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폴폴’ 우리네 ‘삶’이야기 피어나는 연극판[예술기획] 광주간판예술단체를 찾아서 <27>연극단체 예린소극장 2002년 극단 ‘예린’ 창단해 이름 딴 소극장 운영 매주 낭독극·무성영화 상영하는 ‘문화밥상’ 시작 "연극은 ‘휴먼’…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 전라도인 admin@jldi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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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호·제73호=박세라 객원 기자)예린소극장이 문을 열던 날, 그러니까 2016년 봄 예술의 거리 한 골목에서 그를 만났었다. 새 집을 장만해 이사를 들어오는 집주인처럼, 혹은 개업을 앞둔 가게 사장님처럼 그에게서 두근대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 전해졌던 기억이 난다.
극단 ‘예린’의 대표이자 예린소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윤여송 대표는 "사람 사는 냄새가 가득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었다. 소극장이 단순히 공연을 보고, 홀연히 떠나버리는 곳이 아니라 배우와 관객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며 ‘머무는 곳’으로 변화하길 바랐던 그다.
예린소극장은 출발 하던 때 그 ‘초심’을 뚝심 있게 지켜왔다. 정기적으로 공연을 올려 관객들을 불러들였고, 연극 뿐 아니라 알찬 ‘작은 공연’들로 머물고 픈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 애써왔다.
극장이 문을 연 지 3년여가 지나고 5월의 어느 날 다시 예린소극장을 찾았다. 소극장의 모토를 읽을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 준비가 한창이어서 윤 대표는 분주했다.
"화목한 날 ‘예린문화밥상’을 차리기 위해 서두르고 있어요. 5월부터 화요일에는 낭독극을, 목요일에는 무성영화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에요. 사실 ‘소통하는’ 소극장을 꾸리는 데 지금껏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문화밥상이에요. 밥상을 차린다는 것,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공유한다는 것이거든요. 낭독극 그리고 무성영화를 매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들로 꾸며질 것 같습니다."
먼저 화요일에 진행되는 낭독극 첫 작품은 ‘오발탄’이다. 전후 한국문학의 백미 오발탄이 1인 낭독극으로 재구성돼 무대에 오르게 된다. 이 공연이 자리를 잡게 되면 일반 시민들에게 무대를 양보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이어 ‘무성영화컬렉션’은 시나리오를 읽는 것부터 시작된다. 작품 속 텍스트들이 어떻게 영화화 돼 그려졌는지 찾아가는 게 관건이다. 특히 윤 대표가 데이터베이스화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영상·글 자료들이 보는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결국 작품 속 ‘사람’, ‘삶’을 마주하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기획의도이자, 목표입니다. 극을 올리는 공연만으로는 소통에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문화밥상에 참여하는 관객들은 처음엔 일반 관객으로 이곳을 찾겠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쌓이다보면 동료가 되고,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작지만 알찬 문화밥상을 차려볼 생각이에요. 관객이 0명이라도 화요일과 목요일엔 쉬지 않고 프로젝트는 진행될 겁니다."
‘사람’을 향해 있는 그의 지향점은 극단 ‘예린’의 첫 걸음의 연장선에 있다. 극단 ‘예린’은 2002년 8월15일 무려 ‘광복절’에 탄생했다. 나라를 되찾은 날 극단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바로 예린이 걷고자 했던 ‘문화수복’의 길과 같기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 내내 이해시키고자 했던 문화수복이란 ‘긍지’, ‘자부심’, ‘자립’과 같은 짱짱한 단어들로 치환할 수 있다.
"문화수복이란 간단히 말해서 예술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긍지를 가지고 나아가야 함을 뜻합니다. 예술인들이 스스로 자존을 잃으면, 자기 행위에 대해 자부심이 없으면 그 예술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봐요. 물론 공연예술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불호가 가려지기도 하지만 무대
에 선 예술인이 그 반응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예술은 예술 행위 그 자체로 남는 것이고, 무대가 끝나고 그 땀의 대가가 빈약하다고 할지언정 후회하지 않아야 해요. 늘 매 순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문화수복이란 그런 것들을 다양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윤동주 ‘서시’의 싯구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순수한 열정 같은 것이죠."
그들의 무대에는 역시 ‘사람’이 있다. 윤 대표는 예술 형태의 장르들, 이를테면 사실주의냐 표현주의냐 혹은 낭만주의냐 등의 구분 안에 그들의 작품을 규정하길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분들 끝엔 결국 사람, 그저 ‘휴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예술이란 것 자체가 사람이 사는 삶의 모습을 근간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특히 연극은 사회의 한 단면을 무대라는 공간에서 풀어내 보여주는 곳이죠. 인간은 스스로를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어요. 이를 극복시켜주는 것이 연극무대죠. 무대는 ‘환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마법의 공간’입니다. 무대에서는 살아있는 한 인간이 삶의 모습을 풀어냅니다. 이를 봤을 때 객석의 관객들은 현실과 환상의 충돌을 느껴요. 처음에는 무대와 자신이 있는 곳을 별개로 두고 보지만, 결국 거기서 뱉어낸 침이 자신의 얼굴에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게 ‘교감’이고 ‘교류’입니다."
인간과 인간이 ‘연극’이란 끈으로 연결된다는 것, 그곳에서 우리의 삶을 바로 보게 한다는 게 연극의 역할이자, 그가 무대를 꾸미는 이유이다. 예린소극장이 사람 냄새가 가득한 작품들을 올리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대표작은 ‘광대의 꿈-소풍’을 비롯해 머리에 쉬 갈의 작품 ‘타이피스트’, 셰익스피어 ‘리어왕’, ‘멕베스’ 등이 꼽힌다. 특히 ‘광대의 꿈-소풍’은 연말이면 무대에 오르는 예린소극장의 레퍼토리 작품이다.
"연극은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인간은 180도 그 이상의 시점을 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요. 평면적인 시각에 갇혀있는 것이죠. 이는 곧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없음을 뜻합니다. 예술이란 것은 이 같은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극복의 과정 중에서도 ‘사람’을 벗어나면 존재할 가치가 없어지죠. 연극은 우리가 평소에 바로 볼 수 없는 자신을 한 발 물러서서 조망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돼 줍니다."
앞으로 예린소극장에는 이 같은 철학이 담긴 작품들이 풍성하게 준비됐다. 6~7월에는 ‘은하수길 우유 배달부’를 재구성해 올리고, 8월에는 창작극 ‘사랑 밖에 난 몰라’가 이어진다. 가을에는 음악과 연극이 손을 잡은 컬래버레이션 공연이 관객들을 기리고, 겨울시즌에는 ‘광대의 꿈-소풍’과 ‘춘자의 전성시대’를 각색해 올릴 예정이다.
공연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소극장의 역할을 다 하면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관객과의 소통, 즉 이야기다.
"연극이란 행위를 하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공연이 끝난 후, 소극장에 온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최소 20분은 진행하려고 해요. 처음에는 조금은 낯설어 할지라도, 익숙해지면 저마다 삶을 꺼내 놓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믿거든요. 예린소극장이 ‘문화밥상’을 차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틀에 짜여 진 공연이 아니라, 미완의 예술을 선사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이야기를 보탬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공연이죠.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만남’이란 극장의 모토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 채워가는 아름다운 예린소극장으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