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MBTI에 관한 책이니 만큼, 독후감을 쓰기 전에 MBTI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야 되겠군요. MBTI는 마이어스-브리그스의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입니다. 마이어스와 브리그스는 사람 이름이고 모녀지간입니다.
1921년에 프로이트의 제자인 칼 융이라는 사람이 「심리학적 유형들(Psychological types)」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사람을 지배하는 정신 기능과 사람이 선호하는 태도를 이해하려는 시도였지요. 융은 사람이 8 종류의 성격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단정했답니다. 마이어스와 브리그스라는 모녀 학자들은 융이 만든 성격 유형에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확장, 실용화 해서 그 결과 16 종류의 성격 유형을 결정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이들 모녀는 1940년대부터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알 수 있도록 테스트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이 테스트를 바로 MBTI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모녀에 의한 사람의 성격(기질) 이해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8가지의 주요 성격 요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가라는 성격과 거라는 성격, 나라는 성격과 너라는 성격, 다라는 성격과 더라는 성격, 라라는 성격과 러라는 성격 말이지요. 사람에게는 이 8가지 성격이 모두 있는데 이들 성격들이 각각 따로 떠돌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네 종류의 정신 기능이나 선호하는 태도, 즉 네 종류의 선호도에 의해서 둘씩 짝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네 종류의 선호도에 의해서 가와 거가 짝지워지고, 나와 너가 짝지워지고, 다와 더가 짝지워지고, 라와 러가 짝지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네 가지 선호도 중 Z라는 선호도에 의해서 가와 거가 짝지워져서 둘이 붙어 있는데, 선호도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든지 함께 가지고 있는 가와 거 중에서 하나가 더 우세하다는 것입니다. 단지 우세한 정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요. 그래서, 그 사람은 가와 거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Z 선호도에 있어서는 가의 성격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거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은 가와 거중에서 한 성격, 나와 너 중에서 한 성격, 다와 더 중에서 한 성격, 라와 러 중에서 한 성격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합을 해 보면 모두 16종류의 성격 유형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가나다라라는 성격 유형에 속하고 또 한 사람이 가나다러라는 성격 유형에 속한다면 거의 비슷한 성격인 것 같지만, 이 라와 러의 차이 때문에 분명히 다른 부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 재미 있는 것은 너다라는 성격 조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개념주의자적인 경향을 보이고, 너더라는 성격 조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상주의자가적인 경향을 보이며, 나라라는 성격 조합은 전통주의자적인, 나러라는 조합은 경험주의자적인 경향을 각각 보인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각각의 성격과 조합을 이해하면 이런 것들 말고도 쾌락주의자, 실용주의자, 개혁주의자 등의 특정 경향들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단지, 너와 다 모두 아주 우세하다면 그 조합의 결과인 개념주의자의 경향도 두드러지겠지만, 그 사람이 나인지 너인지 확실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개념주의자의 경향도 약하다는 얘기이지요.
이러한 설명이 얼마나 그럴듯한지, 아니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사실 상당히 놀랍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성격 유형 구분이 인류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얼마 안 되는 것입니다.
보통 MBTI 검사를 받을 때에는 설문 테스트를 받습니다. 이럴 때에는 A처럼 하느냐 B처럼 하느냐? 저럴 때에는 C처럼 하느냐 D처럼 하느냐? 하면서, 제대로 된 검사에서는 100가지 내외의 짤막한 질문을 받습니다. 그래서 채점(?)을 하고 나면 16가지 중에서 나에게 해당하는 하나의 유형, 예를 들어 가나다라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가나다라라는 성격을 구구절절히 묘사한 글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끄덕끄덕, 그려그려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끝 차이인 가나다러나 거나다라 같은 것들을 읽어보면서 뭔가가 이상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역시 구구절절히 비슷한 것이어요. 쪼금 다른 겁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에이, 이거이 뭐여. 그놈이 그놈이네. 비슷한데 뭘. 가나다라하고 가나다러하고 요정도 차이가 난다면, 가나다라나 거나다러 같은 사람들도 뭐 별 차이 있겠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MBTI 테스트의 의의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겁니다.
