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X-파일의 비밀
이러한 때에 한국 축구계를 이끌고 있는 명망 있는 축구인들이 하나 둘 은밀히 모여
축구협회에 맞설 계획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 축구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현재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신임 감독인 차범근 감독과 2002 월드컵 4강신화의 숨은 주역인 이용수 해설위원, 94 미국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으며 전임 수원 감독인 김호 감독, 2000시드니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역임했던 허정무 감독, 멕시코 청소년 축구대회 4강신화의 주역이며 현재 대구 F.C
감독인 박종환 감독, 지난 2002년 한국 월드컵 대표팀의 수석코치를 역임했으며 현재
포항 스틸러스의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박항서 코치, 2002월드컵 대표팀의 수비
코치였던 정해성 부천 SK 감독,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총감독었던 크라머 감독,
96 애틀란타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었던 비쇼베츠 감독, 80년대 아시아를 주름잡았던
축구스타로 현재 FIFA 행정부에서 연수중인 '야생마' 김주성 前 기술위원,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한국 축구를 4강으로 이끈
불세출의 명장 거스 히딩크 現 아인트 호벤 감독,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한 후 영국에서 코치 연수를 받고 있는 황선홍 전남 2군
코치와 LA 갤럭시에서 활약하고 있는 홍명보 선수, 비록 불미스럽게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한국 축구를 사랑했던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등이었습니다.
이 중 크라머 감독님과 비쇼베츠 감독님, 히딩크 감독님, 쿠엘류 감독님, 황선홍 코치, 홍명보 선수, 김주성 전 위원등은 사정상 참석하지 못하시고, 이번 회의는 국내 축구인 분들만 참석하셨답니다. 한국 축구의 개혁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축구인들은 하나같이 한국 축구사의 산증인이며 각기 축구인으로서의 삶에 있어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었기에 누구보다도 축구협회에 대한 반감이 클 수 밖에 없거니와 이번 사태를 접하는 마음이 예사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4강신화의 찬란한 영광을
누렸던 한국 축구를 단 2년여만에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축구협회의 무능함과
감독의 고유권한마저 박탈한 것도 모자라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횡포와 독선에 분노하며 이 기회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먼저 이용수 해설위원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 감독과 코치들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한국 축구는
그 어느때 보다도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히딩크 감독 시절에도 월드컵
이전에는 성적이 좋지 못하였고 심지어 두번이나 5:0으로 진적도 있었습니다만, 그때는 상대가 세계적인 강호들인 프랑스와 체코였지요. 또 히딩크 감독은 평가전이나
친선경기에서 패배한 경기도 많았지만 그것은 강팀들과 많이 상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다릅니다. 체코나 프랑스같은 강팀에게 0:5로 지는 것과 베트남, 오만같은 약체팀들에게 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히딩크 감독 시절의 0:5 패배는 어느정도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고 비록 진 경기라
할지라도 경기할 때마다 대표팀이 달라지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까지 단계별로 대표팀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가질수 있었고, 그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월드컵 4강신화의 영광을 누린지 얼마나 됬습니까? 세계의 내노라 하는 강팀들을 집으로 보내면서 월드컵 무대를 호령했던
우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2년..불과 2년만에 유럽의 강호들을 벌벌 떨게 했던 우리 축구가 어쩌다
이런 비참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으로 이자리에 오신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우리 축구가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손을대야 할 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자 하니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옆에 있던 차범근 감독님이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설명했습니다.
"쿠엘류사단의 문제는 K-리그 일정과 구단들의 비협조로 인해서 선수들의 차출이
어렵고, 그로인해 소집기간이 짧아 훈련을 제대로 소화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 그리고 코치진의 지원이 부족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감독의 고유권한인 선수선발권을 박탈하고 제 입맞대로 선수들을 골라 자기들 멋대로
대표팀을 운용하려 드는 축구협회에 있습니다. 선수를 선발하는 것은 감독의
고유권한입니다. 감독이 직접 발로 뛰어 다니고 눈으로 보면서 실력있는 선수를 뽑아
팀을 구성해 훈련시키고 해야 선수들이 큰 대회에 나가서도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며, 실력있는 선수들이 팀을 이끌어야 세계 축구의 흐름에도 맞춰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축구협회에서 선수 선발권을 빼앗아서 자기들 마음대로 감독과
선수들을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한국 축구가 이런 망신을 당할 수 밖에 없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 출전한 여자 축구팀도 상대국전력분석이라는
기초중의 기초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축구협회의 무능력으로 인해서 제 기량
한번 펼쳐보지도 못하고 무너져버렸습니다. 도대체 축구협회가 뭘 하는 곳인지 묻고
싶습니다."
