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추의 청풍호
-제천 팸투어 참가기
늦가을에 만난 제천, 청풍호는 자연치유의 공간 이었다. 그 곳은 번잡한 세상사와 아픈 몸을 잊게 한 마법의 장소가 되었다. 나를 되돌아 본 소중한 경험을 안겨 주었다. <시니어 파트너즈>와 제천시가 마련하고 <아웃도어 파트너스>가 진행한 <제천 팜투어>, 청풍명월의 고장에서의 1박2일(11월 8 -9 일)은 내게는 색다른 여행이자힐링의 의미를 깨닫게 한 나들이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도 가슴 설렌 탓인가. 잠을 설치고 일찍 눈을 떴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벌써 몇 사람이 나와 있었다. 목걸이 명패를 건네주는 회원의 친절이 고맙다. 오전 7시 30분 일행을 태운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 제천으로 달린다. 두 시간쯤 달린 버스는 남제천 톨게이트를 빠져 청풍호를 오른쪽에 끼고 굽이굽이 감아 돈다. 미처 달아나지 못한 물안개 한 자락이 정겹다. 호수주변 단풍은 마지막 정염을 다 태웠는지 조금은 제 색깔을 잃었다. 그러나 어떠랴. 우리 일행을 맞으려 제 갈길 잠시 멈추고 청풍호 언저리를 서성이며 감춰 놓았던 자태를 보여주는 마음씨가 단풍보다 더 곱지 않은가.
청풍문화재단지에 닿았다. 이번 투어의 시작이다. 충주댐 건설로 5개면 61개리 3,301가구가 수몰되면서 이지역의 문화재, 전통 가옥등을 옮겨 조성한 곳이다. 조상대대로 이어오던 고향산천이 물아래 잠기고 고향을 떠났을 사람들의 아픔이 어찌 크지 않았겠는가. 숱한 무덤과 문화재도 물 밑에 잠겼으리라. 그 흔적의 일부를 여기 옮겨 재현 했다는 것이겠지. 삶의 터전을 뒤로하고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삶을 열었을 실향민의 애틋한 사연은 어떻게 옮겨 왔겠는가. 그런 상념에 젖는데 이순여 제천시 문화관광 해설사가 일행을 맞는다. 모습이 건네주는 자신의 명함 뒷면의 들국화를 닮았다.
팔영루(八詠樓) 앞에 섰다. 해설사의 해설에 귀를 기울인다. 부산출신 해설사의 경상도 억양이 친숙하다. 언뜻 영도다리의 추억을 불러낸다. 청평부를 드나들던 관문이란다. 조선 숙종28년 부사 이기흥이 창건했다. 고종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명월의 8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가 있어 팔영루라 부른다고 한다. 현판은 민치상의 글씨라는 설명이다.
八 詠 詩
淸湖眠鷺(청호면로) 맑은 호수에 백로가 졸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고
尾島落雁(미도락안) 섬 끝에 기러기 내리는 모습이 일경이라
巴江流水(파강류수) 유유히 흐르는 물에 파도가 장관이요
錦屛丹楓(금병단풍) 비단병풍을 두른 듯한 금병산 단풍이 절정이라
北津暮煙(북진모연) 북진나루에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것이 일품이요
霧林鐘聲(무림종성) 안개 숲 속에서 들려오는 새벽종소리가 좋고
中野牧笛(중야목적) 들가운데서 목동들의 피리 소리가 유명하고
飛鳳落照(비봉낙조) 비봉산 해떨어질 무렵 일몰이 장관이더라
황석리, 도화리, 후산리, 지곡리 고가를 차례로 들러본다. 조선시대 시골의 양반가옥, 중부지방의 보편적 민가로 정남향 ‘-’자형구조와 ‘ㄷ’자형, ‘ㄱ’자형구조로 되어있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안방과 건넌방, 대청마루, 누마루, 안마당, 부엌의 아궁이, 부뚜막이며 광, 외양간은 시간을 거슬러 우리의 옛 생활공간을 되살려 주며 그 시절 우리네 삶의 모습까지 어른거리게 한다.
