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성지순례일시:2012년11월11일
순례사찰:강화 전등사,보문사
주소: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번지
tel:032-937-0125
성암사에서는 매달 다라니기도 순례를 봉행하면서 금번 봉정암에 이어서 강화도 전등사와 보문사로 성지순례를떠났다
부산 문현동에서 밤11시에 출발 새벽 04시30분에 전등사 남문 주차장에 도착 하여 곧바로 전등사로 이동하였다 깜깜한 밤에 봐도 정말 고찰은 고찰이었다 어두워서 전각의 사진을 찍지못해 너무아쉬웠다 대웅전 참배를마치고05시30분 전등사를 회향 버스로 석포리 선착장으로 이동 주차장에서 아침공양을 마치고 07시 버스를 실은체 배로이동 보문사로 향했다
강화도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한 봉우리씩 맡아 쌓았다는 삼랑성이 있고 그 삼랑성의 품안에 전등사가 있다. 삼랑성을 울타리와 입구로 삼고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72년)에 아도화상이 진종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때부터 전등사는 호국 사찰로서 역사적 아픔을 간직하게 된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고려 충렬왕 8년(1282년)에 그의 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승려 인기를 통하여 송나라의 대장경을 가져다가 보관하고 절에 옥등을 시주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나라에 가서 원세조의 딸인 제국공주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인 원종이 죽은 뒤 돌아온 충렬왕은 다시 정화궁주를 비로 맞아들였다. 정화궁주는 제국공주의 시기와 모함에 의해 왕의 총애를 빼앗기고 옥에 갇히기도 하는 한편, 아들마저 유폐를 당하는 시련을 겪게 된다. 이에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이곳 전등사에서 달랜 것으로 보여진다.<전통사찰홈>
대웅보전에는 사랑을 배신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부상으로 남아 있다. "대웅전 건립에 참여한 도편수가 공사 중에 우연히 마을의 어느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다. 이 도편수는 공사가 끝나면 그 여인과 살림을 차릴 결심으로 공사 노임을 모두 그 여인에게 맡기었다.
그러나 공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여인은 마음이 변해 도편수의 돈을 갖고 다른 남자와 도망쳐 버린다. 도편수는 실의에 빠져 한동안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대웅전 공사를 마무리 지었는데, 대웅보전의 네 귀퉁이에 그 여인의 나체상을 조각해 넣어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게 했다고 한다.
대웅전