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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
손원평
몬스터: 한낮의 그림자
한겨레출판
아빠를. 죽일 거야. 오늘 저녁. 우리 손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가 끝나고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에도 여자의 머릿속엔 여전히 그 글자들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검은 펜으로 썼는데도 어딘가 불그죽죽한 기운이 느껴지는 글씨들. 혈서처럼 꾹꾹 눌러 아래로 꼬부라뜨린 서체. 믿을 수 없는 내용을 태연히 갈긴 건 대체 누구였을까? 큰놈? 아니면 작은놈? 우리, 라고 했으니 둘 다일 거다. 그러고도 남았다, 그 애들이라면.
후렴 부분을 부르고 있을 때 마지막 아이가 도착했다. 얼마 전 입소한 아이라 조회에 참석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직 말도 잘 못하는데 벌써 애국 조회를 하나요?”
손바닥만 한 신발을 벗기며 아이 엄마가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매끈한 볼 양옆으로 매달린 귀고리가 움직임에 따라 작게 흔들렸다.
“그래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절 교육도 익히고 애국가도 외우거든요. 학교 가서 그거 외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에요.”
여자는 아이 엄마가 바닥에 내려놓은 은회색빛 에나멜 가방에 희미하게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다정하게 답했다. 눈을 바라보는 것보다 물건을 보고 말하는 게 그녀에겐 익숙했다. 아이 엄마가 아이의 뺨에 가볍게 쪽 소리를 내곤 몸을 일으켰다.
“엄마한테 인사해야지.”
여자가 아이의 등을 누르며 엄마에게 배꼽 인사를 시켰다. 아이가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하자 엄마는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짓고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가방이 문틈에 껴서 열었다가 다시 닫아야 했다.
언제나처럼 바빴다. 한 손에 두 명씩 아이들을 이끌고 단지 안의 산책로를 걷게 하고, 따로 걷고 있는 아이들을 단속할 때마다 흐트러지는 대열을 재정비했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축 아파트였다. 매매가가 높아 아직 입주가 되지 않은 집도 많다고 했다. 단지 안을 산책할 때면 성 안을 거니는 것 같았다. 영원히 주인은 될 수 없는 성.
다시 아이들을 이끌고 돌아온 여자는 한 명씩 손을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모두 앉혀 동요를 불러주었다. 그런 다음, 작은 색깔 점토를 나눠 주며 가지고 놀게 했다. 아이들이 그것을 입에 넣지 않도록 주의시키는 사이사이에 소음이 귀를 파고들었다. 징징대거나 울부짖는 소리가 한시라도 끊길라치면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혼자서 감당해야 할 아이가 여덟 명이었다.
“다른 데는 선생님 한 분이 열댓 명씩 맡는 경우도 허다해요. 어린이집 교사가 아이한테 몹쓸 짓을 했다는 뉴스들 가끔 뜨죠? 대부분 그런 것에서 일어나요. 아유,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죠.”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원장은 그렇게 말했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따낸 보육교사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원장이 제시한 월급은 여자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액수였다.
여자는 자꾸자꾸 시계를 쳐다봤다. 꽤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다. 다시 머릿속에 끔찍한 내용의 글자들이 잔잔히 떠올랐다. 그래, 두 녀석이 그렇게 썼다고 치자. 자식에게 죽임을 당할 만큼 남편이 나쁜 사람이었던가? 그건 그렇고 어떤 식으로 죽인다는 걸까? 칼로 찔러서? 목을 졸라서? 그것도 아니라면 창밖으로 밀어뜨려서? 아니, 그보다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에 계속해서 질문이 떠올라, 여자는 그중 하나에도 답할 수가 없었다.
비밀스러운 취미였지만 악의는 없었다. 하긴, 엄마가 자식에게 어떻게 악의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노트는 검은색이었다. 표지엔 투박하게 연도가 새겨져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다이어리일 뿐이었다. 그것은 책장 구석에 다소곳이, 이미 닳아 있는 귀퉁이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여자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처럼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이미 그녀 앞엔 노트가 허연 나체를 드러낸 채 펼쳐졌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두서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노트의 용도를 규정하기란 어려웠다. 굳이 말하자면 일기장과 낙서장 중간쯤 되는 것 같았다.
