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은 인식의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노인 빈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 문제를 돌아봅니다.
경제대국 10위의 대한민국은 OECD 노인 빈곤 1위, 노인취업 1위. 국민연금 그 존재 이유가 궁금하다. 이 문제를 직시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선택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
[우리시대의 노인]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하다.
서울 금천구에 홀로 지내는 김분술 할머니(가명, 71세). 칠십이 되고부터 몸이 급격하게 쇠약해졌다. 비라도 올라치면 거동도 하기 힘들 만큼 전신이 아프다. 몸이 좀 괜찮아지면 동네를 돌며 폐지를 주우며 생활비에 보탠다. 김분술 할머니는 젊은 시절 술만 먹으면 살림을 부수고 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피해 세 살배기 아들을 안고 야반도주하듯이 도망쳐 나왔다. 파출부, 식당일, 공사장 청소부터 온갖 고생을 하며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왔건만, 사십이 넘은 아들은 취업은 고사하고 술에 빠져 산다. 그나마 모아놓은 돈은 아들이 사업한다며 전부 날려버렸다. “남편 복 없는 년이 무슨 자식 복이 있겠어.” 할머니의 푸념은 슬픔도 묻어있지 않을 만큼 닳고 닳아있다. 좋은 집주인을 만나 보증금 5백만 원에 월세 10만 원 단칸방에 십 년째 살고 있지만 30만 원 정도 나오는 기초연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간혹 봉사 단체에서 주는 쌀과 반찬이라도 없다면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얼마 전 복지센터에서 제공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사진=pixabay)
대한민국 노인빈곤율 상황
2022년 대한민국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37.6%로 OECD 38개국의 평균 15.3%의 두 배가 넘는 압도적 1위이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하 노인 빈곤율)이란 만 65세 이상 인구 중에서 소득이 중위소득 50% 빈곤선 아래에 있는 노인인구의 비율이다. 그나마 2023년도 1월부터 5.1% 인상된 기초연금(323,180원)으로 노인 빈곤율을 조금 낮춘 상황이다. 2019년 기준으로는 OECD 평균 13.5%의 세배가 넘는 43.8%가 노인빈곤층이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 빈곤이 지속되었다는 의미로, 지금 당장 더 많은 기초연금을 지급한다고 해도 노인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노인취업
상황이 이렇다 보니 풍요와 휴식이 있는 노후는 꿈도 꾸지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퇴직 후에도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노인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65~69세 이상 노인의 고용률은 2021년 기준 OECD 국가의 평균 14.7%의 두 배를 훌쩍 넘은 34.1%로 1위이다. 기준을 60세 이상 고령 노동자로 확대하면 42.4%가 현재 취업자에 해당한다. 특히 2010년부터 순증한 전체 취업자는 325만 명인데, 이중 60세 이상의 비율이 82%로 고령 취업이 급증하는 추세다. 문제는 취업을 원하는 고령층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고령층 중 취업을 원하는 비율은 70%에 달한다. 2010년 이후 고령층이 일터로 돌아오는 원인을 살펴보면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생활비는 이 기간 동안 30% 이상 늘어났지만, 자녀의 지원은 연간 평균 25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줄어들었고, 부모를 지원하는 자녀의 비율도 80%에서 65% 이하로 급락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고령자 취업이 늘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는 그동안 공공부분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일자리마저도 젊은 층의 것을 빼앗는다거나, 젊은 층에 투자해야 할 재화를 고령층에 퍼준다는 인식은 고령자들의 마음마저 얼어붙게 한다. 현 정부 들어서 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는 기조 아래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는 공공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바뀌고 있다. 올해 예산을 보면 공공형 일자리는 줄이고 시장에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예산을 늘렸다. 기존 경력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는 취약계층은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pixabay)
뜨거운 감자 국민연금
고령임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은 그만큼 고령층의 노후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항상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노인을 부양해 왔기 때문에 노후준비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지금의 고령 세대들은 나이가 들었을 때, 자녀에게 기대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의 수입이 늘지 않고 따라서 지원이 줄어드는 상황을 보면서 고령층 스스로도 가족이 자신을 부양할 거란 기대는 많이 줄어드는 반면, 가족과 정부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식이 변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 변화에 현실 상황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령층이 취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연금 등의 노후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금제도는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이다. 노년에 근로활동이 제약되면 소득상실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해 경제적 보장을 하는 것이 연금이다. 연금은 경제성장의 이득을 사회적 부의 분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다. 소득의 일부에서 받은 연금을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해서 경제발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효과를 얻고 그 이득을 필요할 때 나누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성장의 전망이 저출산 고령화와 전 세계적인 불황이 여파로 매우 어둡다 보니 해법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국민연금의 재원의 고갈 문제가 대두되었고, 이번 정부에서 국민연금개혁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이것은 재원 고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노인의 최저생계비 해결조차 이루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국민연금 평균액(58만 원)과 기초연금 최고액(32만 3180원)을 다 받으면 90만 원정도인데, 이는 노인 1인 가구 최소 생계비 124만 3천 원에도 못 미친다. 그럼에도 현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방향은 ‘더 내고 더 늦게 받고 덜 받는다’의 방향이 유력시된다. 젊은 층의 국민연금 이탈을 막고,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원래 국민연금은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최저 노후소득을 보장해 노인 빈곤을 방지하는 ‘방빈’기능과 은퇴 전 받은 소득을 유지하게 하는 ‘적정 노후 소득’기능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방빈’에도 턱 없이 못 미치는 상황인 것이다.
(사진=pixabay)
우리의 선택
결국, 사회구성원은 한정된 재화를 누구에게 얼마만큼 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의 사회현상은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젊은 층을 지원해서 사회 유지의 동력을 얻고 후대를 이어갈 출산을 장려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존재 자체를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고통 없이 노후를 보내고자 하는 고령층을 보살펴야 하는 숙제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명분이다. 존재 자체와 존재의 명분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 두 가지는 서로 대립하는가? 상호 보완하는가? 우리 사회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우리에게 어떤 삶을 경험하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