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청암문학 제26호 박하 수필 아름다운 배려
아름다운 배려
박하
현대중공업에 근무하는 제자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제자는 중학교 3학년 때 학교수업 파한 후 나한테서 과외수업을 받던 학생이다. 친구 한 분하고 같이 꼭 오시라는 거였다. 제자에게 선물할 책을 준비했다.
제자와 약속한 날, 친구와 나는 울산역에 도착했다. 저만치 집찰구 앞에 마중 나온 제자 박군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제자의 승용차에 탑승했다. 승차감이 좋다. 그때 갑자기 차창으로 일곱 빛깔 무지개가 하늘을 수놓는 게 아닌가. 마치 우리의 만남을 환영해주는 것처럼….
울기공원에서 대숲오솔길을 지나 횟집에서 싱싱한 자연산 활어회가 눈과 입을 즐겁게 해준다. 신선 담백하며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맛깔스럽다,
식사 후, 제자가 예매해 놓은 현대예술관에서 스펙터클 뮤직 영화 ‘오페라의 유령’을 감상하며 화면 속으로 몰입한다. 세계 최고의 뮤지컬 영화다. 감명이 깊었다.
제자가 마련해 놓은 숙소가 해변의 멋진 호텔이다. 선생님께서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 것 같아 예약했다는 마음씀씀이에 가슴이 훈훈해진다. 제자는 즐거이 담소 후, 선생님 피곤하실 테니 편히 쉬시라며 내일 아침 들르겠다며 집으로 갔다.
친구와 나는 샤워하고 나니 피로가 싹 풀린다. 친구는 “세상에 제자의 마음이 너무 고맙다며 학교 담임선생도 아닌 과외교사이었던 박하 씨를 우째 그리도 예의 있게 성심성의를 다하여 섬기는 모습에 놀랐다고 칭찬이 늘어진다. 밤하늘의 초록빛 별들은 우리의 수다에 끼어들고 싶은지 동참의 텔레파시를 보낸다. 편안히 누워 파도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행복한 꿈나라로 갔다.
다음날 아침, 수평선 너머 구름 속에서 해님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내더니 해님 주위가 붉게 물들고 홍해가 갈라지듯 해 뜨는 데서 바다 끝까지 황금빛 길이 장관을 이룬다. 해가 솟아오르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감탄사가 터진다. 휴대폰이 울린다. 제자의 정겨운 목소리다. 간밤에 잘 주무셨는지 문안인사하며 지금 숙소에 올라가도 되느냐고 예의바르게 묻기에, 어서 오라고 답해주었다. 잠시 후, 싱긋 웃으며 들어온 제자에게 황홀한 일출을 보았다고 신나게 보고하니 동해의 일출 볼만하지요 한다.
제자는 우리를 승용차에 태워 식당으로 모시는 게 아닌가.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식사다. 따끈한 게찌개 국물이 시원하고 얼큰하다.
온천을 할 시간이라고 표를 주며 한 시간 후에 이 자리에서 만나자고 한다. 세심한 스케줄에 감복한다. 해수온천의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친구와 나는 “아이구 시원하다”를 연발했다. 온천장을 나오니, 제자가 기다리고 있다가, “선생님 덕분에 오랜만에 온천 시원하게 했습니다.”하며 본인이 선심 베푼 것을 나한테 돌리는 게 아닌가. 인생을 멋지게 살고 있어 흐뭇하다.
강동 주전 몽돌 해안에서 우리는 처녀애 손톱만한 까만 몽돌을 줍는다. 푸른 바다에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상상해 보시길! 얼마나 멋진 절경인가. 강동축구장의 잔디가 양탄자처럼 폭신하다. 개나리와 목련이 여기 저기 봄인 줄 착각하고 피어있다. 제자는 디지털카메라에 우리의 모습을 담아주고 있다. 그 자상함이 갸륵하다.
현대중공업주식회사에 도착하다. 제자가 여러 곳을 안내해준다. 이곳에는 조선사업, 해양사업, 건설장비사업으로 연간 수 십 억불 수출로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곳이다. 전시실에서 신화를 창조해낸 아산 고 정주영회장의 대형사진을 보니, MBC 텔레비전의 월화 드라마 70부작 ‘영웅시대’가 떠오른다. 이 드라마에 정주영 회장과 이병철 회장이 주연으로 나오는데 ‘영웅시대’를 관심을 갖고 봐야겠다. 현대조선의 키좀바 레네 FPSO 시추선(試錐船)은 1조원이며, 선박 공급량이 전 세계 1위라니 놀랍다. 특수선 만드는 곳은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배 아래와 위의 부분 색깔이 다른 것은 아래 칠한 부분만 바닷물에 잠긴단다. 2004년 세계최초로 도크 없이 맨땅에서 배 만드는데 성공해 조선소의 신기원을 세웠다니, 한국인의 두뇌가 과연 우수하다. 시운전하는 로봇이 헬스장에서 허리 운동하는 건장한 청년 같다.
제자가 근무하는 건설장비사업소를 둘러본다. 문득 제자가 대구공업고등학교에 합격하던 날이 새롭다. 박군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말자 현대중공업에 취직되어 지금까지 한 우물만 팠으니 이 분야에 전문인이다. 학구열이 대단하여 야간 대학도 졸업했다니 장하다. 이곳에서는 굴삭기, 도자, 유압크레인, 지게차를 생산하는데, 탱크처럼 보이는 크롤라 굴삭기는 산에서 암석을 파내고, 바퀴 달린 휠굴삭기는 길에서 일한다고 한다.