특이하게도 녀석들은 노트를 나누어 쓰고 있었다. 밥 먹을래, 언제, 이따가, 아무도 없을 때, 고등어조림, 비려, 따위의 짧은 단어들이 각기 다른 색깔의 펜으로 대화하듯 적혀 있었다. 학교생활의 따분함, 성적, 맘에 드는 여자 연예인, 알아보기 힘든 그림들, 심지어 남자아이들 사이의 유치하고 은밀한 자랑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여자는 스스로에게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방 청소를 할 때면, 곧 거의 매일같이, 노트를 펼쳤다.
막 고등학생이 된 쌍둥이들과 얘기가 끊긴 지도 오래된 일이었다. 그 애들에게 여자는 아침저녁으로 밥을 해주고 용돈을 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라는 호칭으로 불렸지만 ‘엄마’ 뒤에 붙는 용건은 대부분 그중 하나이거나 그 비슷한 범주에 속했다. 여자는 노트를 들춰보는 것으로 자식들과 대화를 나누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절대 그것이 대화가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자주 노트를 펼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아이들이 제 아빠를, 여자의 남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다리를 다쳐 운전대를 놓은 후엔 더했다. 술에 취해 계단에서 가볍게 구른 것뿐이었는데 다리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영영 그렇게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은 곧 현실이 됐다.
어디선가 남편이 절뚝이며 모습을 드러내면 아이들은 동굴처럼 어두운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고 나면 남편은 장애물이 사라졌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TV를 켜고 옆으로 길게 드러누웠다. 여자는 늘 중간에서 발을 동동 굴렀으나 아이들과 남편 사이에서 별다른 촉매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여자가 하는 건, 쓸모없어진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어오는 것뿐이었다.
남편은 무능력하고 불필요했다. 아이들은 정말로 제 아빠가 없어지길 원하는지도 몰랐다. 생각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궁금한 건 정말, 그것이 오늘 밤, 진짜로 실현되느냐였다. 정말로. 아이들은. 제 아빠를. 죽일까? 죽이다, 라는 단어를 맘속으로 되뇌자 여자는 작게 몸서리를 쳤다.
어디선가 진한 똥 냄새가 풍겼다. 한 아이의 바짓단 밑으로 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자는 급히 물티슈와 기저귀를 들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의 기저귀를 풀 때쯤 다른 아이가 엉덩이를 들이대곤 똥똥, 하며 칭얼댔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힘겨운 일들은 늘 한꺼번에 몰려왔다.
점심시간이었다. 각자의 이름을 라벨로 붙여 놓은 식판엔 수수밥과 시금치나물, 닭감자조림이 칸칸마다 보기 좋게 담겨 있었지만, 조리실에서 밥을 받자마자 여자가 하는 일은 모든 반찬을 밥 위에 붓고 뒤섞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많은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건 불가능했다. 여자의 앞에는 여덟 명의 아이들이 일렬횡대로 앉아 있었다. 여자는 엉덩이로 몸을 움직이며 한 숟갈씩 아이들의 입에 밥을 떠 넣었다. 어쩌다가 짜증 섞인 얼굴이나 목소리를 내비칠 때면 아이들은 하던 행동을 그만두고 여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는 말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매일 속내를 들키는 것이 싫었다. 알아도 말을 못한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뿐이었다.
밥을 먹고 식판을 한데 모아 부엌으로 가져갔다. 막 식사를 마친 다른 반 선생과 교대를 하고 나서 얼른 여자도 점심을 먹어야 했다. 그때 여자의 반 쪽에서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 아이가 배를 까뒤집은 채 악을 쓰고 있었다. 작은 손에서 핏방울이 톡톡 떨어졌다. 잠깐 사이에 아이들이 넘어지거나 다치는 건 도저히 막을 재간이 없었다. 얼마 전에도 한 아이가 바닥에 놓인 장난감 위로 넘어져 이마에 검게 멍이 든 적이 있다. 순간적인 일이라 부모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심각했다. 종잇장 같은 손톱이 들려 그 사이로 내비쳤다.
