶
부단난사무칭광(不斷難思無稱光)
초일월광조진찰(超日月光照塵刹) ⟶
일체군생몽광조(一切群生蒙光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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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원명호정정업(本願名號正定業) ⟶
지심신요원위인(至心信樂願爲因)
성등각증대열반(成等覺證大涅槃) ⟶
필지멸도원성취(必至滅度願成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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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이흥출세(如來所以興出世) ⟶
유설미타본원해(唯說彌陀本願海)
오탁악시군생해(五濁悪時群生海) ⟶
응신여래여실언(應信如來如實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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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발일념희애심(能發一念喜愛心) ⟶
부단번뇌득열반(不斷煩惱得涅槃)
범성역방제회입(凡聖逆謗齊回入) ⟶
여중수입해일미(如衆水入海一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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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심광상조호(攝取心光常照護) ⟶
이능수파무명암(已能雖破無明闇)
탐애진증지운무(貪愛瞋憎之雲霧) ⟶
상부진실신심천(常覆眞實信心天)
비여일광부운무(譬如日光覆雲霧) ⟶
운무지하명무암(雲霧之下明無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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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신견경대경희(獲信見敬大慶喜) ⟶
즉횡초절오악취(卽橫超截五惡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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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선악범부인(一切善惡凡夫人) ⟶
문신여래홍서원(聞信如來弘誓願)
불언광대승해자(佛言廣大勝解者) ⟶
시인명분타리화(是人名分陀利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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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불본원염불(彌陀佛本願念佛) ⟶
사견교만악중생(邪見憍慢悪衆生)
신요수지심이난(信樂受持甚以難) ⟶
난중지난무과사(難中之難無過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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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서천지론가(印度西天之論家) ⟶
중하일역지고승(中夏日域之高僧)
현대성흥세정의(顯大聖興世正意) ⟶
명여래본서응기(明如來本誓應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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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능가산(釋迦如來楞伽山) ⟶
위중고명남천축(爲衆告命南天竺)
용수대사출어세(龍樹大士出於世) ⟶
실능최파유무견(悉能摧破有無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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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설대승무상법(宣説大乘無上法) ⟶
증환희지생안락(證歡喜地生安樂)
현시난행육로고(顯示難行陸路苦) ⟶
신요이행수도락(信樂易行水道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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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념미타불본원(憶念彌陀佛本願) ⟶
자연즉시입필정(自然卽時入必定)
유능상칭여래호(唯能常稱如來號) ⟶
응보대비홍서은(應報大悲弘誓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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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조론설(天親菩薩造論說) ⟶
귀명무애광여래(歸命無碍光如來)
의수다라현진실(依修多羅顯眞實) ⟶
광천횡초대서원(光闡橫超大誓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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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유본원력회향(廣由本願力廻向) ⟶
위도군생창일심(爲度群生彰一心)
귀입공덕대보해(歸入功德大寶海) ⟶
필획입대회중수(必獲入大會衆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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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지연화장세계(得至蓮華藏世界) ⟶
즉증진여법성신(卽證眞如法性身)
유번뇌림현신통(遊煩惱林現神通) ⟶
입생사원시응화(入生死園示應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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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담란양천자(本師曇鸞梁天子) ⟶
상향란처보살례(常向鸞處菩薩禮)
삼장류지수정교(三藏流支授淨教) ⟶
분소선경귀락방(焚燒仙經歸樂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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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친보살론주해(天親菩薩論註解) ⟶
보토인과현서원(報土因果顯誓願)
왕환회향유타력(往還廻向由他力) ⟶
정정지인유신심(正定之因唯信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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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염범부신심발(惑染凡夫信心發) ⟶
증지생사즉열반(證知生死卽涅槃)
필지무량광명토(必至無量光明土) ⟶
제유중생개보화(諸有衆生皆普化)
⤦
도작결성도난증(道綽決聖道難證) ⟶
유명정토가통입(唯明浄土可通入)
만선자력폄근수(萬善自力貶勤修) ⟶
원만덕호권전칭(圓滿德號勸專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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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불삼신회은근(三不三信誨慇懃) ⟶
상말법멸동비인(像末法滅同悲引)
일생조악치홍서(一生造悪値弘誓) ⟶
지안양계증묘과(至安養界證妙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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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독명불정의(善導獨明佛正意) ⟶
긍애정산여역악(矜哀定散與逆惡)
광명명호현인연(光明名號顯因緣) ⟶
개입본원대지혜(開入本願大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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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정수금강심(行者正受金剛心) ⟶
경희일념상응후(慶喜一念相應後)
여위제등획삼인(與韋提等獲三忍) ⟶
즉증법성지상락(卽證法性之常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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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
극중악인유칭불(極重惡人唯稱佛) ⟶
아역재피섭취중(我亦在彼攝取中)
번뇌장안수불견(煩惱障眼雖不見) ⟶
대비무권상조아(大悲無倦常照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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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원공명불교(本師源空明佛敎) ⟶
연민선악범부인(憐愍善惡凡夫人)
진종교증흥편주(眞宗教證興片州) ⟶
선택본원홍악세(選擇本願弘惡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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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래생사륜전가(還來生死輪轉家) ⟶
결이의정위소지(決以疑情爲所止)
속입적정무위락(速入寂靜無爲樂) ⟶
필이신심위능입(必以信心爲能入)
⤦
홍경대사종사등(弘經大士宗師等) ⟶
증제무변극탁악(拯濟無邊極濁悪)
도속시중공동심(道俗時衆共同心) ⟶
유가신사고승설(唯可信斯高僧說)
(『교행신증』 제2권)
다섯 번째 ‘돌아갈 귀’는 원신(겐신)스님 찬탄 부분에서 나옵니다. 그 부분 게송을 한 번 더 읽어봅니다.
