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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혜능 선사상의 핵심인 '무념의 돈오견성'에 관한 저자의 갈절한 해설입니다.
이미, 저자가 <월간 고경>에서 독자들에게 한 번 소개한 부분입니다.
無念-於念而不念, 無相-於相而無相, 無住-人本然 念念不住!
[무념(無念)은, ‘불변성·동일성·독자성을 부여하는 언어의 속성에 지배된 인식작용’(分別)으로 인해 잊혀진 ‘현상의 본래 그러한 고향’을 되찾는 발길이다.
이 귀향(歸鄕)의 발길은, <현상에 대한 ‘마음의 왜곡적 인지 작용’(分別)을 그치는 마음 국면>을 열어 확립하는 행로이다.
<모든 현상에 불변·독자의 실체/본질이 있다는 생각으로 현상을 가공하던 마음작용의 계열을 멈추는 것>이 무념(無念)의 행각(行脚)이다.
이 무념(無念)의 마음 국면에서는 현상의 ‘본래 그러함’(本然)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실체/본질 관념의 왜곡이 사라진 사실 그대로’를 보는 마음자리를 회복하여 보전하는 것>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현상을 사실 그대로 보는 본연의 마음자리’는 불변의 명사형(名詞形) 좌표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수립되는 동사형(動詞形) 좌표라는 점이다.
마음을 비롯한 모든 현상은 역동적이기 때문에, ‘견성의 마음자리’(自性心地)에 자리 잡는 것도 역동적 선택과 지속적 간수 능력이 문제이다]-(저자의 본문에서)
<선 수행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안내입니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입니다.
좀 더 일찍 이런 법설을 만났다면, 더 많은 수행자들이 수행의 길에서 방황하지 않고
오직 일심(一心)으로 매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무념의 돈오견성'은 바로 지금(卽今) 말끝에서! - 분당에서 혜원 문창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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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수행과 마음수행
선(禪) 수행이란 무엇인가? 박태원 교수
[저자의 내용 개요] 5
- 논의 내용이 방대하고 논점도 많아 독자의 읽기와 이해를 돕기 위해 요점을 먼저 소개한다. -
【선종(禪宗)의 돈오견성(頓悟見性) : 마음수행의 창발적(創發的) 전개】
1.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읽는 두 가지 시선 : 이해 독법과 신비주의 독법
근대 이후 불교학과 학인들이 ‘한꺼번에 깨달아서 [사실 그대로 보는] 본연에 눈뜸’(頓悟見性)의 의미를 읽는 시선은 크게 두 유형이다.
<불변·독자의 본질/실체 없음‘(空) 및 돈오견성 언구(言句)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라는 시선이 하나이고, <성(性)·자성(自性)·본심(本心)·진심(眞心)·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등으로 지칭되는 궁극실재(窮極實在)를 한꺼번에 체득하는 것이라는 시선이 다른 하나이다. 전자는 ’이해 독법(讀法)‘, 후자는 ’신비주의 독법(讀法)‘이라 불러 본다. ’위빠사나 이해수행‘과 ’사마타 마음수행‘을 모두 인지(認知)하면서 ’사마타 마음수행‘을 ’대상에 대한 마음집중‘으로 간주하는 학인들은 ’사마타 마음수행‘에 대한 시선의 타당성 문제를 안고 있고, ’이해 독법‘ 내지 ’이해 지상주의‘는 ’사마타 마음수행‘을 간과하거나 외면하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신비주의 독법은 ‘마음집중 수행관’과 ‘궁극실재를 향한 갈증’이 결합한 것이다. <마음집중의 수행으로 궁극실재를 직접 한꺼번에 체득하여 완전하고 변치 않는 궁극실재와의 합일을 이루는 것이 돈오견성(頓悟見性)>이라는 관점이다. 이 신비주의 독법은 혜능의 ‘한꺼번에 깨달아서 [사실 그대로 보는] 본연에 눈뜸’(頓悟見性)에 관한 설법에서 등장하는 ‘견성(見性), 자성심지(自性心地), 자본심(自本心), 상정자성(常淨自性)’ 등의 표현에서 ‘성(性)’ ‘자성(自性)’ ‘본심(本心)’이라는 용어를 궁극실재(窮極實在)에 관한 표현으로 읽는다. 그럴진대 혜능(慧能)의 법문은 ‘궁극실재에 관한 불교적 변주’가 되어 아트만 사상과의 차별화가 어렵게 된다. 혜능(慧能)의 설법에 따라 전개된 선종 선불교도 ‘불교 내부의 신흥 아트만 사상’으로 읽히게 된다. 선종의 언어가 구사하는 공(空), 무아(無我), 연기(緣起) 등의 불교 언어들은 궁극실재를 꾸미는 장식물이 되고 만다.
