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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정식 국명은 Reino de Espa (레이노 데 에스파냐:서어), Kindom of Spain(영어)이며 일반 명칭은 Espa (에스파냐:서어), Spain(스페인:영어), 西班牙(한자)이다. 1. 면적 면적은 총 50만 4782km2로 한반도의 2.3배, 남한의 5.1배로 전 세계적으로 49번째로 큰 나라이다.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의 85%를 차지하고, 그 나머지 15%는 포르투갈이 차지하고 있다. 전 국토는 본토인 이베리아 반도(97.6%), 지중해상의 3대 2소의 5개 섬으로 이루어진 발레아스 제도(1.0%), 동아프리카 대서양상의 7개 섬으로 이루어진 카나리아 군도(1.4%)로 형성되어 있다. 국토의 31%가 경작지이며 수림지는 31%, 목초지는 20% 다년생 농작물 재배지는 10%로 구성되어 있다. 2. 기후 기후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발달한 지중해성 기후와 대서양 연안의 서안 해양성 기후가 대부분이고, 내륙 고원 지방 일부는 사막성 기후를 나타낸다. 전체적으로 건조하며 비교적 강우량이 많다는 바르셀로나(Barcelona)도 연간 600mm 내외로 우리 나라 연간 평균 강우량의 절반 수준이다. 일조량은 매우 많아 연평균 2500시간(우리 나라 평균 1860시간)에 달하며 여름은 매우 더운 날씨를 보이나 건조하기 때문에 체감 온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3. 지역별 특징 지역 현황 행정적·정치적으로 지방 자치 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언어, 풍습, 문화가 각 지방별로 상이하게 발달하고 있으며, 기후 또한 지방별로 다르다. 주요 도시 및 취락 지역이 해안선을 따라 발달하였고, 내륙 지방에는 수도인 마드리드와 몇 개의 주요 지역을 제외하면 대부분 메마른 목초지나 황무지로 이루어져 있어 인구가 희박하다. 각 주요 지방간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고 산맥이 가로막고 있어 교통이 발달하지 못하였다. 행정 구역 아우토노모(Aut omo):전국이 총 17개 주로 구분된다. 프로빈시아(Provincia:주에 속하는 하급 단위):전국이 50개로 구분되며, 각 주가 1~9개의 프로빈시아로 구분된다. 코마르카(Comarca:프로빈시아의 하급 단위):각 프로빈시아가 많은 코마르카로 구분된다. 단위 행정 기관이 없으며 단지 지역의 세포 분류 명칭이다. 무니시피오(Municipio:시):전국이 모두 크고 작은 시로 구분되어 있으며 행정 조직, 경찰, 우체국, 사회 보장국 등의 기본 단위가 된다. 수백만의 인구를 가진 시에서부터 인구 몇 천 명의 시도 있다. 주요 도시 마드리드(Madrid):수도, 인구 318만 8000명 바르셀로나:제1의 항구 도시, 인구 175만 4000명 발렌시아(Valencia):항구 도시, 인구 75만 3000명 세빌야(Sevilla):Expo 1992 개최지, 66만 1000명 사라고사(Zaragoza):58만 6000명 빌바오(Bilbao):산업 도시, 인구 37만 1000명 각 자치주 현황 각 자치주는 행정부와 의회가 있어 국방, 교육 등을 제외한 모든 사항을 중앙 정부와는 별도로 처리하며, 행정부의 수장인 주지사와 의회의 의원들을 모두 선거로 선출하며 각 도시(무니시피오)의 시장(Alcalde)도 선거로 선출한다. II. 역사 1. 고대 약 2만 5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알타미라 동굴에서 크레마뇽인의 벽화가 발견됨에 따라 이 시기부터 고대 문명이 열렸다고 본다. B.C. 3000년께 이베로족은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였다. B.C. 6세기~B.C. 5세기에 동부 및 남부 지역에 이베로족, 페니키아족, 그리스족들이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서부 및 중부 지역에 중앙 유럽으로부터 흘러온 켈트족이 정착하여 이베로족과 혼혈되어 켈트이베로족이 되었다. B.C. 3세기~B.C. 2세기께 남동부 지역으로 진출한 카르타고인들이 패권을 잡게 되면서 2차 포에니 전쟁(218∼201)이 일어났다. 3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면서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B.C. 1세기에 이베리아 반도를 `이베리아(Iberia)' 또는 `이스파니아(Hispania)'라고 칭하게 되었으며, 기독교도들이 이 시기에 이베리아 반도로 유입해 왔다. 392년 기독교가 유일 종교로 되었으며 5세기 초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서고트족, 반달족 등이 유입하였으며, 서고트족은 `톨레도(Toledo)'에 수도를 정하고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2. 무어 시대의 국토 회복 전쟁 시대 8세기께 북아프리카의 무어족이 반도에 침입하여(711) 국토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반도의 북부 지방에 있는 `코바동가(Cobadonga)'의 전투에서 최초로 기독교도들이 승리하면서(722) 무어족을 남쪽으로 격퇴시키는, 700년이 걸린 국토 회복 전쟁이 시작되었다. 1085년에 알폰소 6세가 옛수도 `톨레도'을 탈환하였으며, 1094년에는 엘 시드(El Cid) 장군이 발렌시아를 탈환하였다. 1150년 탈환한 동북 지방의 아라곤(Arag )과 카탈루냐(Catalu )가 통합되면서 아라곤 왕국으로 영토가 확정되었다. 13세기 중엽 무어족들이 남부의 그라나다로 수도를 옮겨 약화된 제국의 명맥을 유지하여 왔다. 1230년에 카스티야(Castilla)와 레온(Le )이 통합되어 반도의 중부 지방에 카스티야 왕국으로 영토가 확장되었다. 1213~1276년 아라곤 왕국이 지중해 지역으로 세력을 크게 확장하였다. 3. 카톨릭 왕과 국토 통일 시대 1474년, 아라곤 왕국의 세자인 페르난도(Fernando)를 맞아 결혼한 카스티야 왕국의 공주 이사벨(Isabel)이 오빠 엔리케 4세(Enrique IV)에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1478~1479년 종교 재판소, 종교 기관, 정치 기구 등을 신설하여 이교도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아라곤의 엔리케 2세가 죽자 그의 아들이자 이사벨 여왕의 남편인 페르난도가 왕위를 승계하자, 두 국가는 비로소 통합되며,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카톨릭 국왕 부처(Los Reyes Cat icos)'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1492년, 남부 그나나다에 남아 있던 무어 왕국을 물리쳐 마침내 반도 전체의 국토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사벨 여왕이 콜럼버스(Crit al Col )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주어 미주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한 해이다. 