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주물 업체 하이메트(HIMET). 공장 안의 전기용해로에서 각종 금속들이 녹아내린다. 쇠에 니켈 크롬 등 합금철을 적절히 가미해 물리적 특성을 맞춘 뒤 모래로 만든 주형틀에 쇳물을 부어 각종 산업용 펌프와 밸브 소재를 만든다. 투박한 모습으로 탄생된 주물 제품은 열처리, 그라인딩 작업을 거쳐 말끔한 제품으로 변신한다. 부지 3000평 건평 2400평에 종업원 120명(회사 내 소사장 산하의 종업원 포함)의 견실한 주강 제품 제조업체다.
남동공단 조성 초창기인 1989년에 이곳에 입주한 이 회사는 국내보다는 일본에서 더 유명하다. 일본 업체 관계자들이 이 회사를 수시로 방문한다. 그것도 에바라제작소, 미쓰비시중공업, 고베스틸, 구보다제작소 등 굴지의 기업 관계자들이 찾아온다. 에바라제작소는 일본 최대 산업용 펌프 업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일본의 근대화와 맥을 같이 하는 대표적인 제조업체다. 2차 세계대전 때 이미 전투기와 항공모함 잠수함 등을 만든 기업이다. 발전 설비, 건설 장비 등을 만드는 구보다제작소 역시 세계적인 기업이다.
무엇 때문에 일본의 내로라하는 기업의 관계자들이 이 회사를 찾는 것일까. 하이메트에 주강품을 주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일본 업체들이 10여 개에 이른다. 하이메트는 생산 제품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일본으로 수출한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약 300억 원. 이 가운데 대일 수출은 약 60%에 이른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뚫기 힘든 시장이다. 그만큼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심화되는 대일 무역 역조를, 그것도 산업의 기초가 되는 소재를 수출하여 개선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 또한 국내의 대표적인 대형 펌프 업체인 효성에바라(한일 합작)와 현대중공업도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이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조선소에 최고급 수준의 선박용 밸브를 납품하는 키스톤발부코리아에는 창업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간 주강 소재를 전량 납품하고 있으며 최대 고객이기도 하다.
서울대 공대출신 형제가 사령탑
발전 설비, 조선용 자재, 기계 부품, 자동차 부품 등 대부분의 기계 관련 제품들은 주물품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다. 하이메트가 만드는 제품은 주물 가운데서도 주강, 스테인리스 스틸 등 고합금강의 고급 펌프나 밸브 소재들이다. 이들 펌프나 밸브는 발전소, 석유화학 플랜트, 조선소, 음료 식품 제지 공장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사용되는 필수품이다. 각종 유화제품이나 음료 등 액체 상태의 물질은 펌프를 통해 보내게 되는데 이때 사용되는 펌프의 소재가 이 회사의 주생산품이다.
펌프는 기계의 심장이다. 각종 유체를 힘차게 내보내야 이들 기계가 제 몫을 하는데 이 역할을 하는 게 바로 펌프이기 때문이다. 펌프가 멈춘 기계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서울 난지도 앞에 있는, 수상 200m 이상으로 물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분수를 가동하는 펌프의 소재도 이 회사가 만든 것이다.
하이메트는 서울대 공대 출신의 형제가 이끄는 회사다. 이필호 사장(68)은 경복고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를 거쳐 독일 베를린공대를 졸업한 뒤 1975년 이 회사를 창업했다. 친동생인 이필한 부사장(59)은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 조선공학과를 나온 뒤 조선소를 거쳐 1988년 합류했다.
이 사장은 유학 당시 세계 최고의 학문 수준을 자랑하던 베를린공대에서 금속공학을 연구한 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직원 5명으로 인천 도화동에서 창업했다. 처음에는 제지 기계와 비철합금주물을 만들었다. 당시 사명은 해안기계였다. 그 후 1981년부터 주강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86년에는 미국의 듀라이언사와 고합금강 생산에 관한 기술제휴를 통해 선진 주조 기술을 도입한 이후 계속적으로 첨단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1989년 남동공단으로 이전한 뒤 연구소를 설립하고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로이드 노르웨이 등지의 선급협회로부터 제조법 승인을 취득하면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또 연세대 생산기술연구원 등과의 산학연 협동을 통해 기술력을 보강해 나가고 있다.
