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타락과 계급발생의 원리, 아간냐경(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D27)
아간냐경(Agga??asutta, D27)에서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나는 누구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빠알리나까야에 따르면 부처님의 일차적인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쭐라말룽끼야뿟따경(M63)에서와 같이 “세상은 영원한가?” 등과 같이 열 가지 형이상학적 질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알리니까야에는 세상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일부 보인다. 디가니까야에 실려 있는 아간냐경(Agga??asutta, D27)이 대표적이다.
아간냐경에 대한 우리말 제목은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또는 ‘세기경’이라 불리운다. 그렇다면 아간냐경에서 부처님은 무엇을 말씀 하시고자 한 것일까. 전재성박사의 해제에 따르면 “세계의 생성과 괴멸의 원리와 관련시켜 인간이 세상에 처음에 어떻게 태어나서 사회적으로 어떠한 조건 하에 계급이 생겨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했다.”라고 되어 있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사성계급이 생겨난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부득이 하게 세계의 기원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 보여진다.
우주생성에 대하여 언급한 뜻은?
니까야에서 우주의 생성과 괴멸에 대한 것은 브라흐마잘라경(D1, 범망경)과 아간냐경(D27,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에 언급되어 있다. 브라흐마잘라경에서는 62가지 사견 중에 영원주의 와 부분적 영원주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언급되었고, 아간냐경에서는 사성계급이 형성된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언급되었다. 따라서 부처님이 우주의 생성과 소멸 ‘그 자체’만을 설명하기 위하여 언급한 것은 아니다.
부처님 당시 영원주의자 또는 부분적 영원주의자는 브라만교이었다.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고 보는 것이 영원주의자들이고, “자아와 세계가 부분적으로 영원하고 부분적으로 영원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부분적 영원주의자들의 견해이었다. 이러한 견해는 부처님의 연기법에 따르면 모두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삿된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부처님은 연기법으로 영원주의를 부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브라만교가 지배이데올로기로 만들어 놓은 사성계급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특히 사성계급이 형성된 원리를 밝혀 냄으로서 제도와 관습과 인습을 타파 하고자 하였다.
계급발생의 원리
아간냐경에 표현된 세계의 형성과 계급의 발생원리에 대한 것을 표로 만들어 보았다.
세계의 형성과 계급의 발생원리
(아간냐경-Agga??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세계형성과 계급발생의 원리는 13가지로 구분된다. 이중 세계생성과 관계 있는 것이 1번과 2번 두 가지라 볼 수 있고, 인간의 타락과 관계 된 것이 ‘맛’을 알게 되면서부터(2번) 시작 된다. 그래서 그래서 쌀을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기 까지(8번) 지속적으로 타락된다. 그 다음이 계급이 생겨나는 과정(9번-13번)이다. 이를 크게 우주생성기(1-2), 인간타락기(3-8), 계급발생기(9-13)로 구분지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면으로 본다면 부처님의 주요관심사는 ‘계급발생’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계급이 발생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우주생성과 인간의 타락에 대한 이야기가 도입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생성과 인간의 타락이 주 관심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에서 우주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구약과 유사한 내용
우주생성기와 인간타락기를 보면 기독교 구약에서 보는 창조론과 원죄론 등과 유사한 점을 발견한다. 똑 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은 어떤 것일까.
구약은 유대교의 정경이다. 이를 유대교에서는 ‘타나크(Tanak)’라 부른다. 영어로는 old testament 라 하여 ‘옛약속’이라는 뜻이다. 이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따라서 유대교에서는 받아 들이지 않는다. 마치 테라와다 불교에서 ‘히라야나(hirayana,소승)’라는 말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기원전 1500-400년 사이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훨씬 나중으로 이해 한다. 모든 문서가 유대경전으로 인정된 것은 AD 90년 ‘얌니야 회의’로 추정된다.
구약이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빠알리니까야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난 후 결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장로비구들이 합송함으로서 인정된 것이다.
우주관은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구약에 실려 있는 창세기와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관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이를 비교해 보았다.
우주의 발생에 대한 것을 보면 불교와 기독교의 세계관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의 경우 브라흐마라 불리우는 하느님은 삼계를 윤회하는 무상한 연기적 존재이다. 그런 하느님은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고 또 자신이 이 세상을 창조 하였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는 삿된 견해이고 착각이다. 하느님은 창조자도 아니고 영원한 존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윤회하며 살아 가는 우리와 똑 같은 범부중생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착각을 가지게 된 것은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자신의 전생을 잊어 버린 것이다. 수명과 공덕이 다하여 아래 세상(색계 초선천, 대범천)에 태어나다 보니 자신이 최초 이었고, 이후 나중에 태어난 자들이 자신을 하느님, 절대자, 창조자, 아버지 등으로 불러 주어서 자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인간의 타락과 관련하여
인간의 타락과 관련하여 바이블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디가니까야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가 생겨나게 된 것이 ‘맛’에 대한 집착으로 보고 있다. 맛에 대한 집착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타락해 가는데, 마침내 남자와 여자의 특징이 생겨나는 것으로 본다.
맛에 대한 탐착은 바이블에서 뱀(사탄)이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는 것과 유사하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하여 낙원에서 ?겨 났고, 이후 수고와 짐을 지게 된 것으로 묘사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가니까야에서는 맛에 대한 탐착이 심하면 심할수록 점점 거칠어져서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고, 사유재산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도둑질이 생겨나는 등 갈수록 타락한 것으로 묘사 되고 있다.