또한 이 해에 이사벨 여왕은 문법학자 네브리하(Nebrija)로 하여금 서반아어의 문법 체계를 확립하여 공포하게 하였다. 1504년 이사벨 여왕이 죽자 1496년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펠리페(Felipe)와 결혼하였던 후아나(Juana) 공주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1512년에는 북부의 아라곤과 카스티야의 중간에 남아 있던 소국 나바라(Navarra)를 정복함으로써 마침내 이베리아 반도가 오늘날의 스페인 국토 형태로 통일되었다. 4. 오스트리아 왕가 및 신대륙 개척 시대(16∼17세기) 1516년, 페르난도의 죽음으로 손자인 카를 5세(카를로스 1세)가 스페인 국왕에 즉위하면서 오늘날 스페인,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세르데냐와 신대륙을 통치하는 영토가 되었다. 1519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가 죽자 카를 5세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을 동시에 지배하는 황제로 즉위하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늘날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코 지방, 네덜란드를 지배하는 대제국이었으며, 카를 5세는 이 넓은 영토를 지배하였다. 16세기 중엽 카를 5세는 구라파 대륙의 패권을 놓고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그의 아들 앙리 2세와 다섯 차례의 전쟁을 치렀으며 5차전에서는 결국 패하였다. 1513~1541년 중남미 대륙을 차례로 정복하여 전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다. 1555년 카를 5세가 물러나고 그의 아들 펠리페 2세(Felipe II)가 즉위하게 되나 오스트리아 제국은 삼촌인 페르디난트 1세(Fernando I of Austria)의 수중으로 분리되었다. 1561년 펠리페 2세는 마드리드를 수도로 정하면서 카톨릭을 수호하기 위해 스페인 영토 관할에 주력하였다. 1564년 필리핀을 식민지화하면서,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서 필리핀이라 명명하였다. 1571년 오스만 터키 군대와 지중해 패권을 놓고 스페인, 교황청, 베니스의 함대로 구성된 연합군이 레판토(Lepanto)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오스만 터키의 서진 정책을 저지시키고 지중해상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1580년 포르투갈의 국왕이 후사 없이 죽자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을 수중에 넣고 국왕에 즉위하였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 함대(Armada Invencible)가 130대의 거대한 전함과 1만 명의 승선 인원과 1만 90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영국을 공격, 도버 해협에서 악천후와 소형 영국 전함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인해 대패하여 스페인의 해상 지배권이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식민 국가에서 수탈한 금은 보화는 모두 독일과 제노바 은행으로 흘러가 버리면서 국력이 쇠퇴되었다. 1609년 칙령 선포로 이베리아 반도 내에 잔류하던 무어족들이 모두 추방당하였는데 그 숫자가 27만 5000명에 달하며, 당시 주요 산업인 농업에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네덜란드와 12년 동안 휴전을 하게 되는데 사실상 네덜란드의 독립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1640년 지방 분권 정치 탓으로 포르투갈과 카탈루냐가 반란을 일으키며, 포르투갈은 새로운 국왕을 옹립하였으나 1668년까지는 독립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1659년 프랑스와 피레네 평화 협정을 맺으면서 16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양국간의 전쟁은 끝이 나고 프랑스 루이 14세(Luis XIV)는 스페인 공주를 왕비로 맞게 된다. 1697년 프랑스 지방에 갖고 있던 영토를 모두 프랑스에 빼앗겼다. 5. 부르봉 왕가와 독립 전쟁 시대 1700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죽자 루이 14세가 자신의 아들을 스페인 국위 승계자로 선포하였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트(Leopoldo)가 이에 반기를 들어 후작 카를로스를 왕위 계승자로 내세웠다. 이로써 구라파 대륙의 균형이 깨어졌고, 1702~1714년에 왕위 계승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는 오스트리아 편에, 카탈루냐, 발렌시아, 아라곤은 프랑스 편에 서게 되면서 왕위 계승 전쟁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1705). 1714년, 결국 위트레흐트(Utrecht) 조약이 체결되었고, 최초의 부르봉 왕가의 펠리페 5세가 왕위에 즉위하게 되면서, 스페인은 이탈리아 지역에 갖고 있던 많은 속령을 잃게 되고 지브롤터와 메노르카 섬을 영국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1759~1788년에는 매우 강력한 전제 군주 체제를 구축하면서 국가 경제를 부흥시키고 인재를 찾아 중용하면서 부르봉 왕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국가로 발전시켰다. 1793년 루이 16세가 죽자 혁명의 돌풍에 휘말린 프랑스에 전쟁이 선포되었다. 1796~1805년에는 프랑스와 안보 조약을 체결하면서 1808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독립 전쟁이 발발했다. 나폴레옹의 친정으로 마드리드가 함락되었다. 이에 국왕이 국외로 피신하였다. 1813년 영국과 손을 잡고 프랑스 군을 쳐부수기 시작하여 국토를 되찾았다. 이러한 와중에 중남미 제국들이 차례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1814년 강력한 절대 군주 체제로 복귀하여 1820년까지 지속되었다. 6. 19세기의 격동기 19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 왕권의 약화와 강화를 반복하면서 움트기 시작한 자유주의자들과 왕권 보수파들과의 내란이 거듭되었다. 1873년, 최초로 왕권 제도가 폐지되고 제1공화국이 국민 의회에 의해 수립되었다. 1874년 왕권이 다시 복귀하면서 짧은 평화의 시대가 왔다. 1898년 미국이 쿠바와 필리핀의 반식민지 군대를 지원하면서, 필리핀 지배권을 놓고 미국과 벌인 전쟁에서 패했다. 