이를 토대로 일반 주강제품은 물론 해수용 고내식성, 고강도, 고내마모성 등 성질을 갖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비롯한 고부가가치 제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통상 주물 산업은 굴뚝 산업이고 정체된 산업이라고 알려졌으나 최근에는 새로운 개념의 신소재 합금이 속속 소개돼 선진국과 나란히 이의 주조법을 개발하고 있다.
또 주물제품은 기술개발 못지않게 현장 근로자들의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 이들이 장기 근속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었다. 이에 따라 현장 근로자들 가운데는 20년 이상 근속한 숙련 기술자들이 수두룩하다.
“비슷한 재료를 갖고서도 전혀 물성이 다른 주물제품이 생산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현장의 노하우가 중요한 제품이지요.”
이 사장은 마치 비슷한 배추 고춧가루 마늘 등을 갖고서도 담그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의 김치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주물 제품 역시 사람의 손끝과 눈썰미에 따라 천차만별의 제품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대량생산 제품이 아니라 제품 하나하나를 녹이고 붓고 가공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과 노하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올해 수출 2000만 달러로 예상
초창기에 일반 주강제품을 만들던 하이메트는 점차 부가가치가 높은 고합금 제품을 만들면서 사명을 2002년에 하이메트로 바꿨다. 이 이름은 고합금제품(high alloy metal)의 영문약자이자 고급 품질의 금속제품(high quality metal)을 생산한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국제품질인증(ISO9001:2000)도 획득했다.
최근에는 차세대 첨단 소재인 듀플렉스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슈퍼 듀플렉스 스테인리스 스틸 등을 소재로 한 주물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들 소재는 훨씬 비쌀 뿐만 아니라 내구성 내식성 등이 뛰어난 제품들이다. 예컨대 바닷물 담수화 플랜트에 들어가는 펌프나 밸브는 염분에 오래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내식성이 뛰어난 소재를 필요로 한다.
이런 기술 개발과 노하우 축적에 따라 수출이 꾸준히 늘어 여러 차례 수출탑을 받았다. 2004년에는 500만 달러 수출탑, 2005년에는 1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으며 올해는 2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년도 수출탑 산정 기간(2006년 7월~2007년 6월)중 전반기인 작년 하반기 중 수출이 1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 사장은 “이미 특수 주물 분야에서는 세계 정상급의 기술력을 확보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기술을 개발하고 용도를 다변화해 이런 위상을 유지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한편 이필한 부사장은 조선 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기술 개발과 선박과 바닷물 담수화 설비, 원자력 발전설비용 펌프 및 밸브 소재 등의 사업화에 나설 수 있도록 힘써왔고 최근에는 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LNG선용 밸브 소재의 대일 수출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음악이 취미인 이 부사장은 경기고 출신 음악인 모임인 경기시니어앙상블의 색소폰 및 플루트 주자이며 최근엔 색소폰 연주 음반을 내기도 했다.
이들 형제가 특수 주물 분야에서 펼치는 멋진 앙상블이 더 넓고 깊게 세계로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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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임직원들과 주물제품에 대해 얘기하는 이필호 하이메트 사장(왼쪽 두번째)과 이필한 부사장(왼쪽 세번째).
약력 : 1939년 경기도 화성 출생. 57년 경복고 졸업. 62년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 졸업. 71년 베를린공대 졸업(Diplom-Ing 획득). 72년 국방과학연구소 입소. 75년 하이메트 창업 및 대표이사(현). 수상; 2004년 500만 달러 수출탑. 2005년 1000만 달러 수출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