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타이가 수림의 끝없는 흑록색….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국경도시 수하바타르까지 열차로 이동한 10시간 동안은 황갈색 초원이 거리감을 둔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브리아티아공화국(러시아연방의 일원)의 국경도시 나우시키로 들어선 뒤 소형 버스로 수도 울란우데까지 가는 4시간 동안은 흑록색 타이가 수림이 여행객의 넋을 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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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칼호에서 나무장대로 만든 낚시대로 낚시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 건너편 수평선 바로 위로 형성된 검푸른 띠는 해발 1200m대의 프리모르스키 산맥이다. |
이윽고 도착한 바이칼호는 호수가 아니라 바다. 건너편으로는 흠집 하나 없는 수평선이 그어져 있었다. 창공과 호수 사이에 하나의 좁은 띠가 희끄므레하게 형성된 것을 발견한 것은 얼마 후였다. 첫눈에 보이지 않던 산줄기가 너무 멀어 흐릿하니 하늘과 구별되지 않은 것이다.
지난 6월4일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4시간 거리인 울란바타르에 도착, 하루를 묵은 뒤 밤열차로 브리아티아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로 북상했다. 울란우데의 날씨는 오히려 몽골보다 더 더웠다. 아스팔트 포장이 녹아 내릴 정도였다. 정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엔진이 노후해서인지 지나가는 자동차의 매연에 숨이 턱턱 막혔다.
여성들의 옷차림은 거의 반라 상태여서-게다가 매우 세련됐다-남태평양의 어느 휴양지 섬에 온 기분이 들었다. 하긴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햇빛이 남아 있고 여름 낮길이가 18시간 정도 되니 지면이 달구어질대로 달구어질 만도 했다. 다만 습도가 낮아 그늘에 들어서면 견딜 만했다.
울란우데에서 바이칼호가 가장 가까운 셀렝게강 삼각주 근처의 가반스크로 갔다. 가깝다는 것이 무려 200km 거리. 우리가 묵은 할루스크 모텔은 단독건물의 숙박시설이 아니라 숙박과 식당 시설에다 야외 바비큐장과 체육시설이 있는, 우리의 자연 휴양림같은 곳이다.
셀렝게강은 몽골에서 발원해 울란우데를 거쳐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길이 1480km의 긴 강인데, 바이칼로 흘러드는 지역에 너른 삼각주를 형성해 경작지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강물은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전체 수량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바이칼 수역에서는 가장 큰 강이다.
● 얼음 풀리면 바다로 나간다
리조트에 도착하자마자 바이칼 호숫가로 달려갔다. 호숫가 바로 앞까지 타이가 수림이 내려와 있다. 그 숲을 뚫고 백사장으로 나서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검푸른 물과 수평선뿐이다. 좌우로 눈을 돌리자 일부러 방풍림을 조성한 듯 고른 높이의 숲과 폭이 고른 백사장, 그리고 파도가 찰랑이는 호숫가가 가지런히 끝없이 달린다. 마치 우리가 타고온 철로의 평행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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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반스크 지역 할루스크모텔에서 브리아티아 전통의상을 입고 바베큐 파티를 주도한 룩사노프 브리아티아 국회의장(61세). |
우리 일행을 초청한 룩사노프 국회의장과 브리아트우넨신문사의 아르덴 주필은 호숫가에 도착하자마자 두 손을 모아 기도한 후 물을 떠서 이마에 찍어 바르며, 우리에게 해 보라고 권했다. 브리아트족은 전통적으로 범신론적인 샤머니즘을 믿어온 몽골의 한 종족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모든 선과 악을 베푸는 바이칼호를 신의 바다로, 성스러운 바다로 믿는다. 여행 도중 고갯마루나 중요한 지점에서 그들이 차창 밖으로 동전을 던지거나, 잔에 따른 보드카를 세 번 오른손 약지(네번째 손가락)에 찍어 튕겨 뿌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도 물을 떠서 의식을 따라해 봤다. 그런데 물이 어지간히 찬 게 아니다. 어쩐지 옷을 벗고 뛰어들 만한 더위인데도 물속에 들어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발을 담궈 보니 30초도 견디기 힘들었다. 꽁꽁 얼어붙어 있다가 녹은 지 불과 한 달여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을 몰랐다.
