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햇수로 16년을 함께 한 애마를 떠나보냈습니다. 그 녀석의 이름은 세라토입니다. 2006년식이고요. 주행 킬로수가 20만에서 조금 모자라지만 운행 중에 자꾸 시동이 꺼지고 멈추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영 찜찜합니다.
녀석하고의 작별을 결정하기까지 가족들의 성화도 한 몫 했습니다. 딸아이는 자신이 녀석을 몰고나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야 녀석을 포기할 거냐며 당장 교체할 것을 애원(?)했습니다. 무엇보다 안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가족의 말에 슬그머니 녀석을 잡고 있던 끈을 놓았지만 1년만이라도 더 함께 하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요.
차를 바꾸기로 결정한 이후, 녀석을 본 이들은 폐차를 시켜도 얼마 받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저도 모르진 않았지만 ‘폐차’라는 말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일었습니다. 오랜 기간 나와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한 녀석을 고장 났다는 이유로 헌신짝 버리는 것처럼 느껴져 쓸쓸함이 밀려왔습니다. 녀석이 인격을 갖추고 있진 않더라도 그간의 정을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막 대하는 건 염치없어 보였지요.
다행히 폐차의 수순을 밟지 않고 수출입업자에게 넘겨졌습니다. 폐차의 위기를 넘긴 거지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자동차키를 건네주면서 수출입자에게 재차 확인하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외국으로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네, 그런데 이대로 가는 건 아니고요. 필요한 부품만 빼서 나갈 겁니다.”
그의 대답은 건조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녀석이 외국의 누군가에게 온전히 넘겨지는 상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차를 절단하여 필요한 부품만을 추려 보낸다는 것이었지요. 제가 순진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녀석이 폐차가 되지 않는 것만 알고 좋아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와 무를 일도 아니었으므로 마음이 헛헛했지만 내색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잘 가라, 세라토.’
녀석을 속으로 부르며 안녕을 고했습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눈물을 꾹 눌러 참고 녀석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녀석과 보낸 세월을 기억하기 위한 마지막 의식이었지요.
이제 녀석을 다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녀석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수출업자에게 보내기 3일 전에도 이와 비슷한 감정 때문에 착잡했습니다. 비록 마음을 정했다 해도 녀석하고의 작별이 믿기지 않았던 거지요.
‘네 덕분에 삶의 한 시기를 잘 건너왔다’고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3일 동안 운 좋게 녀석과 강의를 다녔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수원에서 강의를 잘 마쳤습니다. 녀석을 추억하는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녀석이 내게 온 것은 지금의 일산 집으로 이사 올 때였습니다. 그 전까지 중고차를 구입하여 타다가 일산으로 들어오면서 새 차로 갈아탔는데, 바로 이 녀석입니다. 녀석은 얌전한 스타일에 의젓한 기품이 모나지 않았고 세련되기까지 하여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한 번은 뭘 모르고 자동세차장에서 세차하러 갔다가 녀석을 그런 곳에 데리고 갔다며 가족들로부터 지청구를 들었습니다. 코팅이 반짝이는 새 차 표면이 긁힌다는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런 뒤로는 자동세차장을 멀리 했고, 새 차였기에 더욱 조심스럽게 다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아보면 녀석과 보낸 세월은 내 삶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기였습니다. 녀석은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강의하러 다닐 때 든든한 나의 동반자였습니다. 중간에 어떤 트러블도 일으키지 않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해주었지요.
그 뿐 아니라 녀석은 아이들의 등하교는 물론 시장엘 가고 산책을 갈 때도 늘 함께 동행했습니다. 장모님이 사시던 남원과 순천의 비탈길을 걱정 없이 내달렸고, 한때 충무공의 발자취를 답사하느라 남해와 통영, 여수 등지를 쑤시고 다닐 때에도 안전하게 목적지에 데려다 주었지요. 명절에 제사를 지내러 갈 때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사셨던 안양 집을 주말마다 내 집처럼 다닐 때도 충직한 발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 녀석이 없었다면 어머니 만나러 가는 일도 어려웠을 겁니다.
녀석이 속을 썩이는 일도 더러 있었지요. 10년이 넘어가면서 하나 둘 이상 증상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에어컨이 갑자기 멈추고, 점화 계통의 문제로 성난 말처럼 들고뛸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두운 밤길을 달리던 중 자유로에서 타이어가 펑크 나 길가에서 벌벌 떨며 수리기사를 기다리게 한 적도 있었지요.
최근에는 녀석의 잠금장치가 고장 나는 바람에 법석을 떨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문을 닫으면 바로 잠겨버리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지요. 몇 차례 수리를 받았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번 물건을 내리고 닫을 때마다 창문을 열어 두는 버릇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열쇠를 꽂아둔 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찬거리를 싣다가 그만 문이 잠기고 말았습니다. 아뿔싸, 지금껏 조심해왔는데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녀석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지요. 결국 택시를 타고 집에 와서 보조키로 문을 열어야 했지요.
녀석에게 미안한 일도 있었습니다. 추돌사고였지요. 급히 문자를 보내야 할 일이 생겨 톨케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갓길로 녀석을 몰았는데, 나의 차선 변경을 감지하지 못한 뒤의 운전자가 녀석의 오른쪽 뒷범퍼를 들이받은 겁니다. 그 때문에 범퍼가 뒤틀어지고 말았습니다. 미숙한 운전자의 운전솜씨가 그날따라 미웠던 적이 없었지요. 다행히 저도 추돌한 운전자도 다치지 않았고 범퍼를 교체하는 선에서 마무리되었지만 내 실수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내내 걸렸지요.
녀석이 떠난 지 이제 한 달이 되어 갑니다. 녀석이 떠난 빈자리엔 새 차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얌전히 주차장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지요. 새로운 인연이 시작된 겁니다.
물론 새 차와 정든 세라토와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지요. 녀석하고의 16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제 마음을 털어놓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인사를 말이지요. 그래야 녀석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지요?
‘고마웠어, 그동안.’
녀석이 듣고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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