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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정보학회 회원 여러분께(2)
2. 언어와 문자의 본성(本性)
엊그제 발송한 본인의 글에서 약속한 “언어(국어)와 문자(한글)의 본성”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 간략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비전문가들이 이해하기 용이하도록 언어학이나 문자학(文字學)의 전문 용어는 되도록 피하고, 사용하는 용어도 가급적 학술적으로 정의된 엄밀한 개념보다는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뜻으로 씁니다.
서설
국어는 수 백만년 전 인류가 등장한 이래 사용해 온 수 천 혹은 수 만 가지 ‘언어’ 중의 하나이고, 한글은 5천년 전 인류 문명 발상(發祥)과 더불어 처음 등장한 이후 세계 도처에서 독자적으로 창제하였거나 기존 문자를 채택 혹은 모방하여 만든 수십 가지 혹은 1백 수십 가지 ‘문자’ 중의 하나입니다. (인류가 사용해 온 언어와 문자의 종류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국어와 한글도 물론 인류의 모든 언어와 문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기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자들이 국어와 한글을 현대적(서구식) 방법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110여년 전인 19세기 말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조선왕조)는 열강의 간섭과 내분으로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어서,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이 선도한 애국 운동이 여러 방면에서 일어났습니다. 국어와 한글에 대한 근대적 연구도 선각자들의 애국정신에서 시작되었고, 그 즈음부터 국문(=한글) 전용론, 한자 폐지론, 국문철자법(=한글맞춤법)의 재정립론(再定立論) 등도 거론되었습니다. 민족의 자주독립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화(慕華 ‘중국을 우럴어 봄’) 사상을 배격하고 개화(開化 enlightenment) 사상을 고취해야 하며, 그 첫 단계로 어문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그 후 국어와 한글에 관계되는 문제들은 흔히 ‘애국애족’과 관련지어 생각하게 되었고, “나라 사랑, 국어 사랑, 한글 사랑”이라는 구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속에 확고히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민족주의적 사상은 실용(實用) 어문(語文)의 문제를 연구하고 해결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적지 않게 끼쳤습니다. 즉, 일부 연구자들은 국어와 한글이 지니고 있는 언어와 문자의 보편적 성격은 무시하고, 오직 ‘국어/한글 사랑’만을 주장함으로써 실제 어문생활에 혼란을 조성하고 국가적으로는 막대한 인력과 예산을 낭비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또한 ‘한글의 우수성’을 과신(過信)한 일부 연구자들은 실용성(實用性 usability)과 가용성(可容(덧말:용)性 acceptablity)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국어/한글의 개선 방안 연구에 엄청난 노력을 경주하여 왔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주제로 “언어와 문자의 본성”을 비전문가들을 위하여 설명하려고 합니다.
(1) 말과 글은 기호(記號)이다.
(2) 말과 글은 의미(意味)를 전달하는 기호이다.
(3) 한 사람이 구별할 수 있는 음성(音聲)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다.
(4) 표기(表記 writing)와 표음(表音 transcription)은 다르다.
(5) 글은 주로 ‘읽기’ 위해서 배운다.
(1) 말과 글은 기호(記號 symbol, sign)이다.
