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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야고보의 까미노 뽀르뚜게스와 성모 마리아의 파띠마 순례 길
영국인의 집에서 나온 후 계속되는 산길.
안내 표지가 뜸한 데에서 문득 방향 점검을 하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유할 까샤리아스도, 목적지 파띠마도 현 위치(영국인의 집근처)에서는 일치한 서남쪽이어야 하며,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내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은 동남쪽이니 놀랄 수 밖에.
지근의 까뻴라(Capela/R. Jerónimo Soares Barbosa) 앞에서 걷기를 중단하고 원인 규명을 시작했다.
나는, 안시앙의 볼베이루스에서 역 방향 까미노로 시작은 하지만 곧 까샤리아스(Caxarias/지자체 Ourem
의 freguesia)를 경유하는 파띠마 길이 될 것임을 의심할 여지 없이 안시앙을 떠났다.
한데,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황당하게도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동남방향의 지자체 알바이아지리(Alvaiázere/Leiria縣)를 거쳐 지자체
또마르(Tomar/Santarem縣)로 가는 까미노 뽀르뚜게스가 아닌가.
파띠마가 성지로 우러르게 되기 전에는 유일한 까미노 뽀르뚜게스였는데, 1917년의 파띠마 성모 발현 이후
약간 홀대받게 된 길이라 할까.
알바이아지리에서 까샤리아스를 경유, 파띠마에 갈 수도 있고 또마르에셔 파띠마로 직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파띠마가 목적지 중 하나라면 이 루트를 경유하는 것이야 말로 도로(徒勞)다.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안시앙에서 여기까지의 도로(徒勞)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적은 노력으로 가능했으니까)
도로하게 된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위성 구글맵을 추적하다가 발견한 것이 파란 '꺼꾸리ㄴ자' 애로였다.
까미노 뽀르뚜게스를 이탈해 파띠마로 직행하려면 우측 길로 가라는 이 안내표지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역방향 표지인 파란 화살표와 파띠마 안내표지가 함께 하기를 계속했기 때문에 방심했을 것이다.
파띠마 표지가 사라지고 파란 애로가 단독이었다면 아마도 그 순간에 착오를 발견하게 되었을 텐데.
이 길이 파띠마 가는 길이 전혀 아니라면 잘못 간 길이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루트는 여러 개의 바른 길 중 하나일 뿐이다.
단지 내가 선택한 루트와 다를 뿐이라면 원점으로 회귀해야 할 이유가 빈약하지 않은가.
주의 깊지 못했거나 어떤 착각으로 빚어진 착오였을 뿐, 틀린 루트가 아닌 것만은 틀림 없으니까.
바로 잡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과오가 아니지 않은가.
혼란스럽지 않으려면 '착오'(錯誤)와 '과오'(過誤)의 개념 정리가 필요하겠으나, 당장에 내가 해야 할 과제는
동남길(까미노 뽀르뚜게스)과 서남길(안시앙~파띠마길) 사이가 더 벌어지기 전에 갈아타는 일이다.
걷는 것이 유일한 일과인 늙은 뻬레그리노에게는 조금 많이 걸은 것이 도로가 되지 않는다.
손해를 입은 것도 아니며, 더구나 영국인과의 조우를 도로(徒勞)로 절하함은 야박한 치부일 것이다.
시장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속담대로 식사를 했다.
2시간여라는 뜻 밖의 허비로 인해 여유로울 수는 없게 되었으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잖은가.
누추한 납골당이 연상되던 까뻴라(capela)도 풍부한 먹거리로 식사할 때만은 분위기 있는 식당이었다.
아침 식사를 겸한 점심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선하심후하심인가.
이 까뻴라가 식사할 때와 전혀 다르게 잠시라도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게 하는데다 촉박해진 시간의
초조감 때문에 일어서려 할 때, 이 기회를 놓칠 새라 원효대사가 참견을 해왔다.
한중 국경지역에서 터득했다는 자기의 전문 특기(頓悟)로 훈수를 해온 것이다
"마음 먹기 달렸다"(心生種種生心滅種種滅)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접근하라는 메시지다.