여자는 입을 헤벌린 채 천장 구석에 달린 CCTV를 올려다보았다. 그것은 어디에서나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열여섯 명의 부모가 당장이라도 나타나 영상을 보자고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절대 교사가 없는 자리에 아이들끼리 두어서는 안 됐다. 원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경우는 부모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얼마 되지 않아 다친 아이의 엄마가 부랴부랴 달려왔다. 낮잠을 자다 왔는지 부은 얼굴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였다. 확인 결과, 아이는 나무 문 끝의 갈라진 조각을 만지작거리다 그게 손톱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다쳤다. 아이 엄마는 갑작스러운 불행에 습격당한 아이를 꽉 안으며 노기를 분출했다.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어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새우가 든 볶음밥을 먹인 것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탐탁찮은 풍경들을 차례로 언급했다. 이런 곳에 어떻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느냐며 그녀는 언성을 높였고 그 바람에 품 안의 아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원장이 아이 엄마를 진정시키는 동안, 여자는 거듭 죄송하다며 몸을 숙였다. 아이 엄마는 자기보다 열댓 살은 아래로 보였다. 여자가 그 또래였을 때, 아이 엄마는 기껏해야 초등학생이었을 것이다. 그때, 아직 젊음이 남아 있던 그때,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여자는 과거의 한 지점으로 기억을 옮겼다.
*
그곳에 자신이 서 있었다. 갓 결혼을 한, 뺨이 발그레한 여자가, 남편과는 중매로 만났지만 그럭저럭 부부의 모양새를 띠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며 요리하는 시간이 행복했고, 고요한 식사를 마치고 그릇을 씻는 시간을 사랑했다. 둘 다 별로 말이 없는 편이었고 서로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성격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정열은 부재했고 그랬기 때문에 거기서 퇴색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온함마저 변절될 수 있음을 여자는 시간이 감에 따라 느끼고 있었다. 간간이 대화가 오가던 식사 자리는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어색해졌다. 겉도는 기류가 마음속에서부터 확산됐고 여자는 그 허전함의 이유가 무엇인지 자주 혼자 고민해야 했다.
주변에선 아이가 없어서 그런 거라고 했다. 딱히 둘만 있어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아이는 자연히 생길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틀에 한 번, 부부는 의무적으로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횟수는 완만하고 꾸준한 하향 곡선을 그려, 1년이 지나자 일주일에 한 번꼴로 줄어들었다. 병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여자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2년이 넘어가자 관계는 눈에 띄게 드물어졌다. 의무감에 짓눌려 여자의 몸이 열리지 않거나 남자의 몸에 반응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잦았다. 그럴 때마다 각자 허탈하거나 씁쓸한 마음을 안고 둘은 등을 맞대고 누워 눈을 감았다.
여자가 남편에게 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날부터 둘의 관계에 본질적인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인공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미 신의 영역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자는 간신히 남편을 달래는 데 성공했고 둘은 난임전문병원에 주기적으로 발을 들였다. 여자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막연히 무언가를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평화와 안온함의 상징, 단란하고 완결된 가족을. 때로는 뭔가를 더 완성시키기 위해 힘을 보태는 것이 모든 것을 어그러지게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었다.
몇 차례의 인공수정이 실패로 돌아가고 의사가 시험관 시술을 권유했을 때 남편은 이미 지쳐 있었다. 의사는 여자의 난소가 몸보다 일찍 나이를 먹어, 남아 있는 난자가 얼마 없다고 했다. 서둘러야 했다. 여자는 집착에 가까운 오기로 매일매일 남편을 설득했다. 남편이 겨우 수락하고 나서도,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여자는 자주 남편의 눈치를 봤다. 대부분의 일들을 여자는 혼자서 해결했다.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약을 먹을 때에도, 매일같이 스스로의 배에 주삿바늘을 꽂아 넣을 때에도, 호르몬제 부작용으로 온몸이 부어 뒤뚱거릴 때에도 엔간해서는 남편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며칠에 한 번꼴로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결과를 받을 때조차 남편을 대동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자가 남편을 필요로 할 때는 정자를 채취할 때뿐이었다. 난자를 채취한 지 몇 시간 안에 정자를 채취해야 했기 때문에 그날만큼은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야 했다. 그러기 며칠 전부터 남편은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침울해지는 남편을 보면 여자는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남편이 병원 2층에 있는 정자 채취실로 올라갈 때마다 여자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방은 칸칸이 나누어져 있었다. 그 안에서 자신보다 젊고 몸에 윤기가 흐르고 성욕을 일으키는 여자들의 영상이 나온다는 걸, 헤드폰을 끼고 영상을 보며 남편이 수음을 한다는 걸 여자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받아낸 정액이 생명의 재료가 된다는 건 뭐랄까, 어딘가 꺼림칙한 생각이 들었다. 비슷한 시간에 올라간 남자들보다 남편은 항상 늦게 내려왔다. 핼쑥해 보이기도 했고 개운해 보이기도 했다. 남편은 간호사와 마주치는 것조차 싫어했기 때문에 여자는 남편이 내민 통을 받아 들고 스스로 접수대로 향했다. 검게 라벨링된 통 안에 들어 있을 미끈한 액체는 누구를 향해 배출된 걸까, 늘 의문을 품은 채로.
