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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공주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고 보니, 여미아는 참으로 신비로운 여인이었다.
작년, 하북河北의 만락객잔에서 불이 났을 때도, 여미아는 미친 여자처럼 손을 흔들며 불길을 향해, 멈추라고, 꺼지라고 소리소리 지르지 않았는가? 그 때 마치 거짓말처럼 불길이 사그러들지 않았던가?
태도나 언행을 보면 성녀 같은데, 무학의 절예를 깊이 감춘 듯, 빼어난 무공을 보인 적도 있었다. 그녀에게서 풍기는 매력, 아니 마력은 또 무엇에 비길 건가? 뭇 남성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태평공주 자신도 그녀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설레지 않았던가? 이런 여인이 남의 하녀로 살고 있다. 아무튼 스물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여인 여미아는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인물이었다.
이런 상념에 태평공주는 술이 확 깨는 것 같은 경각심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여미아와 미시아 같은 이들의 그물에 지금 얽혀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태평공주는 속으로 한기를 느꼈다.
‘엄마는 자중하라 했지만, 오늘 밤에 내가 일을 내지 않으면, 언젠가 이것들에게 내가 오히려 당할지도 모른다.’
마음을 다잡은 태평공주가 시녀에게 말했다.
“술 좀, 더 내 오너라. 특별히 제조한 값비싼 술로.”
이렇게 말하며 태평공주는 시녀에게 은근한 눈짓으로 암시를 주었다.
그 때다.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나며 누군가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다름 아닌 여미아였다. 겉보기엔 멀쩡한 듯했던 여미아가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마침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 같았다. 아연실색한 조영과 미시아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여미아 아가씨를 선실로 모셔라.”
혀를 끌끌 차던 태평공주가 시녀에게 명했다. 좀 전에 사비우를 선실로 옮겼던 시녀들이 와서 그녀를 부축하려 하자 미시아가 말렸다.
“우리가 직접 선실까지 부축해 가겠습니다.”
태평공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영과 미시아, 이루하는 여미아를 부축하고 시녀들을 따라 선실로 갔다. 여미아를 따스한 침대에 눕힌 시녀들이 그녀 곁에 서서 물러가지 않자, 미시아가 말했다.
“아가씨들이 수고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내 동생은 내가 지키겠습니다.”
미시아의 목소리가 다소 냉정했다. 시녀들이 밖으로 나가자 미시아가 조영과 이루하에게 말했다.
“아가씨와 장군님도 어서 자리로 돌아가세요. 다른 분들이 기다리겠어요.”
조영은 미시아의 무예를 잘 알고 있는지라 별걱정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이루하가 그의 뒤를 따라 나간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시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웬일인지, 저 두 남녀가 참 잘 어울리는 한 쌍 같구나. 하지만 이루하 아가씨는 이기창 도령과 혼담이 오간다는데···? 나는··· 나는, 나는···.”
미시아가 다시 한 번 장탄식을 하며 얼굴에 처연한 빛을 가득 띠었다.
그 때였다. 곁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걱정하지 마.”
깜짝 놀란 미시아가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으니, 바로 여미아다. 그녀가 소곤거렸다.
“언니, 조금 있으면 시녀들이 다시 올 터이니, 날 걱정하지 말고, 그녀들이 오면 즉시 제자리로 돌아가세요. 그리고 지금부터 나오는 술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마시지 마세요. 술에 독이 들어 있을 거예요.”
아연한 미시아가 물었다.
“너, 괜찮니?”
“괜찮아요. 염려해줘서 고마워. 난 언니를 믿어. 회의라는 승려와 태평공주, 그리고 무 태후를 조심해요.”
“나도 안다. 그 음승淫僧은 척보면 알 수 있는데, 내가 속겠느냐? 태평공주와 무 태후가 제아무리 날고뛰어도, 난 당하지 않아.”
그 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와 여미아는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
“아가씨, 공주마마께서 여미아는 우리에게 맡기고 어서 자리로 오라십니다.”
한 비자의 말이다. 미시아는 무 태후의 최측근이었으므로 다른 비녀들은 그녀에게 매우 공손하게 대했다.