발길을 돌리니 고인돌과 석물군이 눈에 들어온다. 선사시대의 지석묘 5점과 조선시대 군수나 부사의 송덕비, 선정비 21점 제천향교의 비석10점이다. 수몰될 뻔 한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남한강변의 비석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문화재단지 조성 때 옮겨 놓았다고 한다. 저 많은 송덕비, 선정비가운데 과연 몇 개나 이 고을을 거
쳐간 진정한 목민관을 기린 것이 있을까. 나는 짐짓 자문 한다. 학정과 수탈의 징표는 아니던가? 어진 민초들의 한숨이 스며있는 송덕비, 선정비는 아니었던가? 동헌인 금병헌(錦屛軒) 앞마당에 무릎 꿇고 엎드려 있는 조형물이 자꾸 떠오른다.
한벽루, 응청각, 금남루를 스치듯 지났다. 촘촘히 살피기에는 일정이 바쁘다며 핑계를 대면서. 다만, 퇴계 이황이 관기 두향이와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흐르는 강줄기를 보고 객사 이름을 응청각(凝淸閣)으로 지었다는 해설자의 목소리만 귀전을 맴돈다. 퇴계와 두향이의 애틋한 사랑에는 매화향기가 난다는데 매화로 소통한 대학자와 시와 그림을 아는 기녀 두향이의 정신적 사랑은 범속한 나는 알 듯 모를 듯만 하다.
문화체험 코스다. 여성들은 염색체험, 남성들은 석부작 체험이다. 한국수석예술원에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 보았다. 수석에 풍란을 붙여 심어(?) 돌과 난의 조형미를 나타내는 체험이다. 어찌 보면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듯도 하지만 돌에다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을 수도 있겠구나 하니 전시돼 있는 작품들이 새롭게도 보인다. 오늘 처음 만들어본 석부작의 돌과 풍란의 대화가 언제쯤 시작될까? 돌과 풍란이 언제쯤 서로의 온기를 느끼게 될까? 아니 낯설게 만난 돌조각과 풍란이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 둘만의 삶을 살아갈까? 이제 나는 그와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겠지. 나의 보살핌과 그들의 대화를 들으려는 성실한 몸가짐이 필요할 터이다. 모두 그런 마음이던가? 작품에 열심인 일행의 모습이 어느 전문가의 석부작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식당 컨추리하우스의 점심이 맛나다. 한잔 술이 빠진 것이 못내 아쉽다. 비봉산(飛鳳山)을 오르기 때문이리라. 오랜만의 등산이라 염려했지만 정상의 경관이 기막히게 아름답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한 시간여의 산행은 견딜 만 했다. 아니 오르지 않았으면 후회 할 뻔 했다. 내륙의 바다라는 청풍호가 한눈에 펼쳐진다. 비봉산이 청풍호의 섬 같다. 정상에 서니 월악산, 주흘산, 박달산, 황학산, 용두산, 감박산, 수름산, 대덕산의 연봉들이 겹겹으로 이어진다. 민족의 정기가 서린 백두대간의 허리쯤에 자리 잡은 제천, 중부권의 젖줄인 남한강을 사이로 다투듯 솟아 있는 산, 산, 산들이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산과 골짜기, 마을의 논밭 그리고 산허리를 감아 돌며 갖가지 풍광을 빚어내는 청풍호가 한데 어울리며 뿜어내는 만추의 합창이 가슴을 울린다. 심호흡하며 먼 산을 바라보는 심사가 청명해진다. 모두의 얼굴은 가을 하늘을 닮아가고 마음은 가을 들판처럼 풍성하리라.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눈에 담고 가슴에 새겨 내려가면 될 것을 그래도 아쉬운 탓이리라. 아름다운 비봉산 등산길에 안전을 위해 설치한 밧줄을 나무에 못으로 고정시킨 것이 못내 아쉽다. 나무가 얼마나 아플까? 동행한 해설사에게 좋은 방안을 넌지시 물었으니 아마도 나무의 고통도 곧 그치게 되리라.
내일은 비가 온다는 예보다. 청풍호에 내리는 가을비 맞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행사 진행자는 걱정인 모양이다. 시니어들의 단체행동이 어찌 신경 쓰이지 않으랴. 내일 정방사 가는 길 ‘자드락길’2코스를 강행키로 한단다. 오후4시쯤 정발산으로 향한다. 석양 무렵의 청풍대교를 건넌다. 호숫가 작은 교회의 빨간 뾰죽 지붕과 감나무에 매달린 붉은 감이 파란 하늘에 더욱 선명하다. 11월 해거름 햇살이 호수에 부서지며 빚는 은빛물결은 만추의 노래라도 부를 것만 같다.