자신만만한 척은 하지만, 양립하고 있는 사도 야고보(Santiago)의 까미노와 성모 마리아의 파띠마(Nossa
Senhora de Fátima)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이 시점의 내게는 절묘한 훈수였다.
길을 나설 때 바보처럼 피식 웃음짓게 한 그의 이 훈수.
착오를 일으키기는 했으나 잉글리스와의 만남이 가능했으므로 이 하루가 무던하고 무탈하게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이 '그 분'의 의중일 것이다.
기독교의 까미노에서 원효(元曉大師)의 훈수를 받는, 길들지 않은 망아지에 다름 아닌 내 행보에 전혀 괘념
하지 않는 무한 도량의 분.(Western Rodeo처럼?)
횡적 관계에서는 무한 방임하는, 유일한 종적(수직) 관계의 '그 분'이 까미노뿐 아니라 내 인생 행로에서 내
유일한 뒷 배경임을 의미한다.
평상시로 환원은 되었으나 까미노가 소교구 안시앙을 벗어나기 전에 파띠마 길로 갈아탈 수는 없게 되었다.
갈아타기 위해서 까미노 뽀르뚜게스를 떠나야 할 곳으로 잠정 설정한 지점은 까뻴라에서 3km쯤 남쪽이다.
한대, 당도한 역사적 명소(Camino Portugues de Santiago/까뻴라에서 1.1km점)가 유감스럽게도 이미
프레게지아 안시앙 지역을 벗어나 소교구 샹 지 꼬시(Chão de Couce)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1.8km의 남행을 계속하여 까미노 뽀르뚜게스의 다른 역사적 명소에 당도했다.
소교구 뽀자플로리스(Pousaflores)인데 일대 어디에도 설명이나 해명의 글(안내) 한줄 없는 명소.
허허하고 볼품 없는 들길일 뿐인데 어찌하여 감당 못할 '명소'라는 묵직한 이름을 가져 시비당하고 있을까.
거푸 거쳐온, 명소 아닌 명소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갈길 바쁜 늙은 뻬레그리노의 소임이 아니다.
(납득될 때까지 파고드는 알레망이라면 능히, 기꺼이 할 일이겠지만)
갈아타기 전주(前奏)는 까미노를 따라 잠시 남하하다가 까미노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했다.
우측, 1시 방향의 이름 없는 길을 따라 1km 미만의 까자이스 마두루스(Casais Maduros)를 지났다.
이어서 600m를 서서남하한 후 CM1065도로 1.3km를 서진, N348도로에 진입함으로서 놓쳤던 파띠마 길
의 복귀 작업을 모두 마쳤다.(착오방지 힌트/ 안시앙 다운타운에서 N348도로를 고집하면 된다)
프레게지아 안시앙은 벗어났지만 지자체 안시앙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위안을 삼을까.
여기는 프레게지아 뽀자플로리스 지역이며 뽀자플로리스는 지자체 안시앙의 프레게지아니까.
까미노와 파띠마 길 간의 도로(徒勞)도 2.8km의 단거리로 하여 끝났고.
변명이 되고 말았는가
인기 루트 외의 까미노에서 길 선택의 오류로 원점 회귀하기는 병가의 상사(兵家常事)처럼 흔한 일이다.
뻬레그리노스에게 만남은 고사하고 인적마저 없는 날과 실패는 비례적이기 때문이다.
묻거나 안내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며 1km 내외가 가장 흔한데 회귀하면 도로(徒勞) 2km를 훌쩍 넘긴다.
듣기 따라서는 변명이 될 수 있는 말이지만 도로 거리 2.8km는 별것 아님을 의미한다.
복귀 지점 지근의 N348도로변에 자리한 까페(Cafe Central)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남행할 수록 무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는데다 오전을 어이없는 일에 허비함으로서 저하해 가는 체력을 붙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으니까.
때와 장소 불문, 많이 먹고(특히 육류) 많이 마시는 것이 나만의 비방인데 조치는 커녕 문을 열다가 말았다.
앉거나 서있는 사람으로 가득 찬 넓지 않은 실내.
