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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 - 5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1.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2. וְהָאָ֗רֶץ הָיְתָ֥ה תֹ֙הוּ֙ וָבֹ֔הוּ וְחֹ֖שֶׁךְ עַל־ פְּנֵ֣י תְה֑וֹם וְר֣וּחַ אֱלֹהִ֔ים מְרַחֶ֖פֶת עַל־ פְּנֵ֥י הַמָּֽיִם׃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3.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א֑וֹר וַֽיְהִי־ אֽוֹר׃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4. וַיַּ֧רְא אֱלֹהִ֛ים אֶת־ הָא֖וֹר כִּי־ ט֑וֹב וַיַּבְדֵּ֣ל אֱלֹהִ֔ים בֵּ֥ין הָא֖וֹר וּבֵ֥ין הַחֹֽשֶׁךְ׃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5. וַיִּקְרָ֨א אֱלֹהִ֤ים ׀ לָאוֹר֙ י֔וֹם וְלַחֹ֖שֶׁךְ קָ֣רָא לָ֑יְלָה וַֽיְהִי־ עֶ֥רֶב וַֽיְהִי־ בֹ֖קֶר י֥וֹם אֶחָֽד׃ פ
🔸베레쉬트(시작으로 )
베: with 전치사
레쉬트 : 처음, 시작(로쉬(머리)를 넘겨주다)
✔️성경의 시작(태초)이라는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머리(예수)를
넘겨주는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90강]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에트 샤마임 에트 에레츠’
베레시트를 “태초에”라고 번역했단 말이죠
그런데 이 베레쉬트는 이거는
하나님께서 성전으로 그 머리를 (그 진리, 그 예수, 예수가 담고 오신 거, 그래서 예수님이 나보고 ‘머리’라고 그랬잖아요. 이 ‘로쉬’가 머리라 그랬죠? )
요 머리를 완성으로 넘겨 주시는게
이 역사예요.
‘베레쉬트’예요.
그게 ‘태초’예요!
그 전체가 창세기 1장에 다 기록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요게 창조라 그랬습니다.
‘바라!’ 그러면 그걸 위해서는
이제 아래에 있은 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래 것으로 뭔가 설명을 해줘야 되니까
뭔가 생겨나야 되죠?
그걸 ‘바라, 창조’라 그래요.
그런데 그건 무엇을 설명하기 위함인가 하면,
‘엘로힘’이라는 걸 설명하는 거래요.
‘하나님!’ 그런데 여기에는,
요 진짜 하나님이 생략된 거라 그랬죠?
왜냐하면? 요 ‘바라’라는 단어가 남성 단수인데,
요게(엘로힘이) 쌍수란 말예요.
그러니까 이것이 주어가 될 수는 없단 말입니다.
요게 ‘샤마임, 요게 에레츠’예요.
그러니까 땅의 것을 갖고 요 하늘을 알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거고, ‘
그것을 위해서 나는 창조를 한 거야.
그 전체를 ‘베레쉬트’라 그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하늘은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러면 땅을 갖고 설명해주기 시작해야 되잖아요.
에레츠 하야 토우 보우 호세크 알 파님 테훔 루아흐 엘로힘 라아프 알 파님 마임
그러면 2절에 이제
‘땅은 (에레츠)~’이라고 나오는 거예요.
자, 그 땅은 뭐야? ‘하야’예요. (에레츠 하야)
요 ‘하야’라는 게요,
이 ‘하야’라는 동사에서,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거든요.
그냥 같은 단어예요. 뭐냐 하면, 이건 ‘존재하다’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말소리! 내 말소리를 줄게, 네 말소리로!’
그러면 보세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 그 진리를,
우리에게 말하기 위해,
누군가의 소리가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가 필요한 거예요.
여러분은 소리로 필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그걸 소리내기 위해서는
여러분은 그 씨를 갖고 있어야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씨를 갖지 못해 그 말을,
하나님의 말, 우리의 말로 줄 수 없으면,
그건 존재도 아니란 뜻이에요.
