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음악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용어의 혼용이며 개념의 불확실성이라 생각해 봅니다. 흔히 사용하는 교회음악 용어를 살펴보고 성경적 해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먼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 ‘찬송’(HYMN)은 예배를 위한 공동체의 노래를 말하며,교회가 전통과 시간적 흐름을 통해 검증해 온 노래를 말합니다.(Hymnary 혹은 Hymn Book과는 구별하여 사용)
1983년판 우리나라의 세칭 ‘통일찬송가’에는 찬송곡조로 그레고리안 찬트 곡조(104장, 147장)로부터 영국 성공회 음악인 앵글리칸 찬트(70장, 548장)와 190장, 405장 같은 미국민요를 비롯하여 독일민요(48장), 프랑스민요(160장), 핀란드민요(454장), 아일랜드민요(533장), 스코틀랜드 민요(545장) 등 수많은 민요곡조와 루터파의 코랄곡조에서(384장), 칼빈의 시편가 곡조와(1장) 오페라(431장)와 오라토리오(75장), 국가 및 군가(77장, 79장, 388장) 곡조에 이르기 까지 실로 여러 스타일의 음악으로부터 유래된 곡조들이 다양하게 실려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찬송가의 곡조가 이미 상당히 폭 넓고 자유로운 음악적 범위를 허용하고 있음을 보여 주며 원래 세속적 유행가며 연애노래였던 145장과 88장, 338장등에 이르면 이는 너무나 분명해 집니다.
이렇듯 찬송가 곡조의 출처와 근원을 보며 우리는 어떤 개인에 의해 주도되는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교회음악스타일의 강요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것은 찬송가의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그 가사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상황이라 이해하게 됩니다.
우선 영국문학의 한 장르로 발전한 ‘찬송’의 가사적 특징으로는 첫째, 운율이 있으며 (영국 발라드에서 유래한 장, 단, 보통 운율 등) 그 가사가 서술적이기 보다 시적이고 상징적이며, 간결한 특징에 신학적으로도 건전하며, 성경적인 기독교의 진리를 보편적으로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외의 특징으로는 교회가 오랫동안 사용해 검증된 노래라는 점과 지나친 특정교파의 교리나 특정교리에 대한 표현을 삼가 하는 점, 상업적 이윤 추구를 배제하고 엄정한 전문기구의 검정을 받아 사용되는 점 등을 꼽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복음성가’라 함은 바울사도가 말한 ‘신령한 노래’(개인의 영적 체험을 바탕으로 삶을 노래한 신앙경험의 노래이며 이웃을 향한 내용)에 해당되는 부류의 곡으로 그 대표적인 것이 곧 19세기 후반 부흥운동과 회개, 각성운동이 활발했던 미국교회를 배경으로 발전한 '복음성가' (Gospel Song, 필립 블리스, 아이라 생키, 스테판 포스터)가 해당됩니다. 당시 교회의 큰 흐름은 예배 보다는 즉흥적이고 열렬하며 부흥회적인 형식의 집회를 통해 전도와 회개 등을 촉구하던 내용의 음악을 활발히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복음성가’의 특징으로는 대중적인 호소력이 강하고 예배 보다는 전도를 위한 대중 집회에 적당한 곡이며 가사는 쉽고 후렴이 있는 점, 운율적이기 보다 서술적이며 감성적인 빈약한 가사로 되어 있어 쉽게 배우고 부를 수 있었던 점과 가사의 단순함과 반복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 현실에 비추어 보면‘ 송명희’의 여러 시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렇듯 분명하게 구분되는 음악과 가사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노랫말과는 관계없이 제 3의 요소라 할 '연주기법에 의해 구분'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오던 클래식 형식의 연주형태에서 탈피하고 ‘자유스럽고 개인적이며 영적인 장점을 살린다’ 하여 다양한 대중적 음악의 연주양식을 사용하는 노래를 통칭해 ‘복음성가’라 부르고 있는데 바로 이점이 개념혼동의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수많은 교회들은 기존의 교회음악지도자들이 원하든 원지 않던 간에 전통적 성악 발성을 멀리하고(창법) 드럼이나 신디사이저, 기타와 색소폰, 거기에 필수인 확성 효과가 뛰어나고 질 좋은 마이크를 사용해(전자악기와 음향기기) 부르는 모든 류의 노래를 그것이 비록 찬양의 가사라 할지라도 무작정‘복음성가로 칭하고 있는데 이는 무지함으로 인해 그 노래의 목표와 방향을 상실한 채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정체불명의 노래만을 양산하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엇이 교회로 하여금 이토록 복음성가 부흥기, 대중음악 전성기에 처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교회로 하여 클래식은 외면하고 대중음악으로 치닫게 유도했는지, 그렇다면 그 장점이 도무지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러한 노래방식의 변화현상의 가장 큰 이유는 곧 예배방식의 변화요, 교회가 세속화 될지언정 보다 중요한 전도와 선교지상명령과 이를 이루기 위한 문화적 탈바꿈에의 열망 때문이라 봅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교회는 지극한 애정으로 젊은이들을 교회 안에 붙잡아 두려 합니다. 자기 몸을 상해 가며(세속화) 자식을 돌보는(영혼구원) 어미닭 마냥 변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님은 한국교회에 빌리 그래함 다음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 분은 이렇게 설파합니다.
'크리스천 뮤직의 문제는 이제 그 음악에 있지 않고 그 가사에 집중 한다'
교회는 좋은 찬송도 필요하고 이웃을 위해 복음성가도 불러야 합니다.
저는 좋은 복음성가와 찬송의 바람직한 발전을 위해 이러한 노력을 제안합니다.
첫째, 성경을 중심으로 한 좋은 가사의 노래를 고르기 (칼빈의 'Sola Scriptura')
둘째, 용도와 기능에 따라 선별하여 부르기.(찬양, 헌신과 결단, 축복, 선교, 나눔, 하나됨)
셋째, 이미 익숙해진 복음성가를 찾아 예배에 활용하기(날마다. 목마른 사슴)
넷째, 전통에 익숙한 기존신자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에 익숙한 젊은이 간에 문화적 간격 좁히기 등을 제안해 봅니다.(지나치게 유희적 노래 멀리하기-기독교 진리의 심오함에 대한 그 그릇의 부조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신앙적 경험과 표현의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고 상호 대립되지 않아야 교회는 변질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앙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 시(시편)와 찬미(찬송)와 신령한 노래(복음성가 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
엡 5:19 -
출처 아촌의 이야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