사람의 열기가 에어콘의 냉기를 압도하는 듯 후텁지근하고 정화되지 않은 공기에 질식할 것 같아서 였다.
음식점 영업과 관계된 어떤 토의가 진행중인가.
마취되고 감각이 마비되면 있을만 해지는가.
자세히 살필 겨를 없이 열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에 더 할 말이 없다.
각각으로 체력의 저하가 느껴진다는 것 말고는.
없었느니만 훨씬 못한 해프닝(happening)이었다.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도 이 해프닝 이전과 이후가 완연히 달랐으니까.
까미노를 획정하던 시대(중세)의 길과 전 세기지만 100년이 못된 파띠마의 길 사정이야 말로 판이하다.
현대 문명의 산물인 차량 이전 시대에는 양의 동서를 가릴 것 없이 우-마차의 통행로가 최고의 도로였으며,
대형 전쟁 외에는 넓고 탄탄한 길이 필요하지 않았다.
대단위의 군대 이동과 그들에게 필요한 물자와 전리품의 수송을 위한 대로 외에는.
이베리아 반도의 까미노 중 일부도 로마제국이 놓은 대로들이 있다.
포도주를 비롯해 많은 전리품(收奪物)들을 수송한 도로다.
애오라지 두 발로 걷는 까미노도 산야와 기타, 가리지 않고 두 발이 걸어갈 수 있는 환경과 조건만 구비되어
있으면 까미노의 자격이 있었다.
순례도 까미노처럼 걷는 행위가 전제된 단어다.
다리가 여의롭지 못하면 신체의 다른 부분을 동원하고 몸 전체를 투입해서라도 걸을 수만 있으면 절로 길이
되고 왕래가 잦게 되면 정착을 하게 되며 미구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각종 승용 자동차와 운-수송 차량, 다양한 작업용 이동 장비들의 등장에 따라서 도로의 신규 개설과
업 그레이드가 간단 없게 되었다.
특정 목적을 가진 길의 지정과 지목도 선택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 파띠마 길도 개설이나 보완 없이 위의 방식으로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20c와 더뷸어 개시되었다.
그래서, 20c 초반(1917년)이 시점인 파띠마 길은 도로의 개설과 개편이 있을 때마다 홀대받아 누더기가 된
까미노와 달리 평탄하고 온전하다.
까미노에서 직면하는 가시밭길은 불가피한 노정(路程)일 뿐 선택하는 조건이 아니다.
누가, 평탄한 길을 인위적(순례 효과의 극대화를 이유로) 가시밭으로 만든다면 그 길은 순례와는 무관함은
물론 호사가의 반(反) 까미노일 뿐이다.
잘 닦여진 도로로 일관하는 파띠마 길에 불편한 심기 또는 미안한 마음일 이유가 없다는 말인데, 나의 다음
행보를 염두에 둔 변명과 옹호가 되고 말았는가.
몸이 천근처럼 무겁고 둔한, 이 돌연한 현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하루를 순조롭게 마감할 수 있겠는가.
불안한 행보였다.
현 위치(Almoster/지자체Alvaiazere의 freguesia)는 내 하룻길인 안시앙~ 까샤리아스 길의 3분의 1 남짓
에 불과한데 하루의 반이나 지났기 때문이었다.
파띠마 순례길(Pilgrimage route)
지자체 안시앙을 벗어났음을 의미하는 프레게지아 알모스떼르(Almoster)의 '환영'(歡迎/ bem bindo seja
prudente/입간판)도 달갑지 않았다.
하루를 뻬레그리노의 본분(보행) 이행을 통한 열락보다 본분 외적 일에 매달리는 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전은 황당하게도 길 규명에 바쳤는데 오후는 체력 저하의 돌발적 현상에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으니.
연속적인 이같은 현상을 쉬이 극복하지 못한다면 내 까미노 인생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N348 도로는 무르딸(Almoster의 lugar)을 지나 남하를 계속한다.
유칼립투스 숲, 올리브와 포도 등 소규모 농원들이 노변에 자리한 길.
