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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하는 두브로보니크는
베네치아와 함께 무역으로서 어께를 나란히 했던 해상공국이었다.
나폴레옹이 1806년도에 두브로보니크를 함락을 하여 한 때는 프랑스의 점령지역이 었다.
이곳은 한 때는 프랑스의 점령지역,
한 때는 오스트리아의 점령지역, 한 때는 오스만 트루크의 점령지역,
한 때는 베네치아의 점력지역, 중세 때는 불가리아의 점령지역,
한 때는 북쪽에 있었던 헝가리의 점령지역이기도 했다.
그런데 점령은 당 했지만 두브로브티크는 항상 자치 공화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무역으로 번영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거두어 들이는 세금이 만만치 않았다.
점령은 했지만 곡물과 세금만 잘 납부하면 자치국으로 인정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었던 곳이 두브로보닉 공화국이 었다.
두브로보니크가 당시에는 하나의 도시국가였다. 그것은 이태리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지금의 베네치아는 이태리의 한 도시국가였지만
그 베네치아라는 나라가 통일 이태리라고 불리었던
1870년대 빅토리아 엠마누엘 2세와 가리발리 장군에 의해서
지금의 이태리의 전지역을 석권을 해서 통일을 했다.
그전에는 이태리라는 나라는 없었다.
당시는 도시국가였기 때문에 밀라노 공화국, 베네치아 공화국,
피사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이처럼 지금의 한 도시가 당시에는 한 국가였다.
그것이 1870년에 통일이 되면서 이태리라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중세시대에는 하나의 도시국가가 하나의 나라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브로보니크도 당시에는 하나의 도시국가였다.
비록 여러번 점령을 당했어도 곡물과 조세를 바치면서 도시국가로 번영을 했었다.
이스람의 오스만투르크와 당시 이 지중해를 장악을 했던 베니치아와 티격태격싸웠다.
두브로보니크 공화국은 이때 오스만투르크에도 돈을 바치고,
베네치아에도 돈을 바치며 교묘하게 무역을 했다.
당시 아드리아 해 끝에 있는 시칠리아섬(마피아의 근거지)에서
밀을 가득싣고, 스페인, 포르투칼까지
소금과 밀을 가지고 무역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안선을 끼고 길게 남쪽으로 이어지는데
두브로보니크 근쳐에서 땅이 나누어 지면서
해안 해안 21.2km 가 보스니아 땅이 되어 있다.
그래서 크로아티아 본토에서 남쪽 두브로보니크로 갈려면
반듯이 보스이아 땅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된 대는 이유가 있다. 이는 두브로보니크 공화국 때문이다.
16-17세기 경에 오스만투르크가 동로마제국을 1450년도에 장악한다.
보스니아도 그때 장악 당한다.
오스만투르크는 디나르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두브로브니크 공화국까지 장악을 한다.
그런데 두브로보니크는 조세와 공납을 바쳤기 때문에 자치국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두브로브니크는 베네치아를 견제하기 위하여
오스만투르크에게 해안의 길을 열어준다.
그때부터 이곳은 오스만투르크의 땅이 된다.
오스만 투르크는 보스니아를 420년동안 지배를 한다.
그런데 보스니아를 지배했던 오스만투르크는
1877-1878년에 있었던 오스만투르크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패한다.
그런데 그 당시 보스니아는 독립을 하지 못하고
오스트리아의 합수부르크의 소속이 된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티토에 의하여발칸의 6개의 나라가 유고슬라비아로 엮인다.
그후 티토가 물러나고 1991년부터 유고 연방이 천천히 해체 되면서
유고연방의 각 나라가 독립을 한다.
그때 보스니아도 독립을 하게 되는데 유럽의 강대국들이
이곳 해안 21.2킬로는 16세기부터 지금까지 너희가 사용했던 곳이니
너희것이라고 인정을 해 준 것이다.
이렇게 해안의 한토막을 보스니아가 차지 하는 바람에
크로아티아는 남쪽으로 가려면 반듯이 보스니아땅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아드리아 해상은 크로아티아가 사용할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이곳 두브로브니크는 그냥 성안으로 들어가서 시가지를 돌아 보는 것은
성곽위를 올라가서 돌거나 배를 타거나,
아니면 케이블 카를 타는 것은 옵션관광으로 50유로를 따로 내야 한다.
아래 사진은 두브로브니크 성곽 밖에 있는 또 하나의 성과 시가지이다.
성곽 위에서 내려다 보면 붉은색의 지붕이
멀리 아드리아 해안과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아름답다.
성곽은 워낙 높아서 어떻게 이런 요세를 당시에 지을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아래는 성 안쪽인데 이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화단을 가꾸고 채소를 키우기도 한다.
아래는 올리브 열매를 말리는 장면이다.
아래는 3번의 재건축으로 세워진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Dubrovnik Cathedral)의 돔이다.
대 지진으로 일부 무너진 성벽을 보수 한곳도 많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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