최초에 기쁨을 먹고 살고 하늘을 날아 다니던 빛나던 존재가 맛을 알게 됨에 따라 갈수록 거칠어져서 마침내 남자나 여자의 특징이 나타나 성적교섭을 하게 되고, 이를 부끄럽게 여겨 집을 만들고, 사유재산을 갖게 되는 등의 과정이 니까야에 설명되어 있다.
부처님이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부처님은 빠알리니까야에서 우주생성 원리 그 자체를 이야기 하지 않았다. 우주생성과 소멸 등에 관한 것은 부처님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우주생성에 대하여 이야기한 것은 영원주의라는 삿된 견해를 부수기 위해서이었고, 사성계급에 따른 제도와 관습과 인습을 타파하기 위하여 도입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을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바?타여, 왕족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바?타여, 바라문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바?타여, 평민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바?타여, 노예도 신체적으로 자제를 하고, 언어적으로 자제를 하고, 정신적으로 자제를 하고, 일곱 가지 깨달음에 도움이 되는 원리를 닦으면,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든다.
(아간냐경-Agga??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어느 계급이라도 신구의 삼업을 자제하여 ‘칠각지’를 닦으면 누구나 이 몸과 마음이 살아 있을 때 열반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는 모든 계급이 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경에서 계급의 발생원리에 대하여 설명한 것이다.
바라문교에 비판적인 부처님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바라문계급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는 경의 초입에서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세존] “바?타여, 그렇다면 어떻게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특징적인 욕설을 담고 가득 채워서 비웃고 욕하는가?”
[바?타] “세존이시여, 바라문들은 이와 같이 ‘바라문들이야말로 최상의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저열하다. 바라문들이야말로 밝은 계급이고, 다른 계급은 어둡다. 바라문들이야말로 청정하고, 다른 계급은 그렇지 못하다. 바라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적자이고, 그의 입에서 태어난 자이고, 하느님이 만든 자이고, 하느님의 상속자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최상의 계급을 버리고, 범천의 다리에서 생겨나 비천하고 검은 저열한 계급에서 까까머리 수행자가 되었다. 그대들이 최상의 계급을 버리고, 범천의 다리에서 생겨나 비천하고 검은 저열한 계급에서 까까머리 수행자가 된 것은 옳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바라문들은 자신들의 특징적인 욕설을 담고 가득 채워서 비웃고 욕합니다.
(아간냐경-Agga??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부처님 당시 상가에는 계급의 구별이 없었다. 누구든지 상가에 들어가면 평등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라문에서는 이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자신들은 범천의 입에서 태어났고 태생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평등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바라문 아내에게도 월경, 임신, 출산, 수유가 존재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바라문의 여인들도 아들을 얻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생물학적 평등으로 보고 있다. 이는 바라문교의 정(淨)-부정(不淨) 사상의 부당성을 지적한 것이다. 인간은 어느 계급이건 여인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에 저열한 것으로 여겨 진 것이 지금은 최상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현재의 바라문 들은 타락하였다고 말한다. 예전의 바라문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의 바라문 들은 초막에서 살며 탁발을 하며 명상수행을 하였으나, 지금의 바라문들은 마을로 내려와 베다를 만들고, 명상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들에게 “그 당시에 저열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 지금은 최상의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라문의 역할에 대하여 재해석 하였다. 예전의 바라문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바라문이라 하였고, 청정범행을 닦은 바라문은 아라한과도 같다고 하였다.
누가 최상자인가?
이와 같이 부처님은 경에서 우주론을 거론 한 것은 계급의 생성원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누구나 현자가 될 수 있다는 평등사상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바?타여, 이 네 가지 계급 가운데 수행승으로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짐을 내려 놓고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궁극적 앎으로 해탈한 거룩한 님이 있다면, 그가 그들 가운데 최상자라고 불린다.
(아간냐경-Agga??asutta-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 디가니까야 D27, 전재성님역)
여기서 거룩한 님은 아라한을 말한다.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는데 있어서 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민출신이든 노예출신이든 누구나 청정범행을 실현하면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청정범행을 실현하면
그래서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Na ja??hi na gottena, 나 자따히 나 곳떼나 na jacc? hoti br?hma?o, 나잣짜 호띠 브라흐마노 so suc? so va br?hma?o. 소 수찌 소 와 브라흐마노
상투나 성씨나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와 원리를 지닌 님, 그가 청정한 님, 그가 바로 바라문이다.
(법구경, Dhp393, 전재성님역)
Na c?ha? br?hma?a? br?mi 나 짜항 브라흐마낭 브루미 yonija? mattisambhava?, 요니장 맡띠삼바왕 sa ce hoti saki?cano, 사 쩨 호띠 사낀짜노 tam-aha? br?mi br?hma?a?. 따마항 브루미 브라흐마낭
모태에서 나와 태생이 그렇다고 나는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는다. 만약에 무엇인가 있다면, 그는 단지 ‘존자여’라고 말하는 자일뿐이다. 아무 것도 없고 집착이 없다면, 나는 그를 바라문이라 부른다.
(법구경, Dhp396, 전재성님역)
2013-01-01 진흙속의연꽃 |
출처: 진흙속의연꽃 원문보기 글쓴이: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