광대한 구릉지대에 부분적 절개로 조성되어 완만하고 완곡한 길이며, 걷기 편하고 지루하지 않은 길과 달리
절개지들은 낙제점 관리로 볼품이 사납다.
남하하던 N348도로가 남남서진(우회전)으로 바뀌면서 N350도로가 갈라지는 지점까지, 까미노를 벗어난
후 3.5km쯤을 걷는 동안의 파띠마 길 느낌이다.
N350도로가 분기하는 3거리에서 직진함으로서 파띠마 길에서 첫 오류를 범했다.
무심코 N348도로를 따랐기 때문에 발생한 잘못이다.
지근의 식료품점(Serrafino-Comércio de Azeites) 앞에서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 것이 다행이었다 할까.
지도를 꺼내게 했고, 그래서 바로잡게 했으니까.
평소의 오류는 길을 조금 더 걸었을 뿐이지만, 어렵사리 지탱하고 있는 체력에는 악 영향일 뿐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절대적 금기사항이건만.
정오에는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대로 점심식사를 했다.
파띠마 길 첫날 구간 중 이 지점 이후의 루트에는 약간의 장단점이 있는 3개의 코스가 있는데, 이번 넘어진
김에는 현재 상황의 내게 필요한 코스를 재검토했다.
평소라면 경관 우선이지만 체력 문제가 심각한 현 시점에서는 낮은 고도와 짧은 거리가 최고선이니까.
대부분의 방문(참배) 수단이 발이 아니고 대소 차량이기 때문에 까미노 같은 위엄이 없으며, 도로일 뿐이기
때문에 편의 우선으로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N350도로의 200m 남짓 지점.
돌기둥 십자가(Cruzeiro em Almoster)를 꼭짓점으로 예각(銳角)을 이루는 소로가 우측으로 분기한다.
남서진하는 직선로 N350도로의 1km쯤에서 합류와 분기를 거듭하는 이그레자 길(R. da Igreja)이다.
신작로(新作路/N350)의 등장으로 자투리 꼬불길로 남게 되었을 뿐 애초부터 있던 옛길일 것이다.
좁은 길이라 해도 노변에 탁아소(Associação Social, Cultural e Recreativa de Almoster)가 있고 교구
교회(Igreja Paroquial de Almoster)가 있는 것은 마을을 이룬지가 오래 되었음을 의미하니까.
특기할 점은 소교구(freguesia) 알모스떼르가 끝나고 프레이시안다, 히베이라 두 파히우 이 포르미가이스
(Freixianda, Ribeira do Farrio e Formigais/2013년 3소교구의 합병)가 시작된다는 것.
그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나방강(Rio Nabão)이다.
안시앙의 다운타운에 진입할 때 건넜던 강이며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곳이 나방강변이다.
길 양편애 설치된 긴 핸드레일(handrail)이 다리임을 알려줄 뿐 강은 우거진 숲 때문에 보이지 않는데, 이
경계는 단순한 프레게지아 간의 경계가 아니다
지자체 알바이아지리 와 오렝(Ourem)의 경계가 되며 레이리아와 산따렝의 현계니까.
오렝은 현 위치의 지자체일 뿐 아니라 파띠마의 지자체다.
파띠마가 와락 가까이 느껴지며 중간 숙박소 지역인 까샤리아스가 지근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지쳐있는 몸에는 다행이며 반가운 현상이다.
파띠마 길에 들어서서 이미 언급했듯이 파띠마 길에서는 여의치 않으면 어떤 도움을 받는 것이 양해될 만한
지점들이며 시점에 와있다는 생각이도록.
4km쯤의 N350도로가 끝나고 EM501도로에 진입한다.
EM501 3도로에서 잠간 북진한 후 좌회전하여 1km 미만의 발리 꼬부 길(R. Vale Covo)을 따르다가 좌측,
쁘린시뻘 길(R. Principal)이 되어 1km정도 남서진한다.
다시 좌회전하여 동남길 1km의 후아 다 아지녜이라(R. da Azinheira)를 따른 후 좌회전, 띤또레이루 길
(R. do Tintoreiro)을 따라 남하(1.5km쯤)하면 우측의 뻬레이루 길(R. do Pereiro)에 진입한다.
