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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좋아사는사람들
 
 
 
카페 게시글
난 중 일 기 스크랩 3월
재하 추천 0 조회 28 09.11.16 23: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3월1일[신유/4월12일] 망궐례를 행했다. 식사를 한 뒤에 별방군과 정규군 하번군을 점검하고서 놓아 보냈다. 공무를 마친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3월2일[임술/4월13일] 흐리고 바람 불다. 나라 제사날(중종 장경왕후 윤씨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승군 일백 명이 돌을 주웠다.
3월3일[계해/4월14일] 비가 저녁내 오다. 오늘은 삼짇날 명절이건만 비가 이렇게 내리니 답청도 못하겠다. 조이립, 우후ㆍ군관등과 동헌에서 이야기하면 술을 마셨다.
3월4일[갑자/4월15일] 맑다. 아침에 조이립을 배웅하고 객사대청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서문 밖 해자와 성을 더 쌓는 곳을 순시했다. 승군들이 돌줍는 것을 성실히 하지 않으므로 책임자(수승)를 잡아다가 곤장을 쳤다. 아산에 문안갔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 하니 다행이다.
3월5일[을축/4월16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군관들은 활을 쏘았다. 저물녘에 서울 갔던 진무가 돌아왔다. 좌의정 유성룡의 편지와 『증손전수방략』이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을 보니 수전ㆍ육전ㆍ화공전 등 모든 싸움의 전술을 낱낱이 설명했는데, 참으로 만고의 훌륭한 책이다.
3월6일[병인/4월17일] 맑다. 아침밥을 먹고 난 뒤 출근하여 군기물을 점검했는데, 활ㆍ갑옷ㆍ투구ㆍ전통ㆍ환도 등이 깨지고 헐어진 것이 많아 색리ㆍ궁장ㆍ감고 등을 문책하였다.
3월7일[정묘/4월18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8일[무진/4월19일] 종일 비오다.
3월9일[기사/4월20일] 종일 비오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10일[경오/4월21일] 맑으나 바람 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난 뒤에 활을 쏘았다.
3월11일[신미/4월22일] 맑다.
3월12일[임신/4월23일] 맑다. 식사한 뒤에 배있는 곳으로 나가 경강(여수시 봉산동)의 배를 점검했다. 다시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종화동 종포)로 나가는데, 때마침 샛바람이 세게 불고 격군(보조사공)도 없이 도로 돌아왔다. 곧바로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3월13일[계유/4월24일] 아침에 흐리다. 순찰사(李洸)에게서 편지가 왔다.
3월14일[갑술/4월25일] 종일 많은 비가 내리다. 이른 아침에 순찰사를 만나러 순천으로 가는데, 비가 몹시 퍼부어서 길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간신히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고서 다시 해농창평(순천시 해룡면)에 이르니, 길 바닥에 물이 석 자나 괴었다. 겨우겨우 순천부에 이르렀다. 저녁에 순찰사와 격조를 터놓고 이야기 하였다.
3월15일[을해/4월26일] 흐리며 가랑비 오다가 저녁 나절에 개었다. 다락 위에 앉아서 활쏘고, 군관들에게는 편을 갈라 활을 쏘게 했다.
3월16일[병자/4월27일] 맑다. 순천부사가 환선정에 술자리를 베풀었다. 겸하여 활도 쏘았다.
3월17일[정축/4월28일] 맑다. 새벽에 순차사에게 작별을 고하고, 선생원에 이르러 말에게 꼴을 먹이 뒤에 본영으로 돌아왔다.
3월18일[무인/4월29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19일[기묘/4월30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3월20일[경진/5월1일] 비가 몹시 쏟아지다. 저녁 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각 관방의 회계를 따졌다. 순천 관내를 수색하는 일이 제 날짜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대장ㆍ색리ㆍ도훈도 등을 문책했다. 사도첨사(김완)에게도 만날 일로 공문을 보냈는데, 혼자서 수색했다고 했다. 또 한나절 동안에 내나로도ㆍ외나로도(고흥군 봉래면)와 대평대두ㆍ소평대두 섬(고흥군 산내면과 봉래면 사이)을 다 수색하고 그 날로 돌아왔다고 했다. 이 일은 너무도 엉터리 거짖이다.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일로 흥양과 사도에게 공문을 보냈다. 몸이 몹시 불편하여 일찍 들어왔다.
3월21일[신사/5월2일] 맑다. 몸이 불편하여 아침내 누워 앓다가 저녁 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3월22일[임오/5월3일] 맑다. 성 북쪽 봉우리 아래에 도랑을 파내는 일로 우후 및 군관 열 명을 나누어 보냈다. 식사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았다.
3월23일[계미/5월4일] 아침에 흐리고 저녁 나절에는 맑다. 아침밥을 먹은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보성에서 올 널빤지가 아직 안들어 왔기 때문에 색리에게 다시 공문을 보내어 독촉했다. 순천에서 심부름꾼으로 보내 온 소국진에게 곤장 여든 대를 쳤다. 순찰사가 편지를 보내었는데 보니, "발포권관은 군사를 거느릴 만한 재목이 못되기로 갈아 치워야 하겠다"고 하므로 아직 갈지 말고 그대로 유임하여 방비에 종사하게 해달라고 답장을 보내었다.
3월24일[갑신/5월5일] 나라 제사날(세종 소헌왕후 심씨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우후가 수색하고 탈없이 돌아왔다. 순찰사와 도사의 답장을 송희립이 아울러 가져왔다. 순차사의 편지 가운데, "연남관찰사(김수)의 편지에 '대마도주(宗義智)가 공문을 보냈는데, 벌써 대마도 배 한 척을 귀국(조선)에 보냈는데, 만일 도착하지 않았다면 풍랑에 깨졌을 것' 이라고 했더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매우 음흉하다. 동래에서 서로 바라다 보이는 바다인데 그럴 리가 만무하며, 말을 이렇게 거짓으로 꾸며대니 그 간사함을 헤아리기 어렵다" 고 하였다.
3월25일[을유/5월6일]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순을 쏘았다. 경상병사가 평산포에 도착하지 않고 곧장 남해로 간다고 하였다.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한 것을 한스럽다는 뜻으로 답장을 보냈다. 새로 쌓은 성을 순시해보니 남쪽이 아홉 발이나 무너져 있었다.
3월26일[병술/5월7일] 맑다. 우후와 송희립이 남해로 갔다. 저녁 나절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 열 다섯 순을 쏘았다.
3월27일[정해/5월8일] 맑고 바람조차 없다. 일찍 아침밥을 먹은 뒤 배를 타고 소포(여수시 동쪽 종포)에 이르러 쇠사슬을 가로 질러 건너 매는 것을 감독하고, 종일 나무기둥 세우는 것을 바라 보았다. 겸하여 거북배에서 대포 쏘는 것도 시험했다.
3월28일[무자/5월9일] 맑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활 열순을 쏘았는데, 다섯 순은 모조리 다 맞고, 두순은 네번맞고, 세순은 세번 맞았다.1)
3월29일[기축/5월10일] 맑다. 나라 제사날(세조 정희왕후 윤씨 제사)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아산 고향으로 문안 보냈던 나장이 돌아왔다.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1) 이때 화살 쏜 것의 명중률을 환산해보면 60%이다[=(25+4+3)%50*100]. 10순은 50발임, 이중 5순은 25발인데 25발이, 2순의 10발인데 4발이, 3순은 15발인데 3발, 모두 32발이 명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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