자드락길 2 코스 입구에서 정방사 가는 길로 방향을 잡는다. 이 순여 해설사의 발길이 가볍다. 정상의 정발사 일몰과 마애불상이 볼거리라며 겅중겅중 잘도 걷는다. 따라잡는 나의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다행히(?)포장길이다. 일몰광경을 놓칠세라 욕심을 부린다. 자연치유의 도시 제천에서 욕심을 내다니. 그러나 일몰과 불상을 만나려는 욕심은 부려도 좋지 않을까 혼자 마음을 달래며 걷는다. 30-40 분을 그렇게 숨차게 올랐으나 해는 산등성이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구름도 끼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약수 한 모금 마시고 마애불상을 찾았으나 보호각을 세워 놓아 잘 보이지 않는다. 조명도 없어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절벽바위에 새겨진 부처님 얼굴을 볼 수가 없다니. 녹음기로 틀어 놓은 독경이 정방사의 경건함을 깨뜨리는 것 같다.
시니어들의 강행군에도 모두 낙오자(?)가 없다. 청풍면 식당 ‘황금가든’의 저녁상, 막걸리가 반갑다. 벌컥벌컥 두어 잔 들이키며 산행의 달콤한 피로를 즐긴다. 술잔 앞에 두니 서먹했던 일행과의 낯설음이 조금 가신다. 말문도 조금 열리는 걸 보면 술이란 참 좋은가 보다. 숙소 ES리조트에서 짐을 풀었다. 내가 6조 방장이란다. 감투(?)까지 쓰다니. 아마도 심부름 잘 하라는 모양이다. 박종필 (도보여행), 윤경필(시니어조선 명예기자), 최순열(궁궐이야기)회원 4명이다. 박준하(시니어 리포트)회원은 동행하지 않았다. 좋은 분들과의 인연이 고맙다. 모두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 오셨을 조원들에게는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분들의 값진 인생을 느낄 수 있다면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얻음이리라.
눈을 뜨니 청풍호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새벽의 청풍호풍경은 경이롭다. 물안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둘러선 산봉우리와 호숫가 언덕이 온갖 풍경을 그려낸다. 수면의 산 그림자도 차츰 제 모습을 갖추며 시선을 잡는다. 닭울음소리가 새벽 호수의 잠을 깨웠나 보다. 햇살이 번져가면서 산과 골짜기의 나무에 갖가지 색깔의 옷을 갈아입힌다. 청풍호는 또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베란다에서 청풍호의 새벽공기를 심호흡한다. 오늘 같은 아침의 상쾌함을 서울로 담아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부질없는 욕심 버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아침을 온몸으로 감싸 안을 일이다. 이곳 자연의 일부로 자신을 내어 놓을 일이다. 쓸데없는 마음을 비울 일이다. 그것이 청풍호를 즐기고 제천을 사랑하는 일이리라.
어둠의 빗장 열고 아침을 불러오는 시간 / 비단 커튼을 올리듯이, 수정 발을 열듯이 / 골마다 아득한 안개 부지런히 일어서는 / 금수산 설레는 가슴의 저 호흡을 들을까 / (중 략) 이제 곧 금수산 신선한 이마 위로 / 이글이글 가슴 뜨거운 아침 해가 솟으리니 / 우리 비록 목숨의 殘陽이 그리 길지 않더라도 / 더러는 태양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 때로는 금수산 용담폭포처럼 시원한 몸짓으로 / 우리의 하루를 감사하며 맞을 일이다 / 우리의 새 아침을 감격하며 안을 일이로다.
리조트 식당 ‘고개 마루’에서 아침을 먹고 숙소를 떠나며 오늘아침 산책길에 읽은 리 강룡 회원이 쓴 ‘금수산의 아침’이란 시를 떠올린다. 그래 우리의 하루에 감사하자. 그 하루를 기쁘게 끌어안아 볼 일이다.
능강 솟대 문화공간에서 솟대의 의미를 듣는다. 기러기나 오리 같은 새를 높은 장대위에 형상화한 조형물인 솟대는 오랜 인간의 소망을 기원하며 천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나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위해 마을 입구에 세웠다고 한다. 솟대는 2004년 세계박물관협회 총회에서 대한민국 문화를 대표하는 공식상징물로 선정되었다는 설명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솟대에 어떤 기원을 담았으면 좋을까.
