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에 못된 유행병이 하나 있다. 미국말이 모든 꿈을 이루게 하는 요술방망이거나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영어 열병이다. 그 증세는 미국말 공부로 어린이 들볶기, 미국말 글로 이름을 바꾸거나 이름짓기, 상호와 간판 달기, 미국말 공부에 많은 돈과 힘을 바치기, 미국말 강박감 증세로 시달리기, 미국말을 우리 공용어로 하거나 국어로 모시기 위해 발광 하기 등 여러 증세로 나타나고 있다.
이 유행병은 소련이 무너진 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면서 세계화, 신자유주의란 태풍을 타고 번지기 시작했다. 이제 유행병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서 중병 상태며 피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 유행병 이름을 국어를 병들고 죽게 할 `영어암'이라 부르며 빨리 치료하지 않으 면 우리말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도 사라지게 할 무서운 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 하면 지나치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 줄 안다. 이제 영어 배우기에 목매다는 정도가 아니라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사람까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잘못된 것으로서 무서운 암세포와 같은 사회 파괴병 증세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 병은 언제 어떻게 생겼고 번지기 시작했을까? 원래 이 병균은 미국에서 생기고 그들이 뿌렸지만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인 것은 김영삼 정권 때 세계화를 외치면서 영어조기교육을 시행시부터 번졌다. 한마디로 영어 조기교육과 세계화 신자유주의 바람이 남긴 결과다. 영어 조기교육이 남긴 영어암 증상은 럭 키·금성과 선경이 LG와 SK로 이름을 바꾸면서부터 나타나서 영어 공용어 주장까지 나오게 이르렀다. 그리고 국어를 우습게 보면서 국민과 국가체질까지 시들었다. 그 결과 문화 자주성과 주체성이 흔들리고 경제 체질도 약해져서 마침내 국제통화기금의 경제식민지가 되는 아픔을 겪고 나서 나라 전체로 확 퍼졌다. 사람의 몸만 병드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도 병 들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이 병에 정신뿐만 아니라 물질의 피해까지 보면서도 아무도 걱정하지 않고 당연 한 것으로 여긴다. 학생은 영어 공부에 시달리고 부모는 영어 학원비와 해외 연수비에 돈과 몸을 바치고 나라 살림까지 흔들리는 데 말이다. 영어 교육에 치중하다보니 국어 교육은 뒷전이라고 한다. 1년에 영어 교육비로 수십조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 병은 어느 개인이나 일부 단체에서 나서서 치료될 일이 아니고 나라에서 발벗고 나서 고 온 국민이 협조해야 하는데 정부가 오히려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가 영어 공용어를 주장 하고 산업자원부에서는 영어로 회의하고 보고서를 만들게 하고 있다고 한다. 영어 마을을 만들겠다는 도지사도 있고, 경제 특구에서부터 영어 공용어로 하자는 정부 관리도 있고, 영 어 공부에 도움을 주기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신문사 논설위원이 있다.
대한제국 말기에 일제에 나라를 넘기는 것이 백성들에게 좋고 동양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는 말과 결정이 옳다는 사람이 많아서 나라는 망한 일이 있다. 그들이 똑똑한 사람이었고 현명한 지도자였으며, 일제에 대항하고 자주문화를 창조하고 빛내자는 사람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나라를 살리자는 민영환이나 이준열사의 목소리나 행동은 먹혀들지 않고 자결 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우리말 걱정하는 사람이 바보가 된 판인데 그 때 분위기는 어느정도였을 지 상상이 간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내 상상이 거짓이고 틀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때 내다 본 상상이 지금까지 딱 들어맞고 있다. 그래서 헛소리 같지만 내 입안에서만 지껄이지 말고 여러 사람앞에 떠들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전국 초등학교에서 시행하는 영어 조기 교육 빨라 그만하고 영어암 치료에 정부가 나서라. 그렇지 않으면 우린 엄청난 재앙을 당할 것임을 예언한다. 내 상상과 예언이 틀려서 내가 헛소리꾼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한문이 물러 간 자리를 꼭 영어로 채우지 않으면 안되는가 온 국민과 정부에 묻는다. 우리 말글만으로는 글을 쓸 수 없고 책과 신문도 만들 수 없고 학문을 할 수 없는지 묻는다.
2002.11.8 노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