히딩크 사단의 수석코치였던 박항서 코치님도 맞장구 치며 거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독에게 선수선발권을 주지 않는다는게 말이 됩니까? 히딩크 감독님은 당신의 카리스마로 축구협회를 압도하면서 선수 선발권을 지키셨지요. 축구협회는
히딩크 감독님께는 찍소리도 못하다가 히딩크 감독님이 월드컵이 끝난 후 네덜란드로
돌아가시자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떠맏기고는 연봉계약도 없이 무보수로 대표팀을 이끌게하면서 아시안게임에서 성적이 않좋다고 바로 잘라버리더군요. 그래도 동메달은 땄는데..말이야 바른 말이지, 대회 3개월 앞두고 감독 맡아서 한달 남짓 훈련해서 동메달 땄으면 본전은 건진거 아닙니까?
성적이 기대에 못미쳤다고 사람을 완전히 죄인 취급하면서 밀어내는데,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려요.휴∼! " 하며 박코치님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김호 감독님도 한마디 했습니다.
"축구협회가 선수선발권을 빼앗는 거나 나눠먹기식의 감독 선정이 어제 오늘일이
아닌데, 새삼스러울것도 없지요. 저도 94년 미국 월드컵때 대표팀을 이끌면서 선수
추천권만 있었고, 선발권이 없어서 선수들 엔트리 후보명단을 강화위원회‥그러니까
지금의 기술위원회죠‥거기에 제출하고 위원회에서 낙점한 선수들을 대표팀에 기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기억인데, 내가 그때 왜그랬나 싶고.."
김호 감독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불같은 성격의 박종환 감독님이 한마디
내질렀어요.
"그러게 왜 그런데 끌려다녀? 명단 적어서 제출하면 끝이지."
그러자, 김호 감독님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나? 안그러면 대표팀 운용이
안되는 걸 어쩌란 말이야!'하고 맞받아치네요. 박종환 감독님은 씩씩거리며 축구협회를
씹어댔습니다.
"하여튼 이눔의 축구협회 인간들은 밥쳐먹고 하는 일이 뭐가 있어? 그저 잔머리나
굴리고 돈 축내는 돈충이들이지."
"맞습니다, 맞고요‥이제는 더이상 우리나라 축구 발전을 좀먹는 축구협회의 횡포를
묵과할 수 없습니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이끌어온 우리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나서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한국 축구를 개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모인것이 아닙니까? 자, 이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갑시다. 좋은 의견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이용수 위원님의 주도하에 축구개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차범근 감독님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우선 축구협회의 주축인 J.K.J쓰리톱(?)부터 처단해야죠. 그 다음에 정회장을 만나서
담판을 짓는 겁니다. "
"J.K.J? J.K.J가 누구죠?" 정해성 감독님이 물었습니다.
"J.K.J는 조 부회장과 김진국 기술위원장, 조영증 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이 세명의
이니셜을 딴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한국 축구를 오늘 이지경으로 만든 주역(?)들이지요. 이들을 처단하고서만이 곪을 대로 곪은 축구협회의 폐부를 도려내고 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그들이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겠습니까? 뭔가 그들이 꼼짝 못할 약점이라도
잡아놓았다면 모를까.." 이제까지 말이 없던 허정무 감독님이 팔짱을 낀채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는 말이었다. 차범근 감독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결심한듯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위에 놓았습니다. 그것은 한장의
CD였어요. 허정무 감독님은 의아해 하며 되물었습니다.
"이것이 뭡니까?"
"축구협회의 모든 비리와 부정의 실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X파일입니다. 그들이
꼼짝 못할 정도가 아니라 축구협회 전체가 발칵 뒤집히고도 남을 엄청난 물건이죠."
"이걸 어떻게..?"
"다 방법이 있지요. 그건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CD로 우리가 칼자루를 쥔 셈이지만, 우리의 힘만으로 축구협회와 맞설 수
있을까요? 정회장과의 담판도 문제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정회장과 맞서는 것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지 않겠습니까?"
