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보우하사 하늘은 쾌청, 바람도 잔잔...
은근히 칠레기지의 헬기가 날아와주길 바랬지만 여전히 수리중이란다. :-(
이 때를 놓칠소냐! 점심을 먹자마자 비장의 무기로 숨겨두었던 드레이크 해협 탐방을 하기로 했다. 맥스웰만을 건너 필데스반도와 넬슨섬 사이에 폭이 좁은 필데스 해협이 있다. 해협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은 수로에 불과하지만, 조석을 잘 못 맞추면 해류가 빨라 위험한 곳이다.
체험단을 태운 고무보트는 천천히 필데스 해협을 통과했다. 초입부터 물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외해수와 맥스웰만의 물이 만나면서 용승류가 형성되고 있었고, 해협 말단에 위치한 다트 섬(Dart Island)에 이르자 흐르는 물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우선 숨을 고르기 위해 작전상 후퇴. 안전한 다트 섬의 서쪽 편에 보트를 대고 수중촬영을 위한 잠수 작업을 벌였다. 맥스웰만 내부에 비해 생물상이 아주 풍부했으며, 외해수의 영향으로 물이 맑아 쓸 만한 작품을 건진 것 같다. 나중에 TV 방송에서 만끽하시길...
재차 드레이크 해협으로 접근을 시도하기로 했다. 다트 섬의 북쪽 해로를 택하니 해류 흐름이 덜한 것을 발견하고는 조금씩 앞으로 나갔다. 체험단원들은 드디어 맥스웰만을 벗어나 드레이크 해협을 만났다. 원래 목적지는 바로 북쪽에 위치한 Geographers Cove. 그러나 너울파도가 심상치 않아 잠시 멀리 자리한 거대한 빙산만 쳐다보고는 철수키로 했다.
다트 섬에는 자이언트 페트럴의 군서지가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줄잡아 100마리에는 이를 것으로 평가된다. 물의 흐름이 약한 곳을 택해 보트를 접안시키고 섬에 상륙했다. 페트럴의 생태를 살피고, 멀리 드레이크 해협과 넬슨섬의 비경을 감상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래도 이곳을 방문한 한국 사람은 처음이란 사실에 가슴 뿌듯...
이때 우리를 찾는 무전이 날아왔다.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의 올렉 대장이 우리의 위치를 물었다. 그는 정 단장(접니다)과 두 차례나 함께 양국 기지대장을 지낸 바 있어 남다른 우정을 쌓고 있는 친구다. 조그만 보트를 몰고 우리를 찾아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는 함께 넬슨섬으로 향했다. 브라질 대피소, 체코의 에코 넬슨 기지를 거쳐, 중국 친구들이 빙하연구를 위해 만들어 놓은 대피소 해안에 상륙했다. 넬슨섬은 완만한 빙하로 거의 뒤덮인 특이한 지형을 갖고 있다. 앞 산에 올라 멋진 풍광을 담았다.
남극을 떠나기 전날 저녁 러시아 기지에서 120도 고온 사우나를 열기로 약속한 후 올렉 대장과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제 우리도 기지로 귀환. 미리 도착시간은 알린 바 있지만 기지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슴 한 가득 안고 돌아왔다.
한편, 강소영 화가는 '유빙과 함께 놀기'란 주제로 온종일 기지 해안가에서 설치미술을 실현하고 있었다. 시간 마다 변하는 유빙의 모습을 무채색에 대비되는 녹색 옷을 입힌 자갈로 형상을 본따며 함께 교감하는 행위다. 그러나 이미 만조에 이른 바닷물이 그 녀석들을 덮어버린 뒤였기 때문에 우리는 본 모습은 보지 못 하고 말았다. 임완호 PD, 김창덕 기자와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짧은 퍼포먼스를 카메라에 담은 뒤 내일 본래의 흔적을 찾기로 했다.
이강봉 위원은 막판 피치를 올려 외부 행차도 마다하고 원고 집필... Science Times에 연속 기사를 송고 중이다. 오늘은 기사 내용을 본 다른 매체에서 원고 청탁도 받았다고 하신다. 온종일 피로에 쪄들어 돌아온 나에게도 인터뷰 공세를 퍼부었다. 뒤늦게 타오르는 불길이 무섭다. 피해서 도망 가야지. :-)
토요일에 도착하리라던 연구선이 모든 여건이 좋아 내일 아침 7시경이면 기지 앞에 도착한다고 한다. 월동대원들은 이어질 하역에 대비해 일찍 휴식 체제로 돌입. 우리도 늘어난 손님들과 숙소를 공유하기 위해 내일 아침엔 단원들끼리 방을 합칠 계획이다. 내일 만큼은 칠레 헬기가 꼭 날아와 줬으면...
현재 계획으로는 일요일(26일) 맥스웰만을 건너가 칠레기지 공항호텔(시설은 대피소 수준)에 머물면서 중국, 칠레, 러시아 등 주변 기지들을 방문할 예정이다. 월요일(27일)엔 출남극... 이제 우리의 체험활동도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조금이라도 가슴 속에 더 많은 모습들을 담고 싶어 하는 단원들 등살에 내 뱃살도 줄어간다. 빨리 남극을 벗어나야지 원... :-)
(좌상) 다트섬의 자이언트 페트럴 둥지와 드레이크 해협의 비경을 감상하고 있는 체험단원들
(우상) 다트섬으로 우리를 찾아온 러시아 벨링스하우젠 기지의 올렉 대장과 일행
(좌하) 넬슨섬의 산 위에 올라 빙원을 감상 중인 단원들. 산의 오른쪽 끝에 두 개의 작은 점이 보이십니까? 그게 우리랍니다.
(우하) 세종기지 해안가에서 설치미술을 실현하고 있는 강소영 화가와 취재 중인 김창덕 기자, 임완호 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