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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神父의 - 외줄위를 걷는 人生
36. 임을 위한 행진곡
1985년 9월 20일. 결혼식을 앞두고, 약간의 승강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신부화장을 하지 않겠다는 아내의 고집을 꺾기 위해 오빠 동생 등 형제들이 나섰다.
결국 눈두덩에 반짝거리는 가루를 뿌리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아내는 전날 밤의 해프닝은 깨끗이 잊었는지, 내내 밝게 웃고 있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나는 야위었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솔직히 결혼식에 누가 왔다갔는지 찍어놓은 결혼식사진을 나중에 보고서야 확인이 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나는 검정 두루마기를 걸쳤고, 아내는 미색 치마저고리를 예복으로 입었다.
모든 진행과 접대는 대성당 대학생회와 청년회가 맡아주었다.
신랑신부퇴장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대성당 후배들의 배려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결혼식 일정을 마치고 대성당 마당에 서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사진을 찍는데, 눈에 익은 모습이 쭈뼛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죽은 춘기의 조카였다. 그는 맏형의 아들이라 우리 나이 또래였다.
그의 슬픈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며 그를 끌어안았다.
우리는 몸부림을 치며 소리 내어 울었다. 아내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춘기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부재를 알린다.
신혼여행 가방을 들고 처갓집으로 향하려니, 장인어른이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리고 이제는 결혼했으니, 집에 들어오지 말고 무조건 밖에서 자야한다고 선언한다.
속 시원하게 시집 잘 보냈다는 태도다.
무안당한 얼굴로 여기저기 호텔을 알아보니 모두 선약이 되어있어 갈 데가 없다. 간신히 수유리까지 가서 물이 천정에서 뚝뚝 떨어지는 호텔방 하나를 얻어 들어갔다.
다음날이 주일이라 하루를 어디서든 묵고, 주일미사에 참석해야 했다.
아내는 호텔방 예약도 해놓지 않은 준비성 없는 신랑을 나무라며, 한숨을 쉬었다.
결혼 첫날 밤 우리는 바닥에 물이 흥건한 차가운 방안에서 바께스에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피곤한 몸을 눕혔다.
대학로에 있는 베다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보고, 우리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의 첫 기착지는 원주의 장일순 선생님 댁이었다.
부부로서의 첫 출발을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듣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우리를 옛날식의 깨끗한 여관으로 데려갔다.
미리 예약이 되어있는 듯 주인아주머니의 예의바른 접대와 정갈한 분위기가 마치 절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아내와 함께 선생님께 큰절을 올렸다.
무릎을 꿇고 앉아, 말씀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아내는 민망하게 벌써 고개를 간헐적으로 떨어뜨리며 병든 닭처럼 졸고 있다.
요 몇 달 동안 자신의 체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정이 계속된 건 사실이나 어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라, 팔꿈치로 신호를 보냈지만 막무가내다.
“자네가 이 땅에 살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언가?”
“통일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아버지가 형제 중에 막내이고, 9명의 고모님들이 북한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원 졸업논문도 ‘분단 상황하의 한국교회의 사명과 역할’이란 제목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통일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았나?”
“문익환 목사님의 중립국론을 중심으로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래?
이보게. 미국의 지원을 받는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에 비하면 그 세력이 한 줌 밖에 안 되던 중국 공산당의 홍군은 대륙의 변방을 쫓겨 다니며, 18만 킬로에 달하는 대장정을 하였네.
한 마디로 패주의 연속이지.
하지만 그 죽음의 고난을 통해, 중국을 통일할 경륜을 쌓았네.
주변의 소수민족들을 다 싸안을 수 있었던 거지.
우리나라는 땅이 좁으니 시간의 대장정을 해야 하네.
그래야만 사강대국의 막강한 힘과 견제를 녹이고 통일을 이룰 경륜이 나올 수 있을 걸세.
최소한 50년은 통일을 주제로 씨름을 해야겠지.
자네 집안에 남은 재산이 좀 있는가?”
“예! 부친이 남겨놓은 서민아파트 한 채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걸 팔아서 전세로 바꾸고, 그 차액으로 10년 간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집안에 들어앉아서 책 만 권만 읽게. 세상 모든 이치가 한 눈에 들어올 걸세.”
“직장을 가지지 말란 말씀입니까?”
“물론이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책만 보게.”
“예! 제가 한번 깊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내가 졸고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신혼여행가서 덕담으로 듣기에는 너무 무거운 말씀이었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듣지 못한 가슴 두근거리는 선동이었다.
다음날 장선생님 댁으로 가서 음식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사모님은 눈매가 어찌 그리 맑고 고우신지 그야말로 난초를 닮으셨다.
아내와는 경기여고 선후배사이가 된다하여 옛 스승들의 근황을 물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식사를 하고 술잔이 몇 번 오가면서, 취흥이 오르자, 선생님이 벼루에 먹을 갈았다.
“자네, 호를 하나 지어주지. 정암(靜菴)이 좋을 것 같네.”
“무슨 뜻입니까?”