미시아가 여미아의 신상을 시녀들에게 넘겨주고 나오며 남몰래 품속에서 해독제 환약을 꺼내 한 알 삼켰다. 선상누각에 다다르니 조영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여미아 아가씨는 괜찮은가요?”
“네, 장군님, 염려해주셔서 고마워요. 괜찮습니다.”
자리가 다시 정돈되고 각 사람의 잔에는 새로 온 술이 부어졌다.
“술만 마시다보니, 낭만과 재미가 없어졌네요. 이제 시작詩作 놀이나 하면서 주흥을 다시 돋우면 어때요?”
“하하하! 그거 참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주로 무인武人들이라 시문 나부랭이와는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무후군 장수 무유서가 호쾌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아이고, 그렇군요. 정말 죄송해요. 그럼, 차라리 무술 대결을 펼쳐보는 것도 재미있겠죠?”
“아, 그건 선상이라 좀 곤란하고, 또 손발에는 눈이 없어서 다칠 염려도 있고, 진 사람은 체면도 구기고.”
“어머나! 그렇겠네요. 제가 오늘 장군님들 앞에서 연달아 실언이에요.”
태평공주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제안했다.
“그럼 이건 어때요? 남자 분들은 팔씨름대회를 하고, 여자들은 작시作詩 대결을 벌이는 거예요. 남성분들, 설마 그것까지 거절하진 않겠죠?”
그녀는 아예 못을 박으며 남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거 참 좋은 의견입니다.”
무유서가 팔씨름이라면 자신 있다는 듯 호쾌하게 응낙하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여인들이 작시 대결을 벌일 때는 폐하와 저기 복면을 쓰고 계신 분께서 학문이 깊은 듯하니, 심판관이 되어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 자리에는 처음부터 복면을 쓰고 참석한 사람이 있었다. 모든 사람은 그의 정체를 궁금하게 여겼으나 무 태후와 태평공주 등이 그에 관해 말이 없으므로 역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무 태후와 복면인이 허락의 표시로 머리를 끄덕였다.
“상벌은 무엇입니까?”
누군가가 물었다.
“오늘 팔씨름대회에서 일등한 분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상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여건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요. 또 시작 대회에서 우승한 여인에게도, 역시 당사자가 받기 바라는 상급을 드리도록 하죠. 좋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우리 한 번 건배하고 팔씨름 대회부터 시작해요.”
태평공주가 맨 먼저 잔을 높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잔을 들고 소리쳤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이어서 태평공주가 약간의 장난기를 섞어 회의대사에게 말했다.
“숙부님, 오늘 밤은 숙부님이 주인공이시니, 부디 득도 해탈하셔서 백팔번뇌 다 잊으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하하하! 감사, 감사합니다. 오늘 밤의 연회 때문에 제가 십년익수十年益壽할 것 같습니다.”
“그럼 대진표를 작성해야겠군요.”
태평공주가 일사천리로 일을 이끌었다. 그 때 누군가가 한쪽에서 볼멘소리를 했다.
“나는 기권이오.”
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우락부락한 장군들과 팔 힘을 겨루어 이길 자신이 없소.”
뭇 영웅들이 쳐다보니, 그는 눈과 입만 내 놓고 얼굴을 전체를 수건으로 감싼 채, 처음부터 아무 말도 없이 고요히 앉아서 술만 홀짝홀짝 마시던 무명인이었다.
‘흐응! 못난 자식 같으니라고!’
그는 다름 아닌, 당금 명목상의 황제, 무 태후의 아들 이단李旦이었다. 황제 이단은 유명무실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국가의 모든 정사와 통치는 무 태후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황제도 마음대로 폐위시키고 세우고 하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전술했듯이, 고종 이치(628-683)의 사망 후 황제로 등극한 중종 이현李顯을 폐위시키고 예종 이단을 황제로 세운 이가, 바로 무 태후다. 그러나 무 태후는 예종 이단을 별전에 거주하게 하고 정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무 태후의 위세에 눌린 황제 이단은 왕공王公 이하 대신들을 거느리고 가서 무 태후에게 황제라는 존호를 올린다. 황위를 양도한 것이다. 무 태후는 이를 사양하고, 자신에게 황제의 칭호를 붙이지는 않았으나, 그 때부터 그녀는 실질적인 황제가 되어 전권을 휘두른다.
