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저는 매년 6월6일이면 생각나는 잊지못하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씩 겪어봤을 그런 평범한 이야기일수도 있지요.
이제부터 저의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나는 30년전 서해안 군자만 오이도에서 3년의 군대생활중 파견근무로 1년정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앞서, 오이도를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고 속상합니다.
어느지역이든 개발에 쫓겨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곳이 있는것처럼,
이곳 오이도도 그러한곳의 하나입니다.
그때의 오이도는 정말 아름다운 절경이었지요.
오이도 꼭데기에 올라가서 보는 서해의 팔미도, 우도, 형도, 도리도등이 쪽빛 바다에
점점이 떠있고, 뒷쪽과 안쪽으로는 그림같은 군자염전과 더불어 아름다운 오이도의
경치가 빙둘러 펼쳐져있었지요.
가운데살막, 웃살막, 뒷살막, 안말, 신포동, 고주리, 돌추리, 옥토국민학교..
그 아련한 지명과 아름다운 경치들이 지금은 거의 다 없어졌더군요.
우리가 매일 새벽 격구를 하던 저 아래 옥토초등학교만이 온전히 남아있는것 같습니다.
(격구란 축구공으로 하는 럭비의 일종으로서, 기갑부대에서는 일반화된 운동입니다.)
서해안의 해지는 저녁노을을 많이 보셨겠지만, 정말 환상적인 저녁노을은 1년중
한두번만 볼 수 있습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서해바다를 상대로 근무하는
해안초병만이 감탄사가 대책없이 절로 나오는, 말로는 제대로 다 표현할수도 없는
그 황홀한 광경을 우연히 볼 수 있지요.
또 간조때 깜깜한 새벽에 어민들이 소달구지를 끌고 약3km 바다 깊숙한 곳에 설치한
건강망에 걸린 고기를 잡으러 가는 광경.. 산 위에서 군인들은 어민들이 쉽게 갈수있도록
탐조등(써치라이트)을 비추어주는데, 갯벌에 비치는 동그란 탐조등 불빛 원안에 들어오는,
소달구지를 끌고 어민들이 갯벌속으로 조용히 걸어가는 광경은 제가 자신있게 장담하건데
가히 "밀레의 만종" 보다도 더욱 깊은 감명을 주는 귀한 그림입니다.
울님들!! 조개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어보셨나요?
거짓말 같이 들리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런데 조개들이 숨쉬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수 있는 다섯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①무수(간조때) ②무월광(깜깜한 밤) ③무풍(바람이 없음) ④무소음(새벽) ⑤여름철
한마디로 아주 고요한 날이여야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중 해안에서 가장 어려운 조건인 ③번 무풍이 나머지 네가지 조건과 동일하게 만나는
날은 1년중 고작 2~3일 밖에 없습니다.
이런날은 24km 떨어져있는 건너편 인천연안부두에서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기침하는
소리도 어렵지않게 들립니다. 이런날 수만마리의 조개들이 갯벌에서 이야기할때의
속삭이듯 자작거리는 신비하고 묘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것은 정말 조용한 새벽에의
결코 쉽지 않은 체험입니다.
오이도의 이야기가 좀 길어졌었네요.
아름답던 오이도가 그 이름만 남고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쉬운 마음으로 몇자 적었습니다.
그리고 주된 이야기보다 변두리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일이 많은 것이 세상사이지요.
능력있고 재치있는 강사가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분위기를 올리기위한 수단이기도 하지요 ㅋㅋ
이제 제가 오늘 하고자하는 주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 날 1979년 6월6일 현충일날 아침결 내 또래의 처녀가 친구와 함께 오이도에 놀러왔었지요.
군자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 오이도 안말에서 가운데살막으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에서 만난
그녀가 나에게 길을 묻는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얘기 저얘기 하며 걷다보니 정말 서로가 오래된 친구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한나절을 바닷가를 같이 거닐며.. 또는 바위에 앉아서.. 다정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냈지요.
같이 왔지만 졸지에 혼자 놀게된 그분 친구에게 많은 미안함을 느끼면서...
서울 중화동에 살고 있고.. miss문 이라는 그녀와 몇시간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가 주소나 전화번호를 묻지않은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합니다.
아마도 손을걸고 약속은 안했지만, 다시 찾아올거라는 무언의 약속을 믿었던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주소나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어쩌구 하는 그당시 사회통념상 있었던 군바리가
젊은처녀를 꼬시는 그런 상투적 엔조이적인 레파토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순박한
마음에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사실은 그렇게 해야 맞는 순서일텐데.. 정말 솔차니 순진무구한 군바리였던것 같습니다 ㅎㅎㅎ
남녀관계에서는 조금은 유치한것도 괜찮게 이어질수도 있다는것을 그때 처음 알게되었지요 ㅋㅋ
그렇게 헤어졌는데, 그녀는 그날 오후 다시 우리 부대로(부대라고 해봤자 몇명안되는 기갑파견대)
나를 찾아왔었다고 후배병사가 전해주더군요.. 운명의 장난인지 그때 나는 해안으로 근무를 나가
있을때라 다시 만나지 못했고...
만일 제가 근무를 나가지 않고 그날 그녀와 다시 만났더라면 아마 제 인생의 반이 바뀌어졌을것
이라는, 그러면 어떤 모습으로 되어있을까.. 하는 주책없지만 또한 묘한 상상에 빠져들곤 합니다.
그리고 얼마후 저는 남양만 해안가 제부도 옆 궁평리로 전출을 갔습니다.
그 제부도와 궁평리도 그 당시에는 조그마한 이름없는 어촌이었는데, 지금은 두곳 모두 꽤 유명한
관광지로 되어 있더군요.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은 더이상 이루어지지 못했고..
아마도 그녀는 그 얼마후 오이도에 다시 찾아왔다가 힘없이 돌아갔을것으로 판단됩니다.
(저의 착각일수도 있지만 ㅎㅎ)
그래서 인연이 아닌갑다했으나, 그 한나절 만남의 여운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니..
우리는 고만큼만의 인연인가 합니다.
지금도 가끔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무척 궁금한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다시 만난다고해서 서로의 생활이 변할 이유는 없겠지만, TV 프로 헤피투게더에서의 오래된
친구찾기의 만남처럼 "반갑다 친구야" 하며 다시 만나 풋풋한 청춘에서 중년으로 변한 모습으로,
그러나 그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지난 이야기들을 나누고파 이 평범한 이야기를 올립니다.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그날 30주년에 부쳐.
2009년 6월 6일
이윤면 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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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래서 인생을 두번산다면 부자안될넘없고, 장가 지대로못갈넘없고, 근디 사진은 현재의 북한병사 같다,, 그쟈? ㅎㅎㅎ
카~~ 옛 군대 생각이 나는구먼..비록 소총수 이지만..면회 갓것도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