“고요히 할 靜, 암자 菴, 불가에서 암자는 마음을 뜻하기도 하네.
마음을 고요히 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었네.”
“선생님! 제가 평생 마음에 새겨 교훈이 될 글귀 하나 써 주십시오.”
“이건 어떤가?”
“불욕이 정천하 장자정(不欲以 靜天下 將自正)?
‘굳이 무얼 하고자 하지 아니하면 세상을 고요하게 하고 장차 나를 바르게 하리라’ 뭐 그런 뜻인가요?
靜天下는 작게 쓰고, 將自正 은 크게 쓰셨네요.”
“조석으로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보게.”
“예! 선생님 제가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선생님은 긴 선시도 하나 써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써주는 글씨 마다 ‘김경일군’이라고 받는 사람 이름을 빠뜨리지 않고 꼭 쓰는 것이었다.
아내와 나는 길 가는 학생 중 아무나 붙들고 원주에서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을 물어 삼척의 후진해수욕장을 다음 행선지로 정했다.
버스에 올라타서 피곤에 지친 아내가 자는 동안, 나는 장선생님의 말씀 중에 가슴에 남아 급히 적어놓은 메모를 다시 정리해 보았다.
‘인생을 사는 대원칙이 분명하면 웬만한 일은 대범해 질 수 있다.’
‘진실한 창조자, 진실한 혁명가가 돼라.’ ‘사람은 우주의 응결처다.’
‘인간이 은혜를 받는다면 우주의 은혜요, 인간의 능력의 뿌리는 우주요, 세상 사람이다.’
‘인간이 슬기를 얻기 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하다.’ ‘absolute now, absolute here.'
'사람 마다 몫이 다른 것이고, 그래서 직업이 다른 것이다. 자기 몫에 대해서 당당하라.’
‘자네 몫은 남이 어려울 때, 고통 중에 있을 때, 힘이 되어주고, 사람의 가치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성직자의 생활은 중 이하라야 한다. 중 이상이면 가난한 이에게 갈 때 부끄러워진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큰 리듬으로 타넘는 자세가 필요하고, 그게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 교회는 없는 하느님을 마치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주는 것처럼 굴고 있다.’
‘이름에 잡혀있는 것은 환상을 먹고 있는 거다.’ ‘하느님은 나의 내부에 있다.’
‘자기가 놓아져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석가나 예수의 삶이란 게 일정한 지역에서 꼬물거리다가 죽은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삶의 울림이 오늘날에까지 내려와 있는 것이다.’
‘현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처방이 많지 않다. 판단의 기준을 현상 속에서 설정하는 것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싸움의 상대가 나에게 굴복하기를 바라지 말고, 상대가 나에게 찬사를 보내도록 마음을 써야한다.’
‘맨손만 가지고 나누어야 한다. 불알만 가지고 해결하려 해야 한다.
현실의 교회는 가진 것을 가지고 나누려 한다. 그래서 닭장을 짓고 모이라고 소리친다.’
‘악한 사람에게도 여유를 주어야 한다. 선악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 이렇게 살아야지 하고 결심했는데, 그게 안 되면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지 않는가?’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네. 내외는 갖는 게 아니고, 하나가 되는 것이고, 서로 돕는 것이네.
사랑은 획일적인 것이 아니고, 풍부하고 다양한 것일세.’
‘소유하려하면 경쟁이 생기고, 그것은 폭력이 될 수밖에 없네.’ ‘싸움을 하게 되더라도 나도 자유롭게 하고 상대도 자유롭게 하는 포인트를 찾게.’
‘민중을 사랑하려고 애쓰다 도저히 안 되면, 산에 가서 기도하는 분이 예수다. 자기와의 싸움에 철저하게 결판을 내는 거지.
그 싸움은 절대에 귀의하기 위한 철저한 싸움이야. 잠재의식이 발동하는 것에 대한 싸움이라 이 말이야.’
‘에고의 집적(集積)을 작은 에고로 어떻게 극복하느냐?’ ‘주체와 객체가 있다는 것은 에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늘구멍으로 황소가 지나가는 것을 보라. 에고를 죽이라는 것이다. 잠재의식을 없애라는 것이다.’
‘학벌 지연 족벌의 일체의 기존문화에서 빠져나와 모든 걸 자유롭게 하는 꽃이 되어준다는 것은 중요하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고향이다. 언제나 받아주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어주라.’
‘가장 먼 것이 자기. 그러면서 가장 가까운 것이 자기다. 자기 자신에 흐르는 맥을 찾아야 한다.’
‘하늘에 재물을 쌓아라. 함께 나누라는 뜻이다.
하늘나라는 내 마음에 있다.’ ‘logic은 logic을 부를 뿐이다. 예수에게는 사는 게 중요했다.’
‘집착에 빠지는 것은 잠자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늘 깨어있으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오히려 쉬운 일이다.’
‘슬기롭다는 것은 전체성을 보는 것이고, 그것은 절대와 밀착해 있다.’
‘실패자의 기쁨을 아는가? 예수를 패턴화 하지마라. 예수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예수가 되고 예수처럼 살아라.