이의 결과로 해외의 마지막 식민지인 필리핀과 푸에르토리코를 잃게 되었다. 7. 왕정의 붕괴와 제2공화국 시대 1914~1918년 1차 세계 대전에서는 중립을 고수하여 국내적으로는 1917년에 왕권 체제를 자유화하려는 사회주의자들의 주도하에 대대적인 총파업이 발발하였으며 이에 대한 군대의 억압 조치가 뒤따랐다. 1921년 모로코에 내란이 일어났으며, 1927년에 스페인 군대가 이 곳을 평정, 정복하여 군부의 힘이 강해졌다. 1923년 왕실의 승인하에 미겔 프리모 장군이 독재 체제를 선포하여 국가 질서를 바로잡고 국력의 증강을 도모하였으나, 반대파 세력이 크게 성장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930년 민중의 반대로 미겔 프리모는 퇴각하였으나 군부의 독재는 계속되었다. 1931년 4월 선거에서 공화파가 주요 지역에서 승리하자 국왕은 스페인을 떠났으며 제2공화국이 세워졌다. 12월에 헌법이 공포되고 대통령이 선임되면서 우파 반대 세력과 대치하게 되었다. 1933년 미겔 프리모 장군의 아들인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가 팔랑헤당을 결성하면서 정국은 혼란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34년 카탈루냐 주가 자치를 선언하였으며, 아스투리아(Asturia) 지방이 우파 정권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무자비한 진압이 뒤따랐으며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었다. 8. 시민 전쟁 시대 9. 프랑코 총통 시대 1939~1949년 프랑코는 총통으로 즉위하면서 스페인은 다시 왕국의 모습으로 복귀하였다. 2차 세계 대전중에는 국제적 중립을 지켰으나,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면서 외교적 파탄을 맞게 되었다. 1969년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왕자가 프랑코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10. 민주화 시대 1977년 총선으로 아돌포 수아레스(Adolfo Suarez)가 수상으로 선출되었다. 1979년 아돌포 수아레스가 재선되었으며, 카탈루냐, 바스크, 갈리시아의 자치제가 제정 승인되었다. 1981년 아돌프 수아레스 수상이 실각하고 군사 쿠데타가 발발하였다. 1982년 총선에서 사회당이 승리하고 펠리페 곤잘레스(Felipe Gonzalez)가 수상으로 취임하였다. 1986년 EC(유럽 공동체)에 가입하였으며 국민 투표에서 NATO(북대서양 조약 기구) 잔류로 가결하였다. 1993년 EC에 경제적으로 통합하였다. III. 정치 1. 정치 형태:입헌 군주국 국가 원수로서 국왕이 있으나 통치는 하지 않는 국가의 상징적 인물로 존재한다. 의원 내각제로 운영되며 내각의 수반인 수상이 행정 통치권을 갖는다. 2. 지방 자치제:17개의 자치 주로 구성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행정 조직의 장들은 비교적 잘 발달된 지방 자치제하에서 지방 정부의 통치권을 갖는다(국방, 외교, 교육만 중앙 정부에서 관장함). 특히 카탈루냐, 아스투리아, 갈리시아 주의 자치권 행사가 가장 두드러진다. 3. 정당 POSE 1879년에 창설되었으나 1975년 프랑코 총통이 집권하던 시기까지는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국내 정치에 은밀한 접촉만을 유지해 왔다. 1980년대에는 곤잘레스와 게라가 사회주의 이념에서 마르크스 사상을 배제하고 스페인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으로 발전시키면서 이끌어 왔다. PP(Partido Popular : 국민당) 보수당으로 제1야당의 자리를 차지하였으며, 1991년에 실시된 지방 단체장 선거에서 주요 도시를 석권하면서 집권 여당에 정치적 타격을 입혔다. 1996년 총선에서 PP당이 승리하였다. 그 이래로 현재(1997년)까지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Jos Maria Aznar)가 총리로 재임하고 있다. 4. 정치 현황 중앙 정부와 지방 자치 정부 간에 마찰이 자주 일어난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지역 감정 문제가 가중되고 있다. ETA(바스코 독립주의자)의 테러 활동이 종종 발생한다. 1994년 초 실업률 23%를 기록하였으며, 1994년 1월에 총파업이 발생하였다. EU 가입 이후 실리 외교를 추구하며 전 세계와 선린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나라와는 1950년에 수교하였다. 5. 외교 가입된 주요 국제 기구 EC:1986년 포르투갈과 동시에 가입하였다. NATO:1882년에 가입함. 1986년 국민 투표에서 52.5%로 잔류 결정. WEU:1988년에 가입함. 1991년 걸프전 기간중 미군에게 수송 기지를 제공하였다. 외교 노선 모든 국가와의 선린 외교 관계를 추구하며, 중남미 제 국가의 실질적인 종주 국가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력 EC 국가 가운데 지상군 병력이 가장 많다. 12개월 의무병제를 실시하며, 257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1991년 기준). IV. 경제 1. 역사적 배경 1936~1939년까지 격렬한 내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프랑코가 총통으로 취임하면서 1인 통치 체제를 구축하여, 정치적·경제적으로 크게 쇠퇴하게 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 실시된 전후 유럽 부흥 계획(마셜 플랜)에서 제외되고 UN(국제 연합)의 기치하에 무역 봉쇄 조치를 당하여 경제는 더욱더 피폐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경제 기적을 이루기 시작하여 1960년대에 중공업 기지들을 설립하여 철강, 조선, 기초 화학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러한 신흥 공업 부분이 두 차례의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경쟁력이 저하하여 산업 구조 재편의 국제적 요구에 발맞추지 못하였고, 경제는 다시 하강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86년 EC 가입으로 소비 증가와 다국적 기업들의 진출로 고도 경제 성장률을 구가하기 시작하고, 증가된 관광 수입과 재외 내국인의 송금으로 경기가 소비재를 중심으로 과열 양상을 보였다. 1990년, 정부가 과열 경기를 냉각시키기 위하여 긴축 재정 정책을 발표하였다. 그후 국제 경제의 침체, 국제 교역량 하락, 걸프전 등으로 인하여 경기가 크게 후퇴하면서 1991년은 1985년 이래 최저의 경제 성장률을 나타냈다. 1992년 EC 통합을 앞두고 산업의 핵심인 자동차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핵심인 관광업의 현대화 작업을 정부 및 민간 차원 공히 최우선 정책 과제로 두었다. 2. 