"결국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 하는건데..앞장서서 정회장과 사감없이 담판을 지을 사람이 있습니까?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학연, 지연으로 얽혀있는 철저한 파벌 집단인 축구협회와 맞설 수 있는 사람‥온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으며 객관적이고 자유로운 입장에서 정회장과 담판을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라는 이용수 위원님의 말에 분위기가 일순간 술렁거렸습니다. 그때 차범근 감독님이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어요.
"그런 사람이 딱 한명 있지요. 거스 히딩크.."
차범근 감독님이 히딩크 감독님의 이름을 거론하자 분위기는 다시 술렁거렸습니다.
히딩크 감독님이 누굽니까? 지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4강에
올려놓은 장본인이 아니었습니까? 지금까지 다섯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서도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번번이 16강 문턱에서 돌아서야 했던 한국 축구를 1년 6개월동안 조련하여 4강 신화를 이뤄내는 돌풍을
일으키며 온국민을 6월 한달 내내 행복한 꿈에 젖어 들게 했던 바로 그 거스 히딩크
감독님이 아닌가 말입니다.
이용수 해설위원님은 무릎을 치며
"아∼! 맞아요. 거스 히딩크..!! 히딩크 감독이라면 능히 정회장과 담판을 성사시킬 수
있을것입니다." 하고 차범근 감독님의 말에 동조했습니다.
히딩크 감독님 밑에서 대표팀을 조련하는 과업을 도왔던 박항서 코치님과
정해성 감독님도 동조하며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지만, 허정무 감독님을 비롯한 다른
분들은
"히딩크 감독이 비록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고 아직도 여전히 한국에 애정을 보이고 있지만, 과연 위험을 무릅쓰고 남의 나라 축구개혁에 앞장서 주겠습니까?"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또한, 자신 스스로 '작은 독재자'라고 지칭할 만큼 다소 독선적인
부분이 있는 히딩크 감독이 정회장과 담판을 짓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게 된다면
필시 대표팀을 이끌때 처럼 축구협회와 언론을 손에 쥐고 쥐락펴락하면서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이용해 한국 축구계를 장악하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개혁에 동참했던 국내 축구인들은 죽쒀서 개 준 꼴이 되지 않겠느냐고 염려했습니다.
그러자, 박항서 코치님이 발끈하여 테이블을 주먹으로 쾅! 하고 내려치며 벌떡 일어서서
" 뭐라구요? 아니, 그러면 히딩크 감독님이 개란 말이요? 말이면 다인 줄 알아요?!!"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어요. 당황한 정해성 감독님과 김호 감독님이 박항서 코치님을 말렸지만 박항서 코치님은 분을 참지 못하고 상기된 얼굴로 씩씩 거렸습니다.
차범근 감독님과 이용수 해설 위원님이 박항서 코치님을 달래는 한편, 다른 감독들의
히딩크 감독님의 축구 개혁 동참에 대한 염려를 일목요연한 논리로 반박했습니다.
"여러분은 정녕 히딩크 감독에 대해서 그렇게 모른단 말입니까? 죽쒀서 개 준다고요?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 할 수 있는지 참으로 한심합니다.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때 축구협회나 언론에 끌려다니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밀어붙이며 대표팀을 운용한 것은 어찌보면 독선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이 소신대로
밀어 부쳐서 안된 것이 있습니까? 1승을 못했습니까? 16강을 못갔습니까? 오히려
목표를 초과달성하고도 남았지요. 히딩크 감독이 소신대로 밀어 부치지 않고 축구협회나 언론에 끌려다녔으면 1승은 고사하고 이전 대회때 처럼 험한 꼴을 당하고 분루를 삼키는 형국이 반복되었을 겁니다. "
"이위원님 말씀이 맞습니다." 차범근 감독님이 이용수 위원님의 발언을 거들고
나섰어요.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이 끝난 후 쏟아지는 엄청난 부와 명예, 사람들의 절대적인
신망과 우러름, 온갖 특혜를 마다하고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갔습니다. 떠날때를 알고
돌아설 줄 아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눈으로 확인시켜줬지요. 여기 자리하신
감독님들과 코치님들도 아마 월드컵때 다 보셨을 겁니다만, 우리 한국 경기때 마다
이기고 나서 승리를 자축할 때, 승리의 영광을 선수들에게 돌리고 자신은 뒤에서 조용히 승리의 감흥을 되씹는 히딩크 감독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러고나서 히딩크 감독은
천천히 돌아서서 라커룸안으로 혼자 들어가곤 했습니다.