원신광개일대교(源信廣開一代教)
편귀안양권일체(偏歸安養勸一切)
전잡집심판천심(專雜執心判淺深)
보화이토정변립(普化二土正弁立)
이 중에 제1구와 제2구가 오늘 우리가 공부해야 할 범위입니다.
“원신스님은 (부처님) 일대의 가르침을 널리 펴시고 / 오직 안양으로만 돌아가라고 일체(중생들)에게 권진하셨네”라는 내용입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와서 원공(호넨)스님께서 정토종을 독립시켰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럼 그 이전에 정토불교의 신앙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삼론종이나 천태종이나 다른 종파에 소속한 스님들이 정토를 말하고 연구하고 그랬습니다.
그 중에 가장 뚜렷한 업적으로 남긴 분으로, 원공스님에게 큰 영향을 미친 분이 바로 천태종의 원신(겐신)스님입니다.
<<왕생요집(往生要集)>>(3권)이라는 저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공스님은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주석서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 책의 ‘머리말’이라 할 수 있는 모두(冒頭)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대저 극락에 왕생하는 가르침과 실천은 오탁악세인 말법세상의 눈과 발이다. 스님이든 재가자든 (신분제 사회에서 – 인용자) 귀한 사람이든 천한 사람이든 누 가 (극락으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겠는가마는, 다만 현교와 밀교의 가르침(敎法) 에는 그에 관한 글이 한결같지 않고, 사리(事理)와 업인(業因), 그 행은 매우 많 아서 지혜가 날카롭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어렵지 않겠으나, 나와 같이 어리석은 자는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염불의 한 가지 법문 (法門)에 의지하여, 부족함이 있으나마 경전과 논서의 중요한 글을 편집하노니 읽고서 닦으면 쉽게 깨닫고 쉽게 행할 수 있으리라.(밑줄 – 인용자)
<<왕생요집>>을 어떤 이유로 편집하게 되었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제가 밑줄을 그은 “경전과 논서의 중요한 글을 편집하노니”라는 말이 ‘원신광개일대교’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맥입니다.
‘일대교’는 ‘일대시교(一代時敎)’입니다. 부처님께서 한평생 사시면서 설하신 가르침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전불교입니다. 정토불교만이 아니라 성도문의 불교도 다 포함해서입니다.
그렇게 대장경 전체를 다 ‘열어서’ 폭넓게 읽고 두루 인용하여, 이 책 <<왕생요집>>이 성립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위의 인용문에 이어서, 이 책의 ‘목차’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제시됩니다.
모두 10문(十門)이 있는데, 나누어서 3권으로 하였다. (그 10문은) 첫째는 예토 를 싫어하여 떠나고자 하며, 둘째는 기꺼이 정토(왕생을)을 구하고, 셋째는 극락 (이 있음)을 증거 하는 것이며, 넷째는 올바로 염불을 수행하는 (법에) 관한 것이 고, 다섯째는 염불을 돕는 방법이며, 여섯째는 특별한 때의 염불이고, 일곱째는 염불의 이익이며, 여덟째는 염불의 증거이고, 아홉째는 왕생의 여러 업(에 대해서 이며). 열째는 묻고 답하여 (잘잘못을 )생각하여 가려내는 것이다.
이 10문 중 첫째와 둘째가 유명합니다. 한자로 ‘염리예토(厭離穢土), 흔구정토(欣求淨土)’라고 하는데, 정토불교의 입장을 잘 나타낸 말로 널리 말해져 왔습니다.
‘원신광개일대교’는 ‘편귀안양권일체’로 이어집니다.
뒤의 구절을 말하기 위하여 앞 구절을 말했습니다.
앞에서는 ‘개방’입니다.
‘열 開’를 썼습니다. 뒤의 구절에서는 ‘폐쇄’입니다.