경제 정책 인플레 억제 6.0%선의 인플레를 5.0%이하로 조정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부가 가치세의 인상으로 1992년 5.0%선 유지는 실패하였다). 실업률 저하 OECD(경제 협력 개발 기구)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의 실업률을 하향 조정하기 위해 신규 고용을 늘렸다. 이자율 저하 EC의 경향과 발맞추어 이자율을 하향 조정하여 기업 투자 의욕을 고취하고자 한다. V. 문화와 생활상 1. 인구 인구는 약 3900만 명(1990년 기준)으로 총인구의 40%가 인구 1만 명 이상의 도시에 거주하며, 1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갖는 도시는 50개에 달한다. 출산율은 1964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1988년 통계로는 1.12%로 나타난다. 2. 언어 언어는 현행 헌법에 4개 언어가 공용어로 명시되어 있으며 4개 공용어는 다음과 같다. 1) 카스티야어(Castellano):스페인 중부 지방인 마드리드, 카스틸야 라 만챠, 카스틸야 레온, 엑스트레마두라, 아라곤 등 7개 주, 남부 지방인 세빌야, 무르시아 주 그리고 동부 지방인 발렌시아 주의 대부분에서 사용한다. 2) 카탈루냐어(Catal ):스페인 북동부인 카탈루냐 주,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독립 소국인 안도라(Andorra), 발레아스 제도, 발렌시아 주의 일부에서 사용한다. 프랑스 남부 지중해에 면한 스페인 접경 지역도 마찬가지로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지역인데, 이는 역사적으로 동일한 아라곤 왕국에 속했기 때문이다. 3) 갈리시아어(Gallego):북서부에 있는 갈리시아 주에서 사용되며 포르투갈어와 매우 유사하다. 4) 바스크어(Vasco):대서양에 면한 프랑스 접경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다. 바스크어를 제외한 3개 언어는 라틴어를 모체로 한 로망스 언어에 속하며 바스크어는 인접 지역의 언어와는 완전히 다른 `언어의 섬'을 형성한다. 통상 서반아어(Spanish)로 칭하는 언어는 카스티야어이며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국가들의 공용어이기도 하다. 특히 카탈루냐어는 카탈루냐 지방의 독자적 문화 부흥을 위하여 사용을 적극 권장하여 거리의 푯말, 일상 언어, 관공서 공문 등에 사용하고 있다. 3. 종교 종교는 카톨릭이 국교로 총인구의 98% 이상이 카톨릭 신자이다. 카톨릭은 392년에 유일한 종교로 인정되어 7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한 이슬람 교도들과의 투쟁을 거쳐 1492년에 비로소 카톨릭 국가로 완전히 독립하였다. 4. 국민성 대체적으로 낭만적이고 대인 관계가 부드러우며 친절하다. 반면에 자존심이 강하고 식민지 경영 습관이 은연중에 남아 있다. 담소를 즐기며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또한 노래 듣기는 좋아하나 부르기는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음식 문화가 매우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으며, 식사 시간이 길고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데 밤 늦게까지 담소하며 즐긴다. 국민 전체가 카톨릭 신자이며 대체로 종교적 의식이 짙다. 춤추기를 매우 좋아하며, 각 지역별로 고유의 춤이 있다. 서로 식사 초대를 많이 하며, 외식하기를 좋아한다. 도회지 근교에 별장을 소지하고 주말에는 거의 대부분이 야외로 나가 지내며, 여행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여름에는 수영, 겨울에는 스키가 레저 활동의 중심이다. 지역별로 보면 카탈루냐 지방 사람은 매우 근면하나 타산적이고 사무적인 성격이며 인심이 그다지 후하지 않다.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가장 낙천적이며 춤추고 기타 연주를 좋아한다. 바스크 지방 사람은 부지런하고 호탕한 기질을 가졌으며 과음하는 습성이 있으며, 비교적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종교 생활 국민 전체가 카톨릭을 단일 종교로 삼고 있으며, 4세기께에 이베리아 반도로 카톨릭이 전래되었는데 8세기부터 북아프리카의 무어족들의 식민 지배를 받기 시작하여 15세기 말엽에 국토를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카톨릭은 이슬람교의 억압을 받아 크게 발전하지 못하였다. 이 식민 시대에 카톨릭은 스페인 국민들의 지하 종교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였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그 시대의 건축물은 세계적으로 매우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데 카톨릭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에 이슬람적인 양식이 가미되어 무데하르(Mudejar)라는 독창적인 양식을 보인다. 15세기 말 세계적인 대현제인 이사벨 여왕이 반도 내의 북부에 위치한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왕자와 결혼하면서 분리 통치되던 이베리아 반도가 통일을 하고 이사벨 여왕은 정식으로 카톨릭을 국교로 선포하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이사벨과 페르난도를 묶어서 `카톨릭 국왕 부처'라고 칭한다. 이사벨 여왕이 국토를 완전히 회복하게 되는 1492년까지 스페인 역사는 700년 동안 줄곧 국토 회복 전쟁의 역사인데, 국토 회복 전쟁에 참가하는 모든 군사들은 카톨릭 교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쟁이 치러졌다. 종교적 영향으로 일상 생활에 높은 수준의 문화 의식이 깃들어 있다. 즉 건축 양식이나 미술 등에서 종교적 영향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화가들을 배출하는 것과 아름다운 건축물을 건립하는 전통을 갖는 것도 모두 종교적 영향이라 하겠다. 노년층과 여성들 대부분 성당을 빠짐없이 다닌다. 일요일 시내에 정장 차림을 한 시민의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일요일에 성당을 찾거나 경건하게 보내려는 이유에서이다. 각 지방에는 종교 기념일이 있는데 수호 성인으로 받드는 성인의 날을 택하여 각종 행사와 축제를 벌인다. 각 시에는 많은 성당이 있는데, 제일 규모가 크고 화려한 것을 `카테드랄(Catedral)', 그 외의 것은 `이글레시아(Iglesia)'라고 부른다. 카테드랄에는 그 지역의 교구장, 주교, 대주교 등의 최고 성직자가 있다. 도시의 중앙 광장에는 카테드랄이 반드시 있다. 중세에는 성당의 종루가 그 도시에서 가장 높았으며, 인근 도시의 종루를 잇는 선을 따라 도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성당에는 대부분 보물실이 있는데 중세부터 전래되는 값진 보물들이 그대로 보관, 전시되어 있다. 