무 태후는 본성이 명민明敏하고 문학과 역사서적 등을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권모술수에 능하고 겉으로는 부드러운 척하면서도 내면으로는 대단히 표독스러워, 자기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녀의 그런 성품을 알고 있는 측근들은 그녀 앞에서 기를 펴지 못했다.
그녀가 갖은 구실을 붙여 황실의 종친인 이씨들을 제거하기 시작하고 밀고를 장려해 공포정치를 폈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그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가산을 적몰당하고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녀의 이런 모진 성품은 고종의 후궁 시절, 황후 왕씨와 숙비 소씨의 손목을 자르고 그 손목을 술에 담그며, 그녀들을 처절하게 죽인 일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 자신의 어린 친딸을 목 졸라 살해한 때부터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이상, 자치통감>.
어찌 황제 이단이 비록 그녀의 친아들이었지만 그녀 앞에서 전전긍긍하지 않겠는가. 오늘 밤 어머니 무태후의 요청으로 신분을 숨긴 채 단신 이곳으로 나왔으나, 처음부터 밸이 뒤틀리고 또 무 태후가 두려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는지 그가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무 태후가 황제인 친아들 이단을 좌우 수행원 없이 단독으로 오도록 이 자리에 부른 것은, 그의 배포와 지혜, 속뜻 등을 시험해보고,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살펴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가 아들이라 할지라도 그녀의 권력욕 앞에서 이단은 거추장스런 나무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금 황제이고 또 친자인데, 어찌 차마 그를 제거할 수 있겠는가? 반대로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도 그녀가 원치 않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나이가 예순을 넘겼는지라 자신이 정식으로 황제 칭호를 받는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후계자 물색이라는 난제가 들이닥치게 되어 있었다.
영리한 무 태후가 이 점을 놓칠 리는 없었다. 그녀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자신이 여황제로 등극한 이후, 이씨 아들에게 나라를 물려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친정 조카들인 무씨 가운데 하나를 후계자로 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숙고한 적이 있었다.
여러 모로 그녀는 장래의 후사後嗣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아들들과 무씨 조카들의 인물됨, 학식, 지혜, 경영능력 등등을 평소 습관처럼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카 무유서나 허수아비 황제 이단을 이 자리에 부른 것도 그런 속뜻에 의해서였으리라.
무 태후는 스물여섯 살의 어린 황제 이단을 남몰래 관찰하면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남을 대하듯 말했다.
“공公은 몸이 좀 좋지 않으신가 보구려.”
복면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폐하.”
“쯧쯧, 그런 몸을 가지고서 어떻게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겠소?”
“요새는 태평성대라, 큰일도 작은 일도 아무 일도 없으니, 일부러 큰일 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단은 그래도 약간의 오기를 가지고 대꾸했다.
“태평성대일수록 큰일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법이오. 그렇지 않고 방심하면 진짜 큰일이 날 수도 있소.”
무 태후의 대답 끝에 누군가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물었다.
“아, 그런데 오래 전부터 공께서는 얼굴에 복면을 하고 계신데, 누군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는 이어서 태평공주에게 요청했다.
“공주마마, 이 분 영웅을 우리에게 좀 소개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얼굴에 복면을 쓰고 연회에 참석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때 황제 이단이 즉시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아, 죄송하오. 나는 얼과 얼굴에 화상을 입어 낯이 몹시 뜨겁고 남에게 보이기 부끄럽소. 양해해 주시기 바라오.”
이단이 뼈대 있는 말을 했다. 황제이지만 황제노릇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가 너무나 부끄럽다는 사실을, 화상에 빗대서 에둘러서 표현하고 있었다.
“얼굴에 화상을 입었구려. 참 안 됐수다. 하지만, 어디 사는 누군가는 밝히는 것도 괜찮지 않겠소?”
“오늘 연회에서, 그런 것은 처음부터 서로 묻지 말기로 약속한 게 아니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오늘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오.”
“아, 그런 규칙이 있는 것을 몰랐소. 죄송하오.”