성(性)·자성(自性)·본심(本心) 등을 궁극실재(窮極實在)로 읽는 신비주의 독법은, <견성(見性)은 궁극실재를 직접 보는 것이고, 돈오(頓悟)는 그 궁극실재를 한꺼번에 체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실재(窮極實在)는 ‘변화·관계·차이의 이면이나 너머에 실재하는 불변·동일·순수·독자·절대의 속성을 지닌 참된 존재나 상태’를 말하는데, 그 궁극실재(窮極實在)의 체득을 추구하는 구도(求道) 행각은 성공할 수가 없다. 세속을 뒤로 하고 모든 관심과 노력을 온통 돈오견성(頓悟見性)에 쏟아붓는 구도행(求道行)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방황의 여정이 되고 만다.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목적지의 이정표를 잘못 읽었기 때문이다.
‘궁극실재(窮極實在)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념’을 신비주의라 한다면, 돈오견성을 궁극실재의 채득으로 읽는 경향이 커질수록 선종(禪宗) 선불교에서는 신비주의가 득세하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궁극실재(窮極實在)에 관한 다양한 착각과 허세가 설 자리를 얻는다. 특히 비일상적 경험이나 능력을 궁극실재(窮極實在)의 체득과 연관 짓는 무지(無知)가 자신과 세상을 기만적으로 농락한다. 이런 신비주의 풍토에서는 ‘현상의 조건인과적 발생’을 성찰하려는 연기적(緣起的) 지성(知性)이 ‘쓸모없는 지식놀음’, ‘무지의 알음알이’, ‘궁극실재를 가리는 분별’로서 경멸의 대상이 된다. <한 소식했다>,<깨달음을 맛 보았다>, <신비 체험을 했다>라는 식의 체험 주장이, 연기적 성찰이 열어주는 지성(知性)과 합리(合理)의 자리를 차지해 버린다. 그리하여 그런 체험 현상을 발생시키는 조건들과 그 인과적 연관의 성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변화·관계·차이의 세계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변화·관계·차이의 현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건인과적 사유’로써 풀어가려는 길은 아직도 한산하다.