'영광은 선수들에게 돌리고 실패는 감독이 책임진다.'는 말이 있지요. 히딩크 감독은 이 말의 의미를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진정한 감독의 자세를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이런 사람입니다.
이런 히딩크 감독이 자신의 공을 내세워 사리사욕을 탐하거나 감투에 현혹되어 신의를 저버릴 사람으로 보입니까? 설령 히딩크 감독이 축구협회를 장악하는 것이 현실이
된다해도 차라리 그것이 득이 되면 되었지 한국 축구의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면
손해날 일은 아닐것입니다. 아무렴 J.K.J 쓰리톱 보다야 백배 천배는 낫지요. "
히딩크 감독님의 축구 개혁 동참에 회의적이었던 감독들은 말 한번 잘못했다가
이용수 위원님과 차범근 감독님의 논리적이고 정곡을 찌르는 반론에 할말을 잃고
겸연쩍은 얼굴로 헛기침만 할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묵묵히 듣고만 있던 박종환 감독님이 오랜 침묵끝에 입을 열었습니다.
" 그럼 히딩크 감독을 어떻게 축구개혁에 동참하게 할 것입니까? 히딩크 감독을
한국에 오게 할 수 있습니까? 히딩크 감독을 네덜란드로 가서 만나든, 한국에 오게 하든 해야 그에 맞춰 계획을 세우든지 할 것 아닙니까? "
차범근 감독님이 이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무려면 계획도 없이 일을 시작했겠습니까? 설명을 드리지요.
우선 히딩크 감독을 직접 만나서 계획을 설명하고 의논하는게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히딩크 감독이 이 시점에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어렵고, 여기 모이신 분들 대부분이 현직에 몸담고 있고 아직 시즌중이라 움직이는게 자유롭지 못한것이
사실입니다. 조만간 차기 국가대표 감독 선정 문제로 히딩크 감독을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로 떠날 예정인 국제국의 가삼현 국장에게 이 일을 맡길 계획입니다. 가국장이 네덜란드에서 히딩크 감독을 만나는 동안 저희는 국내에서 축협에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축구협회에 압박을 가한다구요? 어떤식으로 압박을 가할 것입니까?"
박종환 감독님이 되물었어요.
" 언론과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터넷만큼 확산이 빠르고 파장이 큰 것도
없으니까요. 우선 인터넷 사이트 중에 가장 기반이 튼튼하고 기틀이 제대로 잡혀있는
사이트를 거점으로 하여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이 바람몰이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인터넷을 통해 우리의 거사에 대한 정보가 축구협회에 유출되는 것을 막고,
축구협회의 인터넷을 이용한 감시망을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른바 축구협회의 눈과 귀를 막아버림으로써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이죠. 이 작전의 성공여부에 한국 축구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신속 정확하고 오차없이 주도면밀하게 작전이 수행되어야 합니다."
"네티즌들의 바람몰이라‥그 작전이 가능하겠습니까? 어떤식으로 바람몰이를 한다는 거죠? 일종의 사이버 테러 같은 것입니까? 그리고, 바람몰이의 선봉에 설 사이트
회원들이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는지, 또 사이트에서 정보가 새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김호 감독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반문했습니다. 차범근 감독님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 담담한 태도로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바람몰이의 선봉에 설 사이트는 이미 이 위원님과 제가 선정했습니다.
여기 함께하신 여러분들과 미리 의논하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오래전부터 이 위원님과 제가 친분을 다지며 눈여겨 봐 뒀던 사이트가 몇 개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히딩크
감독의 팬 사이트인 '2002 hiddink.com'입니다. 편의상 그냥 히딩크 닷컴이라고 해두죠. 히딩크 감독의 팬사이트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히딩크 닷컴이 가장
그 체계가 탄탄하고 알차고 건전한 사이트입니다. 히딩크 닷컴의 회원들도 하나같이
똑똑하고 사리분별력이 있으며 사심없이 지극히 한국 축구를 사랑하고 히딩크 감독을
존경하는 지각있는 네티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붉은악마 홈페이지인 'RED DEVIL'입니다. 이 사이트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이기에 자세한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붉은악마 각 지부
사이트와 선수 팬클럽 사이트 들입니다. 이 사이트들의 회원 중에서 컴퓨터 시스템을
잘 알고 사이버 공격 경험이 있는 회원 몇명을 선별해서 몇달전 부터 집중적으로
사이버 바람몰이 훈련을 시켜왔고, 일주일전에 모든 훈련일정을 마치고 만반의
공격 준비를 갖춘 상태입니다. 최정예의 사이버전사들이 언제든 명령만 내리면
출격할 수 있도록 완전무장하고 대기중입니다. 사이버 바람몰이는 1,2차로 나누어 공격할 예정이며 이 작전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각 사이트 내에서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고, 여러분께도 비밀로 했던 것입니다. 이는 모두 한국 축구의 개혁을 위한 것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밖에도 각 언론과 방송 사이트에서도 협조를 해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
" 그럼 사이버 바람몰이 작전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것입니까?"
