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69)
구름척후
딴 세계에서 왔다면 외계인일 테지만
날이 갈수록 자주 듣게 되는 말,
딴 세상 사람 같다
불안한 거동이라면 천리만리 내닫는 뜬구름일 테지만
구름에겐 호기심이 없다, 바람 소리만 아득할 뿐
건져 낸 것 하나 없이 또 하루가 흘러간다
물푸레 우듬지라면 1박쯤 걸쳐볼까?
기억에도 없는 혈흔이 천만리 저쪽까지 생생하니
그건 외로움이 감당할 몫, 구름척후는
어딘가 모자라거나 넘치는 제국에서
이곳으로 보내지는 것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기념되는 날은 흔치 않다, 일이라야
바람 편에 구름 그늘을 실어 보내는 것,
- 김명인(1946- ),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문학과지성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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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김명인 시인의 시를 읽습니다. 오늘 읽는 시는 하릴없이 “뜬구름”이나 살피는 노년입니다. 천변만화가 청년이라면 노년의 유유자적은 되려 덧없음일런지요. 부실한 지체를 염려하여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때부터 삶은 다 덤이라던 오십을 십수 년이나 넘기고 또 백수로 산 지 몇 년이 지났어도 드나듦이 여전 유난한 제게는 아직이어서 저 노년의 “구름척후” 헤아림이 “우듬지”에 못 미친 언저리입니다만, 그래도 여러 발짝 정도는 가까워서인지 노년의 행보가 먼 산은 아닙니다. 퇴직하고 백수로 살면서 낸 시집에서 저도 미처 감지하지 못한 무슨 낌새가 보였을까요, 직장에서도 인생에서도 선배인 선배가 전화를 걸어와 “아직은 아니야”라고 하더군요. 100세 시대로 가면서 생의 주기가 바뀌었다고는 해도 굳이 하는 저렇게 거친 내저음은 아닌 게 아니라는 반증의 손사래일 수도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자주 듣게 되는 말,/딴 세상 사람 같다”는 딱히 중년이라고도 노년이라고도 이르기 난감해서 애써 중로라고 자처하기는 해도 “진행이 빠르”기만 하고 “건져낸 것 하나 없이”“흘러가”는 “또 하루”가 차차 늘어가는 중로에게도 외면할 수만은 없는 시선입니다. 내년 2025년에는 우리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듭니다. 더 이상의 “호기심”은 사라지고 “어딘가 모자라거나 넘치는” “기억에도 없는 혈흔이” 새삼 “천만리 저쪽까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야 노년의 “외로움이 감당할 몫”임이 분명하더라도 저 “외로움”이라는 “몫”은 우리 사회 전체가 나누어 “감당할 몫”이기도 하지요. 보이는 노년의 삶이 저출생을 해결하는 하나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중로의 생각이 또 뜬금없지만은 않으리라 봅니다. “물푸레 우듬지라면 1박쯤 걸쳐볼까?” 종점이야 아무도 집을 수는 없지만 덧없음으로 어쩌면 노년이 자진해서 더 바짝 다가가 안는 “우듬지”에서마저도 편안하게 꿀 수 있는 “1박”의 바람을 저버리는 노년의 구차함은 곧 저출생의 한 견인일 수도 있습니다. “바람 편에 구름 그늘을 실어보내는” “일”이 전부여서 이제 “기념되는 날이 흔치 않”더라도 단지 덧없음으로만 묶여 있어서는 안 되는, 어쩌면 노년의 삶뿐만 아니라 전 삶의 중요한 하나의 이어지는 “일”이라고 어필하는 듯한 시의 마지막 구두점에서 저는 제대로의 그러거나 말거나의 노년의 유유자적을 느낍니다. (20241106)
첫댓글 김명인 시인도 보광님과 같이 울진 출신이시네요. 여러 문학상을 많이도 받았고요. <구름척후>는 노년의 노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