그래서 그 말이 없으면,
성경이 ‘죽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보세요. 땅은,
‘토후, 혼돈(混沌)하다’
‘보우, 공허(空虛)하다’ 그래요.
그런데 이게 뭐냐 하면,
‘완성의 소리다, 성전의 소리!’란 말예요.
그러니까 성전! 그 완성! 그걸 소리로 주는 걸,
성경이 뭐라 그러느냐 하면 ‘텅 비었다!’ 그래요.
‘광야야, 사막이야, 아무것도 없는 곳이야.’
이렇게 이야기한단 말예요.
보세요, ‘자, 땅은 텅 빈 거야!
내가 너희들에게
믿음과 소망이라는 어떤 상을 갖고,
너희들에게 이제 설명할 건데
사실은 그게 실체가 아냐!
그래서 그건 사실은 텅 빈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텅 빈 거야! 혼돈이라는 게, 틀이 없는 거고,
공허라는 게 내용물이 없는 거니까.
그건 텅 빈 거야! 없는 거야!
그러면 그걸 뭐라 그러느냐 하면,
그렇게 아래의 것! 텅 빈 그것들을
‘호세크, 흑암(黑暗)’이라 그래.
그러면, 지금 여러분을 성경이
우리를(이 땅을) 흑암이라 그러죠.
어두움이라 그런단 말예요.
왜 어둠이라 그래요?
그게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두움이라 그러지.
그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어둠! 죄! 이런 걸 함부로 그냥 알지도 못하면서,
‘나쁜 것!’ 도덕 윤리로만 판단해서 나쁜 것!
이렇게만 이해를 하시면 안 된다 말예요.
그 흑암이, ‘알(위에)’ 이게 전치사니까,
‘알 파님 태훔, 깊음 위에 있다’ 그래요.
‘태흠 파님.’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태흠’(깊음)이라는 건
이 저주의 아래 바다, 아래 물! 이에요.
그 저주의 아래 물! 이 아래 것,
세상이죠?
지금까지 다 들었으니까
제가 조금 어렵게 이야기를 해도
금방 금방 이해하셔야 돼요.
아래 물, 저주의 바다, 이 아래 것,
그거들의 나타난 걸,
성경이 ‘파님’이라 그래요.
‘파님’은, 헬라어 성경에선 ‘프로소폰’이라고 번역이 되지만,
그래서 그걸 다 자꾸, ‘얼굴’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모세가 돌 판을 갖고 내려왔을 때,
70장로가 ‘하나님의 얼굴을 뵈었다.’
거기에 무슨 하나님의 얼굴이 있어요?
하나님이 기록된 그 나타난 어떤 걸,
돌 판을 본 거예요.
그걸 얼굴이라 번역하는데,
그게 ‘파님’이거든요.
그래 뭐라 그러느냐 하면,
그 땅이 뭐냐 하면
공허하고, 혼돈한 거야. 그건 없는 거야!
그게 실체가 아냐.
그러나 난 그걸로 설명할 거야.
하늘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 아래 그걸, 흑암이라고 하는데,
그 어두움, 흑암이 뭐냐 하면
그 아랫것들, 그것들의 껍데기,
나타난 거, ’파님‘있죠?
그걸 흑암이라 하자란 말예요.
그리고는 ‘루와흐 엘로힘’이 나오죠.
그러면 그 흑암을,
그 나타난 것의 껍데기를
위의 것으로 알려주려면
어떤 분이 일을 하셔야 된다 그랬잖아요?
여기 ‘토후, 보우’의 소리가 나왔으니까
그 소리를 진리로 전해줄 누군가가 있어야죠?
그게 ‘루와흐 엘로힘’이에요.
그래서 ‘성령’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성경이 와서 뭘 해준다는 거예요?
