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품제도는 언제부터 형성되었는가?
골품제도는 신라 지배층내에서의 관등제도입니다. 이것은 신라 초기 독자적 영역세력인
<가, 간>층(족장, 군장층)을 신라 지배체제 내로 끌어들이면서, 상호 혈연성과 세력
규모에 입각하여 지배세력의 서열을 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골품제도는 신라라는 국가가
체제정비를 한 바로 직후 시기부터 그 골격이 등장합니다. 초기에는 12등급의 서열로
관등을 정했는데, 신라사회가 체계를 잡아가던 법흥왕기에 17관등제로 관등제를 정비하면서
골품제도가 서서히 정비됩니다. 따라서 골품제도란, 어느 한 시기에 카스트 제도처럼
법칙적으로 그 사회를 규정한 제도가 아니라, 신라 사회가 변동하는 방향성에 맞추어
계속 변화하면서 정비된 제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골품제도는 신라 전체 시기를 통틀어
계속적으로 변화되는 제도이므로, 그 성격을 시대별로 나누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2. 초기 골품제도의 특징
초기 골품제도가 성립될 당시 신라는 고대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려는 시기였습니다.
신라의 골품제가 정비되는 법흥왕기에야 신라의 율령반포, 불교수용 등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골품제 역시 초기에는 체계가 빈약했다고 보면 됩니다.
골품제의 가장 큰 특징은 지배층인 <국인>에게만 적용된 제도라는 점입니다.
즉 이것은 초기 각 지역을 다스리는 족장세력을 지배체제로 끌어들이기 위해 지배층을
<골>족과 <품>족으로 나누어 이중적인 대우를 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 골, 품으로
나눈 것을 골품제라고 합니다.
<골>족은 족장세력이거나 유력한 왕실 혈연세력인 <간>층을 - 거서간, 마립간 등의
지배층을 말한다 - 국가 체제로 끌어들여 특권을 부여받은 계급입니다. <골>족은 그
세력규모나 혈연성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였습니다. 이러한 골족이 신라에서
차지할 수 있는 높은 관직을 <간>층만이 소유하는 관등이라고 해서 <간군관등>이라고 합니다.
<품>족은 <간>층의 신하계급입니다. 그러나, 품족에서도 왕족, 왕비족의 일부 품족만이
관등을 받았으며, 유력하지 못한 <간>층의 관료, 신하 계급은 <품>족에 끼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절대적인 규칙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라에는 <골>족에 지배를 받는 <노인>계급이 있습니다. 노인이란, <골>족의
지배를 받는 백성을 말합니다. 즉, 신라에서는 왕이 모든 지배층(국인)을 총괄하지만, <골>족은
하위 백성인 <노인>을 다스리는 이중적 구조였던 것이지요. 실제 신라에서 중앙집권이란,
골족의 특권을 폐지하면서 <노인층>을 국가가 직접 다스리는 시기를 말합니다.
3. 이후 관등제도의 변화
관등제도란 국가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골>,<품>을 그 능력에 따라 등급을 주어 편성한
관료제도입니다. 초기 신라에서는 12관등이 있었는데, 골족은 1-9관등을 주로 했었고,
품족은 10-12관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철저한 규칙으로서 <품>족은 절대 골족의 관등에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품족도 그 능력에 따라 1-5두품까지 있어서 5두품이 가장 높은 두품이었습니다.
그러나 10관등에서 더욱 업적을 쌓은 <5두품>들은 더 이상 진급할 수 없는 사회적 모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중위제>입니다. 중위제는 당시 10관등이었던
<나마>라는 관등에 1등나마, 2등나마, 3등나마로 관등을 세분하여 진급하고자 했던 <품>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만든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12관등으로는 더욱 성장하고, 거대해지는 신라사회를 감당할 수 없었고,
법흥왕은 12관등을 17관등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이 17관등은 나마라는 관등 위에 <대나마>라는
새로운 10관등을 상설하여 <품>족들이 1단계 더 진급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품>족이 더욱 높은 관등을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신라는 대나마에 <중위제>를
적용합니다. 이전 중위제인 나마 중위제를 없애는 대신, 대나마에 1등나마, 2등나마, 3등나마를
만들어 진급하고자 하는 <품>족들의 욕구를 일부 해소하였습니다. 즉, 중위제라는 것은 관등이
늘거나, 시대가 바뀔 때 1시대 1시기에만 적용되는 제도로서, 초기에는 나마, 17관등기에는
대나마에 적용하였던 제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라의 영토가 확장되고 삼국통일기에 가까워지면서 신라사회는 또 다른 형태의
골품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은 진골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통일기 신라의
새로운 지배층으로 형성된 진골은 5두품 관료 중에서 공로가 뛰어난 사람에게 더욱 높은
관등을 줌으로서 <품>족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원래는
절대 10등급 이상으로 진출할 수 없었던 품족에게 신라 6두품 아찬까지 진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지요. 이로서 신라에서는 원래 있어서는 안될 새로운 <품>족이 탄생하였고,
이들은 하위 <간>층 귀족과 맞먹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품족을
신라에서는 <6두품>이라고 부릅니다. 즉, 6두품이 탄생한 것은 진골이 신라에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그리고 이 골품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당시 신라인의 생활을 규제하게
됩니다. 또 6두품이 등장한 이후 하위 두품인 1,2,3 두품은 점차 있으나 마나한 두품으로
전락하여 평민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신라 골품제는 지배층뿐만 아니라 평민화 된 1,2,3두품의
생활까지 규저하게 됨으로서 신라인 대부분의 생활을 규제하는 제도로 자리잡습니다.
4. 골품제도에 대한 결론
이상으로 볼 때 골품제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는 제도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인도의 바르나제도(카스트)처럼 엄격한 혈연적 신분제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시대에 따라
관등이 변하고, 정치 주체가 변하면서 바뀌는 제도입니다. 또한 골품을 구성하고 있는 신분이
6두품처럼 새로 등장하기도 하고, 1,2,3두품처럼 몰락하기도 합니다. 진골과 성골이라는 개념이
지배집단의 입장에 따라 등장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