바로 여기가 이런 종류의 책이 유용해지는 대목이지요. 이 책을 통한 MBTI 이해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즉,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짤막한 질문 문항들에 시달려 가면서, 어떤 것이 내 성격인지 모두지 모르겠는데 상담자가 오래 생각하지 말고 딱딱 찝어라라고 하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남들은 다 풀었는데 도대체 왜 이리 아직도 많이 남은 거야하는 학창 시절의 악몽이 떠오르면서, 자신의 성격 유형을 마지막 한 순간, 즉 채점을 마치고서야 찾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신 이러한 종류의 MBTI 안내서는, 당신은 Z라는 선호도 때문에 가라는 성격이나 거라는 성격 중 한 가지로 행동하게 된다. 그래서, 이 상황 속에서 이렇게 행동하면 당신은 가가 우세하고 저렇게 행동하면 거가 우세한 것이다 라는 식으로, 각각의 선호도를 결정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 상황을 들어 주면서 풀이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Z라는 선호도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고, 그 선호도에 의해서 왜 가와 거가 붙어다니는지도 알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거에 대한 가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가와 거의 갈등 양상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지요.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가나다라와 가나다러는 한끝 차이이지만, 나라와 나러가 강하게 결합하면서 실제로는 두끝 차이 같은 효과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이 책은, 가나다라와 가나다러는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각각 전통주의자와 경험주의자라는 아주 두드러진 경향 차이를 보이게 된다는 것을, 또한 단지 나는 경험주의적인 경향을 가진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전통주의에 대한 경험주의적인 경향을 보인다라고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요, 다와 더가 만나서 그 차이와 갈등 양상을 이해하게 된다는 얘기는 결과적으로 서로가 바로 그 어떤 부분을 주의해야지만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무조건 사랑하려고 하면, 몸이 어딘가 아픈데 치료하지는 않고 운동으로 체력을 길러서 버텨나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중요한 것이겠지요.
그보다 또 더 중요한 것은 말이죠, 신앙적인 문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갈등 양상이 단지 성격 차이인지, 아니면 윤리적인 문제인지를 구별시켜 주며(혹은 어디까지가 성격 차이이고 어디서부터가 윤리 문제인지를 구별시켜주고), 심지어는 믿음이나 성화에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성격들과 성격들의 조합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도와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부가 MBTI테스트를 통해서 각각 달랑 가나다라와 가나다러라는 사실만 알고 나면 큰 도움이 못될 수 있는 것입니다. 라와 러가 어떻게 짝지워지고 라와 러가 왜 갈등하며, 나라와 나러는 얼마나 더 다르며, 서로의 신앙을 위해서 어떻게 도와야 하는 것인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갈등의 원인과 양상을 제공하는 선호도와 성격과 그 성격 요소들의 조합 을 모르면, 부부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참고 적응해 가는 것일 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단체로 이런 검사를 하면, 윤병수 장주영 교우 부부처럼 다와 더가 만났을 경우에 왜 맨날(?) 우는 쪽은 더인데 다가 죄인이 되는지, 그리고 김어수 이예원 교우 부부처럼 나라와 너러가 만나면 왜 치명적(?)인지를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고통 뒤에는 은혜가 뒤따를 것을 여기서도 물론 기대할 수 있고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 가와 거가 각각 무슨 성격인지, 또 그것을 짝지워 주고 그 중에서 하나를 우세하게 만드는 Z라는 선호도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또, 나라가 경험주의자적인 경향을 띠는 것처럼, 각각의 조합이 왜 특이한 경향을 만드는지 안 궁금하십니까? 각각의 갈등 양상과 신앙적 영향 등이 궁금하지 않으신지요?
궁금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것도 성격의 일부라구요. 별로 궁금하지 않으신 분은 아마도 나러의 조합일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해 봅니다. 반대로, 이책에서도 말하지만 가너더러는 가장 호기심이 많은 기질이라고 하는군요. 이런 분은 많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너러가 호기심에 영향을 끼칠 것인데 거기다가 가와 다가 합세해서 가장 호기심이 많은 기질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이제 그만 하구요, 이런 종류의 책을 통하여 서로서로 왜 얼마나 다른지, 그래서 어떻게 이해하고 도와야 하는지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