2. 돈오견성(頓悟見性)과 마음수행
선종 선문(禪門)의 특징과 내용에 대한 탐구는 ‘곧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킴’(直指人心)과 ‘한꺼번에 깨달아 견성함’(頓悟見性), 이 두 명제에 집중된다. 그런데 이 두 명제는 ‘한꺼번에 깨달아 견성함’(頓悟見性)이 바로 마음수행(直指人心)의 문제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결국 <돈오견성(頓悟見性)이라는 마음수행은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선종 선불교 탐구의 핵심 과제이다. 선 수행의 두 축은 이해수행과 마음수행이며, 이해수행의 성취와 마음수행의 성취가 결합하고 상호작용하여 완전한 깨달음의 장(場)을 구현한다. 그리고 선종의 수행체계는 이해수행을 포함하지만, 마음수행인 돈오견성에 목표와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혜능(慧能)과 선종(禪宗)은 ‘무념(無念)의 돈오견성(頓悟見性)’을 통해, ‘육근수호의 알아차림(sampajanati)과 사마타 마음수행➝유식사상의 유식무경(唯識無境)➝공관(空觀)을 품은 유식관(唯識觀)에 의거한 원효의 일심(一心)’을 관통해 온 마음수행의 본령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돈오견성만으로 부처가 되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 이상 퇴행하지 않는 수준인 ‘완결형 돈오견성’을 성취한 것이 바로 부처의 경지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돈오견성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가 되는 중요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돈황본 『육조단경』 가운데 혜능 선 사상의 요결을 잘 담아내고 있는 ‘무념(無念)의 돈오견성(頓悟見性)’ 법문에는 ‘진여본성(眞如本性)·자본성(自本性)·자성심지(自性心地)·본심(本心)·자성(自性)’으로 표현되는 긍정 기호들이 등장한다. 문맥으로 볼 때 이 용어들은 같은 의미맥락에서 채택된 다채로운 표현들이다. 만약 이 용어들을 ‘가변적 현상 이면에 있는 불변·독자의 완전한 궁극실재(窮極實在)’로 읽는다면, 혜능과 선종의 가르침은 ‘불변·독자의 완전한 궁극실재(窮極實在)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신비주의’가 된다.
법문의 전후 맥락을 고려하면, 이 기호들은 분명 ‘마음’ 및 ‘마음현상’과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음은 ‘불변·독자의 완전한 궁극실재(窮極實在)’가 아니며, 마음현상은 그 궁극실재(窮極實在)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은 동일 내용을 타자 배제적으로 보존하는 ‘명사형(名詞形) 마음’이 아니다. 변화와 관계에 열린 채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동사형(動詞形) 마음’이다. ‘닫혀 있고 정지해 있는 명사형(名詞形) 마음’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열려 있고 움직이는 동사적(動詞的) 마음 국면’을 지시하는 것이다.
불교 문헌에 등장하는 용어·개념들을 탐구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모든 용어·개념을 ‘명사형(名詞形)’으로 읽는 태도이다. 불교 용어와 이론뿐 아니라, 인간이 구사하는 모든 언어를 읽을 때는 ‘명사형(名詞形)’ 용법이 지시하는 현상의 실재는 ‘동사적(動詞的) 사태’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명사형(名詞形) 언어가 지시하는 내용을 ‘불변·동일·독자의 정지된 사태’로 간주하는 것은 인간이 품은 언어적 환각이고, 이로부터 인간 세상 특유의 양지와 음지 현상이 모두 발생하였다. 붓다는 <인간의 모든 언어 용법이 지시하는 현상을 ‘변화·관계의 동사적(動詞的) 사태’로 읽어야 언어 환각의 덫에서 풀려난 이로움을 누리게 된다>라는 것을 설한 최초의 선각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혜능(慧能)에 따르면, 무념(無念)은 <모든 현상을 무아(無我)나 공(空)으로 이해하여 ‘실체 관념에 의한 판단과 평가’(分別)를 그치는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다. 무념(無念)은 ‘모든 현상과 만나면서도 그 현상들을 붙들지 않는 마음이나 생각’이다. 그리하여 <모든 현상에 불변·독자의 실체/본질이 있다는 생각으로 현상을 가공하던 마음작용의 계열을 멈추고 ‘실체/본질 관념의 왜곡이 사라진 사실 그대로’를 보는 마음자리를 회복하여 보전하는 것>이 무념(無念) 수행이다. ‘현상의 사실 그대로’는 본래부터 무실체·무본질·관계·변화의 사태이다. 이 ‘본래의 그러함’(本然), 그 상실된 고향으로 회귀하는 수행이 ‘무념(無念)이라는 마음수행’이다. 무념(無念)은, ‘불변성·동일성·독자성을 부여하는 언어의 속성에 지배된 인식작용’(分別)으로 인해 잊혀진 ‘현상의 본래 그러한 고향’을 되찾는 발길이다. 이 귀향(歸鄕)의 발길은, <현상에 대한 ‘마음의 왜곡적 인지 작용’(分別)을 그치는 마음 국면>을 열어 확립하는 행로이다. <모든 현상에 불변·독자의 실체/본질이 있다는 생각으로 현상을 가공하던 마음작용의 계열을 멈추는 것>이 무념(無念)의 행각(行脚)이다. 이 무념(無念)의 마음 국면에서는 현상의 ‘본래 그러함’(本然)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실체/본질 관념의 왜곡이 사라진 사실 그대로’를 보는 마음자리를 회복하여 보전하는 것>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현상을 사실 그대로 보는 본연의 마음자리’는 불변의 명사형(名詞形) 좌표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수립되는 동사형(動詞形) 좌표라는 점이다. 마음을 비롯한 모든 현상은 역동적이기 때문에, ‘견성의 마음자리’(自性心地)에 자리 잡는 것도 역동적 선택과 지속적 간수 능력이 문제이다.
