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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지는 꽃
도 종 환
바람도 없는 허공에
들찔레꽃 하얀 잎 하나 혼자 지고 있네요
치열하게 살았으나
욕되게 살 수는 없어
벼랑 끝에 한 생애를 던진 저 한 점 꽃잎의 영혼을
하늘이여, 당신의 두 팔로 받아 안아 주소서
그의 좌절은 나의 좌절
그의 한계는 이 나라의 한계
그의 굴욕은 우리들의 굴욕
그의 자존심은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뉘우치노니
그의 늑골에 금이 가는 것은
권위주의를 벗으려는 노력에 금이 가는 것
그의 정강이뼈가 부서지는 것은
지역주의를 깨보려던 시도가 부서지는 것
그가 피 흘리며 쓰러지는 것은
정의로운 역사를 세우려던 몸부림이 쓰러지는 것
그의 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균형 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향한
간절한 소망들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므로
역사여, 당신의 가슴으로
이 조각난 육신을 받아 안아 주소서
다시는 손녀딸을 자전거에 태우고 논길을 달리는
대통령을 가질 수 없을지 모르니
밀짚모자를 쓰고 구멍가게 앉아 담배를 꺼내 무는
소탈한 우리의 대통령을 만나지 못할지 모르니
그가 꿈꾸던 아름다운 가치들이
모조리 불에 타
허망한 연기, 한 주먹의 재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으니
잔혹한 시대여, 그를 우리의 벗으로 다시 돌려주소서
그를 조롱하고 손가락질 하던 야만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습니까
그를 업신여기고 비아냥거리던 비겁한 권력들은
지금 무슨 혀를 준비하고 있습니까
가장 뜨거웠으나 가장 외로웠던 그
가장 도전적이었으나 가장 힘들어 했던 그를
혼자 벼랑으로 걸어가게 한 이 누구였을까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뉘우치는 눈물 발등을 적시지만
이제 어디서 그를 만나야 합니까
이 땅의 슬픈 역사여,
아아, 대한민국이여!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부엉이바위
손택수
부엉이가 울었다는 산
부엉이 울음이
바위귀 속으로 들어가
바위가 되었다는 산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침을 놓듯
막힌 혈을 뚫어주던,
어둠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그 눈
이제 부엉이는 보이지 않는데
부엉이 울음이 다시 들린다
아직 어둠이 다 새지 않았다고
이 어둠을 뭉쳐 한 종지 이슬을 만들어야 한다고
바위처럼 굳어버린 사람들
귀속으로 들어간 울음소리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인해요 일어나요 안도현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바침
안도현
뛰어 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버티다가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살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으깨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저 가증스런 낮짝의 거짓 앞에서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저 뻔뻔한 주둥이의 위선 앞에서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저 무자비한 권좌의 폴력의 주머니의 불의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당신은 지지 않았다
함민복
오월, 찔레꽃에서 상처의 냄새가 났다
당신이 가는 길이었다
당신이 방방곡곡 길이었다
길들이 다 당신이었다
당신은 사선을 넘어서며
우리들이 살아갈 길을 열어주었다
무력증에 빠져있던 우리들 되살아나
당신이 가는 길은 눈물의 강이었다
부엉이 눈동자 빛 노란 만장들이
어두운 세상을 향해 칼날처럼 빛났다
당신의 손녀딸은 당신이 지지 않고 이겼다고
두 손가락 들어 브이 자를 그렸다
우리도 양 손바닥으로 눈물을 찍어 훔치며
당신은 지지 않았다고, 우리들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얼굴에 브이 자를 그렸다
들판을 달리던 자전거 바퀴 두 개 어디로 갔나
밀짚모자 아래 환하던 웃음 어디로 갔나
작은 자전거 바퀴 두 개 남아 봉하 들판 외롭다
들판길 달리던 바퀴 두 개를 돌려달라
아니, 아니 필요없다
들판길 달리던 바퀴 두 개 죽지 않는다
너희들의 겁이 우리들 희망 앗아갈 권리 없다
너희들의 잔머리에 우리들이 무릎 끓을 리 없다
동물 중에 부엉이가 제일 앞서 다닌다고 했다
호랑이도 부엉이 뒤를 따른다고 했다
당당하게 살아와 용감한 당신
부엉이바위에서 사람 사는 세상의 깃발로 날아올랐다
해와 달도 눈물방울처럼 슬픈 날이었다
당신의 바보를 듣고 낮은 문턱도 절벽이었다
이 땅의 민주주의도 천길 절벽이었다
사람들 마음에도 절벽이 패였었다
그러나 그러나
사람들 가슴으로 흐르는 눈물의 강은 뜨거워
떨쳐 일어나며 대오를 형성하고 걷는 사람들 맘에 용기 터져 솟아올라
우리가 우리 세상 찾으려 맘 뭉쳤던 4.19, 5.18, 6.10, 민주사다리 올곧아
한줌 어두움의 편인 절벽은 제풀로 낮아졌다
우리는 이미 튼튼하게 울고 있었고
당신은 너와 내가 우리의 한 조각임을 일깨워주며
뚜벅뚜벅 우리들 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당신은 역사의 바퀴인, 우리 백성들의 눈동자 두 개 맑게 닭아주고 있었다
오월, 당신이 떠나간 길에서 찔레꽃향이 났다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사십구재에 오신 궁민窮民 여러분께
공광규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몸을 버리러 가면서
잡초를 뽑는 것 다 봤을 겁니다.