예수의 이름이 개똥이었다면 모두들 개똥이라고 불렀을 것 아닌가?’
‘최제우선생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면서 총 칼 들고 들어오니 어떻게 믿겠는가 하였다.’
‘천주교나 개신교나 체제를 가진 것에 무슨 기대를 걸겠나?’
‘이렇게 얘기를 하고나면, 매일 저녁 나 자신이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네.’
장선생님의 말씀은 사실 선동만은 아니었다.
그 뒤 십 년의 방황과 실업자생활이 고스란히 이어졌으니까.
눈이 밝은 분에게는 별 게 다 보이는 모양이다.
9월 말의 후진해수욕장은 간첩침투를 막는답시고 모래사장을 가로지른 높은 철조망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다.
해변의 끝자락에 솔밭이 무성한 둔덕이 있고, 오솔길 따라 높지막한 곳에 민가가 한 채 있었다. 무작정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 문 앞에 당도하니, 60대 노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신혼여행 온 것인 줄 이미 알아채고 흔쾌히 안방을 내주겠단다. 짐을 풀었다. 모든 걸 잊고 드나드는 파도만 바라보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며칠 지나니, 차려 주는 밥도 싫증나고 해서, 외출준비를 하고, 민박집 뒤로 난 철길을 따라 걸었다.
일제 통치하에 쓰던 철길이라는데 이제는 버려진 노선이었다. 눈앞에 산허리를 뚫고 낸 터널이 가로막고 있었다.
민박집할머니 말에 의하면 육이오동란 때 이 굴 안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였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내에게 이 터널을 지나면 금방 삼척시내로 들어갈 수 있다고 뻥을 쳤다.
아내와 난 별 생각 없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워낙에 환한 대낮이라 처음 들어갈 때 굴속이 그렇게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던 게 방심의 원인이었다.
몇 십 미터 쯤 들어가니 깜깜해서 전혀 앞이 보이지 않아 발 떼기도 두려운 상황이 왔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차갑고 음습한 물방울들이 내는 소리가 마치 사람들의 다급한 비명소리로 들리는 환청현상까지 왔다.
빛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 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한 발 한 발 온 몸의 신경을 곤두세워 앞으로 나아갔다.
애당초 무서움증이 왔을 때 얼른 되돌아섰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불알 달린 사내놈이라는 치유불능의 딱한 자의식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서는 데 더 할 수 없이 서툴렀다.
터널 내부 사정에 전혀 사전지식이 없는 우리로서는 갑자기 무저갱 수준의 깊은 구덩이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발끝에 닿는 모든 물체가 전율을 일으켰다.
예상했던 것보다 터널이 훨씬 길다는 것도 환장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입구가 나올지 전혀 가늠할 수 없다는 게 또한 숨 막히는 공포였다.
나는 겁먹었다는 걸 아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시야가 트였다. 터널구조가 속에서 휘어있어 빛이 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터널입구에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혼이 났던 것이다.
어둠의 세력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실체와 상관없이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일이었다.
삼척 시내를 돌아다니며, 거리구경도 하고, 큰 시장에서 반찬거리도 샀다. 아내가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당신 뭐 안 좋은 일 있어요?”
“무슨? 당신과 단 둘이 손잡고 있는데. 이 이상 더 얼마나? 행복 그 자체지. 뭐.”
민박집에 돌아오면서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우리 앞에 닥칠 미래가 터널의 깜깜한 절망을 거쳐야 할 것이라는 어떤 예감 때문이었다.
이제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결혼을 극구 반대하던 교회어른들에게 인사를 다녀야 하는 난감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 교구 내에서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다는 것을 아내도 다 알게 될 터이고. 다른 건 논외로 치더라도, 내가 신학원을 졸업하고도 정식발령을 받지 못 하는, 그래서 급여도 받을 수 없는 무자격전도사라는 것이 들통 났을 때, 아내가 받을 충격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어떻게 이 난국을 뚫고 나가야 할 지 머리가 복잡했다.
터널의 끔찍했던 공포가 신혼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나를 흔들어 깨워 내가 처한 심각한 상황을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투지가 내 안에서 불같이 일어났다.
“당신 갑자기 왜 웃어요? 무슨 생각하는 데?”
“응? 저 밑에 해안가 횟집에 가서 회나 한 접시 합시다. 주인아주머니가 결혼 축하한다고 한턱낸다 했으니.”
“그 사람 왜 우리에게 이유 없이 호의를 자꾸 베푸는 거죠?”
“횟집아주머니도 우리처럼 신혼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게지.”
“그런데 당신 조금 전에 웃은 이유가 공짜회 때문이에요?”
“아니? 가끔 혼자 웃음이 터져 나올 때가 있어. 감당하기 힘든 일이 닥치면 일어나는 현상이야.”
“당신 터널 안에서는 내 손만 꼭 붙들고, 웃지도 못 하던데?”
첫댓글 임을 위한 행진곡 진보적 정치운동의 이콘, 그래서 항상 반가운 노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