모든 경조사 행사(결혼식, 장례식 등)는 반드시 카톨릭식으로 거행된다. 5. 에티켓 및 금기 사항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여 항상 부드럽게 그리고 양보하면서 상대하여야 하며 서양 예절 모두에 충실하여야 한다. 카톨릭 국가임을 염두에 두어 성당을 방문할 때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되도록이면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여야 한다. 질서를 잘 지켜야 하며, 공공 장소에서는 거의 대부분 기다리는 순서를 질서 있게 맞추기 위해 번호표(투르노:Turno)가 있으며, 이 번호표는 기계에서 자동으로 배포된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인사를 해야 한다. 아는 사람에게는 되도록이면 먼저 인사하는 것이 좋다. 식사를 할 때에는 식사 예절에 맞게 행동하여야 한다. 음식을 씹을 때는 입을 다물고 씹어야 하고, 국물은 소리나지 않게 먹어야 한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후룩후룩 분다든지, 훌쩍훌쩍 마시지 말아야 한다. 술잔을 건네 주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상대방 술잔이 바닥나기 전에 반드시 채워 주어야 하고, 술잔에 가득 채우지 말아야 한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투우장이나 축구장에 술병을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다. 그 안에서 파는 맥주를 마시는 정도이다. 지하철 역내에서 흡연을 하면 벌금을 내게 되어 있으나, 특히 여자들이 많이 피우고 다닌다. 남자의 경우 공공 장소에서는 대부분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흡연 장소 및 금연 장소(지하철 구내 및 공항 대기실)의 구분이 우리 나라와 비슷하며, 젊은 여성의 흡연 인구가 많고 여고생들도 길가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단속은 하지 않는다. 신발을 구겨 신거나 운동복, 헐렁한 옷차림으로 상대방을 대하지 말고, 그러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가면 안 된다. 교통 질서를 지켜야 하며(특히 바르셀로나에서는), 반드시 상대방에게 양보하여야 한다.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은 난폭하게 운전하는 편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스페인은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팁을 10% 정도를 주는 게 아니라 손님의 기분에 따라 100~200Pts 정도 준다. 계산은 계산서를 달라고 한 후 현금이나 신용 카드로 지불하고 잔돈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린다. 여자에게 우선 양보해야 한다. 반드시 문을 열어 주고 차에 탑승·하차하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여닫이 문이나 엘리베이터 등 앞에서는 여자에게 양보해 주는 것이 예의이다. 지하철 등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그냥 서서 올라갈 경우는 오른쪽에 붙어 있어야 급한 사람들이 왼쪽으로 걸어서 올라간다. 공중 전화을 사용할 경우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통화를 길게 하므로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통화를 짧게 합시다”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방문에는 예약과 약속을 해야 한다. 이발소나 식당 등에서는 예약을 안 했다가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스페인 사람들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 비슷하나 비즈니스나 돈에 관련되는 등 자신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시간은 반드시 지킨다. 6. 국경일 및 공휴일 주요 국경일 및 공휴일은 다음과 같다. 1월 1일:신년(D de Nuevo A ) 1월 6일:동방 박사의 날(Festividad de Reyes Magos) 3월 또는 4월:부활절(Jes Santo 및 Viernes Santo) 5월 1일:노동절(Fiesta de Trabajador) 8월 15일:성처녀의 날(Fiesta de Virgen) 10월 12일:신대륙 발견 기념일(Fiesta de HispanidadDescubrimiento) 11월 1일: 12월 6일:헌법의 날(Fiesta de Constituci ) 12월 8일:성모의 날(Fiesta de inmaculada) 12월 25일:성탄절(D de Navidad) 스페인의 부활절 휴일은 마드리드 지역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이며 바르셀로나 지역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각각 4일 동안이다. 스페인의 국경일이란 10월 12일과 12월 6일밖에 없다. 그 외 지역별로 각종 경축일이 많으며 지역에 따라 모두 다르다. 또한 연간 공휴일 숫자는 14일 이내로 제한되어 있으며 지방에 따라 지방 공휴일 날짜가 상이하다. 7. 통화 화폐 단위는 페세타(Peseta, Pts.)이다. 우리 돈과는 1:7 정도로 1페세타가 7원 정도 된다. 회계 년도는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이다. 8. 주택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모두 건축물 고도 규제가 도시 미관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매우 강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도심지 내에는 고층 건물이 드물고 7~8층 높이의 건물들이 연이어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래층은 대부분 상점이나 사무실로 이용되고, 위층은 주거용으로 이용된다. 도시 인구의 점진적 팽창으로 도시 주변에 신규 주택 단지가 조성되나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없다. 마드리드의 북구 공원(Parque Norte) 주변에 형성되어 있는 아파트 단지가 유일한 곳이라 하겠다. 대부분 신규 주택 단지에는 단독 주택이나 연립 주택이 건립되며, 고급 주택 단지에는 단독 주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단독 주택을 마드리드에서는 카사(Casa) 또는 찰렛(Chalet)이라 부르고 바르셀로나에서는 토르레(Torre)라고 부른다. 시내 곳곳에 단독 아파트 건물이 많다. 어떤 형태의 아파트든 1층은 주거 공간으로 이용되지 않고, 수위실, 각종 계량기 설치, 주민 공동 연회장 등의 시설물로 채워져 있다. 