몸은 바위 아래 버렸으나
벼 포기 사이 오리로 태어났습니다.
곡식과 강물 위 햇살로 태어났습니다.
공장 기계소리로 태어나고
상점 호객소리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논두렁에 있습니다.
광장과 거리에 있습니다.
시장과 술집과 다압에 있습니다.
법당과 성당과 교회에 있습니다.
노동자 대열 속에 있고
장애인 휠체어를 밀고 있습니다.
저는 주방 도마 소리와
어린아이 보행기 앞에 있습니다.
저는 강바닥에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휴전선 철책에서 울고 있습니다.
부자들 비밀계좌를 추적하고 있으며
국회의원 입을 지켜보고 있고
청와대에서 귀신으로 배회하고 있습니다.
검찰 조사서를 넘겨보고 있고
법정 판결문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가 사이비 기자인지 알고 있습니다.
잡초가 누구인지 아는 저는
목매 죽은 특수고용노동자와 함께 있고
불타죽은 철거민과 같이 있고
노숙자와 같이 살고
의분에 목매단 목사님과 같이 삽니다.
이들과 잡초를 뽑으러 다시 올 것입니다.
와서 잡초를 뽑고 말겠습니다.
저 죽지 않았습니다.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리본을 지키다
맹문재
나는 검정색 리본을
초등학교 때 받은 개근상장을 보관하듯
책상 서랍에 넣고 있다
국민장 리본을 보관하기는 처음이지만
약속한 대로 지키려고 한다
나는 2009년 5월 26일 오후 1시쯤
안양역에 설치된 빈소에서
리본을 받아
지금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필요할 때는 기꺼이 펼치기 위해
품고 있는 것이다
리본을 요새처럼 지키고 있는 한
나는 책들을 경전처럼 읽을 것이다
밥을 공양미로 먹을 것이고
노란 등불이 밝히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님을 보내며
유시민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님
활짝 웃으며 내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 자리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돋았답니다.
나는 거기에서 속삭여요.
님은 씩씩하게 살았고
그리고 멋지게 떠나셨지요.
나는 님 덕분에 아주 행복하고
님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더는 님 때문에 울지 않을 거예요.
님을 왜 사랑했는지 이젠 말할 필요가 없어서
님을 오래 사랑했던 나는 행복해요.
님을 아프게 했던 정치인이 상주 자리를 지키고
님을 재앙이라 저주했던 언론이이 님의 부활을 축원하니
님을 깊이 사랑했던 나는 행복하지요.
님이 떠나고 나서야 님을 발견한 이들이 슬프 울어주니
님의 죽음까지도 사랑하는 나는 행복하답니다.
노트북 자판을 가만가만 눌러 작별의 글을 적었던
그 마지막 시간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미안해요.
살 저미는 고통을 준 자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할 수 없어 분하구요.
나란히 한 시대를 걷는 행운을 누리고도
고맙다는 말 못한 게 마음에 걸리지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이젠 님을 보내드려야 하네요.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편안히 가십시오
내 마음 깊은 곳으로.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돋아난 그곳에는
봄마다 진달레 붉게 터지고
새가 울고
아이들이 웃고
청년들이 노래하고
수줍은 님의 미소도 피어나겠지요.