여자는 실험실에서 만난 자신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상상했다. 그것들이 접시 위에서 배양되어 이상한 형태로 커가는 꿈을 자주 꿨다. 여자가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사랑의 결과물이었지만, 병원에 올 때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딱 세 번이야.”
처음부터 남편은 으름장을 놓듯 말했었다. 그 말이 어느덧, “이번이 마지막이야”로 바뀌던 날, 여자는 체념한 듯 입을 다물었다. 몇 달 후, 그녀는 딱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남편에게 애원했다. 밤늦도록 울음과 험한 말들이 오갔다. 하지만 여자는 지지 않고 밀어붙였다. 결국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생명의 기를 다 빨린 것 같은 낯빛이었다.
남편은 미역국을 좋아했다. 지나가는 말로 자신의 제사상에도 꼭 미역국을 올리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여자가 아이들을 낳았을 때는 산후조리원에 가는 게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았다. 친정도 시댁도 여자를 도울 형편이 아니었고, 병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혼자 미역국을 끓였다. 남편은 여자가 끓인 미역국을 매일매일 먹어댔다. 그동안 빨린 기운을 보충이라도 하겠다는 듯. 여자는 꾸역꾸역 미역을 씹어 올리며 국물을 들이켜는 남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남편은 홀가분해 보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표정이었다. 여자는 미역국에 손을 대지 않았다. 회복이 느렸고 젖이 잘 돌지 않았지만, 왠지 미역국만큼은 먹고 싶지 않았다. 밑에서 오로가 울컥울컥 나오는 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려보면 옷이며 바닥이 붉은 피로 흥건했다. 여자는 서둘러 출산의 흔적을 닦아냈다. 방에는 갓 태어난 쌍둥이가 꼭 달라붙어 누워 있었다. 아직 얼굴의 주름조차 펴지지 않은 핏덩이들. 의지와 상관없이 이제 막 세상 밖으로 꺼내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
쌍둥이가 생긴 걸 알았을 때 주변에선 모두 축하할 일이라고 했다. 두 번에 할 걸 한 번에 한다는 둥, 한 번에 네 식구가 된다는 둥의 덕담이 오갔다. 하지만 쌍둥이를 키우는 건 너무나 고달팠다. 해가 지날수록 두 배, 네 배, 자라나면서 여덟 배, 열여섯 배로 힘이 부쳤다. 그동안 아기를 갖기 위해 부부가 들인 돈의 액수는 생각보다 컸다. 빚을 졌고 매해 이자가 불어났다. 아이들이 커가며 드는 비용은 매달 여자의 숨통을 옥죄었다. 특별히 대단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에 구멍이라도 난 듯 돈이 술술 샜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다. 남편은 사원이 몇 되지 않는 작은 기획사에서 홍보 일을 했었다. 다른 곳에서 경력을 이어가기엔 나이도, 직책도 애매했다. 남편이 선택한 건 택시 회사였다. 매일매일 사납금을 채우느라 늘 운전대를 잡고 있다시피 했다. 자연히 집안에서 남편의 존재는 아이들에게서도 여자에게서도 멀어져갔다. 부부관계를 가진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남편이 먼저 다가오는 법은 결코 없었고, 여자 또한 자신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남편을 괴롭힌 것만으로도 족했다. 더구나 이제 공식적으로 그들은 부부 관계를 가질 이유조차 없었다. 생물학적으로, 그건 무의미한 힘의 낭비였다.
부부가 각자 애쓰는 것에 비해 형편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아니,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일 뿐, 어느새 한 발 두 발 뒤처지고 있었다. 여자가 할 줄 아는 건, 아이를 키우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일을 선택했다.