요기 ‘멤’이 물이니까 그 진리를,
진리의 ‘파님,’ 그 껍데기를,
진리의 껍데기가, 이 아래에 있는 거,
진리를 담고 있는 그 모형들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걸, ‘라하프’ 어떻게 했다?
‘닭이 알을 품듯’ 품었다는 거예요.
닭이 알을 품듯 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태어난 알이, 다시 태어나죠? 병아리로!
알은 산 거요, 죽은 거요? 살았어요. 그것도!
그런데 그건 알의 생명이에요.
그게 진짜 살려면 다시 날개로 품어,
병아리로 만들어야 돼요.
이걸 ‘다시 난다, 거듭난다.’ 그래요.
그래서 주님이 ‘예루살렘아,
내가 너희를 암탉이 알을 품듯 품으려고 한 게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들은 원하지 않았다.’ 그러죠?
‘나는 율법! 너희들을 그 진리로 품어,
생명으로 탄생케 하려고 했느데,
너희들이 원치 않은 거야!’라고 우셨다니까요.
그러면 이제, 그 어두움으로,
그 진리를 설명해주기 위해,
성령이, ‘루와흐 엘로힘’이, 알을 품어요.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죠?
이제 그 흑암이라는 것이,( ‘토후 보우’의 그 상태가)
그게 뭔지 나타나야 되잖아요?
그렇게 어두웠던 것이 ‘나타나다’라는 말을,
성경이 ‘오르’라고 써요.
그걸 ‘빛’이라 그래요. 빛!
그러면 바로 밑에 뭐가 나와야 돼요?
‘빛이 있으라!’가 나와야죠?
‘에이, 이거 알아듣는 거야 뭐야?’ (하하하)
그죠? ‘빛이 있으라!’가 나와야죠.
이건 원고에도 안 쓰고 여러분에게만 들려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거란 말예요.
잘 들으시란 말예요.
빛이 있어야죠.
그러면 하나님이 그 빛을 (하늘의 그 빛! )
그 진짜 빛을 설명해주기 위해
이 땅의 어두움들(이 형상들)이
뭐로 드러내고, 나타내주는 거!
그걸 빛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뭐예요?
하나님이 그 진리를 말해주는 거잖아요?
그래서 나오는 거예요.
‘아마르, 하나님이 말씀하셔!’라고
제일 첫 번째 단어가 나오는 거예요.
‘말씀하신다,’가 ‘다바르’가 아니라,
‘아마르’라는 건,
‘진짜 그 하나님의 말씀이야.’
그런 말이에요.
하나님이라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셔,
뭐로?
‘엘로힘’으로 말씀하셔.
어떻게?
‘하야 오르, 하야 오르’
괜히 반복한 거 아닙니다.
‘빛이 그로 존재하네.’ 그런 말입니다.
‘그가(그분이)
빛으로(이 땅에 이 나타난 모양으로)
그 분이 거기에 들어가서 존재하셔!’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한 번 더 반복한 게 뭐냐 하면?
네 번째 날에서 나오잖아요?
또 빛이 나오죠?
거기에는 ‘마오르’라고 나오는데,
그 빛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여기 ‘와우’ 접속사가 있거든요.
‘그러므로,’ 그분이 빛으로 존재해!
어디에? 이 땅에!
그럼 뭐예요?
이 땅에 있는 모형들이
어두움이라 그랬어요. 조금 아까
‘호세크’ 그것을. ‘그게 이거지!’라고 나타내주면,
그걸 빛이라고 한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둠 속에 살아요?
빛 속에 살아요?
어둠 속에 사는데,
모형을 입고 있으니까.
크로노스에 살고 있으니까,
모형 속에 살고 있으니까,
아까 그걸 어둠이라 했으니까, ‘호세크.’ 사는데,
그 속에서 그게 뭔지를 말씀으로 알아, 빛을 사네.
그래서 그것을 나타내줄 수 있으면,
그 사람을, ‘세상의 빛이야!’