"각 사이트에서 선발된 정예 사이버 전사들이 사이트마다 축구협회 수뇌부의 부패와
비리, 한국 축구가 처한 현실을 알리는 글과 자료들을 올리고 축구개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호소문을 띄울 것입니다. 1차 목표는 각 언론사 사이트가 될 것이며
히딩크 닷컴을 필두로 하여 전국의 붉은 악마 지부와 선수들의 팬사이트등 축구관련 사이트들이 연계해서 작전을 수행하게 됩니다. "
허정무 감독님이 상기된 얼굴로 언론은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물었다.
"언론도 이용하신다고 하셨는데, 축구협회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언론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점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나름대로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소신있게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있더군여. 이름을 대면 알만한 중앙지에 소속되어 있는 손기자와
우기자, 그리고 김기자 등인데, 그 기자들 믿을 만 합니다.
축구협회 수뇌부를 처단하는데 있어서 만에 하나 일이 잘못 되거나 내 신상에 문제가 생길 겨우, 그 즉시 이 X파일이 약속된데로 세 기자중 한명에게 전달될 것이고,
그 파일의 내용이 매스컴을 타고 폭로되도록 조치를 취해 놓았습니다. "
"그런데, 사이버 바람몰이 만으로 축구협회에 압박을 가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인터넷에서 들쑤신다고 해도 축구협회가 꿈쩍이나 할지 ‥솔직히 사이버 바람몰이
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요?"
박항서 코치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반문하셨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이용수
위원님이 대답하셨어요.
"그 점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죠. 사이버 바람몰이는 축구 대혁명의 1단계 작전에 불과합니다. 사이버 바람몰이의 여세를 몰아 이어질 2단계 작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2단계 작전은 무엇입니까?"
김호 감독님이 이용수 위원님께 다시 되물었어요.
"2단계 작전은 거리 응원입니다."
"거리 응원이라뇨? 아니, 월드컵도 아닌데, 무슨 거리응원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월드컵때 온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되어 거리응원으로 우리
선수들에게 힘을 주었듯이 이번 축구 대혁명도 대∼한민국!을 외쳤던 그 마음으로
이루어내자는 의미에서 2단계 작전을 계획했습니다. "
이용수 위원님은 기술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냈던 당시의
심경을 되새기며 목이 메이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어요. 이용수 위원님이 마음을 추스르는 동안 차범근 감독님이 이어서 말씀하셨어요.
"거리응원 작전은 월드컵때와 같이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이버 바람몰이 이후 분위기가 고조 되었을 때, 그 여세를
몰아 전국 각지에서 거리응원을 펼치듯이 평화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이 작전은 전국의 붉은 악마 지부가 주축이 되서 동시다발로 진행됩니다. 이렇게 되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될 것이고 축구협회도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그럼 거리응원 작전 이후 다음 단계 작전이 또 있습니까?"
하고 정해성 감독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3단계 작전은 쾌도난마입니다. 본격적으로 축구협회의 악의축을 제거하는 단계이지요.
아마, 이것이 마지막 작전이 될 것입니다."
"대단하오, 차감독..!! 언제 이렇게 철저하게 계획을 마련한거요? 정말이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박종환 감독님과 김호 감독님을 위시한 축구인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차범근 감독님을 비롯하여 축구 개혁에 동참한 축구인들은 중지를 모아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하며 준비를 차근차근 해나갔습니다.
2004년 4월21일‥가삼현 국제국장이 히딩크 감독을 만나기 위해 네덜란드로
출국했어요. 가국장은 출국전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 임무를 완수하게 되면 임무 성공을 알리는 신호로 히딩크 감독님의 애창곡인 '마이웨이( My Way)'를 휴대전화에 컬러링해 놓기로 차감독님과 비밀리에 약속했어요.
-3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