바이칼호 주변은 10월 초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11월이면 호수 북단의 습지서부터 얼기 시작한다. 겨울 평균온도는 섭씨 영하 20도이고, 수시로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 4월 중순이면 얼음이 녹기 시작, 5월이면 선박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북단에서는 6월까지도 유빙이 떠다닌다. 얼음이 풀리면 선박들은 '바다로 나간다'고 표현한다.
러시아에서 맛있는 물고기로 소문난 오물(Omul)은 바이칼호에서만 잡히는 특산 송어로, 이 호수에서 잡히는 어획량의 3분의2가 될 정도로 인기있다. 이밖에도 물고기로는 농어, 살기, 창꼬치 등이 잡힌다.
이윽고 바이칼호에 해가 가라앉는다.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어둠이 내렸다. 리조트에서는 숲속 바베큐장에 파티를 준비해 놓고 일몰을 맞고 돌아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양고기와 소고기가 나왔고, 바이칼호에서 잡은 오물도 누렇게 잘 익어 있었다. 미국인들이 그랜드 캐년을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는 것처럼, 러시아들이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이 바이칼호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이 발원한 곳이 바이칼호라고 믿고 있어 평생 한번 순례하고 싶은 곳으로 꼽기도 한다.
●무위자연식 휴양문화
길이 635km, 평균 폭 48km(가장 넓은 곳은 80km), 넓이 3만1500㎢(남한 면적의 약 3분의1)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를 1박으로 유람하고 만다면 바이칼이 웃을 일이다. 우리는 다시 사흘을 바이칼호에 투자하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쌀, 된장, 고추장, 간장, 컵라면을 구입했다. 쌀은 중국산이었지만, 한국산 된장, 고추장, 간장, 컵라면을 이곳 슈퍼마켓에서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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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동아시아공업대학 휴양소에서 반야(사우나)를 즐긴 후 바이칼호의 시원한 바람을 쐬고 있는 휴양객들.믄맛퓽?61세). |
더운 낮 시간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새벽 6시에 출발했다. 울란우데 시가지를 벗어나 북상했다. 울란부르가시산맥 남단의 약 1000m짜리 고개를 넘어서는 데 한시간 이상 걸렸다. 포장과 비포장이 번갈아 이어지는 도로를 달려 이윽고 바이칼호가 보이는 그레미아친스크에 도달하는 데에는 3시간여 걸렸다.
첫날 목적지인 막시미카에 이를 때까지 도로는 호숫가를 따라 이어졌다. 국립동아시아공업대학 휴양소 관리장 발렌티나 이르기지노브나(56ㆍ여)씨는 카레이스키(고려인) 건축회사 사장을 친구로 두고 있다며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아 주었다.
이곳에선 취사가 개인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아니 그럴 목적으로 이런 리조트를 찾는 러시아인은 없다. 한국인처럼 먹을 것 잔뜩 싸들고 가서 계곡이나 해수욕장에서 호들갑스럽게 음식 차려내기 바쁜 야외생활 패턴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조용하게 휴양을 즐기는 것이 이들의 휴양 개념이다. 그래서 숙식에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을 휴양소가 제공한다.
휴양소 곳곳을 산책하며 돌아보지만 신나는 우리 식 놀거리는 없다. 호안 둔덕에 마련된 나무의자에 앉아 그저 무심히 바이칼호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가 언뜻 뒤돌아보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낙엽송들이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다. 거대한 바이칼호가 무위자연을 강요한다.
이튿날 바르구진으로 진입했다. 바르구진은 우리의 군 단위에 해당하는 행정지명이자, 마을과 강과 산맥에도 적용되는 이름이다. 바르구진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드는 지점의 우스트바르구진 마을에서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우스트바르구진은 바르구진 산림지역에서 베어낸 원목들이 모이는 항구다. 이 원목들은 뗏목처럼 엮이어 견인선에 의해 수백km 떨어진 이르쿠츠크나 바이칼스크로 끌려간다. 한 뗏목의 길이가 대개 무려 1km나 된다고 한다.
이제부터 바이칼호를 떠나 내륙의 타이가 수림지대로 들어선다. 왼쪽으로는 바르구진 산맥이, 오른쪽으로는 이카츠키 산맥이 펼쳐지고, 그 사이를 흐르는 바르구진강을 따라 우리는 북상했다. 높이 2000m대의 두 산맥은 수십km나 떨어져 나란히 달리고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구릉이 발달하거나 평원이 펼쳐지기도 해 우리의 계곡과는 전혀 다른 풍광이 펼쳐졌다.