이란성이었지만 아이들은 누가 봐도 일란성으로 보일 만큼 똑같았다. 남편은 종종 아이들을 헷갈려 했다. 큰아이는 눈 옆에 점이 있고 작은아이는 점이 없다는 걸로 구분하라는 말을 여자가 자주 상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잊을 만하면 비슷한 실수를 했다. 아이들의 뒤통수만 봐도 누가 누군지 단번에 아는 여자는, 그런 남편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알면서도 부정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가정을, 그들의 아이들을.
남편은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주는지도 잘 알지 못했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도 언제나 너무 피곤했다. 어쩌다 술을 많이 먹은 날이면 남편은 취기에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난 저 애들이 내 자식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어.”
여자는 조용히 하라고 달싹였지만 남편은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시술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라벨이 뒤바뀌었을지 누가 알아?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여자가 보기에도 아이들은 남편을 전혀 닮지 않았다. 자신의 신체적 특성은 간간이 발견됐지만, 여자의 특징을 빼고 나면 그 애들이 가진 건 미지의 누군가에게서 몰래 훔쳐온 것 같았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배양되어 여자의 몸 안으로 이식된 아이들. 남편의 말이 맞았다. 따지고 보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못 미더우면 친자 검사를 하면 되잖아!”
여자는 소리를 질렀고, 싸움은 결론 나지 않은 채 원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이들은 저희들의 아버지와 가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마인 자신과 친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들끼리 놀았다. 여자는 한때 자신의 몸 안에 품었던 아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물음표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 애들은 서로의 그림자나 거울 같았다. 어려서부터 둘은 이상한 장난을 쳤다. 자리를 바꿔 앉는 건 능사였고, 시험을 바꿔 보기도 했다. 둘은 친구도 없었고 학교에선 공공연한 왕따였다. 그러나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았다. 키가 멀대같이 컸고 맷집이 좋은 데다 항상 둘이 붙어 다녔기 때문에 누구도 그 애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대신 이상한 소문을 만들어내 뒤에서 수군댈 뿐이었다. 둘은 그런 사실에 대해 딱히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자신들 말고는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아이들. 처음부터 부모라곤 없는 아이들 같았다.
*
간신히 여덟 명의 아이가 모두 잠들었다. 잠드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모두 잠들게 만드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밥에 수면유도제를 옅게 타는 곳도 있다고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들은 가끔씩 재롱을 피워 웃음 짓게 만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여자도 그 기쁨을 누렸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든 것이 까마득했다. 너무나 오래돼서 희미한, 진짜 벌어졌는지도 못 미더운 환상 같은 기억들.
기억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아이들은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말썽을 피웠다. 젊음을 빼앗아가고, 인생을 주름지게 하고, 가정에 균열을 일으키는 악마들. 그런데 왜 그렇게들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하고, 아이가 없는 것이 모자란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를 위해서라면 오랜 시간을 노력해 얻은 직장조차 포기하는 것일까. 이미 자신이 거쳐 온 길임에도, 아이를 향해 미련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여자는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기회만 있다면 외치고 싶었다. 결국 당신들도 잡혀먹히고 말 거라고.
여자는 가만히 벽에 기대앉았다. 어지러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세 번째였지만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여자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전화해줘요, 빨리. 아이들이 깰 시간이 가까워져 오도록 답은 없었다. 아들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자는 학교로 전화를 걸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애들이 오늘 학교에 갔던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집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벌써 남편을 죽여버렸는지도 모른다. 한기가 소름이 되어 등줄기를 따라 돋아났다. 그런데 남편이 죽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가. 여자는 갑자기 자신이 왜 남편을 지키려고 하는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생각이 이어지는 걸 막기라도 하듯, 한 아이가 몸을 뒤척이며 잠에서 깼다. 곧 도미노처럼 다른 아이들이 연이어 깨어났다. 또 차례대로 기저귀를 갈았다. 아이들을 냉장고 옆으로 조용히 이끌었다. CCTV 사각지대였다. 교사들 사이에선 숨구멍이라는 은어로 불렸다. 그릇에 삶은 고구마와 망고 주스를 받아 와 한입씩 먹였다. 여자의 손놀림은 자기도 모르게 빠르고 거칠어지고 있었다. 한 아이의 입에 억지로 숟가락을 쑤셔 넣었고 그러자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디선가 지린내가 풍겨 왔지만 모른 척 고구마를 아이들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또 다른 아이가 목이 메는지 콜록댔다. 망고 주스를 부어 넣었다. 꿀꺽꿀꺽, 놀란 눈을 하고 아이가 주스를 삼켰다. 어차피 아이들은 말하지 못한다. 잘해줘도 못해줘도 어차피 똑같다.