근무처가 바닷가 옆이라 바다를 닮아간다는 제자의 마음이 바다처럼 넓다.
일정의 마지막 날, 한식 식당으로 유명한 ‘옛골’로 모신다.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음식이 가득하여 무엇부터 수저가 가야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선생님, 음식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라고 큰절을 올린다. 반찬이 다 맛있다. 1박 2일 동안 호사를 누리게 한 제자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 고맙다.
울산역에서 제자가 예매한 기차표를 내밀면서 “선생님, 잘 가십시오” 90도 각도로 깍듯이 인사한다. 나는 제자를 안아주며 잘 살기를 바란다고 등을 토닥여주자. 제자는 작별이 아쉽다며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친구 따라 강남 와서 융숭한 대접받아 감사하다는 내 친구는 대구에 오시면 맛있는 음식 사드리겠다고 한다. 내 곁에 서있는 제자에게 “키가 크구나. 키 178센티 되나” 하니, 예. 선생님, 과연 족집게과외선생님이 키까지 정확하게 맞추신다며 익살스럽게 조커를 보낸다. “키 크면 싱겁다”라는 말과는 달리, 유머가 깨소금처럼 감칠맛난다. 기차에 올랐다. 제자는 손을 흔들며 차츰 그 모습이 멀어지며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가 탄 기차는 말없이 달린다. 친구는 또 제자를 칭찬한다. 세상에! 과외교사이었던 박하씨에게 저렇게 좋은 제자가 있음은 박하씨가 참으로 인생을 잘 산 사람이라서 누리는 하늘의 축복이라고 한다.
창가에 앉아 나는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과수원이 한가한 겨울철에 과외를 시작한 게 처음엔 학생 몇 명이었는데, 잘 가르친다는 입소문이 퍼져나가 학생 수가 증가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고3학생까지 가르쳤다. 고3 영어와 수학은 미리 복습해야했었다. 잠은 서너 시간 눈 붙여도 그 당시는 푸른 시절이라 끄떡없었다. 중3 팀 중에 까까머리 학생이 바로 박군이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을 중요시하여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말 못하는 삼중의 고통을 극복한 헬렌 켈러 이야기도….
고등학교 입시 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3개월 동안은 청로에서 탑리까지 오고가는 시간을 학업에 열중하라며 내 집에 기거하도록 했다. 제자는 식성이 좋아서 고봉으로 퍼주는 양대콩이나 검은콩 넣은 잡곡밥 한 그릇에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주된 반찬이었지만 언제나 맛있게 뚝딱 비웠다.
대구공업고등학교에 합격한 날! 해거름에 제자의 아버지가 쌀 한 가마를 자전거에 싣고 우리 과수원집 마당 안으로 쑥 들어섰다. 고마움을 표시하는 제자의 아버지의 순박한 부성애에 감동했다.
학교 담임교사도 아니건만 이토록 극진히 생각해주는 제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고맙다는 나에게 “선생님, 선생님께서 저에게 베풀어준 온정에 비하면, 제가 해드린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 겸손한 태도가 요즘 젊은이 같지 않다.
대구 집에 온 후 사흘 후, 제자가 울산에서 찍은 사진을 앨범 두 권을 만들어 소포로 보내주었다. 제자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어 고맙다고 전화했다.
바닷가 기슭 그림 같은 집에서 제자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기를 기도한다.
*박하 약력
◆박하 대구출생(1947). 대구 신명여고(1965), 계명대학 보육학과 졸업(1968)◆1990년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KBS 주최 주부백일장 장원. 1993년부터《의성문학》 회원으로 활동.《
◆등단: 한국크리스천문학1998등단》《수필과비평 1999 신인상》《현대수필 2000신인상》《지구문학 소설 등단 2008》 《지구문학 시 등단 2011》
◆한국문인협회회원(2000)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2005) 한국수필학회회원(2000).
대구문인협회회원(2000) 지구문학회원(2002) 농민문학회원(2005) 산문과시학회원(2006) 대구의수필회원(2005) 대구기독문학 회원(2005) 대구여성문학회원(2010) 대구수비작가회의회원(2010) 청암문학회원(2008). 목사장로신문독서칼럼연재. 활짝웃는독서회 객원작가, ◆전: 대구펜 사무국장(6년) ◆현재: 대구기독문학 고문. 한국크리스천문학이사, 농민문학이사, 영호남수필대구지회회장
산문과시학회장.
◆수상: 농민문학 작가상 우수상(2009) 한국크리스천문학상(2014) 스토리문학상(2015) 제31회 순리문학상(2020. 1/13) 팔거문학상대상. 산문과시학문학상(2022. 7/7) 영호남수필 제7회창립회장문학상(2022.12)
◆작품집:『파랑새가 있는 동촌 금호강』(2000 문학관 )『인생』(2002 문학관) 『멘토의 기쁨』(2007문학관) 『초록웃음』(2008 문학관) 『퓨전밥상』(2010문학관)
이메일: parkha620@hanmail.net 전화 053-358-8333, 010-3474-8333
첫댓글 훌륭한 제자와
훌룽한선생님
좋은친구
이런세상에서 살고싶습니다
멋진인생 감사합니다
저역시 저에게베푼 따뜻한 사랑에
짝사랑하고픈마음이 생겨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늘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되세요 고맙습니다 방효필 올림
방효필 이사장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