마을다운 마을을 보지 못했는데, 느닷없이 거대한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윽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바르구진에 도착한 것이다. 이 계곡을 둘러싼 두 산맥은 더욱 멀리 나앉아 거대한 분지를 이루며 호수가 평화롭게 펼쳐졌다.
바르구진 지역은 이미 1640년대부터 러시아 모피상들이 최상품으로 치는 검은 담비의 모피를 구입하느라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수렵의 피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차르 왕조는 수년동안 검은담비 수렵금지령을 발동하기에 이르렀다.
1913년 러시아 최초로 자연보호구로 지정된 바르구진 자연보호구는 러시아의 자연보호 체계의 시금석이 됐다. 러시아어로 자포베드닉이라 불리는 이 자연보호구는 우리의 자연공원과는 달리 오로지 생태계 보호 목적으로 지정한 것이다. 우리의 자연공원과 같은 보호와 이용을 겸한 구역도 물론 있다.
바이칼호 주변에는 이 바르구진 자연보호구 외에도 그 바로 남쪽에 트랜스바이칼 국립공원, 그리고 남안에 바이칼 자연보호구가 있고, 서안에는 북쪽에서부터 바이칼-레나 자연보호구, 프리바이칼 국립공원이 지정되어 있다. 여기에 1987년에는 바이칼 호안을 보호하기 위해 호수 주변 모두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더 이상의 개발을 억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정책에도 불구하고 바이칼호수는 몇몇 지역에 오염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트랜스시베리아 철로가 지나는 남안의 이르쿠츠크, 바이칼스크, 셀렝가강 삼각주(울란우데의 하수가 유입)와 동안의 바르구진강 어구, 그리고 바이칼-아무르 철로 (Baikal-Amur Mainline·BAM)가 지나는 북안의 세베로바이칼스크 호안이 그렇다.
●바이칼호의 딜레마
러시아가 이르쿠츠크를 개발한 것은 이 지역의 풍부한 수림에서 고급의 펄프를 얻기 위해서였다. 타이가 원목을 광물질을 거의 함유하지 않은 바이칼호 물로 쪄내면 고급의 섬유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 고급의 섬유소를 타이어에 섞어 생산하면 양질의 제트기용 타이어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합섬섬유소를 채용한 타이어를 항공기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르쿠츠크의 펄프공장은 단순히 제지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경제가 피폐한 상황에서 이 공장마저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는 것이 바이칼호의 딜레마다.
게다가 바이칼호를 끼고 있는 브리아티아 공화국이나 이르쿠츠크 자치단체가 경제 부흥을 주창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에 과연 바이칼호를 어느 선까지 개발할 것인가를 놓고 절치부심하고 있는 것이다.
구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의 공화국들이 어느 정도 자치권을 회복하고 있는 지금 브리아티아 공화국은 쓰라린 과거를 딛고 경제 회복과 함께 옛 풍습과 전통을 회복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1993년에 건립 50주년을 맞은 공화국이지만 실제로 지금을 비상할 수 있는 적기로 잡고 있다. 민선 대통령인 포타포브 대통령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이동하기 위한 협력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세 차례나 방한했고, 여러 각료들과 문화인사들도 한국을 줄줄이 방문했다. 이 공화국은 한국과 교역이 자유롭도록 모스크바 연방정부의 허가도 받아 놓았고, 투자금 회수 때까지 세금을 받지 않는다는 적극적인 투자유치 법안까지 의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동양적 전통문화를 지니고 있다가 러시아의 문명이 유입된 브리아티아는 스스로 동서양의 문화와 문명이 교차하는 관문이라고 믿고 있다. 양극체제 하에서는 시베리아의 오지 속에 묻혀 잊혀진 지역이었으나, 하늘과 땅이 열린 개방된 세상에 브리아티아는 동서양의 새로운 관문 역할을 담당하고 싶은 것이다.
러시아와 극동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브리아티아가 이러한 관문 역할을 담당하는 데 떠올린 화두가 바로 바이칼호다. 브리아티아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바이칼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데 브리아티아어로 바이칼은 바로 '신의 바다' 브리아트다. 바이칼의 나라 브리아티아….
우리는 바르구진에서 발길을 돌렸다. 바이칼호 안의 깊이는 2000km에 달한다(호수면 해발 463m, 가장 깊은 곳 1637m). 우리가 본 바이칼호의 호숫가는 불과 200여km. 그것도 차로 접근이 가능한 곳만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