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인보(美容人譜)42
봉사하며 사는 삶
고민화(고미나헤어모드) 원장
고은 시인은 주위 사람들 만 명을 대상으로 시를 짓고 <만인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이는 시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예이다. 기자는 이를 차용하여 주변 미용인에 대한 시와 스토리를 매달 한 편씩 쓸 예정이다. 그 중에는 성공한 미용인도 있을 것이고 동네에서 나 홀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기자에겐 모두 소중하고 고귀한 미용인 자산이다. 그 분들과 함께 한 생활이 기자에겐 기쁨이고 행복이다. 우리는 미용으로 엮어진 떼려야 뗄 수 없는 미용가족이니까.
이완근(본지 편집인대표 겸 편집국장) alps0202@hanmail.net
미용은 나의 삶
-고민화 원장
-제주에서 왔지예
-아무 것도 몰라예
하던 마음씨 예쁜 아가씨
미용이 좋아
동두천 미용실에서
열심히 일했네
누구보다도 열심히
미용을 공부했네
기술도 마음도 깊고 넓어서
지부장 기술강사 고전머리강사
박수를 받았네
미용은 나의 길
봉사는 나의 삶
초심을 잊지 않고
오늘도 달리네
한 곳을 보고
꿋꿋하게 달리네
동두천에서
미용인의 바른 삶
한결같이 지키고 있네
원호진 대표의 소개로 만나
2000년 초반 때의 일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신 최영희 의원의 아드님인 원호진 대표는 기자와 막역한 사이였다. 우리 둘은 술 마시는 스타일이 비슷해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유쾌한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기자는 잡지를 창간하고 ‘어떻게 하면 많은 미용인들을 잡지에 소개하고 실력 있는 미용인들을 발굴하여 작품을 게재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원호진 대표와 미용계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원호진 대표가 “형님, 우리 미용계에서 의리와 인성이 최고인 분을 소개하겠습니다.”라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그렇게 고민화 원장과 기자는 인연을 맺게 되었다.
신뢰가 있는 사람이 소개한 이는 그 믿음이 그대로 전이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소개를 받고 며칠 후, 고민화 원장이 양로원 봉사를 간다는 연락이 왔고 기자는 봉사 현장을 취재할 수 있었다.
봉사 현장을 보며 기자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미용인들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고 미용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졌다. 뒤풀이를 하며 미용인들의 따뜻한 정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소리 나지 않게 봉사하며 진정으로 봉사를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인연의 소중함
기자는 미용인과 인연을 맺고 나면 그 인연을 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뷰티라이프에 표지 연출할 것을 권한다. 표지 연출만큼 효과가 큰 것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봉사 활동 취재 후, 기자는 고민화 원장께 표지연출을 제안했고 고민화 원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됐지만 그간 많은 대화나 시간을 갖지는 못 했다. 고민화 원장이 동두천 지부장을 하거나 경기북부 부지회장, 심지어 중앙회 기술강사를 할 때에도 행사장에서만 만났을 뿐이었다. 그만큼 고민화 원장은 소리 나지 않게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행사장에서 만나면 기자는 반갑게 ‘막걸리 한잔 해야지요’ 하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고, 고민화 원장은 예의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아무 때나 말만 하세요’라고 싫지 않은 듯 말했다.
제주도 태생, 친구의 추천으로 ‘최영희미용실’ 근무
고민화 원장은 제주도 태생이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넉넉치 못한 집안 형편으로 한복을 공부할까 미용을 배울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이 20세 때 과감하게 미용을 선택하게 되었고 상경했다. 동두천의 한 미용실에 친구가 근무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자기가 근무하고 있는 미용실의 원장님과 디자이너들이 최고라며 적극 추천했다.
그 미용실이 ‘최영희미용실’이었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신 그 최영희 의원이 당시에는 동두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최영희미용실에 들어간 고민화 원장은 그곳에서 최영희 원장의 각별한 애정 아래 10년 이상을 근무하였다. 고객 중 한 명이었던 지금의 남편도 만나게 되었다. 최영희 원장의 미용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보고 배우면서 지부, 지회장의 꿈도 키웠다. 미용인으로서 봉사 활동의 소중함도 배우고 깨우쳤다.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소중하고 숭고하다. 독립해 미용실을 운영하면서도 고민화 원장은 스승으로서의 최영희 의원을 믿고 따르고 있다. 동두천 지부장을 3번 하면서도 봉사활동을 항상 해오고 있었다. 봉사가 몸에 배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봉사는 나의 삶
“미용을 하면서 한 번은 여성단체 봉사를 나갔습니다. 결혼식 형편이 안 되어서 결혼식을 못 올리고 사는 부부의 결혼식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주었는데, 행복해하던 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미용인으로서 정말 흐뭇함을 느꼈습니다.”
미용인의 삶은 이렇게 남들에게 행복함을 선사할 수 있는 훌륭한 직업이 아닐 수 없다. 고민화 원장은 또 말한다.
“여성 장애인 자존감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 중 헤어나 메이크업을 해서 드레스를 입혀주고, 매달 장애인 복지관을 찾아 커트를 해주고 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장수효(孝) 사진 촬영 때의 봉사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평소 봉사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고민화 원장은 우리 미용인들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고민화 원장은 요즘 꾸준한 운동과 함께 지인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몸과 정신을 살찌우고 있다. 봉사하는 삶을 오래 오래 이어가려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을 때의 기쁨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다고...
누군가 미용인의 삶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실상 이것은 봉사를 실천하고 있는 미용인들에 국한된 말일 것이다. 고객들을 아름답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앞선 기술과 마인드가 없어서는 안 될 일.
고민화 원장이 평소 실천하고 있는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과 기술강사의 실력으로 고객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 일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 얼굴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고민화 원장은 항상 입가에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타인을 무장해제하는 매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긍정적인 생각은 우리의 태도를 변하게 한다. 에너지를 활성화시켜 주위를 변하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 생활에서 웃음이 중요한 이유다.
한 텔레비전의 유명 강사는 주위에 웃음을 주는 사람들과 가까이 하라고 권한다. 웃음의 여파가 성공을 끌어들인다고도 말한다.
여기에 기자는 덧붙이고 싶다. 성공하고 싶은 미용인이여,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고민화 같은 미용인을 곁에 두라고.
우리는 살면서 늘 한결같은 사람을 원한다. 그리고 특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더 그러기를 바란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보라.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늘 그렇게 한결같아 왔는가? 고민화 원장의 주변 평은 늘 한결같은 사람이 고민화 원장이라고 말한다. 이제 사실은 명확해졌다.
우리가 고민화 원장을 친구같이 곁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고민화 원장 프로필
-학력
*경기도 생활기술학교 뷰티케어매니저과정 수료
*경기도 과천대 뷰티케어매니저과정 수료
*서정대학교 뷰티아트학과 졸업
-협회활동
*대한미용사회 동두천시지부 구역장 역임
*대한미용사회 동두천시지부 부지부장 역임
*대한미용사회 동두천시지부 지부장 역임
*대한미용사회 경기북부지회 강사위원장 역임
*대한미용사회 경기북부지회 부지회장 역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특별위원회 위원 역임
*대한미용사회중앙회 홍보위원회 위원 역임
*현재,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강사 11기
*현재, 대한미용사회중앙회 고전머리 강사 4기
*현재, 대한미용사회중앙회 미용기술위원
*현재, 고미나헤어모드 운영
<뷰티라이프> 2022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