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토요일아침 빗줄기가 제법 굵게 비가 내렸습니다. 이제까지 에어콘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이번 여름은 정말 에어콘 생각이 간절하더군요. 그래도 저를 비롯해서 아내와 아이들도 잘 버텨 주었습니다.
올 여름 초복에는 연구단 식구들과 보신탕을 커억하면서 먹었는데 다들 좋아하더군요. 낮술이 조금 과했지만 말입니다. 복(伏)이라는게 여름더위에 세 번을 엎어진다는 뜻이라네요. 하지로부터 세 번째 경일(庚日)은 초복(初伏), 열흘 뒤인 넷째 경일은 중복(中伏), 입추로부터 첫째 경일은 말복(末伏)이라 한답니다. 경(庚)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일곱 번째 천간(天干)을 말하는데 일년 중에 가장 더위가 심한 때이기도 합니다. 밥, 상추, 삽겹살, 쌈장, 소주한두병 싸들고 아이들과 함께 계곡에 발을 담그면 사실 그만이지요.
복(伏)에는 벼가 매일 한 살씩 먹는다 합니다. 벼는 줄기마다 마디가 셋 있는데 복날마다 하나씩 생기며 그것이 벼의 나이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몰랐지요. 마디가 셋이 되어야 이삭이 패게 된다는군요.
근데 이번 여름에는 호러영화들이 영 장사가 않되었다는군요. 하두 이놈의 세상이 호러영화 뺨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왠만한 무서운 장면에도 끄떡않게 되었다는거예요. 호러영화 닮아가는 세상입니다.
저는 호러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컴컴한 극장에 돈 내고 앉아서 억지로 조장하는 피가 튀고 시체가 난무하는 끔찍한 영상을 보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호러영화는 음향효과가 90%라지요.
유열철을 기억하시나요. 더위에 잊어버린건 아닐테지요. 아 이놈이 글쎄 잡히지만 않았으면 100명 정도를 죽였을 거라고 했다네요. 그리고 여자사체에서 어느 부위를 먹기까지 했다고 했다네요. 또 자신이 직접 만든 흉기의 성능을 시험해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르기에 앞서 동물을 대상으로 살인연습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답니다. 무얼 하던지 연습이야 해야겠지만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유영철은 부산·경남지역 부유층 9명을 살해한 정두영에 대해 다룬 모 월간지의 기획기사를 읽고 연쇄살인 계획을 처음 세웠다고합니다.
누구는 이런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개심 때문에 저질러지는 연쇄살인이나 테러를 두고 선진국형 범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물질만능주의에 젖어있던 우리네 삶이 경제적 파탄과 맞물려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아껴쓰고 나눠쓰던 미덕을 버리고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 데 익숙해져버린 천민자본주의의 환부가 곪아터진 거지요.
이런 얘기들을 쉽게 접할 수 있지요. 한때 씩씩하게 돈 잘 벌고 술 잘 먹던 사내가 직장을 잃었습니다. 그가 집에서 숨죽이는 동안 여자는 돈을 위해 다른 사내들 앞에서 알몸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치욕적인 상처를 입은 사내는 세상을 향해 복수를 꿈꾸고….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평온해야 할 가정이 파괴되고 아이들은 버려지고 있는 겁니다. 그 와중에 가진 자에 대한 저주의 골은 깊어가고, 해체된 가족의 구성원들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해버리는 거지요.
우리가 정녕 호러영화보다 더 끔찍한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돈보다 소중한 것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많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비록 삶이 남루해진다 하더라도 그 불편함을 참고 견디면서 서로 아껴쓰고 나눠쓰는 미덕을 키워야 합니다. 영화 '트로이'에서 헥토르는 전쟁터에 나서는 병사들에게 강하게 호소합니다. 트로이의 남자들은 '신을 섬기고, 내 여자를 사랑하고, 나라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그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의무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지던 트로이의 병사들처럼 오늘 우리도 좀더 담백해져야 합니다. 저 흑백영화 시대의 찰리 채플린처럼 약간 덜 떨어진 표정으로 세상을 껴안으면서 살아갈 일입니다.
무덥고 무더운 날의 연속입니다. 더위를 쫓기 위해 보는 호러영화가 더 이상 더위를 쫓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서운 세상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가족영화 한 편이 보고 싶습니다. 다시한번 '시네마천국'을 권해 드립니다. 좀 오래되었지만요... (정말 보고 싶은 분들은 연락주세요. CD로 구워 제공해 드립니다.)
---> 오늘의 추천 한마디 : 더워도 할일은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