‘차이들을 왜곡하던 마음 방식을 붙들지 않는 마음 국면’인 무념(無念)은, 붓다가 설한 정념(正念)과 육근수호 법설의 알아차림(正知,sampajanati)을 다시금 변주(變奏)하고 있다. <생각하면서도 [사실을 왜곡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무념(無念), <차이에 있으면서도 차이[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는 무상(無相), <[사실 그대로 보는] 본연의 면모가 되어 생각마다 [집착으로 현상에] 머물지 않는 무주(無住)>가 결합된 ‘무념(無念)의 돈오견성(頓悟見性)’은, 붓다가 설한 마음수행의 본령을 잘 포착하여 계승하고 있다. 혜능(慧能)과 선종(禪宗)은 ‘무념(無念)의 돈오견성(頓悟見性)’을 통해, ‘육근수호의 알아차림(正知, sampajanati)과 사마타 마음수행➝유식사상의 유식무경(唯識無境)➝공관(空觀)을 품은 유식관(唯識觀)에 의거한 원효의 일심(一心)’을 관통해온 마음수행의 본령을 이어가고 있다.
혜능(慧能)은 무념(無念)의 의미를 무상(無相)과 무주(無住)라는 개념과 연관시켜 부연 설명한다. 혜능의 설법에서 특히 주목되는 내용은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에 대한 정의(定義)이다. 그에 따르면, 무념(無念)은 <생각하면서도 [사실을 왜곡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것>(於念而不念)이고, 무상(無相)은 <차이에 있으면서도 차이[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는 것>(於相而離相)이며, 무주(無住)는 <‘인간의 [사실 그대로 보는] 본연(本然)의 면모’(人本然)가 되어 생각마다 [집착으로 현상에] 머물지 않는 것>(爲人本性 念念不住)이다.
혜능(慧能)의 좌선(坐禪) 법문은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 법문의 변주(變奏)다. 좌선(坐禪)의 의미와 내용을 채우는 것은 <‘생각하면서도 [사실을 왜곡하면서] 생각하지 않는’(於念而不念) 무념(無念)과 <‘차이에 있으면서도 차이[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나는’(於相而離相) 무상(無相) 및 <‘인간의 [사실 그대로 보는] 본연(本然)의 면모가 되어 생각마다 [집착으로 현상에 머물지 않는](爲人本性 念念不住) 무주(無住)이다. 혜능(慧能)은 좌선(坐禪)에 몰두하는 수행자들의 선정(禪定) 수행이 마음수행의 본령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좌선(坐禪) 수행의 본령을 일깨워 주려고 한다. 좌선(坐禪)이나 선정(禪定) 수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좌선(坐禪)과 선정(禪定) 수행 본연의 맥락과 내용을 밝혀준다. ‘변화·관계의 차이현상’(相)과 접속을 유지한 채, ‘차이현상에 대한 왜곡·오염의 분별을 발생시키는 마음의 조건들’을 ‘차이현상을 사실 그대로 보는 인식과 사유를 펼치는 마음의 조건들’로 바꾸는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의 마음수행이 좌선(坐禪)이고 선정(禪定)이라는 것이다.