‘치우칠 偏’을 썼습니다. 이 글자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안 좋은 의미로 쓰입니다. “사람이 편협하다”, “편식을 해서는 안 된다”, “편견을 갖지 말라” 등과 같이 말입니다. 그런 좋지 않은 의미의 ‘치우칠 편’을 감히 썼습니다. 원신스님은 널리 일대시교를 다 읽고, 인용을 하면서도, 정작으로 권진하는 것은 “오직 안양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불국토도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안양국만을 권유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치우칠 偏’을 썼습니다.
‘치우칠 편’에 대해서는 신란스님이 원신스님을 그렇게 평가했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원신스님이 그러하였습니다. <<왕생요집>>의 10문 중 셋째 극락을 증거 하는 부분에서, 첫째는 극락을 시방세계의 다른 불국토에 비교하여 우월하다는 말을 하고, 둘째는 미륵정토인 도솔천과 비교하여 우월하다는 말을 합니다. 이 중에 첫째 부분에서 ‘치우칠 편’이 들어가는 말이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 용례를 확인해 봅니다.
첫째, 편념(偏念)입니다. “천태(지자)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모든 경론이 곳곳마다 오직 중생들에게 권유하기를 오직 아미타불만을 염하여 서방극락세계를 구하게 하였으며, <<무량수경>>, <<관경>>, <<왕생론>> 등 수십여 부의 경전과 논서의 글이 은근히 (극락을) 가리키면서 서방에 태어나기를 권하셨다. 그런 까닭에 편념인 것이다.”
둘째, 편찬(偏讚)입니다. “묻는다 : 부처님께서는 ‘모든 부처님의 정토는 실로 차별이 없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오로지 서방만을 찬탄하시는 것입니까?” 답은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서 떠오르는 것은 우리의 경허스님에게서도 ‘편찬’이라는 말이 쓰였다는 점입니다(제 책에 <<경허의 얼굴>>이라고 있습니다만 --- ). 다만, 경허스님은 경전이나 논서가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른 것은, 어떤 경전이나 논서라도 그것을 설할 때에는 그 가르침이 최고의 진리라고 치우쳐서 찬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다 옳은 경전이라는 뜻입니다. 일종의 회통론(會通論)을 편친 것입니다. 같은 말 ‘편찬’을 쓰지만, 의미는 정반대입니다. 정토에서 ‘편찬’이라는 말은 회통의 의미가 아니라 전수(專修)의 의미에서 쓰인 것입니다.
셋째, 편유인연(偏有因緣)입니다. “또한 <<무량수경>>에서는, ‘말후(末後)에 법이 사라질 때, 특별히 이 경전(=<<무량수경>>)을 머물게 해서 이 세상에 백 년 더 있게 하여 중생을 이끌어서 저 국토에 왕생하게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아미타불과 이 세계의 극악(極惡)한 중생들 사이에는 오직 치우친 인연이 있음을 알라.” 아미타불께서 이 세상의 극악한 중생들에 대해서는 편애(偏愛)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정토불교의 본의(本意)는 범부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 생각나는 문장입니다.
넷째, 편증(偏增)입니다. “자은(慈恩)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말법 시대 만년(이 지나면) 다른 경전들은 모두 사라지교 아미타불의 가르침만(一敎)이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치우쳐서 더할 뿐이다’라고 하셨다.”
이상으로 <<왕생요집>> 제3문에서 쓰이는 ‘치우칠 편’의 용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원신스님은 <<왕생요집>>이라는 저술을 통해서, 다른 불국토들이 아니라 오직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에만 가기를 바라는 취지를 설하여서 일체중생들에게 권진하셨다는 것입니다. 신란스님은 그런 점을 원신스님의 큰 공적들 중의 하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까닭에, 비록 ‘편귀안양권일체’의 ‘편’이 ‘치우칠 偏’이 아니라 ‘두루 遍’으로 되어 있는 유통분이 있다고 대정신수대장경 제83책의 각주에서는 밝히고 있지만, ‘두루 遍’이 아니라 ‘치우칠 遍’이 옳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두루 遍’이 된다면, 그 뜻은 ‘두루 모든 중생들에게 안양으로 돌아가자’라는 뜻이 되는데, 그러한 뜻은 ‘일체중생에게 권진하네’라고 하는 ‘권일체’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중복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덧붙여 하나 더 말씀드린다면, 위에 읽어본 ‘치우칠 偏’의 용례가 나오는 <<왕생요집>>의 제3문 본문을 읽다보니, ‘앙신(仰信)’이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옵니다. ‘앙신’은 원효스님의 <<무량수경종요>>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인데, 원신스님께서도 쓰고 있었습니다. 합리적인 납득이 안 될 때에는 부처님 말씀이니까 ‘우러러 믿을 뿐’이라는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 앙신입니다.
이로써 ‘돌아갈 귀’에 대해서는 마칩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의지할 依’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합장
(2024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