식당 ‘가람’의 점심은 특식이다. ‘잉어약채스테이크’다. 제천시와 식당 사장이 새로 개발한 요리라고 한다. 정갈한 산채 반찬과 약채로 만든 돌솥밥에 나는 조금 과식을 하고 말았다. 힐링의 고장에서 모두를 비우라했는데 탐식을 하다니. 문화관광 해설사의 친구가 우려내는 발효녹차의 향이 그윽하다. 단풍이 곱게 물든 감잎위의 찻잔이 예쁜데 차의 빛깔이 감잎을 닮았다. 나는 베란다의 그네의자에 앉아 식탁에 깔려있던 종이 적혀있던 글을 음미한다.
가람
그리워라 나 살던 그 곳 / 낮에는 반짝이는 황금의 물 살 / 밤에는 번득이는 푸른 생명의 소리 /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노라 / 귀소의 맑은 찬가를 불러 외노라 / 석양이 넘어감과 함께 / 동무들의 웃음소리가 산을 올라가고 / 여귀꽃에 구르는 물방울은 / 내 유년의 거울이 되노라 / 그 거울 앞에서 나 다시 돌이켜 보노라 / 아아-, / 저 맑은 청록의 거울, 가람에서 / 나 다시 저 그리움의 강가로 돌아가노라
자드락길 3코스 얼음골 생태 길로 향한다. 제천이 자랑하는 청풍 호 자드락길. 모두 7개 코스에 58km이다. 오늘 동행하는 안길선 문화관광해설사는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땅에 난 좁은 길”이 ‘자드락길’이란다. 일행가운데 누군가 “자주 드나들면 낙원 같은 길”이라는 즉석 풀이로 박수를 받기도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우리는 이 길을 다 걷지 못하고 말았다. 얼음골은 금수산(1016m)에서 발원, 청풍호로 빠져드는 6km의 능강계곡에 있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고 한다. 일행은 20여분 걸어 수백 개의 돌탑이 늘어서있는 곳에서 내려왔다. 관봉스님이 절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절 앞의 돌덩이를 쌓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제 여러 사람에 의해 수백 개의 돌탑이 생겨난 모양이다. 저마다 돌 하나를 쌓으며 간절한 기원을 담았으리라. 나는 “추하지 않은 죽음을 맞게 하소서” 마음속으로 빌며 돌 하나를 쌓는다. ‘자드락길’이라는 글씨를 쓴 ‘켈리그래피스트’이자 오늘의 문화관광해설사 安길상 여사와 표지판 앞에서 모두들 기념촬영하기를 잊지 않았다.
다 걷지 못한 아쉬움은 호숫가 ‘마린릴 펜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달랬다. 안 해설사의 해설은 더욱 깊고 무게를 더해간다. 내공이 보였다. 충북 미술협회 회원. 필묵회원, 조묵서학회회원이기도 하다니 그의 내공을 알만하지 않은가. 자신이 짓고 쓴(그린) ‘지금이 꽃자리’라는 글씨가 들어있는 명함이 아름답다. 내가 있는 자리가 바로 꽃자리라는 안 여사와 함께 호숫가에 벤치에서 커피한잔 마시는 나와 일행은 바로 꽃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까르피 디엠’ 순간을 즐기자! 는 것도 바로 ‘지금이 꽃자리’여야 될 일이 아닐까. 정말 행복한 꽃자리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 청풍호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물결과 햇살의 속삭임을 듣는다. 낙엽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한여름 제 할 일을 다 한 무성했던 잎을 떨구어 내고 가벼워진 몸으로 겨울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나무로 부터 나는 오늘 청평호반에 앉아 삶의 지혜를 깨우친다.
이제 마지막 일정이다. 청풍호를 뒤로하고 제천시가지를 지나 의림지로 향한다. ‘농경문화의 발상지’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현재까지 그 기능을 갖고 있는 유일의 저수지라고 한다. 제방의 2-3백년 수령의 노송 1백83그루가 영호정과 경호루 정자와 어울려 일행을 맞는다. 그리고 작별의 몸짓을 보낸다. 저수지를 한가로이 유영하는 제비가족과도 헤어지는 아쉬움을 나눈다. 이 저수지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기를 소망하면서...
‘값없는 청풍이요, 임자 없는 명월이라’.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의 1박2일을 짧았지만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
첫댓글 역시 우보로구나. 우리 논어반의 2대지주 미전,우보. 계속 정진 부탁 드립니다.
변합없는 격려에 멋모르고 춤을 춥니다.
저도 재작년에 가보았지만 벌써 다 잊고 있었는데...... 어쩜 이렇게 섬세한 모습까지 모두 기억하실까요. 대단하십니다!
두어번 다녀온 곳이었지만 이번에 좀더 청풍호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좋게 읽어 주신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