불교에 대한 시선의 전반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특히 선종(禪宗)의 사상을 읽을 때 ‘차이 초월의 신비주의 독법’을 채택할 경우, 깨달음과 차이현상에 대한 무관심은 근원적 수준에서 결합한다. 무상(無常)·무아(無我)·공(空)에 대한 이해를 통해 깨달음을 이루어 해탈하려는 이해 독법의 경우에도 유사한 현상이 목격된다. ‘무상(無常)·무아(無我)·공(空)에 대한 이해’가 자칫 ‘치이현상과 결합되어 있는 현실의 증발’로 이어지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차이에서 발생하는 현실문제에 대한 근원적 무관심(無關心)’이다. 그리고 이것은 ‘차이 문제로 채원진 삶과 세상’에 대한 성찰 지성(知性)과 문제 해결 의지에 대한 무관심(無關心)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그런 성찰 지성(知性)과 문제 해결 의지를 분별을 키우는 일‘이라며 경시하는 경향까지 부추긴다. 깨달음과 세간의 근원적 불화(不和)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궁극실재(窮極實在)에 시선이 박혀 ’차이현상에서 발생한 문제로 채워진 세간 자체‘를 송두리째 초월(超越)하려 하거나, 무상(無常)·무아(無我)·공(空)에 대한 이해를 ‘세간 문제를 일거에 내려놓는 해법’으로 소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지(無知)이고 기만(欺滿)이다. 붓다의 길, 공(空)과 마음에 관한 대승교학(大乘敎學)의 통찰, 원효(元曉), 선종(禪宗)의 선문(禪門)을 ‘차이현상의 부정이나 초월의 길’로 읽는 것은 오독(誤讀)이다. 딛고 있는 땅은 보지 않고, 먼 하늘만 쳐다보며 딴청을 부리는 어리석음이다. 기만적 내려놓기이고, 도피적 초월이다. 혜능의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 법문은 이해 독법과 신비주의 독법의 이런 문제점을 비추는 거울이다.
인간 세상의 차이 문제는 언어·사유·욕구와 결합되어 발생한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과 경험은 처음부터 끝까지 ‘언어·사유·욕구와 결합된 차이’(相)들을 조건으로 삼아 발생한다. 붓다의 길[中道]은 이 차이들과 만남을, ‘불변성·동일성·독자성·절대성 환각의 덫’을 풀고 ‘변화·관계의 차이들과 사실 그대로 관계 맺기’로 바꾸는 길이다.
원효(元曉)는 붓다의 길을 탐구하여, ‘언어·사유·욕구와 접속해 있는 차이’(相)를 성찰하고, 이 차이(相)를 ‘불변·독자의 본질/실체 관념에 포획되어 왜곡·오염된 차이’와 ‘불변·독자의 본질/실체 관념에서 벗어난 차이’로 구분하는 동시에, ‘왜곡·오염되어 부당하게 차별된 차이와 그 해로움’ 및 ‘제대로 이해된 사실 그대로의 차이와 그 이로움’에 관한 통찰을 밝혀 삶과 세상을 치유하는 길을 자신의 언어와 몸짓으로 펼쳤다. 혜능(慧能)은 무념(無念)·무상(無相)·무주(無住)의 법문을 통해 기존의 선관(禪觀)과 마음수행에 대한 통념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깨달음과 차이현상을 재결합시키고 있다. 붓다와 불교를 따라 원효(元曉)와 혜능(慧能)이 걸어간 길에 대한 시선과 탐구는 재검토할 대목이 많다. <내용 개요 5 끝>
*다음에는 [미완결형 돈오견성과 완결형 돈오견성], [마음수행의 창발적 전개], [화두의심은 왜 돈오견성으로 이어지는가?] 순서로 <저자의 내용 개요 6>을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