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런 척하고 발버둥 치고 그런 척하고 눈물 삼켰던 게 사실이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사실은
김의현
아세요? 하마는 헤엄을 못 친대요
동물원 홍수 때 괜찮다며 두고 갔는데
복구 후 돌아와 보니 모두 죽어 있더래요
그냥 둥둥 떠다니며 잘하는 척했던 거죠
사실은 못한다고 더 이상은 무리라고
엎드려 운 적도 많았다고 말하고 싶었지요
잘하는 척 괜찮은 척 태연한 척 무심한 척
사실 나도 척척 몇 개 등에 업고 끌어안고
빈약한 생의 손잡이를 간당간당 잡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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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이란 의존명사는 마치 두꺼운 갑옷과 같다. 웬만한 화살촉으론 뚫기가 어렵고 표정마저도 철저히 관리해 주며 우리를 선의의 철면피로 만들어주는 묘한 구석이 있는 단어다. 상대방을, 제3자를 감쪽같이 마취시키고 눈을 멀게 하는 재주가 있는 글이기도 하다.
작품 속 동물원 하마 익사 사건은 하마의 생존 방식과 인간의 편견 사이에 놓인 보편성이라는 함정에 걸려들어 내린 판단이 치열하지도 않았고 냉정하지 않았었던 사례다. 유럽 남동부 몬테네그로의 유일한 하마는 동물원에 홍수가 덮치자 스스로 우리를 깨부수고 달아났다고 하며 흑해를 끼고 있는 조지아라는 나라에서도 동물원에 홍수가 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탈출했다고 한다. ‘척’하며 살던 하마와 ‘척’ 하지 않고 살던 하마의 생존 방법과 인간의 조련 방법 사이에 깔린 “변증법”의 자기모순이 가져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시인의 말처럼 “그냥 둥둥 떠다니며 잘하는 척”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의 부력으로 떠 있을 수 있는 것을 자기의 능력인 양 과시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사실은 못한다고 더 이상은 무리라고” 천연덕스럽게 얼굴에 철판 깔고 말해 버릴 걸 하며 후회해 본 적 없다고 또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척’하게 해주는 갑옷을 이제 벗어버리지 않으면 별안간 홍수가 덮칠 땐 부력도 소용없다. 가라앉고 만다. 도대체 나는 ‘간당 간당’ 무엇을 잡고 있는 것일까?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시를 쓰면서 몸에, 마음에, 혼에 걸친 갑옷을 언제까지 입고 있을 것인가? 우리도 ‘사실은’ 시어詩語 홍수에, 시상詩想 홍수에, 시집 홍수에, 시인 홍수에 익사하지 말란 보장이 있겠는가? 내가 이 시속의 하마를 참 많이 닮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려도 아닌 ‘척’도 못하겠거니와....,
안 그런 척하고 발버둥 치고 그런 척하고 눈물 삼켰던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