말과 글이 기호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거나 적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호’는 사진이나 사실적(事實的)인 그림이나 각종 로고(logogram, logograph)와 같이 그 자체가 어떤 정보(의미)를 나타내는 매체가 아닙니다. 기호가 나타내는 정보는 기호 자체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호에 관습적으로 부여되어 왔거나, 혹은 새롭게 부여되어 보급된 것입니다. 따라서 기호가 나타내는 정보를 이미 습득하지 않은 사람은 기호를 대하여 그것이 전하는 정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글이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문자기호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는데, 한글을 처음 대하는 사람이 한글 자모의 표시음을 알 수 없는 면에서 다른 문자들과 같은 성격의 ‘기호’입니다. 사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가 발견되기 전까지 수백년간 한글의 기원을 정확히 설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책상]이라는 음성기호가 나타내는 의미는 한국어를 습득한 사람만 알 수 있고, [데스크]라는 음성기호의 의미는 그 영어 단어의 음성을 습득한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시각(視覺)기호 ‘책상’이 표시하는 음성과 의미는 한글과 한국어를 배운 사람만 알 수 있고, ‘desk’가 시현하는 음성과 의미는 로마자와 이 영어 단어를 배운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호가 기호의 기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기호가 표시하는 정보를 습득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기호를 제작한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기호를 고안해 냈다하더라도 그것이 나타내는 정보를 습득하여 이해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글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글자(즉 시각기호)를 창작하여 제시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한글의 추가 글자를 창작할 때에는 누가 어떤 필요에서 습득할 것인지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조선시대 사역원(司譯院)에서 간행된 중국어, 몽고어, 일본어, 만주어 학습서들에는 그 언어들의 발음을 한글로 표음(表音)하면서, 국어에 부재하는 음성은 한글에 부가기호를 첨가하여 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은 소수의 역관(譯官 외교통역관) 양성에만 이용되었을 뿐, 일반에 보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2) 말과 글은 의미(意味)를 전달하는 기호이다.
‘언어’는 보통 “인간의 의사(意思: 생각, 의견, 주장, 느낌 등) 소통 수단”이라고 정의합니다. ‘의사’는 우선 ‘음성’기호로 표현됩니다. ‘문자’는 언어의 음성기호를 시각(視覺)으로 전달하는 시각기호입니다.
여하 간에, 언어의 본기능(本機能) 또는 필수불가결한 기능은 ‘의사’(意思)의 전달, 즉 음성기호나 시각기호(문자)에 결부된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입니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통하여 오직 우리나라의 일부 국어/한글학자들만이 언어의 주요 기능이 ‘정확한 음성의 전달’이라는 관념을 지녀왔습니다. 그리하여 광복 이후 현재까지 수시로 발생한 어문과 관계되는 논란들은 대부분 ‘음성의 표시’와 관련되었었습니다.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유발된 “한글맞춤법 복귀 개정 논란”, 광복 이후 4차에 걸쳐 개정된 “국어/한글의 로마자표기법”, 1986년 경부터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만들어 발표해 온 각종 “외래어 표기법”, 1980년대에 이루어진 “맞춤법의 일부 개정” 등이 모두 ‘발음’과 관련되었으며, 각각 상당한 인력과 국가 예산이 소요(所要)되었습니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입니다.
언어의 소통 과정에서 ‘음성’은 다양한 ‘의미’을 구별하는 기능을 하며, 어떤 단일 ‘의미’가 결부된 음성은 추상적으로는 하나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자(기호)로 표기될 때는 단일 형식(形式 form)으로 나타나야 의미 전달과 이해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고정된 형식으로 표기하는 것입니다. 실제 음성은 [아버지] [아부지] [아브지] 등으로 다양하지만 표기는 ‘아버지’ 한 가지로 정한 것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발음이 변한 ‘희망’[히망], ‘계산’[게산] 등이나, 이웃한 음의 영향으로 음성이 바뀌는 ‘국민’[궁민], ‘낱말’[난말] 등을 실제 발음에 따라 표기를 바꾸지 않는 이유는 그 표기를 이해할 사람들이 발음 표기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 ‘모양’으로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calm, knight, psychology 와 같은 단어들의 철자에 불필요한 글자가 포함된 것도 그러한 철자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 전달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3) 한 사람이 구별할 수 있는 음성(音聲)의 종류는 한정되어 있다. ㅣ