남하(700m쯤)하다가 좌측의 미나 길(R. da Mina)이 되어 남하를 계속하면(1.5km) 프레게지아 히베이라
파히우 준따(Junta de Freguesia de Ribeira Fárrio)가 있다.
합병하기 전 프레게지아 히베에라 파히우의 다운타운이다.
교회(Igreja Antiga Do Fárrio)가 있고 영안실(Casa Mortuaria Ribeira do Fárrio)도 있다.
장례식장이 있음을 의미하며, 또한 뽀르뚜갈에서는 흔하지 않은 교회 부속묘지도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
의외의 착오로 시작부터 흔들린 파띠마 길.
심상치 않은 오류가 발생한 아침 나절에, 뻬레그리노의 신분을 내려놓고 파띠마 순례자가 될 때 이미 유연
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는 터다.
길이 평탄하고 얼마만큼은 관성만으로도 소화할 수 있게 단련된 체력이라 해도, 다른 돌발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해도 낮 시간이 모자라서 쉬운 마무리는 어렵겠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마무리될 전망이 흐렸던 것처럼 22km의 2.5분의 1일인 9km가 남은 때의 시간은 18시.
어둑발이 깔릴 때까지는 2시간 남짓 남았다.
어둡기 전에 내 집 지을 장소를 정하는 것이 덜 나쁜 선택이리라 생각되는 시간대였다.
선(善)이 없을 때는 최악을 피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니까.
유난히도 반전이 거듭될 때 "하루 거리의 3분의 2가 넘은 후(3분의 1미만을 남겨놓으면), 어떤 도움이 온다
면 기꺼이 받을 것"이라고 다짐 둔 조건이 충족되는 때.
햇살이 약해져 가고, 가뭄에 콩나듯 하던 블루 애로가 요소마다 나타나고, 걷는데 필요 조건들이 호전되어
가고 있다 해도 남은 2시간 내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변고에 대한 대비의 자세라 판단된 것이다.
농장지역과 유칼립투스 간벌지대를 지나고 고지대를 힘겹게 넘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폐자원을 수집하는 집(우리의 고물상)인 듯 지저분하게 쌓여있는 외딴 집의 중년남과 마주치게 되었다.
몸집이 부(富)해서 무던하고 심성 좋은 이미지인 그가 말한 첫 마디는 도에르(doer/to be painful)?
어디 아프냐는 물음이었다.
뽀르뚜갈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내게 내민 영어로 번역된 자기 핸드폰을 보고 알았다.
You look pale. Where do you sick?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모르지만 내가 병자로 보일 정도로 몹시 지쳐 있었던가.
장기간 기독교국가였던 까닭인가.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해오는대로 이베리아 반도인들(Spain, Portugal)에게는 현재의 신앙과 무관하게 착한
사마리아인 정신이 각별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재물을 강도당하였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위급한 사람을 내로라하는 자들이 모두 외면하였으나 헌신적으로
구출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인 사마리아인이었다는 이야기다.
기독교 신약성서(루가복음10:25~)에 있는 예수의 비유로, 서양의 적지 않은 나라들(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일부 등)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이라는 이름으로 입법화 되어 시행중이다.
병약자에게는 건강한 사람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달리 자발적 도움을 주려 하는 볼런티어정신이 매우 강한데,
내게도 병원에 가야 한다면 당장에 데려다 주겠다는 것.
나는 병원 아닌, 천막 집을 지을 만한 장소에 안내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마임하듯 동작과 영어를 섞어 한 내 말을 알아들었는가.
그는 즉시 자기 차에 나를 태운 후 달렸다.
아무런 말도 없이 한참(7km쯤?)을 달려 대소형 빨간차들이 즐비한 너른 건물 알에서 멎은 그.
물을 필요 없이, 한눈에 확인되는 봄베이루스(Associação Humanitária dos Bombeiros Voluntários
de Caxarias) 앞이다.
지자체 오렝(Ourém)의 13개 프레게지아 중 하나로 인구 2.166명(2011년기준)인 까샤리아스(Caxarias).