아파트에는 반드시 수위가 있으며 건물 출입문은 항상 잠겨 있다. 방문자나 출입자는 모두 도어폰으로 아파트 출입문에서 주인과 직접 대화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주택 임차료는 매우 높은 편으로 30∼35평 정도의 가구가 포함된 아파트로 조용한 주택 단지에 있을 경우 월 2000불 정도이다. 임차는 주로 부동산 중개상을 통해 이루어지며, 중개 수수료는 마드리드 지역에서는 1개월분 임차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바르셀로나에서는 연간 총임차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여야 한다. 이 경우 부가 가치세는 따로 지불해야 한다. 임차 기간은 1년이 대부분이며, 쌍방의 이의가 없으면 차기 1년으로 자동 연장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반드시 계약서에 명시되어 체결된다. 계약서 작성시 부착되는 수입 증지(Sello) 비용을 임차자가 부담하여야 하는데 약 300불 정도가 든다. 계약 만료로 퇴거하게 되면 모든 집기와 가구류를 원상태로 정돈하고 복구해 놓아야 한다. 주택은 입주시와 마찬가지로 깨끗이 청소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하는 모든 비용을 현금으로 환산하여 입주 보증금에서 공제받게 된다. 그러므로 입주할 때 반드시 집기, 가구류 목록을 꼼꼼하게 확인하여 파열, 손상 등 하자 부분을 사전에 아헨씨아(Agencia)와 함께 확인하여 목록에 명시해야 한다. 9. 교통 지하철 마드리드 및 바르셀로나 지역은 지하철이 잘 발달되어 있다. 지하철 역은 다이아몬드 안에 `M'자 표시가 되어 있다. 요금 지불 방법은 서울과 같다. 택시 마드리드 택시는 흰색이고 바르셀로나 택시는 검정에 부분적으로 노란색이며, 모두 한 가지 종류의 요금 체계로 통일되어 있다. 기본 요금 체계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으나 대략 기본 요금이 2불 정도로 비교적 싼 편이다. 거리·시간 병산제이다. 거리의 어디에서나 빈차를 손을 들어 잡을 수 있으며 전화로 부를 수도 있다. 택시 숫자가 많으며, 운전수와는 대부분 영어로 대화할 수 없다. 현지어를 모르면 행선지를 적어서 운전사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다. 거리의 지번 표시가 체계적으로 되어 있어 주소만 있으면 어디라도 택시를 이용하여 갈 수 있다. 또한 내릴 때 영수증을 요구하면 받을 수 있다. 버스 깨끗한 노선 버스가 거의 모든 지역을 운행한다. 현금을 지불할 수 있으나, 은행에서 살 수 있는 버스표를 주로 이용한다. 현금을 지불하고 거스름 돈을 달라면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또한 정거장 안내 방송이 없어 승객이 스스로 알아서 하차해야 한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는 교통 체증이 심하며 중심가는 출퇴근시에 매우 혼잡하고 지체가 심하다. 마드리드에는 두 개의 환상 도로(M30, M40)가 있으나 중간 일부 지역은 중단되어 있다. M30(에메 트레인타)은 기존의 환상 도로이며 M40(에메 쿠아렌타)은 최근 신설된 것으로 보다 더 외곽에 위치한다. 바르셀로나는 1992년 올림픽을 기하여 건설한 환상 도로가 도시를 완전히 한바퀴 돌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교통 순환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환상 도로 건설로 도심 교통량이 30%가량 감소하였다. 대부분의 도로가 일방 통행이며, 도심 간선 도로만이 왕복 통행으로 되어 있다. 특히, 바르셀로나는 오래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방형 도로로 형성되어, 도로는 좁으나 교통 소통이 비교적 원활하다. 간선 도로에는 대부분 복판 도로가 있고 그 다음에 가로수가 심어진 보도가 있고 다시 갓길이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마드리드 시내 복판을 남북으로 가르는 대로인 빠세오 델라 까스떼야나(Paseo de la Castellana)와 바르셀로나 시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대로 아베니아 디아고날(Avenida Diagonal)을 들 수 있다. 10. 교육 의무 교육 기간은 8년(E.G.B. 과정)이다. 학제는 다음과 같다. 구아르데리아(Guarder ):유아원, 탁아소로 5세 미만의 어린이가 다닌다. 파르볼로스(P vulos):유치원으로 4∼5세 미만의 어린이가 다닌다. 공립 초등 학교 가운데 일부에 설치되어 있으며, 주로 사설 유치원이 대부분이다. 초등 학교(E.B.G.):6∼14세로 8년 과정의 의무 교육 기간을 다니게 된다. 에두까시용 바시까 헤네랄(Educaci B ica General)의 약자로 E.B.G.라 부르는데 `종합 기본 교육'으로 해석된다. 보통 콜레히오(Colegio)라고 부른다. 중학교 및 인문계 고교 과정(B.U.P.):3년 과정으로 바치예라또 우니피까도 뽈리발렌떼(Bachillerato Unificado Polivalente)의 약자로 B.U.P.로 표기한다. 흔히 `인스티투토(Instituto)'라고 부른다. 실업계 고교 과정(F.P.):4년 과정으로 직업 교육을 주목적으로 2년으로 구성된 두 개의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포르마씨용 쁘로페씨오날(Formaci Profesional)의 약자로 F.P.로 쓴다. `인스티투토'라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공업, 상업, 간호, 교사 등 여러 가지 직업 훈련 교육을 받는다. 대학교 진학 과정(C.O.U.):1년 과정으로 B.U.P.의 수료 후 대학 진학을 위해서 거쳐야 하는 단계로 동과정을 수료해야 셀렉띠비닫(Selectividad)이라고 불리는 대학 입학 예비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이 시험은 우리 나라의 수학 능력 시험과 유사한 것으로 10점 만점에 5점 이상이면 통과되며, 5점 미만은 낙제로 처리된다. 시험은 매년 정부에서 추첨을 통해 2∼3개 과목을 정하여 실시하며 동 점수로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대학(Universidad):학사 과정(Diplomado)은 최소 3년이 소요되며 에스꾸엘라 우니베르씨따리아(Escuela Universitaria)라는 우리 나라의 전문 대학과 유사한 기관을 졸업하는 경우 및 일반 대학에서의 3년 과정 수료 후 받는 학위이다. 석사 과정(Licenciado)은 최소 5년이 소요되며 일반 대학 과정으로 3년만 수료시는 디쁠로마도(Diplomado)를 받으며, 과정 수료 후 거의 논문을통과해야 한다. 에스꾸엘라 우니베르씨따리아(Escuela Universitaria) 수료 후 편입이 가능하나, 운 꾸르소 뿌엔떼(Un curso Puente)라고 불리는 유관 학과만 편입할 수 있다. 박사 과정(Curso Doctorado)은 최소 2년이 소요된다. 그리고 박사 논문 과정(Tesis Doctoral)의 기간은 무제한이다. 9월에 개강해서 이듬해 8월에 종강한다. 대학은 별도의 입학식 및 졸업식 행사가 없다. 1980년대 이전에는 제1외국어로 프랑스어를 가르쳤으나, 현재는 영어로 바뀌었다. 