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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거북의 경주’는 개그다
기왕지사 이리 된 마당에, 뚱딴지같은 얘기 하나 더 하고 본론에 들어가자.
다들 잘 아는 ‘토끼와 거북의 경주’ 얘기.
그 경기에서 거북이 이겼다는 걸 큰 교훈으로 안다.
그런데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그게 교훈감이기는 해도, 진짜로 믿는다면 이상하다는 거야.
세상에! 토끼에게 거북이와 경주를 시키다니?
발상부터가 비현실적인데도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그냥 교훈이라니까 그런 줄로 안다.
바로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황영조 선수에게 “초등학생하고 경주하라”했다면, 그가 암만 마음씨 좋은 삼척 아저씨,
근덕 중학교 내 후배지만, 경기를 뛰었겠냐? 허허.
마라톤이라는 것을 우습게 보는 행위로 생각하지 않겠냐?
그건 ‘역량과 능력’이라는 것을 무슨 장난 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만든 우스개야 우스개.
(불가능한 말이니까 하는 말이지만), 거북의 등껍질이라도 벗겨주고 경주하라 했다면 토끼의 자존심은 좀 덜 상했을 텐데.
자고로 당구도 기본 점수가 있고, 바둑도 급수가 있고, 복싱도 체급이 있는 건데….
그래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토끼는 경주 도중에 한 잠 늘어지게 자고 간 거야.
웃기는 경주에 내몰린 토끼가 경주를 기획한 사람을 머쓱하게 만들려는 거였지.
한편, 거북은 두꺼운 등껍질에서 땀이 나도록 기었다.
그렇다고 욕심을 내어 오로지 승리를 위한 일념은 아니었어.
왜냐하면 거북은 천 년을 사는데, 깐니너꺼(그까짓 거) 일순간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떠리. 승패란 모두 찰나 아니던가!
그 어떤 찰나까지도 최선을 다했다는 거지.
내가 갑자기 묘한 얘기를 꺼낸 것은,
사람은 외통수 되기 쉬우니, 남이 풍을 짜들어도(거짓말을 해도) 꾀대가리없이(바보처럼) 쉽게 넘어가지 말고, ‘뒤집어’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자 그 말이야.
바르게 아는 것이 지식이고, 지식이 바로 힘이니 말이다.
주요 등장인물과 낱말
고죽국 孤竹國. 약 3000년 전 동이족 은(殷)나라의 제후국 이름. 왕자 백이(伯夷)와 숙
제(叔齊) 형제의 왕위 양보는 세계적인 아름다운 이야기. 이 나라에 기자조선
이 있었으며, 고구려의 모태라는 설도 있음.
관덕정 근덕초등학교 뒤 관후산에 있는 근덕면에 현존하는 유일의 정자. 德을 숭상하
는 근덕면민의 의지가 담긴 정자로, 덕봉산 등이 다 내다 보이는 자리에 있다.
교가 느티나무 수령 2200년 된 느티나무. 근덕면 교가리에 있다. 이 나무가 석고가 중 ‘산호벽
수 교지가’라는 구절을 생각나게 하여, 교가리라는 이름을 짓게 됨.
오랫동안 이 부근에 5일장이 섰는데,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겼다.
교가리 약 1000년 전에 (현 근덕면) 교가리 이름을 교가(交柯) 라 지음. ‘석고가’ 66구
절 중 한 구절인 ‘산호벽수交枝柯’에서 ‘교가’를 따온 것으로 본다.
교수당 고려 말 충신 홍준(洪濬) 선생이 낙향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곳. 하맹방에 있다.
근덕면 1631년, 덕번이라 하여 최초로 德자 사용(인조), 1842년 근덕이라 부름.
덕봉산 근덕면 덕산리 바닷가 섬같은 산으로, 근덕면의 德의 근원이 되는 신령스런 산.
높이 54m. 문헌에 근덕면과 원덕면의 기준이 이 ‘덕봉산’임.
덕산 해수욕장 근덕면 덕산리 바닷가 모래불 길이 약 1.5km.
도연명 중국 진(晉)나라 시인(365~427).
<도화원기> 시에서 무릉이라는 이름을 써서, 이 책의 주제를 이끌어 낸 시.
도원동 현재 근덕면 교가6리. 무릉동 서쪽 동네.
도화원 <도화원기>에 나오는 신비스런 판타지(실제 아닌 허구) 마을
<도화원기> 중국 도연명 시인의 시. 이 시는 ‘서문’과 ‘도화원시 병기’로 구성됨.
무덕략(武-德-略)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주제어.