음성은 폐에서 생성된 기류가 성대-후두-구강을 통과하면서 혀와 입술 등에 의해서 다양하게 변화되어 밖으로 방출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별되는 음성의 특징과 수효는 언어마다 다르고, 같은 언어에서도 방언에 따라서 다르고, 같은 방언, 심지어 같은 가족의 말에서도 아버지와 아들 간에 다를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구별되는 [f] [ð](this에서 th 음) 등은 국어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구별할 수 없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대개 [ㅅ]과 [ㅆ]을 구별하지 못하여 ‘살’과 ‘쌀’의 발음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현재 50대 후반 내지 60세 이상의 서울 사람은 [에]와 [애]를 구별하는데, 그분들의 아들들은 구별하지 못하여 ‘네것’과 ‘내것’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구어에서 [니꺼] [내꺼]로 구별합니다.) [돼지][되지][뒈지][대지][데지]를 모두 구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이 많은 중부지방 사람들은 [되지=뒈지] 이외에는 대개 구별할 수 있지만, 남쪽 지방 젊은 층의 방언에서는 다섯 가지가 모두 동일하게 발음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영어의 여섯 단어 bally, belly, berry, vary, very, valley 를 발음시켜 보면 흥미 있는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최대로 [벨리][베리][배리][밸리] 4 가지로 구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극단적으로는 [베리]한 가지로만 발음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국어든 외국어든 자신의 언어에서 구별되지 않는 음성을 구별하려면 상당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적절한 발음’은 어느 정도 훈련으로 성취할 수 있지만 ‘들어서 구별’(hearing)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4) 표기(表記 writing)와 표음(表音 transcription)은 다르다.
비전문가들뿐만 아니라 한글/국어를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들, 심지어 국어학 교수들 중에서도 ‘표기’와 ‘표음’을 혼동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문자(기호)로 썼다 해도, 표기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관습적으로 써온 고정된 형식으로 쓰는 것이고, 표음은 ‘발음’을 알려주기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위 (2)항에서 예로 들은 ‘희망’, ‘계산’, ‘국민’, ‘낱말’, calm, knight, psychology 는 표기이고, 그 단어들을 소리나는 대로 ‘게산’, ‘궁민’, ‘난말’, kam, nait, saikol?d?i 와 같이 쓴 것은 표음입니다.
“국민의 희망과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는 표기이고, “궁미네 히망과 이사(~으사)를 대변(~데변)하는 구쾨이원(~으원)을 뽀바야 할 거심니다”는 표음입니다. 표기와 표음 중에서 어느 쪽이 의미 전달에 유리한지 즉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표음을 잘 할 수 있는 문자가 우수한 문자는 아닙니다. 1886년에 창립된 국제음성학회(International Phonetic Association)에서 국제음성문자(International Phonetic Alphabet)를 제정하고, 1930년대부터는 여러 번 수정 증보하면서, 전 세계에 보급하여 왔습니다. 그동안 이 문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일부(전부가 아님) 외국어 사전에 발음 표시 목적과 일부 언어학자들의 저술에 음성표시 기호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언어의 표기문자로는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 오래 전부터 국어에 부재하는 외국어음을 표시할 수 있는 확장 한글 문자를 고안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제안한 한글 확장자들은 물론 보급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1백여년전에 발행된 책에서 외국어의 [f]를 ‘ㅍ’자 앞에 권점(圈點)을 친 ‘ㅇㅍ’으로, [v]를 ‘ㅂ’자 앞에 권점을 친 ‘?’으로 표기하였으나 일반의 호응을 받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모두 실용적인 어문생활에 불필요했기 때문에 사용되지 않은 것입니다.
영어단어 file 과 pile 을 똑같이 [파일]로 발음하고 ‘파일’로 써도, 그 단어를 이용하는 환경에 따라 의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 “(컴퓨터) 파일을 받았다.” “(건축 현장에서) 파일을 박는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외국어의 국어화 결과입니다. [f]와 [p]가 원음에서 구별된다고 f 음 표기 글자를 별도로 만들어 ‘?일’과 ‘파일’로 구별해야한다는 논리는 오직 연구자들에게만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5) 글은 주로 ‘읽기’ 위해서 배운다.
