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 / 혼인장애, 사목적 배려 필요하다
| ▲ 혼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받은 남녀의 불가 해소한 결합이며, 자녀 출산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이다. CNS |
#급증하는 재혼, 혼인장애에 걸린 신자들
최 베드로(38)씨는 혼인성사를 한 가톨릭 신자와 이혼하고 1년 전 비신자와 재혼을 했다. 친분이 있는 신자와 술자리를 함께한 후 베드로씨는 성당에 등을 돌렸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신자가 "베드로는 조당(혼인장애)에 걸렸기 때문에 성체를 모시면 안 돼. 고해성사도 보면 안 되는데…"라고 말한 것이다. 베드로씨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성당에 발길을 끊었다.
"친구들이 혼인장애 때문에 성당에 나오지 못하고 냉담을 하고 있습니다. 혼인장애에 걸린 이유를 물어보니 이혼 때문이라고 하네요. 이혼한 신자는 성당에 나갈 수 없나요? 혼인장애에 걸렸다면 교구 법원에 가서 혼인장애를 풀어야 한다는데 너무 절차가 복잡하고 힘들어서 그냥 사는가 봅니다. 혼인장애를 쉽게 푸는 방법은 없는지요?"(울산 ㅂ본당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글)
이혼과 재혼이 급증하면서 혼인장애에 걸려 교회에서 멀어지는 신자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전체 혼인건수 32만 7100건 중 재혼은 21.4%인 7만 건에 이른다. 같은 해 이혼건수는 11만 4316건이었다. 한 해 결혼하는 부부 5쌍 가운데 1쌍이 재혼하는 시대다. 재혼이 증가함에 따라 올바른 성사생활을 하지 못하고 혼인장애에 걸리는 신자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혼인장애에 대한 성직ㆍ수도자와 신자들의 부정적 시선으로 혼인장애에 걸린 신자들이 냉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혼한 사람들은 고통스럽다. 이혼 후 재혼으로 혼인장애에 걸린 신자들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들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재혼한 지 8년 된 박 소피아(56)씨는 "혼인장애에 걸려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혼인 무효 판결을 받기까지 신자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가톨릭 신자로서 이혼하면 안 된다는 거 너무 잘 압니다. 혼인장애를 푸는 과정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은 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속상했어요. 저처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신앙을 포기하고 싶었는데 신앙이 깊지 않은 사람은 신앙을 포기할 거예요."
2005년에 재혼한 박씨는 혼인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서류를 갖춰 교구 법원을 방문했다. 직장인이었던 박씨는 연차를 내서 법원을 찾았지만 담당 신부의 출장과 환자 방문으로 만나는 게 쉽지 않았다. 그의 혼인 무효 소송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1년 넘게 혼인장애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영성체는 할 수 없지만 주일미사는 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1년 후 용기를 내 다시 교구 법원을 찾아갔다. 혼인 무효 판결을 받았고, 판결이 난 후 지금의 남편은 바로 세례를 받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혼인장애, 구원에서 제외된 거 아니야 이혼자와 재혼자들은 고통스럽다. 사목자와 본당 신자들은 이혼의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 비난의 대상이 아닌 관심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그들을 사랑하며 결코 멀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상황을 함께 고통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이혼한 뒤 재혼한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간직하고 있기에 변함없이 교회의 일원이다."(교황청 가정평의회 권고문 '이혼한 뒤 재혼한 사람들에 대한 사목' 중) 교회법학자 이경상(학교법인 가톨릭학원 보건정책실장) 신부는 "기쁘게 이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이들은 고통을 겪은 만큼 은총이 더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신부는 "혼인장애에 걸렸다고 해서 구원에서 제외됐다거나 교회에서 파문을 당한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수원교구 가정사목연구소장 송영오 신부는 "혼인장애의 '장애'라는 말이 마치 절대 회복되지 않는다는 뜻을 불러일으키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상 신부는 "이혼하거나 재혼한 사람들은 교회가 벌을 주고 힘들게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교회가 (이혼자와 재혼자들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혼인성사의 가치가 너무 중요하기에 혼인에 대한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회의 혼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 받은 남녀의 불가 해소한 결합이며, 자녀 출산과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결합(사목헌장 48항 참조)이기 때문이다. 혼인법을 억압적인 규범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구원의 도구로 활용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송영오 신부는 "교회의 혼인법이 신자들에게 문턱이 높다"고 지적하면서 "신자들은 자신이 혼인장애에 걸렸는지 아닌지를 상담하고, 혼인장애에 걸렸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도와주는 상담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송 신부는 "혼인장애에 걸린 이들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목자와 신자들은 이혼과 재혼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혼인과 가정의 진리에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해줘야 한다. 혼인장애에 걸린 신자들은 사목자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교회는 신자들의 영적 선익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혼인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객관적으로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처지에서 살아가면서도 신앙을 보존하고 자녀를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라 키우기를 바라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사제와 교회 공동체는 극진한 관심을 보여주어 그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1651항 참조)고 밝히고 있다.
▨교회 혼인법, 이것이 궁금하다- 5문 5답
1. 가톨릭 신자는 반드시 가톨릭 신자와 혼인해야 하나? 원칙적으로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신자와 혼인해야 한다. 그러나 배우자가 비신자일 경우, 사제에게 관면을 받고 태어날 자녀를 세례 받게 하고 신자인 배우자의 종교 생활을 인정하겠다고 서약하면 혼인할 수 있다.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배우자의 신자 여부와 상관없이) 성당에서 혼인예식을 하지 않고, 결혼식장에서 사회혼인만 했다면 성사생활을 할 수 없는 혼인장애 상태다. 2. 가톨릭 신자는 교회의 혼인법을 왜 지켜야 하나? 혼인은 단순한 인간적 결합이 아니라 하느님이 맺어준 결합이기 때문이다. 혼인은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특징으로 하는 하느님 은총의 표지다. 혼인한 부부는 인간적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은총을 드러내는 초자연적인 사랑을 나눈다. 부부는 하느님 뜻에 맞은 가정 공동체를 이뤄 하느님 사랑의 표지가 돼야 한다. 3. 이혼하면 영성체와 고해성사 등 성사생활을 할 수 없나? 이혼만 하고 재혼하지 않았다면 성사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 가톨릭교회는 사회법에 의한 이혼을 인정하지 않기에 이들의 이혼은 교회법적으로 별거 상태다. 재혼하지 않은 신자는 영성체와 고해성사 등 정상적인 성사생활을 할 수 있다. 4. 바오로 특전과 베드로 특전은 무엇인가? 바오로 특전은 비세례자 사이의 자연적 혼인 유대를 해소하는 것이다. 배우자 중 한 명이 혼인 후 세례를 받고 재혼할 경우, 첫 번째 혼인 유대가 두 번째 혼인을 유효하게 맺음으로써 해소되는 것을 말한다. 베드로 특전은 신자와 비신자 사이에 맺어진 비성사적 혼인을 해소하는 것이다. 바오로ㆍ베드로 특전이 적용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따른다. 5. 외짝교우가 비신자인 배우자에게 관면혼배를 요청했지만 배우자가 응하지 않는다. 관면혼배를 하지 않고 성사생활을 할 방법이 있나? 본당 주임신부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면 배우자의 동의 없이 교구 직권자를 통한 근본 유효화의 은전(恩典)으로 혼인장애를 풀 수 있다. 근본 유효화란 장애가 있거나 교회법을 지키지 않아 무효인 혼인을 교회 관할권자가 수여하는 은전으로 유효화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