매향 1310년. 고려 충선왕 2년에 향나무 250주를 묻고 미륵불이 하강하기를 기원하던
장소. 매향맹방정(埋香孟芳汀). 하맹방의 어느 지점인지는 정확히 모름.
맹방해수욕장 근덕면 상,하맹방리 바닷가. 길이 약 6km.
모현사 선비 최종원이 정이간(鄭履侃)과 함께 모현사를 창건, 효자 최연(崔漣)과 부사
홍견(洪堅), 처사 홍계하(洪啓夏)를 제향하였으나, 후일 서원 철폐로 폐지됨.
근덕면 심방리 소재.
무릉계 강원도 동해시 무릉계곡. 국민관광지 제1호.
무릉도원 경치만 좋다고, 살기만 좋다고 무릉도원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신념이다. 그렇
다면 무릉도원은 과연 어떤 땅이어야 한다는 것일까?
무릉도원재 근덕면 무릉동에 설치될 마음 수련장(상상)으로, 명상을 하는 곳은 아니며, 실생
활에 필요한 지식을 알게 하고, 무릉정신을 일깨워주는 과학적인 생각을 하는 곳.
무릉도원기 이 책의 제목.
무릉동 저자가 태어난 동네 이름으로 이 글의 중심. 현재 삼척시 근덕면 교가5리. 예전에
는 ‘대촌’과 ‘돈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950년에 무릉동으로 통합됨.
200~300여 년 전 아주 부유하고, 학식이 높은 교가리의 대표 마을이었다.
무릉원(武陵源) 중국 장가계市의 한 구역. 풍광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관광지.
장량 선생이 인생 후반전을 너무도 치열하게 사신 땅.
무릉정신 중국 무릉과 근덕면 무릉동이 가진 공통분모인 ‘힘과 전략’을 총칭하는 정신으로,
저자가 새로 만든 말. 이 책의 주제임.
백이와 숙제 동이족 은나라의 변방국인 ‘고죽국’의 왕자들로, 서로 왕위를 양보하고, 후일 수양
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으며 충절과 도리를 다하다 굶어 죽음.
[무릉도원으로] 앞으로 삼척시 근덕면에 설치될(상상) 무-덕-략 테마 길. 경관-역사-문화-전설을
지닌 15개소를 탐방하며 나-집단-국가를 생각하는 탐방로.
산호벽수관 근덕면 교가리에 420년 간 존속했던 역관 이름. 그 이름은 ‘석고가’에서 따 옴.
석고 중국 진(秦)나라 때 것으로, ‘북처럼 만든 돌(석고 石鼓)’에 어려운 한자를 잘 새
겨 만든 10개의 귀한 물건. 글의 내용은 주나라 선왕(宣王)때 사주(史籒)가 지었
고, 주왕의 업적을 적은 것인데, 현재 북경시에 보관되어 있다.
석고가 ‘석고’ 10개에 새긴 글을 보고 이를 훌륭히 여겨, 당나라 시인 한유 선생이 쓴 詩.
근덕 교가리의 교가와 역관 ‘산호 벽수관’ 이름이 이 시의 싯구에서 나왔다.
소한연 근덕면 초당굴에서 나온 물 ‘소한천’에 있는 연못으로, 기우제를 지내던 곳.
수양산 근덕면 교가리 동쪽 산 이름. 중국에 있는 산 이름과 같다. 백이와 숙제 형제가
충절을 지키며, 고사리를 뜯어 먹고 살던 산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소다.
심방재(尋芳齋) 조선 순조 임금 때 선비 최종원과 정이간(鄭履侃)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시던 곳.
근덕면 심방리 소재.
양야연대 근덕면 덕산리 남쪽 대진항 사이의 산. 봉화 터.
오룡당 교가리 인근의 고청산(古靑山) 위에 오룡당(五龍堂)을 지어 임금의 만수무강을 빌었
는데, 1901년에 폐지. 거기는 어디며, 어떤 연유로 임금을 위해 제를 올렸을까?
은나라 동이족 은(殷)나라. 일명 상(商)나라. 약 3천년 전에 중국 동북부에 있던 나라.
한자를 발명한 나라.
장가계 중국 장가계市. 12만 개의 필봉(筆峰)으로 이뤄진 세계적인 관광지.
높이가 300~400미터나 되는 붓처럼 생긴 바위(필봉)가 즐비한 곳으로, 신선이
살만한 아름다운 곳이다. 장량 선생이 살았으므로 張家界라 명명.