다른 사람이 은근히 물었다.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는 말은 납득이 가는데, 얼이 화상을 입었다는 건 무슨 뜻이오?”
“하하하! 공께서는 자세히도 들었구려. 실은 얼굴의 화상이 얼의 화상 때문에 생긴 거라오.”
“얼의 화상?”
“그렇소. 내 얼이 거센 불길에 뒤덮여 큰 화상을 입었소.”
“공은 참 선문답 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얼을 태우는 거센 불길이 무엇이오?”
“글쎄, 나도 애매모호하오. 그건 상사병화相思病火 같기도 하고, 모진 북서풍에 일어난 불길 같기도 하고, 무더운 남동풍이 일으킨 화마 같기도 하오.”
“갈수록 알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좌우간 그 화상이 속히 낫기를 바라겠소.”
“고맙소.”
“그럼 공은 제외하고 대진표를 짜봅시다.”
이렇게 해서 남자들이 선상에서 팔 힘을 겨루게 된다. 승자와 승자끼리 붙는 방식을 통해 최후 결승에 진출한 이는 고조영과 이해고였다.
고조영과 이해고의 팔씨름은 볼만했다. 두 사람의 힘은 팽팽한 균형을 이루어 좌로나 우로 조금도 치우치지 않았다. 무려 차 한 한 마실 시간 동안 용을 썼으나 승패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적을 이기기보다 자신을 이기기가 백배 더 어렵지.”
누군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돌아보니, 그 발언을 한 사람은 복면인이었다. 그가 계속 중얼거렸다.
“그렇게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며 남과 다투지 않고 고요히 참는다면, 자신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을 것이오.”
다른 사람들은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으나 조영은 그 말에 깜작 놀랐다.
‘그렇다! 나의 이 승부욕부터 이겨야 한다.’
조영이 승부욕을 버리니 홀연히 한 가닥 힘이 아랫배에서 온몸으로 퍼지며 갑자기 온 몸에 기운이 충만해지는 것이었다. 그가 괴력이 솟음을 느끼고 포효하듯 한 소리 대성질호를 외치니, 순식간에 이해고의 팔이 무너졌다. 승리는 고조영이 차지했다.
좌중의 박수갈채에 선채가 울렁거렸다.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박수갈채지.”
역시 이번에도 복면인의 목소리다.
‘저건 날 두고 하는 소리구나. 그야말로 금과옥조다. 사람들의 박수갈채는 확실히 날 교만하게 만들 것이다.’
조영은 정신이 번쩍 들어 복면인을 향해 일어서서 진심으로 허리를 숙였다.
“천금같이 귀중한 충고, 고맙습니다.”
복면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다가, 잠시 후 내뱉었다.
“쓸 만한 사람들이 한 둘 있긴 하지만, 아직 다 애송이들이야.”
“선생의 고귀한 가르침을 받잡고 싶습니다.”
“낯부끄러워 복면을 쓰고 다니는 주제에 누굴 가르칠 수 있겠소?”
복면인의 언행이 은근히 눈과 귀에 거슬렸던지,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오늘 밤 무 태후는 아들의 언행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그동안 별전에 거하며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서 거의 무시하고 살았는데, 지금 보니, 아들의 지혜가 남달라 보였던 것이다.
가끔씩 태후가 아들 이단을 모시는 궁인들에게 물어보면, 이단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온종일 책에만 파묻혀 산다는 얘기를 들은 터다.
‘요놈이 책 속에 파묻혀 산다더니 싹수가 좀 보이는구먼.’
이 날 밤의 경험은, 훗날 삼년 후 측천여황 무태후가 후계자를 정할 때, 자기 조카인 무씨를 배제하고, 아들 이단에게 무武씨 성을 하사한 후 그를 후계자로 삼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이 씨의 씨로 낳은 자신의 아들 이단에게 무씨 성을 하사한 것 자체가 우스운 희극의 일장면一場面이었지만 말이다. 705년, 늙고 쇠약한 그녀가 강제에 의해 황위에서 물러날 때 당나라는 다시, 무씨 아닌 이씨 천하가 되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다음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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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4. 8. 23. 시원한가을바람일어난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