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은 수도암을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ㆍ
그 뒤 이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 전쟁 때 공비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전소된 뒤 최근들어 크게 중창하였습니다ㆍ
《정명교》
《16 나한전》
《운산당》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 ㆍ약광전ㆍ선원ㆍ관음전ㆍ나한전ㆍ노전등이 있으며 1969년 도림당 법전대종사가 대적광전등의 당우를 중건하였다 ㆍ
《관음전》
《법기보살과 반야바라밀경》
《그 옛날 연못이 있었던 곳 》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약광전석불좌상과 동서 삼층석탑(2기),석조비로자나불좌상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과 초석이 남아 있습니다ㆍ
《계단을 오르면》
《대적광전과 동 삼층석탑 석탑》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307호)》
이 중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ㆍ
《동ㆍ서로 삼층석탑(보물 제 297호)》
《대적광전 앞 동탑 (보물 제297호)》
특히 머리부분에 보관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어 주목된다 이는 약사여래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 흔하지 않은 예입니다
《석주》
《석등》
《약광전 앞 서 삼층석탑 (보물 제297호)》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석굴암 불상보다 80cm 작으며, 9세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석조약사여래좌상 (보물 제 296호)》
당시 이 불상 운반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서 불상을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했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ㆍ당시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했다.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는 설화가 전한다.
《수도선원》
또 삼층석탑은 도선이 창건 할 당시 이 절터가 마치 옥녀가 베를 짜는 모습의 명당터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가야산 연화봉》
불령산 수도암은 약 100여년 전 부터 부처님의 영험과 가피가 많다 하여 불영산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이곳 석불 이마에서부터 자주 방광(放光 : 빛을 내어 멀리 뻗어나감)이 있었으므로 불영산이라 불리기도 하며, 수도암은 수행자가 모여 수도하고 마음 밝히는 곳이라 하여 수도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YouTube에서 '️김천 수도산 수도암️해운대반야선원 (2023년 2월19일) 사찰순례3 참 나를 찾아가는 수도산의 수도암입니다ㆍ'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