라고 해주는 거예요.
뭘 어두운데 가서 많이 비추어줘!
구제 많이 해!
선교 많이! 이런 말이 ❌아니라.
그러면 네가 빛이지.
왜?
너 여전히 어둠이라는 몸뚱아리 안에 갇혀 있은데,
그걸 말하네,
그러면 그 어두움이 뭔지를
나타내는 게 빛이니까.
그러면 ‘네가 빛이야!’
그랬더니 하나님이 어떻게 해요?
‘라아’ 하나님이 보세요.
뭘 봐요? 그 하나님으로 해석된, 그들만 봐요.
진리로 드러난 그들만 본다는 거예요.
‘라아 엘로힘,
하나님이 보신다.’가 ❌아니라
‘그분이 엘로힘으로 보신다.’
이거 아니면 안 보신다는 거죠?
‘에트 오르 토브’인데,
이 ‘토브’가 여러분이 잘 아는 단어죠?
‘선(善)!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래요.
그런데 잘 보세요.
그렇게 하나님이 이 세상에
어두움을 깔아놨어요.
왜?
그걸로 하늘을 설명하기 위해!
그래서 ‘루와흐 엘로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빛으로 드러내세요.
그래서 그 빛이 드러나요.
그래서 ‘빛이 있으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얘기하는데,
그래서 그 빛이 드러나면,
하나님이 그걸 ‘아이, 보기 좋다!’
이게 구원의 이야기예요.
이게 성경 전체의 이야기라니까요.
‘아이, 보기 좋다!’
왜?
땅 아래와 땅 위의 것이 하나로 됐잖아요?
‘아이, 보기 좋다!’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이,
선(善)이라는 단어를
‘토브’라고 쓰시는데,
이게 뭐냐면?
‘뱀의 성전’이에요.
여러분 이 뱀이(원래, 이 단어가)
이집트어로 이렇게 씁니다.
여기에서 온 단어거든요.
이게 뭐냐 하면,
요게 밖으로 나오면,
요걸 ‘완성’이라 그러죠.
이게 ‘타우’예요.
그런데 그 완성이 요렇게
어딘 가에 갇혀서 덮혀 있는 거예요.
그걸 ‘뱀’이라고 그래요.
여러분 이집트 때의 뱀은 나쁜 짐승이 아니라,
신(神)이었다니까요.
그래서 이집트 파라오들의 전부
이마에 뱀을 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때 그 뱀을 나쁜 걸로 쓰셨다기 보다는,
하늘의 왕을 설명하기 위한
세상의 왕으로 쓴 것뿐이지
그걸 나쁘다고 쓴 게 아니란 말예요.
그러면 이 뱀의 성전!
이걸로 그 하늘의 성전을 알았으면
이건 진짜 ‘하늘 왕의 성전’이 되는 거죠.
그랬을 때 이걸 ‘선(善)하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 서신에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 선함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그 어느것도 악한 게 없다 그래요.
당연히 모든 것이 선하지.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한 거니까.
뱀도 선한데! 그 단어를 선이라고 쓰는데!
그래서 이걸 갖고
이 울타리! 이 율법의 껍데기를
싹 제해버리면,
완성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내가 너희만 볼거고. ‘라아’
그리고 너희는 ‘선하다’ 칭함을 받는 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선이야!
아직 선악과 따먹기도 전이고,
그런 건 있기도 전에!
하나님이 구원이 무엇인지
이렇게 설명한다니까요.
그런데 못 알아먹잖아요.
못 알아먹으니까,
‘그래, 그러면 그 어두움이 뭔지,
그 땅이라는 게 뭔지,
아래의 물이라는 게 뭔지,
너희들 수준에 맞게 설명해 줄게.
자 ! 선악과 먹어!
여기부터 시작하자!’
이렇게 된 거란 말입니다.
아담이 그냥 우발적으로 확 따먹어버린 게 아니라!
계속 설명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