내가 미쳐 몰랐던 것은 이 곳(Caxarias)에도 소방서가 있으며 이 소방서도 안시앙과 동일한 자원봉사 시민
소방서로 뻬레그리노스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까미노에서는 비켜 있지만 파띠마 참배 길도 까미노로 간주되고 있으니까.
비록 내 동의를 받지 않고 달려 오기는 했으나 전적으로 늙은 꼬레아누를 위한 일념에서 였던 것이다.
나는 뽀르뚜갈의 자원 소방서뿐 아니라 모든 까미노의 다양한 알베르게가 내 기본 원칙에 저촉되지 않는데
도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잠자리를 거부하고 천막집을 고집하는 괴상한 늙은이가 아니다.
까샤리아스에도 안시앙과 같은 류의 숙소가 있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어두워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소위 유비무환의 자세였을 뿐.
그를 납득되게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화재 사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알베르게다.
봄베이루스는 모든 화재의 예방과 퇴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뻬레그리노스라면 안전 100%인데다 무료 봉사인 봄베이루스의 숙소를 택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부득이한 대안일 뿐인 텐트를 고집하지 않음을, 나도 스마트폰의 번역기로 그에게 알려 주었다.
밝은 표정으로 바뀐 그는 나를 사무실까지 안내했다.
그들(그와봄베이루)의 대화를 알아듣지는 못하였으나 꼬레아누(Coreano)와 벨류(velho)라는 단어가 포함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쳐 있는 한국의 늙은 뻬레그리노" 쯤으로 소개하지 않았을까.
모자랄 것에 대비하느라 부심했던 시간이 어두워지려면 아직 1시간 이상 남아있으므로 우리의 대화가 가능
했다면 아마도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었다.
한국의 괴상한 늙은이로 기억되는 것을 면하게 된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우리(그와 나)는 환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앳된 봄베이루가 안내한 곳은 탁자 위에 두툼한 매트리스(mattress)를 깔고 자게 되어 있는 너른 홀이다.
아무려면 천막에 뒤질까.
이미 3번의 흡족한 체험이 축적되어 있는 숙소다.
잠자리가 확정될 때까지 체력의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도록 유난히도 반전에 반전이 거듭된 길.
되풀이되는 반전에 어떤 계획이나 기대와 예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 먹기 달렸다는 원효대사의 충고를
그냥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하루가 아무 탈 없이 끝났음을 확인해 주는 소방서의 매트리스.
그가 돌아간 후 한참을 벌렁 누워 있었다.
안시앙 축제의 밤은 파띠마 길의 전야제였으며 영국인과의 만남은 까샤리아스의 1박을 위해 필요했던 것?
큰대자(大字)로 반듯하게 누운 채 하루를 돌이켜 본 결과다.
안시앙의 행사가 없었다면 봄베이루스의 밤이 없고, 그 1박이 없었다면 까샤리아스의 이 밤 역시 없다.
파띠마를 경유한다 해도 또말에서 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의 횡적(평면적) 관계에는 무한 자유를 보장하는 분.
'그 분'은 뻬레그리노의 신분을 잠시 내려놓도록 유도했으며 파띠마 순례자의 신분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영국인과의 만남을 주선한 것인가.
그러므로, 이 드라마는 돌발적 착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잖은가.
종적(수직적) 관계만 이탈하지 않으면 횡적 사고(思考)와 관계가 방종에 가까울 만큼 엉망이고 고집스럽다
해도 방임의 자세로 일관하는 분이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이 로마에 았는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 중 한 구절(신약성서 로마서 8:28) 처럼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 all things work together for good to them that love
God, to them who are the called according to His purpose)
나의 까미노 생활이 3자리 수에 들어선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나고 있다.
흔치 않은 의외성으로 말미암아 밤 맞을 준비(천막)에 신경이 집중되어 가고 있을 뿐 염두에 두어본 적 없는
까샤리아스의 봄베이루스에서 평안을 누리게 된 나홀로의 밤이 시작되었다.
오카리나를 다시 꺼내어 입에 물게 된 것이 당연한 순서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羅運榮작곡)으로 격해진 마음에 평안이 올 때까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