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고향 풍기는 소. 태백의 영험한 정기를 이어 받은 곳이며
일찍이 유불 문화의 효시가되는 문화의 고장이요, 충절의 고장이다.
특히, 1913년 결성된 대한광복단은 1910년 일제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한 후
국권회복을 위해 채기중 의사를 비롯하여 구한말 의병에 몸바쳐온 8도의 의사들이
풍기에 모여 최초로 결성한 무장항일 독립운동체가 되었다
지역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1994. 8. 19 일 (사단법인)대한 광복단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국고및 지방비 포함 총사업비 52억원을 들여 풍기읍 산법리 산86-2번지 일원에
나라위해 장열히 산화하신 고귀한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고, 자자손손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풍기에 애국교육의 요람이 될 광복공원이 설립되고 있다.
광복단 이란?
1913년 경상북도 풍기(豊基)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설립연도 : 1913년 구분 : 독립운동단체
소재지 : 경북 풍기
설립목적 : 독립운동
주요활동 : 부호의 의연금과 일본인의 불법 징수세금 압수,
무관양성, 무기구입, 연락기관 설치, 일본인 고등관 및 변절자 처벌
규모 : 단원 200여 명
1910년대 국내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항일 비밀결사 조직 중의 하나로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채기중(蔡基中)·유창순(庾昌淳)·유장렬(柳璋烈)·한훈(韓焄)
·강병수(姜炳洙)·김병렬(金炳烈)·정만교(鄭萬敎)·김상옥(金相玉)·정운홍(鄭雲洪)·
정진화(鄭鎭華)·황상규(黃相圭)·이각(李覺) 등이 조직한 대한광복단(大韓光復團)에
대구의 우재룡(禹在龍)·박상진(朴尙鎭)·권영만(權寧萬)·양제안(梁濟安)·김경태(金敬泰)
·김한종(金漢鍾)·엄정섭(嚴正燮) 등이 합류하여 광복회(光復會)로 개칭하였다.
다시 1916년에 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 신현대(申鉉大)·윤홍중(尹洪重)·
신두현(申斗鉉)등이 가담하여 광복단이 되었다.
이들은 수백 명의 단원을 포섭, 단을 확장하고〈오등(吾等)은 대한독립과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죽음으로써 결의하고 구적(仇敵) 일본을 완전 구축하기로 천지신명께 서(誓)함〉
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는 한편 국내외에서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광복단 회원은
약 200명 정도이며 국내에서 국외로 독립운동의 터전을 넓힐 때 노백린(盧伯麟) 등
10여 명은 중국 상하이[上海]로, 박성태·김좌진(金佐鎭) 등은 만주로 건너갔다. 조직은
군대식으로 중앙에 총사령(總司令) 박상진(朴尙鎭), 부사령 이석대(李奭大:후에 김좌진), 지
휘장(指揮長) 권영만(權寧萬)을 두었고, 그 아래에 재무부·선전부를 설치하였으며, 각 도(道)
에는 지부장을 두었다.
이석대가 남만주 회인성(懷仁城)에 주재하면서 활동을 담당하였으며,
그후 우재룡이 지린[吉林]에서 주진수(朱鎭洙)·양재훈(梁載勳)·손일민(孫一民)·이홍주(李洪珠) 등과
협의하여 광복회의 만주지부를 결성하였다.
광복단은 만주에서 군대를 편성하여 무력으로 국권을 회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투쟁방법으로는 부호의 의연금과 일본인의 불법 징수세금을 압수하여 전 단원이 무장하고, 사관학교를 설치하여 무관의 양성 및 연락기관을 설치하여 군사상 집회 및 왕래 장소로 사용하며, 일본인 고등관 및 변절자의 처벌과 무력전 개시 등이었다.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삼남지방의 부호를 대상으로 한 부호들에게 군자금 모집 취지서를 발송하고 친일파 처단활동을 했다. 영남지방에서는 박상진과 채기중(蔡基中)이, 기호지방은 김한종과 장두환이, 관동(關東)지방은 김동호(金東鎬)가 담당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포고문과 군자금 배정 문서인 특정배당금증(特定配當金證)을 첨부하여 각지의 자산가에게 발송하였으며 일본 관리가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무기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광복단의 활동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전(前) 경상도관찰사이며 악질 친일부호인
장승원(張承遠)과 충청남도 아산군 도고면장(道高面長)인 친일파 박용하(朴容夏)의 암살사건이었다.
조직이 비밀조직이었던 관계로 정체가 좀처럼 노출되지 않았으나 회원인 이종국(李鍾國)
이 1918년 1월 천안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총사령(總司令) 박상진을 비롯한 37명이 체포되었다. 일경의 체포를 피한 한훈 등의 회원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3·1운동 뒤에는 김상옥·한훈·김동순(金東淳) 등 20여 명의 암살단을 국내에 파견, 총독을 암살하려다 비밀이 누설되어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