일반적으로 글을 배우는 기본 목적은 ‘읽기’(독해 reading)와 ‘쓰기’(작문writing)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글을 쓰는 일은 극히 드물고 주로 읽기만하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글을 많이 쓰는 문필가라도 평생 쓰는 글보다 읽는 글의 양이 몇 십배 몇 백배 많을 것입니다.
“읽는 글”은 일상생활에서 매일 대하는 신문, 잡지, 고지서, 광고지 등에서부터 성경, 법률, 헌법에 이르기까지 “이미 써져 있는 글”입니다. 내가 남에게 나의 의견을 전하기 위하여 “쓰는 글”을 극히 미미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쓰기는 전혀 못해도 읽는 능력이 있다면 글을 배운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세기 동안 우리나라 어문론자(語文論者)들은 대개 ‘쓰기’의 측면에서만 글에 관한 문제를 논해 왔습니다. “한자는 배우기 어렵다”,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 “외국어음을 원음대로 써야한다”, “발음의 변화에 따라 맞춤법을 바꾸어야 한다”, “문자가 없는 민족들에 한글로 문자를 만들어 주자”, “한글의 세계화를 추진하자” 등등은 모두 글을 쓰는 측면만 고려한 주장과 의견들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6) 부탁의 말씀
지난 1백여년간 우리나라에는 국어나 한글의 실용과 관련하여 어떤 개선안을 강력히 주장하는 자칭 타칭 국어/한글 연구자들이 계속 존재하여 왔습니다. 물론 개인의 자유입니다.
‘개선안’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존 방식의 불합리성이나 미비성(未備性)을 개선하기 위한 주장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음성의 표기’와 관련된 논란은 대개 불합리성에 속하고, 국어에 부재(不在)하는 외국어음 표기를 위한 한글의 확장자(?) 선정 문제는 ‘미비성’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연구자 중에는 관계되는 사실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이 기존 방식을 무모하게 비판하거나, 순전히 추측에 의하여 어떤 국어학자의 책임으로 매도함으로써, 국어/한글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인들과 생존 학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언어/문자에 대한 미흡한 지식으로 왈가왈부하는 연구자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역시 안타까운 일입니다.
선진 제국(諸國)에서는 말과 글에 관한 문제를 정부가 관장하여 정하지 않습니다. 어떤 개인이나 대학이나 출판사에서 제안하는 방식이 적절할 때 대다수의 일반 국민이 따름으로써 (따르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일됩니다.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방식일 것입니다. 미국, 영국 등에서 철자법(spelling)과 표준 발음이 통일되는 과정이 그러하였습니다.
1백여년 전 구한말(舊韓末)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어문 문제를 정부의 주도로 결정하기 시작하였고, 그 관례는 광복이후 미군정시대를 거쳐 대한민국에 전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60여년간 모든 어문관계 규정을 정부의 주도로 제정하고 개정하였습니다. 결정 과정에 어문연구자들이 반드시 참여했다고는 하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방법에 비하면 비민주적(非民主的) 혹은 반민주적(反民主的) 방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수인의 의견으로 결정된 사항을 다수인에게 따르도록 강요하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어문 규정이 정부에 의하여 제정과 개정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어문론자들은 현행 방법을 정부의 권력으로 언젠가 다시 바꿀 수 있다는 관념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항에 대한 개선안을 계속 주장하는 면도 없지 않은 듯합니다.
국어와 한글의 실용과 관련된 어떤 개선안을 연구하고 제안할 때는, 전문가들이 볼 때 가소로운 주장이나 기존의 방법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은 삼가해야 할 것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그 안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단 한 사람에게도 설득력 없는 개선안을 주장하는 일은 이제 지양되기를 희망합니다.
(애초에 A4 용지 2매 정도로 계획하고 시작했는데, 집필 과정에서 길어져서 삭제와 수정을 거듭하느라 지체되었습니다.)
첫댓글 남에게 훈계하기 전에 제 허물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