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차 산행(5/18) 충북 단양 <수리봉(1,019m)-황정산(黃庭山, 959m)> 산행
[산행 코스] ☞ 윗점-수리봉(1,019m)-용아릉-신선봉-삼거리-남봉→기차바위-황정산(959m)-
안내판삼거리-낙엽송숲(5:30) ↳ 석굴-전망바위-빗재(4:00)
* [신선봉을 지나서 숲속의 오솔길]—고즈넉한 안부의 휴식
☆… 오후 1시 정각, 오후의 산행을 시작했다. 신선봉에서 이어지는 내리막 산길은 고즈넉한 숲길이었다. 편안하고 쾌적하게 걸을 수 있는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안부에 내려서니 석화봉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수리봉 1.2km / 황정산→1.9km)가 나타났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 다음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산길은 작은 바윗돌이 박혀 있기는 하지만 무난한 흙길의 경사면이었다. 그렇게 봉우리 하나를 넘고 나서 다시 내리막길, 한참을 내려가니 안부에 도착했다. 오후 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다시 이어지는 오르막길, 한참을 올라가는 팍팍한 산길이다. 점심식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모두 힘들어 했다. 길고 지루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 [남봉 정상]—빗재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 오후 2시 5분, 드디어 남봉(950m)에 도착했다. 선두의 승조 대장과 베토벤 부대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조 대장이 후미의 지평 대장과 교신했더니, 지평 대장이 부인과 향이를 안내하여 이곳 남봉에서 빗재로 바로 내려갈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뒤이어 문 사장 내외와 꼬공 부회장과 꽃구름 부회장, 수정·용선공주 그리고 금순 씨가 도착했다. 그렇게 몇 사람을 모아서 다시 산행을 계속했다. 아직 황장산은 계속해서 산의 암릉을 타고 가야 한다. 남봉에서 안부로 내려왔다가 다시 오르막길을 올랐다. 능선에 올라서니 천인단애의 절벽 위에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일명 기차바위라고 하는데 동쪽을 시야가 확 트여 있고 발아래는 그야말로 직벽의 아득한 절벽이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바로 앞에 석화봉(834m) 그 뒤로 올산(858m)이 우람하다. 대강면 927번 산곡도로 뒤쪽에 흰봉산(1,261m), 그리고 그 뒤쪽으로 멀리 소백산(1,439m)의 거대한 산채를 중심으로 백두대간이 첩첩산군을 이루며 포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래 산곡의 마을 오후의 햇살을 받아 고즈넉했다. 후속 대원들을 기다리며 한참을 머물며 낙락장송을 배경으로 하여 스냅사진을 찍었다
* [황정산 정상]— 그 전후의 너럭바위 낙락장송의 장관
☆… 오후 2시 40분, 선두 그룹이 황정산(黃庭山, 959.4m) 정상에 도착했다. 승조 대장과 호산아 등이 선두 그룹을 이루었다. 꽁지 문 사장은 정상석을 중심으로여 초록색 옷을 입은 두 여인을 양쪽에 대동하고 인증샷을 찍었다. 산길은 계속 암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쪽으로 도락산의 거대한 산채가 아주 가깝게 보였다. 암릉은 다시 완만한 경사의 너럭바위가 나타나고 그 절벽 위에 휘어지고 뻗어간 장엄한 낙락장송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었다. 휘어지고 굳어진 완강한 노송의 품격이 가히 장관이었다. 황정산의 바위와 노송은 도락산의 우아한 그것과 비견될 만큼 멋지고 아름다웠다. 척박한 절벽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서 하늘을 받들고 그 하늘의 생명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절경이 아니라 생명의 신비였고 세월의 한계를 뛰어넘은 경이로움이었다. 바람결이 쏴아 하고 밀려온다. 오후의 햇살이 화사한 암반에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좋다. 이제 거의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급전직하(急轉直下), 가파른 바위를 타고 내리는 길, 간간이 보조자일이 설치되어 있지만 몸의 균형을 잘 잡지 못하는 대원에게는 상당히 아찔한 구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절벽과 가파른 바위틈을 타고 내렸다.
* [전망대 바위-가파른 하산길]—황정리로 내려가는 갈림길
☆… 오후 3시 27분, 전망대바위 삼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능선을 치고가면 영인봉(830m)을 거쳐 원통암-마당바위로 내려가게 된다. 927번 국도의 단양군 대강면 황정리로 내려가는 길인데 그 산곡에 황정산을 대표하는 명찰 대흥사가 있다. 우리는 도락산 광덕사 입구의 산곡도로(빗재 아래)로 내려가야 하므로 왼쪽의 능선을 따라 하산하기 시작했다. 이제 암릉 구간은 지나고 아주 가파른 경사의 내리막 흙길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왔다. 가슴에 안기는 오후 햇살이 그렇게 뜨겁지는 않지만 온몸은 열기로 팽배해 있었다. 한참을 내려온 완만한 평지의 숲속길이 이어지고 신록의 오솔길은 걷기에 아주 쾌적했다. 오월의 신록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싱그러운 색감을 드러내고 낙엽송 군락지에 스며드는 햇살이 부챗살처럼의 화사하게 펼쳐지는 풍광이 원시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드디어 계곡에 도착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뜨거운 열기를 식혔다. 수정과 용선공주, 견담과 그 여자 친구가 도착하고, 뒤이어 남정균 부회장과 핸드폰 총무 등 속속 도착하여 발을 담그고 잠시 망중한 시간을 보냈다.