영국 문화원을 비롯한 각종 영어 학원이 영어 교육의 붐을 타고 성업중이며, 외국인 상대의 스페인어 교육 기관은 콤플루센세(Complutence)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가 사설 기관이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사용 가능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영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있으며 컴퓨터 사설 강습 기관도 성행하고 있다. 11. 통신 전화 전반적으로 전화 사정이 여의치 못하며, 시내 중심지에서 전화 전화 비용은 국제 전화 요금이 EC역내의 독일, 영국보다 3배 가량 비싸며 시내 전화 요금 또한 약 50% 가량이 높은 편이다. 우리 나라와는 직통선이 1985년께 개설되었는데, 회선이 충분치 못하여 팩시밀리나 전화 이용상 불편한 점이 많다. 스페인에서 국외로 전화하는 번호는 `07'이고 그 다음이 국가 코드에 개인 전화 번호를 누른다. 즉 서울에 전화할 경우 07822XXX XXXX이다. 국내 전화는 같은 지방(프로빈시아) 내에서는 지역 번호 없이 사용하나 다른 지방으로 전화하려면 반드시 지역 번호를 먼저 누르고 개인 전화 번호를 누른다. 모든 지역 번호는 9부터 시작한다. 즉 마드리드는 91, 바르셀로나는 93 등이다. 스페인의 국가 코드 번호는 34이며 국외에서 스페인으로 전화하려면 34번 뒤에 지역 번호를 누르는데 이 때 반드시 9를 없애고 누른다. 즉 서울에서 바르셀로나로 전화를 할 경우 001(2)343XXX XXXX이다. 팩시밀리 일반 전화에 팩시밀리를 연결하여 사용할 수 없으며 전화국에 팩시밀리용 전화를 별도로 신청해야 한다. 통신은 국가 기간 산업으로 국영 기업인 뗄레포니까(Telef ica)에서 관장한다. 전화기를 비롯한 모든 통신 기기는 정부 안전 규격 심사인 오몰로가씨용(Homologaci )을 통과하여 증명서를 취득하여야 판매 및 유통이 가능하다. 12. 관광지 마드리드 1561년에 스페인의 행정 수도로 지정되었다. 팔라시오 레알(Palacio Real 왕궁):18세기에 보르봉 왕가에 의해 축조되어 1931년까지 왕실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왕의 공식적인 접견 및 연회장으로만 이용하고 있다. 플라샤 마요르(Plaza Mayor):17세기에 건립된 마드리드 구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한다. 현재는 많은 스페인 고유 풍물이 집결되는데, 악사, 화가, 전통 공예품 판매상 등이 모여든다. 그란비아(Gran v ) 및 푸에르타 델 숄(Puerta del Sol):스페인의 진수를 거리를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구시가 번화가이다. 영화관, 오래된 호텔, 공연장, 식당 등이 밀집해 있으며 관광객의 발길로 부산한 지역이다. 프라도(Prado) 미술관:중세 회화 및 고야(Goya), 엘 그레코(El Greco), 벨라스케스(Vel ques)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달리(Salvador Dali), 미로(Joan Mir , 피카소(Picasso) 등의 현대 회화 중심의 레이나 소피아(Reina Sofia) 박물관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 회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일요 벼룩 시장인 라스트로(Rastro)에서 스페인의 서민 생활을 느낄 수 있다. 세고비아(Segovia) 스페인 최후의 고딕 양식의 카테드랄과 『백설 공주』의 무대로 유명한 알카사르(Alc ar) 성으로 유명하다. 로마 시대의 수로인 아쿠아둑토 로마노(Acuaducto Romano)는 길이가 728m이고 높이가 28m인 석조물로 세계적인 명물이다. 톨레도 필립 2세가 마드리드로 천도하기 이전(1561)의 중세 스페인의 수도였다. 중세 이전의 도시 형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금 세공 제품이 유명하다. 아랑훼스(Aranjuez), 라그랑하(La Granja) 스페인 왕가의 여름 별장이 있는 곳으로 궁전 주변의 정원에서 스페인 정원 양식을 감상할 수 있다. 엘에스코리알(El Escorial) 펠리페 2세에 의해 프랑스 군관의 산 켄틴(St. Quetin)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557년부터 지어진 스페인의 르네상스 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인 모나스테리오(Monasterio:수도원)가 있다. 모나스테리오는 왕궁 및 국왕 전용 신전(Royal Pantheon)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독특한 형태이다. 대서양 연안의 북서부 지방은 프랑스와의 접경인 바스크 지방에서 갈리시아 지방까지의 대서양 연안 지역으로 일찍이 산업이 발달해 왔고 여름의 서늘한 기후로 여름 휴양지가 많다. 연중 비가 많이 오고 비코스 데 에우로파(Picos de Europa)를 비롯한 산이 많아 스페인 중남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관광지는 다음과 같다. 파이스 바스크(Pa Vasco) 에타(ETA)라 불리는 과격 테러 집단에 의한 독립 운동으로 스페인에서 매년 수십 차례의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바스크어를 사용하며 공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 빌바오(Bilbao) 등의 도시가 있다. 칸타브리아(Cantabria), 아스투리아(Asturia) 산탄데르(Santander), 오비에도(Oviedo)로 대표되는 이 두 자치주는 여름 휴양지로 유명하다. 삐꼬스 데 에우로빠(Picos de Europa)가 위치한 산악 지대로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갈리시아 주의 한 도시로 성 야곱의 무덤을 발견한 이래(9세기) 유럽인의 성지 순례지가 된 도시이다. 산티아고(Santiago)의 카테드랄은 스페인 최고의 로마네스코 양식의 건물이다. 은세공 제품 등 순례자 대상 수공업이 발달하였다. 갈리시아 북부 포르투갈과 접경한 갈리시아는 해산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여자들이 검은색 옷을 즐겨 입고 이로 인해 스페인 타지역의 마녀 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다. 여자들이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목재업, 조선업이 발달하였다. 안달루시아는 우리의 일반적인 스페인에 대한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지역으로 강렬한 태양과 드넓은 벌판이 있는 농경 지역,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하얀 마을들의 모습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아랍의 문화 유산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지역으로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교 문화의 진수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관광지는 다음과 같다. 