장량 기원전 200년 경의 실존 인물 장량은 韓나라 부활을 위해, 한국 강릉의 ‘창해역
사’의 힘을 이용하였고, 훗날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한(漢)을 건
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전략가. 조부 장개지, 부친 장평은 韓나라 재상이었다.
주나라 은나라의 제후국으로 있다가 은나라를 무너뜨린 나라. 중국 고대사에서, 동이족
은나라를 중국 주나라에 편입시킨 사람이 공자(孔子)라는 주장이 있다.
찰방 1475년에 북평 평릉에 있던 평릉도찰방 소재지를 교가리에 옮겨 평릉관(일명
산호관)이란 객사를 두어 강릉·삼척·울진·평해 지방의 16개 역을 관장하는 교
통행정 중심지.1895년에 폐지됨. 이를 총괄 관장하던 직책을 찰방이라 함.
창해역사 한국 강릉시에 살던 힘 좋은 장사. 장량 선생과 의기투합하여 진시황을 습격하
나 실패하였다. 창해역사를 기리는 비석이 지금 강릉 시내 옥천동265에 있다.
초당굴 근덕면 맹방리에 있는 자연 동굴로, 여기서 나오는 물이 소한천을 이룸.
국내 유일의 민물 김 생산지, 연어치어양식 등으로 유명.
총죽정 일명 와유정은 위치가 산호관 ‘남쪽’이라는데, 지금은 없어진 정자.
최수 조선 세조와 세종 대에 대간을 역임한 선비. 세조의 왕위찬탈 등을 행동으로 항
거하여, 근덕면 맹방에 은거, ‘수양산 고사리 뜯는 노인’을 자처함으로써, 백이
와 숙제를 생각나게 했다. 근덕 수양산 이름은 최수 공으로 인해 붙여진 것으
로 추측된다.
최종원 자는 민원(敏元), 대간(大諫) 최수의 400년 후손. 북평읍 봉정리에서 맹방촌으
로 이주하여 학문에 힘썼다. 한 때 이름난 선비로 문하생을 많이 배출하여 향천
(鄕薦)에 올랐다. 근덕의 ‘덕봉산’ 시와 ‘수양산’ 시 등을 지음.
큰마을(大村) 근덕면 교가리 무릉동(현 교가5리) 옛 이름. 부촌에다 학식이 높고 德을 널리 실
행하여 큰마을(大村)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보임. 근덕면 ‘무릉천’의 이름은
이 마을 때문에 지은 것으로 보임. 후에 ‘돈동’과 합쳐서 무릉동이 됨.
한(漢)나라 진시황의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유방을 漢고조로 세운 나라. 오늘날 중국 인구
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漢族이 그 후예.
장량 선생은 개국공신이지만, 권력을 멀리하고, 장가계로 낙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한 ‘정치’라는 것이 그를 가만 놔두지 못하고, 정부군은 100번을
쳐들어 와 장량을 죽이려 한다. 과연 그 결과는 어찌 될까?
韓나라(춘추시대) 전국시대 한(韓)나라보다 약 8백 년 전에, 중국 동북부에 있던 나라들 중 韓
나라가, ‘우리 민족이 韓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첫 나라’라는 김진명 작가의
주장이다.
韓나라(전국시대) 기원전 약 200년 경, 전국 7웅의 하나인 한(韓) 나라가 진시황 진나라에 망함.
이 韓나라가 한국 청주 韓씨의 시조라고 함.
이 책의 주인공인 장량 선생이 이 나라 출신으로, 韓나라 부활을 위해 진시황
을 죽이려고 애를 많이 썼고, 결국에는 유방, 한신, 소하 등과 힘을 합쳐 그 진
나라를 멸망시키고야 만다.
한유(韓愈) 당나라 제일의 문장가, 시인. 한유(韓愈; 768-824) 선생이 ‘석고’를 보고 찬양
하는 시를 썼는데, 그 시 이름이 ‘석고가(石鼓歌)’라는 유명한 시.
韓씨 성을 쓴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화안정신 도연명 시인의 시 <도화원기>에 나오는 판타지 마을 도화원의 ‘두터운 인정’과
‘평화로운 삶’을 총칭하려고, 저자가 새로 만든 말.
단, 세상 사람들은 이 화안정신을 이상향 유토피아로 생각하지만, 저자는 자신
을 지킬 역량도 없이, 단지 속세를 도망쳐서 얻은 평화는 불완전한 것으로 본
다. 따라서, 무릉정신의 ‘힘에 의한 평화 구축’이 완전한 평화를 보장해 줄 것
이라는 저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