* [쾌적한 하산 길]—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 오후 4시 30분, 모든 대원이 무사히 하산을 완료했다. 오늘 선두에서 길잡이를 하면서 위험 구간에서 대원들의 등반을 도운 승조 대장, 후미에서 힘들어하는 분들을 수습해서 온 지평 대장의 노고가 많았다. 황정산, 참으로 아기자기한 절경을 갖추고 있는 좋은 산이다. 수리봉 용아릉과 황정상 산록의 기차바위와 너럭바위 등은 오늘 산행의 묘미를 더해 주었다. 특히 수백년 풍상을 견디며 하늘의 생명을 지키고 서 있는 낙락장송은 생명의 경이로움 그것이었다.
☆…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는 사이,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맑은 햇살을 받은 하얀 찔레꽃 무리가 화사하게 눈길을 끌었다. 아아, 찔레꽃! 찔레꽃은 나에게 남다른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향나무가 드리워진 우물가에서 치성을 드렸다. 그 우물가 가장자리 길목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찔레꽃이 아직도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 특유의 하얀 꽃은 어머니의 순수한 사랑, 당신 마음의 색깔이기도 한 것이다. 그 향기 또한 어릴 적 어머니의 체취가 느껴져 남다른 정감을 느낀다. 그것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아픔의 색깔이다. 그래서 나는 장사익의 <찔레꽃>을 좋아한다.
하얀 꽃 찔레꽃 /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 목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 밤새워 울었지
아! ~ / 노래하며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당신은 찔레꽃 / 찔레꽃처럼 울었지
당신은 찔레꽃
* [편안한 귀경 길]—광진동의 별미, ‘민속 칼국수’
☆… 귀경 길, 차 안에서도 찔레꽃 향기가 내 주변에 머물고 있는 듯 했다. 찔레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매개 역할을 한다. … 단양에서 중앙고속도로에 오른 우리의 초록버스는 영동선의 정체(停滯)를 감안하여 제천I.C에서 내려와 박달재터널을 통과하는 38번 국도를 이용했다. 감곡-장호원을 경유하는 3번 도로를 타고 이천I.C에서 영동고속도로에 올랐다. 그 중간, 38번 도로의 길목에 있는 오갑산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 우리가 올라오는 길은 전혀 막히지 않았다. 오후 7시 20분 서울에 안착했다. 오늘 처음 참석한 꽃구름과 부군께서, 모든 대원들을 위하여 흔쾌히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광진동의 민속칼국수는 언제 먹어도 푸짐하고, 하루 종일 땀 흘려 팍팍한 속을 훈훈하게 풀어 주었다. 모두가 함께 행복했다. 꽃구름 내외분의 정성에 깊이 감사드린다!
* [에필로그 ☆… 아픔을 딛고]—그리움으로 승화하는 마음
☆… 5월 19일 월요일 오후,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가면서 보았다.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는 크고 작은 분수들이 하얀 물줄기를 시원하게 뿜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 교보빌딩 건물에 걸어놓은 ‘그리움을 담은 한 마디의 싯구절’이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 풍경 소리 들리면 / 보고 싶은 내 마음이 / 찾아간 줄 알아라."
19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 교보빌딩에 내건 '광화문 글판 여름편'은 정호승 시인의 시 <풍경 달다>에서 가져왔다. 판화가 이철수의 간결한 글씨와 단아한 그림을 함께 담았다. 오는 8월 말까지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을 비롯해 전국 5곳에 같은 글판이 걸린다. <풍경 달다>는 정호승 시인이 전남 화순 운주사에 다녀와 쓴 시다. 풍경(風磬)은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으로, 속에는 붕어 모양의 쇳조각을 달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며 소리가 난다. 시인이 운주사에 간 때도 신록이 푸른 5월이었다고 한다. 광화문 글판은 삭막한 도시 풍경에 여백과 같다.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는 요즘, 이러한 사회적인 상황에 아주 알맞은 싯구절이었다. 이제 차분한 마음으로 귀한 목숨들의 아픈 희생을 기억하며, 오래오래 은은한 그리움으로 깊이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대 한 송이 순결한 꽃이 되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