그라나다(Granada) 이슬람교 문화 건축 양식의 화려함과 정교함을 간직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이다. 알바이신 지역의 집시 거주 지역이며 그라나다 시내 중심의 시장에서는 싸고 멋진 수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플라멩코 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코르도바 레콘키스타(Reconquista:국토 회복 전쟁) 이전 아랍 세력 지배하의 이슬람교 문화 중심지이다. 원래 이슬람교 사원이던 메즈키타의 웅장함과 세련됨에 저절로 감탄하게 되며 사원 내 예배당의 모습에서 기독교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대결 및 조화를 볼 수 있다. 세비야 안달루시아 지역 최대의 도시이며 1992년 국제 박람회 개최지로 마드리드와 연결된 고속전철 AVE가 운행되고 있다. 세계 3대 카테드랄(대성당) 중의 하나가 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과달키비르 강변의 야경이 매우 아름답고, 세마나 산타(Semana Santa 성주간:부활절 기간) 1주일 후 열리는 세비야의 봄축제로 유명하다.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지중해 연안의 해변 지역을 통칭하는 국제적 여름 휴양지로 천혜의 자연 환경과 강렬한 태양이 어우러진 지역이다. 해변의 하얀 마을들은 평화로운 광경을 보여 준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 및 지중해 연안은 스페인 제1의 상공업 지역이다.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으로 역사적으로 로마 시대 이후부터 이베리아 반도의 상업과 공업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낙천적인 스페인 사람들에 비해 다소 이기적이고 폐쇠적인 성격을 보인다. 공식어로 카탈루냐어를 사용하고 있다. 약 100년 전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건축중인 Sagrada Familia(성가족 성당) 등 20세기 초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Gaud 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근교 몬세랏(Monserrat) 수도원은 카탈란의 성지이다. 가우디 작품 성가족 성당(Sagrada Familia):1882년에 짓기 시작하여 100년 이상이 걸린 미완성 성당이다. 구엘(G ll) 공원:가우디 작품을 대표하는 시립 시민 공원이다. 페드레라(Pedrera:돌집):물결 모양의 석조 장식으로 유명한 사무실용 건물이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o):물결 모양 장식의 다색 자기와 유리 장식이 유명한 건물이다. 고딕 지구 바르셀로나 시내에 13∼15세기께 카탈루냐 고딕 양식 건물이 밀집된 곳이다. 바르셀로나 대성당:14세기에 건립된 카탈루냐 고딕 양식의 대사원이다. 피카소 박물관:피카소의 유년, 소년, 청년 시대의 습작과 데생이 소장되있다. 람블라스 거리:산책로로 구시가지의 중심 거리이다. 콜럼버스 기념상:1888년 바르셀로나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높이 50m의 탑이다. 몬쥬익(Montjuic) 언덕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이 위치한 언덕으로 꼭대기에는 군사 기지로 쓰이던 몬쥬익 성이 있고 주변에 명소들이 위치한다. 국립 궁전:현재 카탈루냐 미술관으로 사용되며 교회 벽화의 컬렉션이 유명하다. 미로 박물관:1975년 개관 당시 기증한 미로 작품 300여 점 전시되어 있다. 스페인 촌:우리 나라의 민속촌과 유사한 인공 마을로 스페인 각 지방의 건축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몬세랏(Montserrat) 바르셀로나 근교의 고도 1241m의 암산으로 `톱 모양의 산'이라는 뜻이다. 산중턱에 있는 베네딕트파의 몬세랏 수도원은 해발 72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는 마리아 성녀 에르미따(Ermita)를 빅(Vic)시 주교와 리뽈(Rippol) 수도원장이 수도원을 지으면서 1082년에 완공되었다. 또한 카탈루냐 수호성모인 `몬세랏(Montserrat)'상을 성당에 모셨기에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소년 성가대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발렌시아 카탈란, 마드리드 자치주 다음의 스페인 제3의 공업지로 목재, 가구업 중심지로 스페인의 제3의 도시이다. 매년 3월 19일께 치르는 불축제(Las Fallas)로 유명하다. 코스타 블랑카(Costa Blanca), 코스타 브라바(Costa Brava) 지중해 연안의 해변으로 해안을 따라 해수욕장을 비롯한 도시들이 발달하였다. 무르시아(Murcia) 엑스트레마두라(Extremadura)는 스페인에서 가장 빈곤한 농업 지역으로 로마 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로마 시대 원형 극장, 원형 경기장 등이 남아 있으며 로마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카스티야 지역은 마드리드 지역을 둘러싼 카스티야 레온과 카스티야 라 만차 자치주로서 넓은 벌판을 갖고 있는 스페인의 중심이다. 카스티야 라 만차는 동키호테의 무대가 되었던 지역이다. 주요 관광지는 다음과 같다. 살라망카(Salamanca) 대학 도시로 젊은이의 생기가 넘쳐 흐르는 도시이며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플라사 마요르(Plaza Mayor)가 있는 지역이다. 살라망카 대학의 화차다는 스페인 플라데스크 양식의 정수이다. 부르고스, 레온 부르고스에는 스페인 최고의 고딕 양식의 카테드랄이 있으며 스페인 신학 연구의 중심지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Santiago de Compostela) 성지 순례 길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며 프랑스와의 국경에서 콤포스델라까지의 카미노(Camino:길)에서 스페인 로마네스크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아라곤 등의 북부 지역은 다음과 같다. 팜플로나(Pamplona) 매년 7월 초 소몰이 축제로 유명하다. 사라고사(Zaragoza) 아라곤 주의 주요 공업 도시이며 롤랑의 노래로 유명하다. 리오하 지역(La Rioja) 리오하 포도주로 유명하며 포도주 제조 공장 및 보데가(bodega:창고)가 많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