그 흐드러진 꽃무덤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행여 잠결에서도 절대
잊지 않으렵니다.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노무현 대통령 49재 안장식 추모 낭송시>
2009년 5월, 포항
권선희
바람이 매우 컸어요
바다는 어린 흰고래 같은 파도 비늘처럼 세웠고
숲은 나뭇잎 한 장 한 장 등을 다 보여 주었어요
꿈틀거리는 세상이 온통 바람이었지요
대형 전광판이 시 승격 60주년 행사를 광고하며
많은 참여를 바라는 자막 몇 번이고 되돌릴 때,
로터리에서 두어 개 단체가 겨우 걸어 놓은
근조謹弔 플랜카드가 씁쓸히 휘날릴 때,
내가 그대와 약속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푸짐하게 차려진 이기를 꾸역꾸역 집어 먹을 때,
급기야 친절하게 서로 흉계를 먹여줄 때,
멀고 먼 서울 광장은
바람이 불러 낸 노란 물결로 출렁였어요
콘크리트 위로 장황히 번지는 그 거대한 민들레 꽃밭은
도시의 잿빛 봄을 깨우고 흔들며 흘렀지요
철강 노동자들을 싣고
공단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형산교를 지날 때,
그대와 내가 웃으며 헤어지고도
섬처럼 둥둥 저녁을 표류하다 결국 술집으로 붉게 들 때,
분향소가 철수되고 만장이 태워질 때,
누군가 낮은 책상 앞에서 등 굽혀 시를 쓰는 동안
누군가는 모르는 척 질끈 눈을 감았지만
그럴수록 급속히 전송되는 커다란 바람
사납고, 훈훈하고, 따뜻하고, 차갑게 다녀가는 바람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깨우고 일으키는 당신
이제 당신을
기억할 수 있어요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죽어야 산다
송은영
보름달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는
크고 검은 부엉이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
새벽은 먹통이다
누가 산산이 부서지고
갑자기 숨어 멎는다
우수수 감꽃도 떨어진다
생이 너무 아파서
아픈 살 점 한 조각
누구에게 보시하려 하였던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날이 새고 아침이 왔다
어둠 속에는 길이 없는데
죽은 바람이 더 선명하게 살아났다
--출처: 노무현 추모시집<<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그가 꿈꾸던 나라
오영숙
찬란한 오월에
온 몸으로 꿈꾸던 한 사람
스스로 과녁이 되어
떨어져 내리다.
환영처럼 꿈처럼
그가 떠난 자리에
작은 핏방울 하나
거짓말처럼 남다.
그가 없는 오월,
그를 보낸 오월에
그가 이루지 못한
사람사는세상을 그린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평범한 세상
사자와 뱀이 토끼와 병아리와 노는
권력도 투쟁도 착취도 억압도 없는
그가 꿈꾸던 나라
내가 꿈꾸는 나라
우리 모두가 꿈꾸는 나라
어디에도 없는 나라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에 부쳐
엄덕열
1946년 9월 1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나
2009년 5월 23일
62세,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 올랐지요
가난 * 결석 * 학생회장 초등학교 시절 지나며
중학교 외상 입학 * 휴학 * 정학 * 졸업하고
상고 졸업장 * 저임금 막노동판을 돌아 거쳐
신문광고 사법시험 * 주경야독 하셨지요
적수성가(赤手成家)하여
인권 변호사 * 판사 * 민주화 운동 * 국회의원
국민의 정부 해양수산부장관 시절을 거쳐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되었지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우리나라에서 우리들이 다 잘 살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을 찾아 외쳤지요
- 국토 균형 발전 * 행정수도 이전
탈 권위주의 * 지역주의 타파
직설적 화법의 스타다운 노짱이었답니다
가난을 탓하지 않고
바람 앞에 등불을 켜 보이는
배짱 두둑하신 당신은
고향, 봉하마을에 돌아왔지요
끝나지 않은 민주주의를 정리하고 싶었지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햇살 가득한 농부의 땅 빈농의 들녁에 걸어 나와
들판에서 참을 드시는 농부들 틈에서
평민 막걸리를 따르며, 입 속에
안주를 집어 넣어 주던 아저씨였지요
가끔, 손녀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선
오솔길 산모롱이 돌아 돌아 돌던
국민들의 평화로운 할아버지였지요
농부의 아들 빈농의 사람들과 쉬엄쉬엄 막걸리를 나눠 마시던
저녁 노을같은 형님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지금 당신은, 어느 하늘 별나라에 계십니까
또, 무슨 걱정을 하십니까
이마에 세겨진 주름살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개나리 노오란 잠바를 걸쳐 입은 당신
오늘은 어느 하늘 아래 누구를 위하여
환하게 웃고 계시나요
바보, 盧武鉉!
진정 바보가 아닌, 노짱 아저씨!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