첫 번째 엄마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 두 번째 엄마도, 세 번째 엄마도. 누군가는 고생했다며 캔 커피를 건넸다. 여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고맙다고 허리를 굽혔다. 커피를 건넨 엄마가 여자에게서 아이를 받아 유모차에 앉혔다. 유모차는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한 외국 제품이었다. 이 동네는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 유모차 경쟁이 치열하다고 했다. 유유히 백화점을 거닐며 남의 유모차를 흘낏댄다고 들었다. 어쩌면 그들의 아이는 단지 유모차의 최종적인 장식품인지도 몰랐다. 오늘따라 아이들의 하원이 빨랐다. 일곱 번째 아이까지 가고 난 후 시계는 오후 5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한 아이만 가면 여자도 집에 갈 수 있다. 다른 반 아이들도 물밀 듯 빠져나갔다. 원장이 먼저 퇴근을 했고 다른 반 선생들도 하나둘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덟 번째 아이의 엄마가 오지 않았다. 보통은 4, 5시면 아이를 데려가는 엄마였지만 오늘은 7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었다. 담임을 맡은 반의 아이들이 모두 하원하기 전에는 집에 갈 수 없었다.
이제 어린이집에는 여자와 여덟 번째 아이뿐이었다. 오늘 아침에 가장 늦게 온 그 아이였다. 아이와 둘이 마주 앉은 여자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엄마는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거기까지 부르고서 여자는 노래를 멈췄다. 아이가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기는 왜 집을 혼자 보는 걸까. 그 어린것을 놔두고 나간 엄마는 정말 굴을 따러 간 걸까. 여자는 앞에 앉은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아이만 없었더라도 집에 빨리 갈 수 있었을 텐데. 걷잡을 수 없는 증오심이 피어올랐다. 여자는 아이의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넌 왜 태어났니. 자신도 모르게 조소 어린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멀뚱멀뚱 눈만 깜박였다. 그러더니 배시시 웃으며 여자의 품에 파고들었다. 쌍둥이도 이런 시절이 있었던가. 이렇게 작고 순진무구하고 자기만을 바라보던 때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딩동. 마침내 그 아이의 엄마가 왔다.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며, 곱게 화장을 하고, 향수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언뜻 향기 사이로 묘한 체취가 코를 찔렀다. 이 엄마는 엉뚱한 짓을 하다 온 게 분명하다. 자신의 아이를 내팽개치고, 화려하게 옷을 차려입고, 아이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양 낯선 남자와 몸을 섞고 온 게 틀림없다. 장담컨대, 그러느라고 오늘 늦은 것이다.
아이 엄마는 현관 앞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와 아이를 보고 놀란 듯 눈이 둥글어졌다. 어린이집은 불이 다 꺼져 있었고 여자는 코트를 입고 신발까지 신은 채였다. 여자는 아이 엄마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차갑게 아이를 건넸다. 별다른 변명도 없이 있는 대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곤 쫓아내듯 둘을 문밖으로 몰아냈다. 여자는 둘을 앞서 급히 걷기 시작했다. 어서 어서, 집에 가야 한다. 남편을 아이들에게서 구해내야 한다.
여자는 지면을 박차듯이 밀어내며 걸음을 옮겼다. 전철을 타고, 온갖 인간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지상으로 올라와, 점점 좁아지는 골목으로, 급히 급히,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다시 왼쪽으로 한 번. 그리고 거기, 자신이 사는 낮고 초라한 빌라가 눈에 들어왔다. 숨을 죽이며 화단 위로 천천히 시선을 옮기는 순간, 여자는 꺄악― 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내지른 비명의 메아리가 공기 중으로 빠르게 흩어졌다.
입구에 긴 그림자가 하나 서 있었다. 그것은 여자를 향해 다가오며 천천히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아이들이었다. 여자의 아들들. 자신이 잉태했던 기괴한 아기들. 한 뿌리에서 나온 두 마리의 어두운 괴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